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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조각가

악몽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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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1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350g | 133*200*20mm
ISBN13 9788954654692
ISBN10 895465469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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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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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은 언제나 어딘가의 구석에 자리한다. 조금은 비밀스럽고 사적인데다가 청결과 불결이 공존하는 곳이라면 으레 그래야만 한다는 듯이.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화장실에서 꽤 여러 가지 기이한 일들을 겪을 수 있다. 화장실에 들어간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는 일도 그러한 현상 가운데 하나다. 1년에 100만 명당 0.5명꼴로 화장실 실종사건은 실제로 일어난다. 나 역시 그 일을 직접 경험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내가 사람들에게 도시의 여러 화장실을 안내하는 화장실 가이드가 된 것도 그 때문이다. 화장실을 안내하러 다니다보면 언젠가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줄곧 나오지 않고 있는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화장실 가이드」중에서

‘그곳에 가면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대.’ 그녀는 언제부턴가 이곳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내게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걱정되었지만 계속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말을 듣다보니 그즈음에는 심드렁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마치 휴양지 같네.’ 나의 말에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이 시원하게 웃고 나서 말했다. ‘나 같은 사람들에겐 휴양지나 다름없지. 믿어져? 죽으러 가는 자리가 가장 마음 편한 곳이라는 게?’ ---「자살 관광특구」중에서

처음에는 집회가 시끄럽긴 해도 나름 질서를 지켜가며 진행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무질서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서로에게 욕을 해대며 시위는 과격해졌다. 집회 주동자가 흥분한 참가자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벽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맞은편에서 집회를 벌이던 사람 하나도 벽 위로 올라섰다. 벽에 올라선 두 사람은 원래의 목적을 잊고 이내 서로를 향해 고함을 치며 언쟁을 벌였다. 광장을 둘러싼 경찰은 위험하니 어서 빨리 벽에서 내려오라는 경고 방송을 내보냈다. 그때 벽이 갑자기 1미터가량 빠르게 솟구쳤다. ---「벽」중에서

언제부터인가 도시에서는 성별을 지니지 않은 아이들만 태어났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천사의 아이들’로 불렸다. 명칭과 달리 천사의 아이들은 태어나는 족족 거의 모두가 버려졌다. 그러나 그런 아이들마저 태어나지 않게 되자 사람들은 버린 아이들을 하나둘 다시 거두었고, 급기야 천사처럼 대우하며 보호하기 시작했다. (…) 아이를 갖고 싶었던 사람들은 점차 도시를 떠났다. 대신 아이를 갖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도시의 인구는 점점 늘어갔다. 그리고 이제 막 여자가 도시의 인구수를 증가시키는 데 한몫을 거들 참이었다. 그것도 전대미문의 임신이라는 사건을 통해서. ---「무정란 도시」중에서

힘겹게 잠에서 깨어나 식은땀이 가득한 손을 벌벌 떨며 컴퓨터를 켜고는 악몽 조각가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나는 솔직히 당신의 처방을 아직도 믿지는 않지만 당신에 대한 불신을 유지하기에는 나의 절망이 너무나 크다고 썼다. (…)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휴대전화가 울렸다. 악몽 조각가가 휴대전화 너머에서 웃으며 말했다. “입금 확인했습니다. 그럼 다시 꿈을 꿔볼까요?” ---「악몽 조각가」중에서

나는 종아리에 울룩불룩 튀어나온 혀의 윤곽을 조심스럽게 손으로 매만졌다. 길쭉한 혀는 나뭇잎처럼 보이기도 했다. 약간의 온기도 느껴졌다. 나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손이 닿자 혀가 잠깐 움찔했다. 그러다가 이내 말 잘 듣는 고양이처럼 가만히 움직이지 않았다. 혀만큼 나를 잘 알아주는 대상은 여태껏 없었다. 혀는 이후에도 내 몸 곳곳을 돌아다니며 맛을 보고 통증을 일으키고, 환각을 보여주었다. 그때마다 나는 몸과 마음이 치료되는 느낌이었다. ---「혀」중에서

골목길로 취객들이 들어서면서부터 안쪽의 붉은 대문 집은 사라지고 아침에 동네 주민들이 구경했을 때와 똑같은, 새까맣게 탄 잿더미만이 남아 있다. 유령도, 사람 형상도, 그들만의 별자리도, 애드벌룬도, 네눈박이산누에나방도 모두 사라진다. 그 밖의 것들도 여기저기 흩어진다. 대칭으로 서 있던 가로등은 다시 듬성듬성 자리한다. 골목길 한가운데에 일렬로 죽 놓여 있던 맨홀 뚜껑들도 모두 저마다의 자리로 불규칙하게 옮겨간다. 그곳과 달리 이곳은 항상 모든 것이 불분명하다. 다시 비대칭적이고 불규칙한 세계로 돌아온 골목길은 믿을 수 없고 납득하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사건이 일어나도 전혀 새삼스럽지 않은 곳이 된다.
---「골목의 이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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