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0년 10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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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560쪽 | 636g | 130*195*35mm |
ISBN13 | 9788991418103 |
ISBN10 | 8991418104 |
발행일 | 2010년 10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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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560쪽 | 636g | 130*195*35mm |
ISBN13 | 9788991418103 |
ISBN10 | 8991418104 |
1부 길이 끝나면 ㅣ넌 나처럼 살지 마라 ㅣ한계선 ㅣ꽃씨가 난다 ㅣ긴 호흡 ㅣ허리 ㅣ꼬막 ㅣ너의 눈빛이 변했다 ㅣ시대 고독 ㅣ새 ㅣ마루완의 꿈 ㅣ아니다 ㅣ경주마 ㅣ자기 삶의 연구자 ㅣ아이 앞에 서면 ㅣ해 뜨는 집 ㅣ그 작은 날개로 ㅣ씨앗이 팔아넘겨져서는 안 된다 ㅣ탈주와 저항 ㅣ아이폰의 뒷면 ㅣ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ㅣ몸속에 남은 총알 ㅣ상처가 희망이다 ㅣ한 옥타브 위의 사고를 ㅣ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ㅣ발바닥 사랑 ㅣ거인의 뱃속에서 ㅣ사람의 깃발 ㅣ평온한 마음 ㅣ삼성 블루 ㅣ들어라 스무 살에 ㅣ꽃을 던진다 ㅣ삶의 행진 ㅣ누가 조용히 생각하는 이를 가졌는가 ㅣ다 다르다 ㅣ겨울새를 본다 ㅣ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ㅣ다친 가슴으로 ㅣ이스탄불의 어린 사제 ㅣ말의 힘 ㅣ떨림 ㅣ안 팔어 ㅣ숲 속의 친구 ㅣ필사적으로 꼴리기를 ㅣ잉카의 후예가 ㅣ얼굴을 돌린다 ㅣ시인은 숫자를 모른다 ㅣ장엄한 소리 ㅣ살아 있는 실패 ㅣ기도는 나의 힘 ㅣ돌꽃 ㅣ모내기 밥 ㅣ가을에 시인이 이런 시를 써야 하나 ㅣ비출 듯 가린다 ㅣ지붕 위의 두 여자 ㅣ그 꽃 속에 ㅣ가을 몸 ㅣ그렇게 내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2부 도시에 사는 사람 ㅣ도토리 두 알 ㅣ공부는 배반하지 않는다 ㅣ첫마음의 길 ㅣ서른다섯 여자 광부의 죽음 ㅣ사라진 야생의 슬픔 ㅣ혁명은 거기까지 ㅣ평화 나누기 ㅣ기도 ㅣ무엇이 남는가 ㅣ오월, 그날이 다시 왔다 ㅣ그녀가 떠나간 자리에는 ㅣ건너뛴 삶 ㅣ압록강에서 ㅣ오래된 친구 ㅣ나는 아프리카인이다 ㅣ첫 치통 ㅣ죽을 용기로 ㅣ유산 ㅣ엉겅퀴 ㅣ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어요 ㅣ3단 ㅣ칼날처럼 꽃잎처럼 ㅣ촛불의 광화문 ㅣ삶의 나이 ㅣ가난한 자는 죽지 마라 ㅣ남이 될 수 있는 능력 ㅣ누가 홀로 가는가 ㅣ두 번 바뀐다 ㅣ올 줄 ㅣ영원히 영원히 ㅣ그 사람도 그랬습니다 ㅣ위험분자 ㅣ여행은 혼자 떠나라 ㅣ아기 똥개의 잠 ㅣ그들은 살인자들 ㅣ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 ㅣ돌잔치 ㅣ속울음 ㅣ그 누구도 모른다 ㅣ'조중동'씨가 누구요? ㅣ바닥에 있을 때 ㅣ아픈 몸은 조국을 부르고 ㅣ굴레를 다오 ㅣ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것 ㅣ그리운 컨닝 ㅣ다시 사랑이 찾아왔다 ㅣ괘종시계 ㅣ까나의 아이야 ㅣ침묵의 나라 ㅣ그날이 오면 ㅣ나의 풀꽃 대학교 ㅣ그 겨울의 시 ㅣ예지의 검은 손 ㅣ터무늬 째 ㅣ그리고 아무도 울지 않았다 ㅣ나의 못난 것들아 ㅣ검은 석유 ㅣ그 젖가슴에 ㅣ다 아는 이야기 3부 깨끗한 말 ㅣ발바닥으로 쓰네 ㅣ돌아온 소년 ㅣ카불의 봄 ㅣ진실 ㅣ너와집 한 채 ㅣ달려라 죽음 ㅣ밤이 걸어올 때 ㅣ샤이를 마시며 ㅣ힘내라 문제아 ㅣ꽃꽂이 ㅣ심심한 놀이터 ㅣ거대한 착각 ㅣ봄은 누구에게나 봄이어야 한다 ㅣ연필로 生을 쓴다 ㅣ삶이 말하게 하라 ㅣ어린 수경收耕 ㅣ착해지지 마라 ㅣ가만히 건너간다 ㅣ거친 길을 걸어라 ㅣ길을 잃거든 네 목을 쳐라 ㅣ미래에서 온 사람 ㅣ우리는 '바보'와 사랑을 했네 ㅣ아체의 개 ㅣ구도자의 밥 ㅣ목적지가 가까워올수록 ㅣ국가 보상금을 찢으며 ㅣ크나큰 비움 ㅣ체 게바라의 길 ㅣ단 한 발의 화살 ㅣ깊은 시간 ㅣ감사한 죄 ㅣ의무분양 ㅣ마리아의 금광석 ㅣ잎으로 살리라 ㅣ삶에 대한 감사 ㅣ애완견 ㅣ이상理想 ㅣ남은 목숨 ㅣ우리 밀 ㅣ신은 작은 것들의 신 ㅣ촛불의 아이야 ㅣ밤나무 아래서 ㅣ어머니의 새해 강령 ㅣ역광에 서다 ㅣ바닥의 거울 ㅣ보험 ㅣ늙은 개처럼 ㅣ뻐꾸기가 울 때 ㅣ9월의 붉은 잎 ㅣ하붑이 불어올 때 ㅣ두 가지만 주소서 ㅣ갈 수 없는 나라 ㅣ그의 죄를 용서하라 ㅣ종자 ㅣ스무 살의 역사 ㅣ나 거기 서 있다 ㅣ사랑은 남아 4부 니나의 뒷모습 ㅣ갈라진 심장 ㅣ300년 ㅣ학자의 걸음 ㅣ유연화 ㅣ내 영혼의 총 ㅣ긴 눈물 ㅣ누가 나를 데려다주나 ㅣ주의자와 위주자 ㅣ나무가 그랬다 ㅣ단식 일기 ㅣ계시 ㅣ숟가락이 한주먹이면 ㅣ봄의 침묵 ㅣ새해에는 사람이 중심입니다 ㅣ누가 내 수명을 늘리려 하는가 ㅣ새만금 ㅣ웃는 머리 ㅣ코리아의 소녀 ㅣ맷돌 ㅣ반인반수 ㅣ시간의 중력 법칙 ㅣ삽질 경제를 예찬함 ㅣ진공 상태 ㅣ어른은 죽었다 ㅣ부모를 이겨라 ㅣ어항과 수족관 ㅣ새해 수첩을 적으며 ㅣ눈 심알 ㅣ너의 날개는 ㅣ무임승차 ㅣ내가 쓰러질 때 ㅣ풍속화 ㅣ지뢰 ㅣ그는 단순했다 ㅣ경운기를 보내며 ㅣ크게 울어라 ㅣ사람이 희망인 나라 ㅣ진보한 세대 앞에 머리를 숙여라 ㅣ나랑 함께 놀래? ㅣ공은 둥글다 ㅣ탐욕의 열정 ㅣ기침 소리 ㅣ아이들은 놀라워라 ㅣ젊은 피 ㅣ틀려야 맞춘다 ㅣ언저리의 슬픔 ㅣ그리운 제비뽑기 ㅣ문자 메시지 ㅣ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ㅣ난 다 봤어요 ㅣ계절이 지나가는 대로 ㅣ마음씨 ㅣ잘못 들어선 길은 없다 ㅣ구멍 뚫린 잎 ㅣ대림절 ㅣ알 자지라의 아침에 ㅣ입맞춤해온 삶 ㅣ꽃은 달려가지 않는다 5부 우리 함께 걷고 있다 ㅣ나 거기에 그들처럼 ㅣ꽃내림 ㅣ참사람이 사는 법 ㅣ좋은 날은 지나갔다 ㅣ국경의 밤 ㅣ꼬리를 물고 ㅣ성숙이 성장이다 ㅣ우주의 가을 시대 ㅣ최선이 타락하면 최악이 된다 ㅣ아픈 날 ㅣ혀가 지나간 자리 ㅣ소녀야 일어나라 ㅣ저 꽃 속에 폭음이 ㅣ명심할 것 ㅣ겨울 속으로 ㅣ권총이 들어 있다 ㅣ라냐는 돌을 깬다 ㅣ사과상자 ㅣ참 착한 사람 ㅣ후지면 지는 거다 ㅣ낙타의 최후 ㅣ가을날의 지혜 ㅣ대한민국은 투쟁 중 ㅣ거짓 희망 ㅣ아체의 어린 꽃들 ㅣ누구의 죄인가 ㅣ감자꽃 ㅣ가난은 예리한 칼 ㅣ고난 ㅣ슬픔의 힘 ㅣ과학을 찬양하다 ㅣ불편과 고독 ㅣ네 가지 신념 ㅣ마스크 ㅣ건기의 슬픔 ㅣ우울 ㅣ개구리 ㅣ돈은 두 얼굴 ㅣ가득한 한심 ㅣ고모님의 치부책 ㅣ정점 ㅣ우아한 뒷간 ㅣ산 위에서 죽자 ㅣ종교 놀이 ㅣ따뜻한 계산법 ㅣ뉴타운 비가 ㅣ호랑이 울음소리 ㅣ뜨내기 ㅣ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ㅣ내가 살고 싶은 집 ㅣ식구 생각 ㅣ양들의 사령관 ㅣ사로잡힌 영혼 ㅣ시체공시장 ㅣ나의 작은 것들아 ㅣ총과 펜 ㅣ담대한 희망 ㅣ유보 ㅣ래디컬한가 ㅣ결단 앞에서 ㅣ은빛 숭어의 길 ㅣ마지막 선물 ㅣ벌 ㅣ겨울 사랑 ㅣ팔루자의 아마드 ㅣ나를 휩쓸어다오 ㅣ잠시 후 ㅣ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지난 3주 동안 출퇴근길엔 항상 박노해 시인의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가 함께 했다. 상쾌한 아침을 열어주기에, 그렇다고 노곤한 퇴근길을 위로해주기에 적합한 시집은 아닐진대, 왜 이리 마음이 쓰였을까. 미어터지는 버스 안에서 오른손 높이 처들고 읽어내려간 시. 때론 택시를 타고 느긋하게 앉아 책장을 넘길 때의 부끄럼이란...
1984년 <노동의 새벽>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 박노해. 100만부라는 경이적인 판매부수를 자랑했던 이 시집이 내 책장에도 꽂혀있다. 때국물을 머금은 채. 1995년 대학 선배에게 선물받은 이후, 15년 만에 동지를 만났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란 간절한 염원을 담은 목소리로.
노동혁명가로서 한 시대를 관류했던 시대정신이자, 들불처럼 번지던 학생운동의 신화로 자리매김한 그가... 오랫동안 내겐 잊혀진 인물이었다. 대학에 갓 입학한 당시, 그가 옥중에서 발표했던 두번쨰 시집 <참된 시작>은 접하지 못했고, 또 다른 선배로부터 에세이집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선물 받았었다. 그리곤 내내 그의 존재가, 발자취가 지워졌다.
1998년 석방 당시가 선연히 기억난다. 한켠에서는 '변절자'라고 손가락질까지 했었고, 시인 김지하의 길을 걸어가리란 무거운 예감을 발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난 박노해를 잊은 지 오래였다.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고, 복학을 한 이후에도 소리 소문없이 그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증발한 상태였다. 그렇게 잊혀졌던 박노해 시인이 17년만에 세번째 시집을 들고 왔다.
'10여 년의 침묵정진 속에서 육필로 새겨온 5천여 편의 시 중에서 300편을 묶은' 것이다. 그 긴 침묵의 시간과 300편이란 엄청난 시편들의 무게였을까. 제책방식부터가 독특하다. 우선 편안한 소프트 양장의 제본과 청적 컬러의 가늠끈 2개가 그렇다. '느린걸음'이란 출판사명(열린책들의 홍지웅 사장이 후배인 허택 님의 회사 네이밍에 걱정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통의동에서 집을 짓다'에서 말이다.)이 그렇고, 변변한 시해설이나 추천사 하나 없는 단촐한 구성이 그렇다. <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의 저자인 홍동원 선생의 인상적인 표지 디자인도 그렇고, 박노해 시인이 직접 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의 필체도 그러하다.
덜컹이는 버스 안에서 난 어떤 시편들을 주워 섬겼을까. 그냥 변모한 시인 박노해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고 싶은 생각이 반, <노동의 새벽> 이후 침묵정진 속에 탄생한 치열한 시의 향연을 만끽하고 싶은 생각이 반이었다. 결과적으로 둘 다 만족하지 못한 수준이지만, 그렇다고 시의 완성도를 논할 수 있는 위치나 자격도 없지만, 적어도 시인 박노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뚜렷이 알 수 있었다.
억압받지 않으면 진리가 아니다/ 상처받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저항하지 않으면 젊음이 아니다/ 고독하지 않으면 혁명이 아니다 <P34, 아니다>
여전히 신자유주의, 제국주의, 패권주의에 강한 반기를 들며, 행동하는, 사색하는 대중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 그다. 한편으론 이라크에서, 아프카니스탄, 아프리카 각 지를 돌며, 제국주의가 가져온 전쟁의 참상과 상처받는 아이들의 영혼을 어루만진다. 유년 시절을 더듬으며 농부의 마음, 생명과 더불어 함께 하는 삶을 추억하기도 한다. 그리곤 이내 한없이 자신의 처지에 열패감을 느끼며 부유한다.
어머니는 울산으로 여수로 일터를 떠다니고/ 형과 막내는 사제가 되고 수녀가 되고/ 누나들도 일가를 이루어 힘든 노동의 밥을 먹고/ 나는 공장 기숙사로 수배 길로 감옥으로 떠돌았네// 이제 나에게는 가족이 없고 아이도 없고/ 그러나 새로운 식구들은 자꾸만 늘어나/ 피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고 믿음이 달라도/ 함께 울고 웃고 꿈꾸며 한 밥상에 앉아 밥을 먹는/ 우리는 핏줄만큼 뜨거운 한 식구임을 명심했네 <P523~524, 식구 생각 中에서>
이렇듯 300편의 시들이 다양한 층위로 읽힌다. 10년동안 축적해온 삶의 궤적이 그대로 드러난다. 또한 그가 지금껏 견지해온 혁명이란 것이 세상 밖으로 눈을 돌리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극히 사견이다. 오해 없길 바란다.) 구호인지 깨닫게 된다. 새벽부터 졸린 눈을 비비며, 손을 찧어가며 돌을 깨는 다섯살 라냐의 모습에서 상처와 아픔에 대한 시점은 전지구적으로 확장된다. 먹고, 자는 소박한 행복조차 누릴 수 없는 그들에게 과연 혁명은 무엇일까? 시인의 깊은 한숨과 넋두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럼에도 박노해 시인은 말한다. '우리 일은 세상의 빛을 보기보다 내 안의 빛을 찾는 것'<P443, 참사람이 사는 법 中에서>이란 걸.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삶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P553~554,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中에서>고.
애초 박노해는 노동의 해방을 이야기했다. 본명인 박기평의 이름 풀이처럼, 이번 시집에서는 '평화의 터를 이루는 길로 나아가'는 그를 발견할 수 있다. 메모로 이번 시집 중에 정말 마음에 와닿는 몇 편을 정리했었다. 그 중에서도 박노해 시인의 현재를 가장 잘 드러내는 시 한편을 꼽아본다. 인류애라고 한다면 거창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 그의 가슴속엔 따뜻한 평화가 자리잡으리라. 그 어떤 상처와 슬픔도 능히 이겨나갈 힘이 있으리라. 조용히 나려지는 시편을 붙잡는다.
발바닥으로 쓰네
오늘도 지구 위에서 시를 쓰네
뜨거운 발바닥으로 시를 써 가네
농부의 주름진 이마로 써 가네
논바닥처럼 갈라진 손금으로 써 가네
실직자의 어둑한 한숨으로 써 가네
고뇌하는 가장의 미간으로 써 가네
이주노동자의 까만 발뒤꿈치로 써 가네
굶주린 아이의 마른 입술로 써 가네
뱀처럼 벌건 핏자국 선명한
이라크 포로의 등짝으로 써 가네
자그로스 산맥 언 바위를 기어오르다
동상 걸린 손가락을 대검으로 끊어내는
소녀 게릴라의 잘린 손가락으로 써 가네
써 가네 오늘도 눈물 흐르는 지구 위에서
무력한 발바닥 사랑으로 써 가네
이스탄불의 어린 사제
폭설이 쏟아져 내리는 이스탄불 밤거리에서
커다란 구두통을 맨 아이를 만났다
야곱은 집도 나라도 말글도 빼앗긴 채
하카리에서 강제이주당한 쿠르드 소년이었다
오늘은 눈 때문에 일도 공치고 밥도 굶었다며
진눈비 쏟아지는 하늘을 쳐다보며
작은 어깨를 으쓱한다
나는 선 채로 젖은 구두를 닦은 뒤
뭐가 젤 먹고 싶냐고 물었다
야곱은 전구알같이 커진 눈으로
한참을 쳐다보더니 빅맥, 빅맥이요!
눈부신 맥도날드 유리창을 가리킨다
학교도 못 가고 날마다 이 거리를 헤매면서
유리창 밖에서 얼마나 빅맥이 먹고 싶었을까
나는 처음으로 맥도날드 자동문 안으로들어섰다
야곱은 커다란 햄버기를 굶주린 사자새끼처럼
덥썩 물어 삼키다 말고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담배를 물었다
세입쯤 먹었을까
야곱은 남은 햄버거를 슬쩍 감추더니
다 먹었다며 그만 나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창밖에는 흰 눈을 머리에 쓴
대여섯 살 소녀와 아이들이 유리에 바짝 붙어
뚫어져라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야곱은 앞으로 만난 때마다
아홉 번 공짜로 구두를 닦아주겠다며
까만 새끼손가락을 걸며 환하게 웃더니
아이들을 데리고 길 건너 골목길로 뛰어들어갔다
아, 나는 그만 보고 말았다
어두운 골목길에서 몰래 남긴 햄버거를
손으로 떼어 어린 동생들에게
한입 한입 넣어주는 야곱의 모습을
이스탄불의 풍요와 여행자들의 낭만이흐르는
눈 내리는 카페 거리의 어둑한 뒷골목에서
나라 뺏긴 쿠르드의 눈물과 가난과
의지와 희망을 영성체처럼
한입 한입 떼어 지성스레 넣어주는
쿠르드의 어린 사제 야곱의 모습을
책은 554쪽이나 되고 시는 수도 없이 담겨 있는데 가격은 1만8천원으로 저렴하다. 마음에 드는 시가 나올 때마다 귀를 접었는데 귀접은 시가 너무 많아서 다 소개할 수는 없을 것같다. 80쪽의 '이스탄불의 어린 사제'는 처음 나를 울린 시이다. 눈앞에 그려지도록 섬세하게 묘사한 시는 울라고, 울라고, 보채지 않는데 나는 울고 말았다. 감정을 담지 않고 덤덤히 쓰여진 시인데 눈이 뜨거워지고 참지 못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렇게 주채하지 못하는 눈물이 이 시집을 읽는 동안 종종 흘러내렸다.
꼬막
벌교 중학교 동창생 광석이가
꼬막 한 말을 부쳐왔다
꼬막을 삶는 일은 엄숙한 일
이 섬세한 남도의 살림 성사는
타지 처자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모처럼 팔을 걷고 옛 기억을 살리며
싸목싸목 참꼬막을 삶는다
둥근 상에 수북이 삶은 꼬막을 두고
어여 모여 꼬막을 까먹는다
이 또롱또롱하고 짭조름하고 졸깃거리는 맛
나가 한겨울에 이걸 못 묵으면 몸살헌다
친구야 고맙다
나는 겨울이면 니가 젤 좋아부러
감사전화를 했더니
찬바람 부는 갯벌 바닷가에서
광석이 목소리가 긴 뻘 그림자다
우리 벌교 꼬막도 예전 같지 않다야
수확량이 솔찬히 줄어부렀어야
아니 아니 갯벌이 오염돼서만이 아니고
긍께 그 머시냐 태풍 때문이 아니것냐
요 몇 년 동안 우리 여자만에 말이시
태풍이 안 오셨다는 거 아니여
큰 태풍이 읍써서 바다와 갯벌이
한번 시원히 뒤집히지 않응께 말이여
꼬막들이 영 시원찮다야
근디 자넨 좀 어쩌께 지냉가
자네가 감옥 안 가고 몸 성한께 좋긴 하네만
이놈의 시대가 말이여, 너무 오래 태풍이 읍써어
정권 왔다니 갔다니 깔짝대는 거 말고 말여
썩은 것들 한번 깨끗이 갈아엎는 태풍이 읍써어
어이 친구, 자네 죽었능가 살았능가
요즘 <60일 지정생존자>라는 드라마를 재밌게 보고 있다. 그 가운데 인상에 남는 부분이 아무리 좋은 사람의 정권이라도 야당대표의 몫은 권력을 견제하는 일이라는 뜻으로 배종옥이 지진희에게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시인에게 어느 시대라도 시인의 몫이 있을 것인데 이 두꺼운 책에는 시인이 이 시대에는 아무 소용이 닿지 않는다는 자책, 회한 등이 담겨 있어서 가슴 아프게 한다. 그런데 우리는 시인에게 어떤 기대를 하고 시속의 친구처럼 어떤 짐을 자꾸 지우려 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시인이 무엇을 노래한다해도 나는 좋은데, 그렇게 되면 혹자는 박노해 시인의 시가 변했다고 책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시인이 세상 아픔만이 아닌 나태주 시인같은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도 나는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또한 그의 감성으로 노래하면 다를테니 말이다.
가을에 시인이 이런 시를 써야 하나
이탈리아의 한 지역에서
금붕어를 둥근 어항에 기르는 것을
서민조례로 금지시켰다고 한다
물고기에게 둥근 어항으로
왜곡된 현실 모습을 보게 하는 것이
가혹하다는 이유에서였단다
그런대로 섬세하지 않은가
그 순간 그 마을 아이들의
가슴 속에 갇힌 시원의 물고기들이
일제히 파닥이며 춤추지 않았겠는가
동쪽의 한 나라에서
수천수만 년 흘러온 강들을
모조리 시멘트로 직선의 둑을 쌓고
강바닥을 깊이 파 댐을 세우기로 했단다
거기다 기름배 띄우고 오리배 띄워서
관광개발로 경제, 경제를 살린다고
그런대로 끔찍하지 않은가
그 순간 그 나라 아이들의 가슴에 뛰놀던
시원의 물고기와 이야기들이 일제히
시멘트 어항 속에서 살해되지 않겠는가
시를 읽으며 시가 쓰여진 년도가 기제되어 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이 시는 4대강 사업 때 지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 시집은 시인의 삶의 아픔도 담겨있지만, 시인이 보는 세상의 아픔이 담겨있다. 우리는 그 시대 어떤 생각을 했던가... 망쳐놓으면 되돌리기 힘든 자연을 훼손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는 지 뜻대로 밀어부쳐 녹조라떼를 만들어놓고 말았는데, 아이들의 시원의 물고기와 이야기들이 살해되는 것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알 자지라의 아침에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광활한 알 자지라 평원에 여명이 밝아오면
집집마다 빵 굽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아침햇살을 받으며 묵주기도를 하시던
105살 어머니가 낯선 나를 보자마자
'어제는 기다리던 첫 비를 보고
오늘은 태양 같은 첫 얼굴을 보고
먼 데서 온 아들아
우리 갓 구운 빵과 샤이를 함께 들자꾸나'
천천히 손을 잡아 이끄신다
햇살 좋은 너른 흙마당가에
오래된 나무탁자와 의자가 놓이고
금세 가족과 친척과 이웃들이 몰려나와
스무 명 서른 명으로 불어나기 시작한다
집에서 만든 요구르트와 무화과 잼이 차려지고
대추야자와 갓 따낸 오렌지를 들고 온 친척들과
구운 양파와 올리브 김치를 들고 온 이웃들까지
이방인을 맞아 우애와 환대의 나눔잔치가 벌어지고
우리는 음식을 서로 권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서로 한 식구처럼 친해진 즈음
차도르 쓴 부인이 조심스레 물으신다
샤이르 박은 땅이 얼마나 되는지요?
올해 밀과 양파와 토마토를 얼마나 수확했는지요?
저는 땅이 하나도 없습니다
젊은 여인이 수줍게 물으신다
그럼 나무는요?
올리브나무와 복숭아나무와 오렌지나무를
몇 그루나 갖고 계신지요?
전 나무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럼 양은 몇 마리나 갖고계시나요?
전 양도 ......
여인들의 묻는 목소리가 작아지고
얼굴은 점점 울상이 된다
그럼 말과 낙타는 몇 마리나 갖고 있나요?
젊은 남자가 나선다
쿠리아는 부자 나라라 낙타 대신 자동차를 타지요
자동차는 몇 대쯤 갖고 있나요?
전 자동차도 없습니다
눈가에 물기가 맺힌 그 집 며느님이 묻는다
샤이르 박은 아들과 딸은 몇 명쯤 두고 있나요?
나는 정말로 풀이 죽은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아들도 딸도 없답니다
라, 라, 라! 안돼, 안돼, 이럴 수가!
슬픔에 찬 탄식들이 합창으로 울려 퍼지고
오, 불쌍한 샤이르 박 ......
어떡해, 어떡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
그 순간 나는 세계에서 가장 불쌍한 남자가 되고
부자 나라 코리안은 가장 불쌍한 인간이 되고 말아
아 나는 삶이 없구나
우리는 삶이 없구나
아침햇살만큼 그늘진 마음인데
흙벽에 기대어 조용히 지켜보던
105살 움미께서 천천히 일어나신다
샤이르 박이 아무것도 갖고 있지 못하는 건
참 안됐지만... 안됐지만...
원래 샤이르란 그런 운명의 사람이야
샤이르는 자신의 발로 걷는 모든 대지가 다 그의 영토이고
그가 기대앉고 말을 거는 모든 나무들이 그의 것이고
샤이르가 안아주는 모든 아이들이 그의 아들 딸이고
그의 시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여인이 다 그의 여자이지
이 지상에서 가장 안 됐고 불쌍한 남자이던 나는
가장 빛나는 발바닥의 샤이르로 들어 올려져
나는 105살 움미에게 허리 숙여 절하고
백 년의 노동으로 주름진 손에 입맞춤을 바친다
그리고 알 자지라의 아침을 찬양하는
멋진 시 한 수를 낭송한다
젊은 여인들의 두 눈에서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물이 흐르며 햇살에 반짝인다
한쪽 눈동자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샤이르에 대한 연민의 눈물이
또 한쪽 눈동자에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샤이르에 대한 경애의 눈물이
이국 마을의 아름다운 아침에는 시인으로 슬픔이 담겼지만 105살 어머니의 혜안으로 빛나는 아침이 된다. 내가 누리는 평화와 행복은 누군가의 희생이 바탕이 된 것임을 잊지 않는다. 하여 감사한다. 그리고 시인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는 시처럼 시인도 사라지지 말고 이처럼 아름다운 시를 계속 들려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세상에서 잊혀진 듯, 조용히 살던 그가
다시 12년만에 시집을 들고 돌아왔다는 조그만 기사를 보기 전에
서점에 놓인 새빨간 시집을 먼저 보게 되었다.
시집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두께.
정갈한 글씨가 인상적이라 손에 들고 두어 페이지를 넘기다
빽빽한 목차를 보고 질리고 말았다.
그저 읽어내리기도 숨찬 제목들이
"나 좀 읽어주소" 비명을 내지르는 것 같아, 도저히 다시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시집'이라는 것을 샀다.
첫번 째 시를 읽었다. <길이 끝나면>
사람만이 희망이다와 비슷한 느낌이다.
박노해 시인은 아직, 믿고 있는 건가.
두번 째 시를 읽었다. <넌 나처럼 살지 마라>
뭐지....
무엇인가 울컥, 솟아 올랐다.
어떤 경우에도 아닌 건 아닌거다,
누가 뭐라해도 너답게 살아가거라.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준 적 있던가.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준 적 있던가.
아니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보여준 적이, 그런 사람이 있던가.
그 다음 시, 그 다음 시,
한 장 한 장을 넘겨 읽다 한 80여편을 읽었을까.
(박노해 시인의 시집에는 자그마치 300여 편의 시가 실려있다 -_-)
문득, 그가 지난 10년을 어떻게 살아온 것인지 궁금해졌다.
어떻게 살았길래, 어떻게 이런 시를 써냈을까.
실패한 혁명가로, 감옥을 살다 다시 서기 위한 자기몸부림만 있는 것도 아니고
노동운동을 펼친 사람답게, 날카로운 사회비판만 있는 것도 아니고
국경너머 전쟁으로 부모잃고, 미래를 잃은 아이들까지 품어내는데
도대체 박노해 시인은 지난 10년 동안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온것일까.
그런데 이놈의 시집은 그 흔한 작가의 말 한마디 없다.
작가소개에서 그가 살아온 시간들을 더듬어 읽고,
인터넷을 검색해 그의 족적을 찾아 헤맸다.
그는 놀랍게도 지금 세종문화회관에서 10년동안 '빛으로 쓴 시'라는 사진전을 열고있었고,
<나눔문화>라는 비영리사회운동단체를 세워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었다.
아, 그는 사라졌던 게 아니구나.
계속 매일 조금씩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구나.
이 시집은 그 결과구나.
내가 세상에 무정하고, 내가 몰랐던 것 뿐이구나.
나는 조금은 미안하고 조금은 머쓱해진 마음으로
다시 시집을 들었다. 홀로 조용히 읽어내려가는 동안
나는 시인과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다시 울컥 화가 나기도 했다.
너무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은 세상이 미워하는 법.
나도 그가 밉다.
이미 다 죽어버렸노라고, 세상 탓으로 돌리면 편해지노라고
애써 위안하던 것을 그는 아직도 펄떡이는 심장으로 낱낱히 까발리니
자꾸만 부끄럽고, 자꾸만 미안하고, 자꾸만 속상하다.
그럼에도, 그가 있어주어 고마웠다.
이 시대 큰 어른들이 다 가셨다.
기댈 곳도 없고, 기댈 양심도 자꾸만 스러져가는데
정말 기댈 곳은 돈 뿐인가, 문득 세상이 허망한데
"그건 아니오"라며 저 산 위의 만년설처럼 서슬 퍼렇게
외치며 살아온 그가 있어주어 눈물나게 고마웠다.
아, 책을 덮으려니 그가 마지막으로 일갈을 던진다.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이 놈의 시인, 도망도 못가게 하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툭 떨어진다.
나같은 사람에게도 "같이 가자, 사라져버리지 마라"며
손잡아 주는 그가 있다.
못난 나는 "나처럼만 사시오"라고 차마 말은 못하지만
"이 책만은 읽어보시오. 이 시만이라도 읽어보셔야 하오"
하고 시인이 다시 밝혀준 그 희미한 불빛을.. 밝혀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