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1년 05월 10일 |
---|---|
쪽수, 무게, 크기 | 406쪽 | 576g | 153*224*30mm |
ISBN13 | 9788954614511 |
ISBN10 | 8954614515 |
발행일 | 2011년 05월 10일 |
---|---|
쪽수, 무게, 크기 | 406쪽 | 576g | 153*224*30mm |
ISBN13 | 9788954614511 |
ISBN10 | 8954614515 |
책머리에 ■전주 시는 어디를 향하는가 ― 창비시선 통권 300호에 부쳐 1부 〉〉〉 원한도 신파도 없이 강정 김경주 김민정 김선우 문태준 손택수 이병률 이장욱 진은영 황병승 2부 〉〉〉 모국어가 흘리는 눈물 낭만적 혁명주의 ― 박정대의 『사랑과 열병의 화학적 근원』 주부생활 리얼리즘 ― 성미정의 『상상 한 상자』 1980년생 안티고네의 노래 ― 박연준의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빛으로 하는 성교 ― 박용하의 『견자』 우리 시대의 시모니데스 ― 이시영의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백팔번뇌 콘서트 ― 김경인의 『번뇌스런 소녀들-리허설』 19금(禁)의 사랑시들 ― 김소연의 「불귀 2」와 함성호의 「낙화유수」 “당신은 좆도 몰라요” ― 이영광의 「동쪽바다」 슬픔의 유통 기한 ― 최정례의 「칼과 칸나꽃」과 김행숙의 「이별의 능력」 모국어가 흘리는 눈물 ― 허수경의 「나의 도시들」과 「여기는 이국의 수도」 비애와 더불어 살기 ― 조용미의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여인숙으로 오라 ― 최갑수의 「밀물여인숙 3」과 안시아의 「파도여인숙」 여자가 없으니 울지도 못하겠네 ― 이현승의 「결혼한 여자들」과 황병승의 「사성장군협주곡」 둘째 이모의 평안 ― 황인숙의 『리스본行 야간열차』 선생님, 신과 싸워주십시오 ― 신경림의 『낙타』 좋겠다, 죽어서…… ― 문인수의 「이것이 날개다」 아름다운 엄살, 실존적 깽판 ― 심보선의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시치미 떼는 시 ― 윤제림의 『그는 걸어서 온다』 연애의 리얼 사운드 ― 성기완의 『당신의 텍스트』 시인의 직업은 문병 ― 문태준의 「가재미」와 「문병」 총을 든 선승의 오늘 ― 고은의 『허공』 그러니까 선배님들, 힘내세요 ― 허연의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백문이 불여일청 ― ‘어떤 날’에서 ‘언니네 이발관’까지 시인의 직업은 발굴 ― 김경주의 『기담』 이런 몹쓸 크리스마스 ― 여태천의 「크리스마스」와 정끝별의 「크리스마스 또 돌아왔네」 치명적인 시, 용산 ― 신경민 앵커의 클로징 멘트와 경찰 교신 인천공항을 무사히 통과한 멘토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선집 『끝과 시작』 누구에게나 각자의 기형도가 ― 기형도 20주기에 부쳐 피 빠는 당신, 빛나는 당신 ― 흡혈귀를 위하여 읽어야 할 것투성이 ― 다나카와 슈운타로의 『이십억 광년의 고독』과 김기택의 『껌』 졸업하고 싶지 않은 학교를 위하여 ― 『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 김경주의 「그가 남몰래 울던 밤을 기억하라」 예술은 왼쪽 심장의 일 ―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소금 창고에 대해 말해도 될까 ― 이문재의 「소금 창고」와 송찬호의 「소금 창고」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 박상순의 「영혼이 어부에게 말했다」 소년과 소녀가 손을 잡으면 ― 이수명의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감전(感電)의 능력 ― 안현미의 「옥탑방」 문학은 법과도 싸워야 한다 ― W. H. 오든의 『아킬레스의 방패』 동화의 아픈 뿌리 ― 강성은의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선량함을 배달한 우체부 ― 고(故) 신현정 시인을 추모하며 시를 통해 본 사랑의 수학 3부 〉〉〉 유산된 시인들의 사회 얼굴들 굴욕이라니, 이치로 이번엔 오버 금지 5월은 쑥스러운 달 중세의 시간 껍데기는 가라 죽은 시인의 사회 애비는 조폭이었다 다시, 20년 전 6월 말실수는 없었다 음악은 진보하지 않는다 ― 고(故) 유재하 기일에 부쳐 러브 스토리 구두점에 대한 명상 무조건 무조건이야 다크 나이트 그들의 슬픔을 그들에게 ― 고(故) 최진실씨의 죽음에 부쳐 매직 스틱과 크리스털보다 중요한 것 광장은 목하 아수라장 불도저는 불도저 세 사람의 불행한 공통점 그냥 놔두게, 그도 한국이야 어린 백성 ― 563돌 한글날에 부쳐 고뇌의 힘 ■간주 소설은 어떻게 걷는가 ― 신경숙의 「세상 끝의 신발」을 읽으며 4부 〉〉〉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기 그러고는 덧붙인다, 카버를 읽어라 ―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 ― 구스타프 야누흐의 『카프카와의 대화』 마음 공부와 몸 공부의 참고서들 ― 김소연의 『마음사전』과 권혁웅의 『두근두근』 악마는 내 안의 악마를 깨우고 ― 이언 매큐언의 『첫사랑, 마지막 의식』 한 편도 다시 읽고 싶지 않다 ― 정지아의 『봄빛』 영상 19도의 소설들 ― 김중혁의 『악기들의 도서관』 무신론자에게는 희망이 신이다 ― 코맥 매카시의 『캷드』 문학이 된 평론을 읽는다 ― 정홍수의 『소설의 고독』 고(故) 이청준 선생님을 추모하며 ― 이청준의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선(先)해석의 커튼을 찢어라 ― 밀란 쿤데라의 『커튼』 눈물 같은, 슬픔 같은, 병신 같은 ― 파스칼 레네의 『레이스 뜨는 여자』 즐기는 자만 못하다 ― 김형중의 『단 한 권의 책』 탈근대 도시와 그 불만 ― 정이현, 편혜영, 김경욱, 김중혁의 도시 소설들 5부 〉〉〉 훌륭한 미친 이야기 시간이여, 네가 어떻게 흐르건 ― 스콧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와 데이비드 핀처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눈을 섞고 몸을 섞고 심지어 피마저 섞어도 ―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과 박찬욱의 「박쥐」 『위대한 개츠비』의 한 장면을 무라카미 하루키가 샘플링하다 ― 『위대한 개츠비』와「토니 타키타니」 “시를 쓴 사람은 양미자씨밖에 없네요” ― 이창동의 「시」 6부 〉〉〉 만나지 말아야 한다 반성, 몽상, 실천 ― 이문재 시의 근황 인유, 번역, 논평 ― 권혁웅 시집 『마징가 계보학』의 방법론 그리워도 만나지 말아야 한다 ― 나희덕의 최근 시 몰라도 더 묻지 않고 알아도 아는 척하지 않으며 ― 이수정의 신작시를 읽고 ■후주 비평은 무엇을 보는가 ― 문학 작품의 세 가지 가치 |
‘몰락의 에티카’를 읽다가 조금 지겨워져서 중간에 접어놓고 읽게 된 책이다. 앞의 책이 문학에 대한 길고 깊숙한 평론이라면 이 책은 짧고 가벼운 비평이라 할 수 있다. ‘느낌의 공동체’라는 매혹적인 제목이 실은 우리에게 문학과 함께 살아가자는 저자의 간곡한 바람이라는 걸 책을 덮고서야 알았다.
문학, 그 중에서 시에 대해 저자의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시를 읽고 있다. 그러나 그 복층의 의미를 다 들여다볼 수 없기에 시는 어렵고 현실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잔치가 되기 십상이다. 비평은 이런 시인과 독자의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가 굳이 산문집이라고 이름 지은 이 책이 바로 이런 간격을 조금이라도 메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비평이라기보다는 리뷰에 더 가까운 내용도 많았다. 2부의 시집들 소개와 4부의 소설이 특히 그랬다. 평론가이기 때문에 보통사람보다 작품을 분석하고 평가하는데 익숙하고 보는 눈이 남다를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몇 권의 시집과 또 몇 권의 소설의 제목을 적어놓는다. 나는 허수경과 이문재의 시집을 구입할 것이고 이미 절판되어 아쉬워만 했던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김소연의 “마음 사전”과 코맥 맥카시의 “로드” 또한 나의 장바구니에 담길 것이다.
작품을 보는 안목을 길러주는 평론집을 애써 찾아 읽으려고 해도 평론가의 수준이라는 게 워낙 높아서인지는 몰라도 즐겁게 읽을 평론집을 잘 알지 못한다. 샀다가 그냥 책꽂이에 자리만 내주기 일쑤다. 이 책은 그런 평론집이 아니라서 좋다. 재판이 나오기가 어려운 문학비평 책 중에서 드물게 이 책은 내가 구입한 시점이 벌써 5쇄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을 문학일 수 있게 만드는 또 하나의 힘이 이런 비평이고 평론이다. 그에게 이름 불린 많은 작가들은 다음 작품을 쓸 힘을 얻을 것이다. 그가 제목에 명시한대로 이 책이 같은 느낌을 가진 공동체를 지향한 것이라면, 그 공동체가 문학에 대한 사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면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문학에 대해 일층 두터워진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평론가는 텍스트를 통해 세상을 보고 독자들은 평론가의 글을 통해 텍스트를 본다. 근시들은 맨눈으로 보는 세상과 안경 쓰고 보는 세상이 같을 수 없는데 문학에 대해 워낙에 근시인 나 같은 사람들에겐 이런 비평문이 안경의 역할을 해준다. 언제쯤 나도 안경을 벗고 맨눈으로 텍스트를 만날 수 있을지 요원한 일이기에 이런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책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내용이 이 책처럼 가볍게 다가올 때는 더 반갑다.
신형철 평론가님의 따스한 시선과 글이 좋아서
어찌어찌 꽤 오래전 책인 느낌의 공동체까지 찾아보게 되었다.
20여 년이란 세월의 간격 때문일까.
요즘에는 좀처럼 접하기 힘들거나 잊힌 시인의 이름과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김경주, 이문재, 황지우 시인부터 몇 해 전 작고하신 허수경 시인의 이름까지 모두 반갑다.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은 '시를 통해 본 사랑의 수학'인데
사랑의 수학(數學)과 관련된 연애시 네 편을 이렇게 나눈 게 참 재미있다.
사랑의 수학 1장 : 1+1+1+1......=0
사랑의 수학 2장 : 1+1=3
사랑의 수학 3장: 1+1=0.5
사랑의 수학 4장: 1+1=∞
어떤 것도 다 말이 되고 수긍이 간다.
2006년에서 2009년까지 발표된 글을 모아 놓은 책이다. 이 책과 같은 평론집은 글이 나온 시기를 기억하면서 읽는 게 좋다. 적어도 시간 상의 착오로 오해를 하지 않게 되니까.
모두 6부로 이루어져 있다. 비평가로서의 작가가 다른 작가들을 크게 시인과 소설가로 나누어 편집해 놓은 구성으로 볼 수 있다. 이를테면 문학의 전문가들은 문학 작품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작품들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비평가의 설명을 얼마만큼 받아들일 것인가는 독자로서의 개인적인 선택이고 영역이므로 절대적인 기준으로 여길 것까지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작가의 글은 근사한 맛이 있다. 앞서 읽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 마음에 들어 이 책을 빌려 본 건데 만족스럽다. 이 책이 나올 당시에 읽었더라면 어떠했을까, 내 마음이 궁금하기는 한데 지금 이렇게 괜찮게 여겨지는 걸로 봐서 그때 읽었더라도 만족했을 것 같다. 글의 세계에서 10년은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미 읽은 책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작가에 대해 써 놓은 글을 읽을 때는 당연히 반가웠다. 내가 놓쳤거나 무시했거나 부정했던 사항들을 멋지게 되살려 놓은 표현들 앞에서는 감탄했다. 그래, 이게 전문가지. 나는 왜 이만큼 읽어 낼 수 없나 하는 생각은 이제 더 이상 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만으로도 충분하고, 또 이 작가처럼 이렇게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사람도 있는데 없는 능력 때문에 한탄하면서 스스로를 들볶을 필요는 없다는 것까지 알게 된 나이가 되기도 했고.
제일 좋은 건 비평가의 도움으로 새로운 작가의 이름을 얻을 때다. 내가 이미 좋아하고 있는 작가에 대해 쓴 글을 읽으면서 이 비평가가 내가 같은 작가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확인하면 뿌듯하기는 하지만 새롭지는 않다. 즐거움의 영역이 넓어진 것은 아니니까. 내가 몰랐거나 제대로 못 읽어서 못 누린 작품과 작가를 소개받게 되면,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많으면, 나는 비평가에게도 빠지고 만다. 지금처럼. 그리고 김경주 시인을 더 얻었다.
3부에 모아 놓은 짧은 글들도 산뜻하게 읽었다. 시대를 돌아보게 하는 글들이다. 다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한숨이 난다. 우리는 좀처럼 변하지 못하고 좀처럼 나아가지 못한다. 얼마나 더 읽어야 스스로를 안아 줄 수 있게 될까?
9 느낌이라는 층위에서 나와 너는 대체로 타자다. 나는 그저 '나'라는 느낌, 너는 그냥 '너'라는 느낌.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느낌의 세계 안에서 드물게 발생하는 사건일 것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확히 표명될 수 없는 느낌들의 기적적인 교류, 그러니까 어떤 느낌 안에서 두 존재가 만나는 짧은 순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너를 사로잡고 있는 느낌을 알 수 있고 그 느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느낌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만난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만이 느낌의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 사랑은 능력이다.
404-405 비평은 무엇을 보는가 -문학 작품의 세 가지 가치
모든 훌륭한 예술 작품에는 최소한 다음 세 가지 종류의 가치가 따로 또 같이 존재한다. 물론 문학의 경우도 그렇다.
첫째는 인식적 가치다. 훌륭한 예술 작품은 인간과 세계에 대해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무언가를 알게 한다. 그 ‘무언가’는 과학 철학 종교 등이 제공하는 인식적 가치와 함께 갈 수도 있고 그것들을 거스를 수도 있지만, 최상의 경우에는 그것들과 무관한 곳에서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그 경우 그 인식적 가치는 과학 철학 종교의 언어들로 잘 번역되지 않을 것이다. 좋은 문학 작품에서 인식적 가치는 그 작품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때 작품은 내용물을 꺼내려 하면 부서지고 마는 도자기와 같다.
둘째는 정서적 가치다. 훌륭한 예술 작품은 우리를 기쁘게 혹은 슬프게 한다. 기쁨이 필요한 사람에게 기쁨을, 슬픔이 필요한 사람에게 슬픔을 제공하는 일이 일반적으로 작품에 요구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어떤 작품은 기쁨을 슬프게 하고 슬픔을 기쁘게 해서 낯선 정서를 창출해내기도 한다. 그 경우 우리는 익숙한 정서를 작품에서 재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제공하는 낯선 정서에 서서히 젖어들어가게 될 것이다. 어떤 정서는 특정한 작품 안에서만 느낄 수 있다. 작품은 정서의 창조다.
셋째는 미적 가치다. 훌륭한 예술 작품은 아름답다. 문학의 경우 그 아름다움은 대개 모국어의 조탁과 선용에서 생겨나는 아름다움이고 내용과 형식의 긴밀한 조화가 뿜어내는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작품은 흔히 아름답다고 간주되는 것을 전복하는 추의 미학을 보여주기도 하고 심드렁한 방식으로 미추를 해체하여 이상한 아름다움에 도달하기도 한다. 아름다움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다.
독자가 이 가치들을 전달받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그것이 먼저 찾아오기 때문에 독자가 마중을 나가기만 하면 될 때도 있고, 그것을 만나기 위해 독자가 낯선 길을 더듬어가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분명하게 눈에 보여서 편안하지만 그래서 재미가 덜할 때도 있겠고, 너무 희미해서 과연 그것이 있기는 한가 수상쩍어 보일 때도 있을 것이다. 대개 전자를 ‘고전적’이라 하고 후자를 ‘실험적’이라 한다. 그러나 오늘의 고전은 어제의 실험이었고 오늘의 실험은 내일의 고전이 될 수 있다. |
느낌의 공동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