바이오로깅은 미래에서 온 쌍안경 같은 것이다. 인간의 눈이 지닌 잠재 능력을 훌쩍 뛰어넘는 관찰을 가능케 만드는 마법 같은 쌍안경. 연구의 본질적인 방식을 바꾸지 않고도 관찰, 기술, 고찰이라는 착실한 과정을 거쳐 자연계의 진실에 도달하게 만들어 주는 발명품이다.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라는 순풍을 받으며 바이오로깅은 바로 지금, 엄청난 기세로 전 세계에 퍼지고 있다. 그리고 바이오로깅 기술의 보급과 함께 종래 조사 방식으로는 알아낼 수 없었던 야생 동물들의 행동이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다.
--- p.26
그러니까 이 책의 목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거다.
“바이오로깅으로 알아낸 야생 동물들의 다이내믹한 움직임을 소개하고, 그 배경에 있는 메커니즘과 진화의 의의를 밝혀내는 것.”
이런 분야를 뭐라고 하지? 행동생태학? 동물행동학? 분명 이런 학문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너무 막연하고 딱딱하니 마음대로 이름을 붙여 버리자.
‘펭귄 물리학’ 아, 깔끔하지 않은가.
--- p.28
저 멀리에서 검은 점 몇 개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어라’ 싶어 자세히 바라보니 그것은
빙원 너머 혹은 빙산 뒤에서 무리지어 솟아 나왔다. 검은 점들은 어느새 다음 전장으로 이동하는 병사들처럼 일사불란하게 대열을 맞춰 관측선 쪽을 향해 다가왔다. 아델리펭귄이었다! 나는 다급히 선실로 달려가 카메라와 쌍안경을 거머쥐고 다시 갑판으로 달려 나갔다. 그사이에도 짧은 시간 동안 펭귄의 수는 늘고 대열은 더더욱 질서정연한 모습이 갖춰지고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어 뷰파인더 너머를 살펴보니, 어느 펭귄은 터벅터벅 걷고 또 어떤 펭귄은 배밀이로 미끄러지며 대열의 폭을 조금씩 좁혀 갔다. 그렇게 아델리펭귄 무리는 결국 열차처럼 하나의 직선을 이루었다. 펭귄 열차는 시간이 멈춘 듯 거대한 빙산을 배경으로 스르륵스르륵 내 눈앞을 가로지르고, 내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멀어져서 이윽고는 빙원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내가 둘째가라면 서러울 펭귄의 팬이 된 것은 바로 그 순간이다.
--- p.77
바로 이것이 재미있는 포인트이다. 확실히 아동용 도감의 ‘바다 동물의 신비’ 코너 같은 곳에는 “다랑어는 시속 70킬로미터, 청새치는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 가다랑어는 시속 60킬로미터”와 같은 내용이 적혀져 있다. 고속 유영에 알맞은 이런 어류들은 마치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같은 속도로 드넓은 바다를 슝슝 헤엄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내가 바이오로깅으로 측정한 다양한 어류의 유영 속도를 해석한 결과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오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순항 시 평균 시속은, 놀라지 마시라. 어느 어류도 8킬로미터를 넘지 못했다.
--- p.94
보통 어류학자들은 정어리를 바다표범과 비교하지 않고, 조류학자들은 펭귄을 바다거북과 비교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런 투박한 비교를 매우 좋아한다. 다양한 동물들을 대략적으로 비교하면 다른 두 종의 분류군에 속한 동물들의 몸 생김새와 생리 기관의 근본적인 차이가 어떤 행동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한 보편 법칙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바이오로깅의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바이오로깅의 가장 큰 이점은 외모는 물론 생리, 생태까지 제각기 다른 동물들에게 공통된 기록계를 부착해 행동을 정량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본래 하나의 판 위에 올릴 수 없었던 다양한 동물들을 하나의 판 위에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 p.119
많은 동물 개체의 행동을 동시에 측정하며 상호 관계 혹은 사회성을 밝혀내는 것이 가까운 미래에 바이오로깅이 지향하는 원대한 목표이다. 새나 어류가 편대를 꾸려 이동하는 것은 왜일까? 편대에 리더는 존재할까? 집단으로 생활하는 동물들은 서로 정보를 공유할까? 타자를 돕기도 할까? 혹은 속이기도 할까? 인간 사회를 볼 때와 같은 시점으로 동물의 집단을 살펴보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늘 존재하는 보편적인 생물의 진리를 밝혀내는 것. 그것이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집단 바이오로깅’이다.
--- p.207
또 다른 강연회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쯤 되는 아이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펭귄은 왜 잠수하나요?” 이거야 쉽지. 바닷속에 사는 물고기와 크릴새우를 잡아먹기 위해서랍니다. 이렇게 대답하면 대답 끝. 하지만 강연회가 끝난 뒤에 나는 정말 그렇게 쉽게 대답해도 되었던 것일까 한참을 생각했다. 어쩌면 아이가 질문했던 의도는 다른 것인지도 몰랐다. 펭귄은 새다. 그럼 다른 새들이 그렇듯이 하늘을 날면 될 것을 왜 펭귄만 바다에 잠수하는 삶을 선택했는가? 어쩌면 그런 질문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지 않는가.
--- p.212
고래의 바이오로깅 조사는 보통 일이 아니다. 고래는 바다표범이나 펭귄과는 달리 바다 위로 올라올 일이 없기 때문에 땅 위에서 포획하는 일이 불가능하고,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다랑어처럼 낚아 올리는 일 역시 불가능하다. 그래서 고래 연구자들은 바다 위에서 배를 타고 고래를 뒤쫓아 호흡을 위해 수면으로 올라온 고래의 등에 적절한 타이밍을 노려 기록계를 찰싹 붙일 수밖에 없다.
방금 찰싹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기록계 부착에 쓰는 것은 화장실의 흡착용 빨판과도 닮은 반구형 빨판이어서 정말 말 그대로 찰싹 달라붙는다. 고래의 피부는 고무장화처럼 번들번들하기 때문에 빨판이 특히 잘 달라붙는다. 누가 고안했는지는 몰라도 아이디어상 감이라고 생각한다.
--- pp.232~233
동물계 잠수 챔피언은 현재 2,000미터가 넘는 잠수 기록을 보유한 향유고래이다. 단, 코끼리바다표범도 그에 가까운 잠수 기록이 있다. 훗날 이들의 기록을 뒤엎을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직 많은 수수께끼에 둘러싸인 부리고래과 고래이다.
왜 그렇게 깊게 잠수하는가? 그것은 오랜 세월에 먹이와의 걸친 흥정 결과였다. 먹이인 물고기나 오징어에게 햇볕이 닿아 플랑크톤이 많이 자란 얕은 심도는 매력적인 곳. 하지만 자신들을 잡아먹는 바다표범이나 고래의 사정 거리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을 것 아닌가. 한편 바다표범이나 고래는 물고기나 오징어를 앞지를 만큼 깊게 잠수해 그들을 잡으려 한다. 이런 대치의 결과로 일부 바다표범과 고래에게서 걸출한 잠수 능력이 발달했다.
--- p.250
바이칼바다표범은 포동포동하게 살이 찐 모습이 대단히 익살스럽다. 바다표범이란 동물이 대체로 동글동글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바이칼바다표범의 살이 찐 모양새는 상식의 틀을 한참 벗어나 있다. 둥근 공에 손발이 붙어 있는 것 같은 상식을 파괴하는 모습에 틀림없이 흠칫할 것이다. 내가 처음 야생 바이칼바다표범의 체형을 측정했을 때, 몸길이보다 몸통 둘레가 훨씬 더 긴 것을 안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전 세계 포유류 중에서도 그런 역전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바이칼바다표범 정도이리라.
--- pp.252~253
바라노프에게서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마키타에게 부착했던 기록계가 발견되었다고 했다. 뱃놀이를 하던 관광객이 호수면에 떠오른 기록계를 우연히 발견해 보내 주었다고 했다. ‘잠깐 기다려!’ 하며 나는 연구실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바이칼 호는 이노카시라井の頭恩賜 공원 연못(도쿄의 도립공원으로 약 43,000m² 크기의 연못)이 아니다. 규슈만 한 면적(약 35,640km²)을 가진 거대한 호수인 데다 주변에는 울창한 원시림이 들어차 있고, 그 군데군데에는 전기도 통하지 않는 촌락만 띄엄띄엄 자리해 있다. ‘뱃놀이’를 하던 ‘관광객’이 ‘우연히 발견하는 일’ 같은 게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으니 기적이라고 밖에는 말할 방법이 없다. 분명 우리는 기록계에 “이것을 발견하신 분께는 5,000루블을 드리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바라노프의 연락처와 함께 러시아어로 적어 두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주문呪文이었지, 실제로 이런 일이 가능할 거라 믿은 것은 아니었다.
--- pp.263~264
생각건대 생태학에는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 적어 법칙이라고 부를 만한 법칙이 거의 없다. 얼핏 옳은 듯 보이는 법칙도 환경에 따라, 생물 종에 따라, 계절에 따라 마치 고양이 눈동자가 바뀌듯이 휙휙 변해 버린다. 이에 비하면 물리학 법칙은 우주의 법칙이다. 대상이 로켓인 ‘입실론’이든 목성의 위성인 ‘에우로파’이든, 혹은 바이칼바다표범인 ‘마키타’이든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적용된다. 그러므로 물리라는 도마 위에 놓인 ‘바이오로깅이 얻어 낸 행동 데이터’는 조리법에 따라 전혀 새로운 것으로 다시 태어날 잠재적인 가능성을 가진다.
--- p.269
문득 그 사이에서 아주 크고 흰 새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다른 앨버트로스들과 마찬가지로 활공 중이긴 했는데, 초등학생 소풍에 혼자 잘못 낀 고등학생처럼 유독 튀었다. 거대한 날개를 양옆으로 펼쳐 고정한 채 능숙하게 자연의 힘만을 활용해 유유히 활공을 이어 가는, 그야말로 ‘하늘의 제왕’다운 관록을 보여 주었다. 그 아름다운 용안은 어떤 모습이실까 생각하며 쌍안경을 들여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병아리를 꼭 닮은 멍청하고 익살스러운 얼굴을 한 ‘하늘의 제왕’이라니!
--- pp.275~276
일설에는 새가 비행기와 같다고 한다. 새의 날개는 기능적으로 비행기 날개와 마찬가지이며, 동일한 유체 역학적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부양력을 발생시킨다고 한다. 오호, 일리 있는 말인지도 모른다. 하늘을 나는 앨버트로스만 보아도 분명 활공하는 글라이더와의 공통점은 명확해 보인다. 그러나 벌새처럼 공중의 한 지점에서 정지할 수 있는 비행기가 존재할까? 나리타 공항 상공에서 착륙 차례를 기다리는 점보제트기가 제자리에서 공중 정지한 채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있던가? 굳이 비교하자면 벌새는 비행기가 아닌 헬리콥터에 비교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 제비는 어디에 비교할 수 있을까? 제비만큼 재빠르고 자유자재로 선회가 가능한 비행기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공군의 최신예 전투기가 떼로 출격하더라도 제비의 기동성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현실의 새들에게서 보이는 다양한 비행스타일을 단순히 항공 역학적인 시각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 pp.279~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