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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은 알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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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욘 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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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생각한다, 이제 되돌아가야 한다, 집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그는 아직 집으로 가고 싶지 않다, 왜 싫을까? 그녀 때문인가, 그녀가 저기 밝은 방, 창가에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인가, 그가 아직 집에 가고 싶지 않은 것이 문제인가? 아니다, 그 또한 아니다, 하지만 그는 조금 춥다, 그리고 거의 어두워졌다, 갑자기 어두워졌다, 거의 완전히 어두워졌다, 이제 집으로 가는 게 나을 것이다,
저 여자는 알레스. 그녀, 할아버지 울라브와 내가 이름을 딴 어슬레, 두 아들이 있었던 내 증조할아버지 크리스토페르의 어머니, 어슬레, 그는 일곱 살 때 익사했다, 일곱 번째 생일에 예쁘고 작은 보트를 얻었고 바로 그날 저 밑, 만에서 그 보트를 가지고 놀다 익사했다, 보트에 앉은 그와, 물, 파도, 끔찍하게 깊은 피오르드 사이에 얇은 선체, 피오르드는 끝없이 깊다, 여기 위, 밝고 어둡고 바람 부는 여기 위에서 재서 천 미터 이상, 그리고 피오르드 밑으로 계속 계속 더 깊어진다, 일종의 바닥에 닿을 때까지, 보트에 앉은 그와, 물, 그리고 그 밑의 거대한 어둠 사이에, 각 면에 세워진 세 개의 나무판, 그 얇은 보트의 벽, 그리고 그녀가 그와 함께 보트에 앉아 있었고 파도가 보트 안으로 몰려들던 당시처럼, 여전히 파도가, 아니다, 아니다, 그 생각을 절대 해선 안 돼, 그리고 자신의 앞, 앞마당에서 그녀는 파란 외투를 입은 나이 든 여자가 걸어가는 모습을 본다, 그 여자는 머리에 그가 늘 쓰고 다니던 연노랑 털모자를 쓰고 있다, 나이 든 여자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있다, 그 여자가 천천히 걸어온다, 그리고 그 여자는 손에 빨간 장 주머니를 들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나이 든 여자 옆에 작은 사내아이가 걷고 있는 모습을 본다, 그 아이도 장 주머니의 손잡이를 쥐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그 아이가 어렸을 적의 그라는 것을 알아본다, --- 본문 중에서 |
피오르드 해안가 외딴집에서 살아가는 어슬레와 싱네. 어느 늦가을 피오르드로 나간 어슬레가 실종되고, 23년이 지난 후 싱네가 이를 회상한다. 아니 싱네는 그가 사라지고 난 후부터 늘 어슬레가 캄캄한 어둠을 바라보며 서 있던 창가에 서서 그를 생각했다. 그는 왜 돌아오지 않을까? 그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이 회상은 싱네의 시점이지만 작가 포세는 시점과 시간의 경계를 애매하게 뭉개버려 화자와 과거의 시간들이 서로 넘나든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이 싱네가 되었다가 때로 어슬레가 되기도 한다. 백여 년 전 어슬레의 고조할머니와 증조할아버지가 살던 과거의 시간들이 현재와 중첩된다. 이 과거의 이야기는 현재 어슬레의 실종을 푸는 상징이 된다.
“나는 방의 그곳 의자에 누워 있는 싱네를 본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가 들려주는 이야기지만 반복되는 “그녀는 생각한다”라는 서술로 인해 독자는 화자가 아닌 그녀, 싱네가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중간중간 삽입되는 “그는 생각한다”라는 서술로 인해 독자는 싱네의 남편, 어슬레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로써 독자는 싱네와 어슬레, 두 인물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깊은 의식의 흐름을 따라간다. 포세는 텍스트에 마침표를 없애고 쉼표로만 연결했고, “그리고”로 계속 이어지는 문장의 사슬을 만들었다. 이 역시 끊어지지 않는 의식의 흐름에 대한 장치이다. 어슬레는 실종되던 날 나쁜 날씨 때문에 산책만 해야겠다 생각하며 국도를 걷다가 저 멀리 해안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을 발견한다. 그로 인해 그의 의식 속에는 어린 시절 한때가 떠오른다. 이어서 그의 의식은 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작은 사내아이를 안고 있는, 20대 초반의 한 여자를 본다. 그는 생각한다. “저 사람은 알레스”. 이 소설의 제목인 “알레스”는 어슬레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조할머니 알레스의 이름이다. 작가는 왜 어슬레의 이야기를 알레스로부터 시작하려고 했을까? 그건 그녀와 그녀의 아들 크리스토퍼, 크리스토퍼의 아들인, 현재의 어슬레와 이름이 같은 또 다른 어슬레가 모두 죽음이란 주제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 죽음이 현재화되어 싱네의 남편 어슬레의 실종과 연결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알레스의 모습은 한 죽음을 대면하고 있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손자의 죽음 앞에 선다. 그 침묵의 순간은 죽음에 관한 다양한 사유의 순간으로 자리한다. 그 이전, 한순간 거의 죽음에 직면했던 아들 크리스토페르를 필사적으로 살려 내던 알레스를 다시 생각한다면 그녀는 죽음과 삶을 연결해 생각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매개체와 같다. 더욱이 알레스는 이 소설의 중심인물인 싱네와 그녀의 남편 어슬레가 공유하는 기억의 대상이다. 이렇게 볼 때 알레스는 싱네와 남편 어슬레의 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과거와 과거의 현재화 자체에 대한 상징성을 지닌다. 싱네의 의식은 남편 어슬레와 이름이 똑같은 과거의 어슬레가 익사하기 전의 모습을 본다. 어슬레가 보트를 가지고 노는 모습, 아빠인 크리스토페르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싱네의 생각 속에서 재현된다. 싱네가 외친다. “지금 나와야 해.” 이 외침은 물에 빠져 들어가는 어슬레와 보트를 타고 바다에 나가 있는 남편 어슬레에게 동시에 향하는 것으로 들린다. 포세의 텍스트 대부분이 그렇듯 이 작품에서도 특별한 사건은 존재하지 않지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묵직한 울림을 주는 상징적인 서사는 과거와 공존하는 우리에게 또 다른 삶의 모습을 시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