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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중국편 2 막고굴과 실크로드의 관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중국편 2 막고굴과 실크로드의 관문

: 오아시스 도시의 숙명

[ 반양장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이동
유홍준 | 창비 | 2019년 04월 29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3 리뷰 36건 | 판매지수 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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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 교양서 38위 | 국내도서 top100 5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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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4월 29일
판형 반양장?
쪽수, 무게, 크기 348쪽 | 542g | 142*208*30mm
ISBN13 9788936477134
ISBN10 8936477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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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제2권을 펴내며: 돈황의 도보자와 실크로드의 관문

제1부 막고굴
막고굴1 답사의 로망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돈황박물관 / 막고굴 디지털 전시 센터 / 성당시대 제23굴 / 초당시대 제328굴 /
북주시대 제428굴 / 초당시대 제96굴 북대불 / 제16굴과 제17굴 장경동
막고굴 2 나는 기어이 다시 찾아가고 말았다
가욕관에서 돈황으로 / 북량시대 제275굴 / 초당시대 제220굴 /
성당시대 제45굴 / 성당시대 제148굴 / 조씨 귀의군 시대 제61굴

제2부 돈황의 도보자(盜寶者)와 수호자
돈황의 도보자들 1: 오렐 스타인 돈황문서는 그렇게 발견되고 그렇게 유출되었다
돈황문서의 발견과 수수께끼 / 돈황문서 피난설 /
러시아의 오브루체프 / 독일의 르코크 / 영국의 오렐 스타인
돈황의 도보자들 2: 폴 펠리오 돈황문서는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불세출의 서지학자 펠리오 / 기메 박물관과 동양학자 샤반 /
펠리오 탐사단의 출발 / 돈황에 온 펠리오 /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돈황의 도보자들 3: 오타니 탐험대와 랭던 워너 여전히 새어나오는 돈황문서와 벽화의 파괴
오타니 탐험대의 제1·2·3차 탐사 / 오타니 컬렉션의 분산 / 돈황에 다시 온 스타인 /
올덴부르크와 러시아 백군 피난병 / 랭던 워너 / 돈황문서 약탈, 그 후
돈황의 수호자들: 장대천·상서홍·한락연 무기징역을 산다는 각오로 들어가라
이정롱의 돈황벽화 모사 / 현대 중국화의 거장, 장대천 /
장대천의 돈황행 / 상서홍의 돈황 40년 / 조선족 화가 한락연의 일생

제3부 실크로드의 관문
안서 유림굴 서하 민족의 화려한 벽화와 슬픈 종말
돈황의 여름과 겨울 / 돈황 야시장 / 돈황시의 반탄비파 기악상 / 과주에 온 현장법사 /
과주 또는 안서라는 도시 / 느릅나무 협곡의 유림굴 / 유림굴 제25굴 / 탕구트족의 서하
옥문관·양관 사막에 떠도는 영혼의 노래
서역으로 열린 두 관문 / 서출양관 무고인, 춘풍부도 옥문관 /
돈황과 서역의 자연·역사·인문지리 / 옥문관에서 서역으로 가는 현장법사 /
한나라 장성과 옥문관 / 옥문관과 ‘말의 미로’ 전설 / 양관 / 누란을 그리며

부록
답사 일정표 / 중국 역대 왕조·유목민족 연표 / 주요 인명·지명 표기 일람

저자 소개 (1명)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막고굴의 역사와 실크로드의 관문들

중국편 2권 “오아시스 도시의 숙명”은 불교미술의 보고(寶庫) 막고굴 곳곳을 살피는 한편, 그곳에서 발견된 돈황문서의 다난했던 역사를 담았다. 이어서 본격적인 실크로드 답사를 기약하며 옥문관과 양관 등 실크로드의 관문들을 탐사한다. 여기서 저자의 오랜 답사 로망이 이루어졌다.

돈황 명사산 자락에 자리잡은 막고굴에는 4세기 이래로 수백년 동안 석굴이 열려 지금까지 492개 굴이 확인되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값하는 세련된 관리 시스템을 통과해 입구에 다다르면 1.6킬로미터에 달하는 절벽에 굴착된 수백개의 석굴이 장관을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중국미술사와 불교미술사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각종 불상·조각상들과 여러 가지 도상을 구현한 벽화들이 바로 이 석굴 속에 들어 있다. 남북조시대 불상의 맑고 앳된 인상(수골청상)과 당나라 불상의 세련되고 사실적인 모습, 부처님의 전생을 포함한 심오하고도 흥미로운 불교 도상들을 재현해놓은 벽화들이 관람객을 사로잡는다. 돈황문서가 발견된 제17굴 장경동과 천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제45굴의 보살상은 막고굴 답사의 백미다.
막고굴은 한동안 잊혔다가 20세기 들어 다시 크게 주목받았다. 돈황문서 3만여 점이 장경동에서 발견된 것이다. ‘세기의 대발견’이라고 할 만큼 학술적으로 가치 있는 문서들이었다. 그러나 돈황문서가 발견되고 전 세계로 흩어지는 과정에는 학문적 열정과 제국주의적 침략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중국에서는 이 시기에 돈황 유물을 가져간 사람들을 두고 보물을 도둑질해갔다며 도보자(盜寶者)라고 부르고 있다. 영국의 오렐 스타인, 프랑스의 폴 펠리오, 일본의 오타니 고즈이, 미국의 랭던 워너 등 주요한 인물 외에도 여러 ‘도보자’들이 돈황문서와 유물을 가져갔다. 우리로서는 제국주의 침략을 경험한 동병상련을 느끼면서도, 일본을 통해 들어온 돈황문서와 유물이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 무관하지만은 않은 문제다.

돈황문서와 막고굴의 존재가 국제적으로 알려지면서 ‘도보자’들이 찾아오는 한편에는 ‘수호자’들도 있었다. 막고굴의 예술적 가치에 주목한 저명한 화가 장대천, 유학을 멈추고 귀국해 평생을 막고굴 보호와 연구에 헌신한 상서홍, 막고굴 벽화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조선족 화가 한락연 등 중국 국내의 뜻있는 예술가들이 더 이상 막고굴이 훼손되지 않도록 수호해왔고, 오늘날 돈황연구원이 그 뜻을 이어받아 세계적인 ‘돈황학’ 연구에 일조하고 있다.
돈황 인근에는 막고굴 외에도 가볼 만한 답사처가 많다. 과주(안서)에 있는 유림굴은 여타 석굴들 못지않은 수준을 보이면서도 탕구트계의 나라 서하가 남긴 불교예술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돈황 시내에서 각각 서남쪽, 서북쪽에 위치한 양관과 옥문관은 예부터 서역으로 열린 실크로드의 관문이었다. 『서유기』의 주인공들이 불경을 찾기 위해 떠났다는 서역이 바로 이 너머다. 그 옛날 낙타와 대상, 승려들이 걷고 또 걸었던 곳, ‘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고 불렸던 타클라마칸사막이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다.

화려한 중국 문화유산을 찾아 떠나는 장쾌한 첫걸음!

저자는 중국 답사기를 시작하는 서문에서 “중국은 우리와 함께 동아시아 문화를 주도해나가는 동반자일 뿐 아니라 여전히 우리 민족의 운명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막강한 이웃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우리는 중국을 더욱 깊이 알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중국은 언제나 즐거운 여행의 놀이터이자 역사와 문화의 학습장이면서 나아가서 오늘날 국제사회 속에서 우리의 좌표를 생각게 하는 세계사의 무대였다”라고 집필의 이유를 밝히고 있다. 중국 문화유산을 즐겁고 깊이있게 감상하는 한편으로 우리 문화의 연관과 비교를 통해 우리 것을 더욱 잘 알게 되는 경험을 하자는 제안이다.
또한 ‘답사기’ 중국편이 출간되면서 우리는 드디어 한·중·일 문화유산을 하나의 큰 테이블에 놓고 비교해볼 수 있게 되었다. 그간 부질없는 열등감이나 단순한 애국적 감정으로 이웃나라의 문화유산을 평가해왔다면, 유홍준의 답사기를 통해 비로소 진정으로 문화유산을 감상하는 탁 트인 안목을 탑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되는 우리 문화의 진정한 가치야말로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것임을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보지 못한 곳은 동경으로 들끓게 하고, 이미 가본 곳은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접하게 만드는 유홍준의 중국 이야기. ‘답사기’ 중국편의 장쾌한 여정은 앞으로도 독자를 찾아갈 것이다.

회원리뷰 (36건) 리뷰 총점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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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파워문화리뷰 [21-12] 막고굴(莫高窟) 답사와 돈황문서 수난기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w******f | 2021.04.15 | 추천17 | 댓글2 리뷰제목
막고굴 답사   돈황(敦煌) 명사산(鳴沙山) 자락에 자리잡은 막고굴(莫高窟)에는 4세기경부터 시작해서 14세기까지 약 1천 년간에 걸쳐 석굴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석굴은 492개인데, 이 중 수(隋)나라 때 97기, 당(唐)나라 때 225기가 만들어졌다니 전체 석굴의 4분의 3이 수당시대에 만;
리뷰제목

막고굴 답사

 

돈황(敦煌) 명사산(鳴沙山) 자락에 자리잡은 막고굴(莫高窟)에는 4세기경부터 시작해서 14세기까지 약 1천 년간에 걸쳐 석굴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석굴은 492개인데, 이 중 수(隋)나라 때 97기, 당(唐)나라 때 225기가 만들어졌다니 전체 석굴의 4분의 3이 수당시대에 만들어진 셈이다.

막고굴 석굴의 관람은 보존을 위해 하루 6천 명으로 관람인원을 제한하고 예약된 관광객만 15분 단위로 입장시키는 등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 막고굴 석굴을 관람하려면 먼저 막고굴 디지털 전시 센터로 가서 돈황과 막고굴에 대한 영상을 본 후 막고굴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면 된다. 막고굴 부근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려 막고굴 입구의 솟슬대문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여기서 가이드를 만나 석굴을 구경하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관람자 별로 2시간 동안 8개의 석굴을 볼 수 있으며, “막고굴 석굴 중 가장 큰 불상인 북대불(北大佛)이 있는 제96굴과 돈황문서가 발견된 장경동(제17굴)이 있는 제16굴은 공통으로 보여주고 나머지는 관람객들이 겹치지 않게 가이드가 조절하여 안내” [pp. 23~24]한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 1부 ‘막고굴’에서 두 차례에 걸쳐 11개의 석굴을 관람하고 막고굴에 있는 불상과 벽화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45굴의 모형(돈황박물관)

출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2>, p. 13

 

박공식의 제254굴 천장

출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2>, p. 38

 

북두형 천장의 제285굴

출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2>, p. 39

 

제275굴 교각미륵상

출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2>, p. 93

 

돈황문서 수난기

 

막고굴은 한동안 잊혔다가 20세기에 주목 받기 시작했다. 1900년 도사(道士)를 자처한 왕원록(王圓?, 1851~1931)에 의해 제16실 안에 있는 감실, 지금은 제17굴로 불리는 장경동(藏經洞)에서 돈황문서 3만 점이 발견된 것이다. 이들 문서 가운데 연도를 알 수 있는 것을 보면 “가장 오래된 것은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시대인 353년의 필사본이고, 가장 늦은 시기에 작성된 것은 북송(北宋) 때인 1030년에 작성된 필사본이다.” [p. 112]

비록 이곳에서 발견된 불경의 “대부분이 잔권(殘卷) 단편들이고 가짜 경전으로 의심되는 위경(僞經)도 적지 않다. 심지어 잘못 베껴 버려진 두루마리와 먹을 덕지덕지 칠한 잡다한 글씨의 문서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응당 있어야 할 <대장경>에 수록된 주요 경전이나 <대반야경> 등 고급 불경이 없다”[p. 113]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황문서가 가지는 역사적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불행히도 이후 중국에서 ‘도보자(盜寶者)’라고 부르는 영국의 오렐 스타인(Marc Aurel Stein, 1862~1943), 프랑스의 폴 펠리오(Paul Pelliot, 1878~1945), 일본의 오타니 고즈이(大谷光瑞, 1876~1948), 미국의 랭던 워너(langdon Warner, 1881~1955) 등이 돈황문서와 유물을 가져가 전세계로 흩어졌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05년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오브루체프(Vladimir A. Obruchev, 1863~1956)가 왕원록에게 승려의복용 직물, 향, 등잔용 기름, 구리 주발 등이 든 6꾸러미를 주고 고문서 2상자를 가져간 것을 시작으로, “1907년 영국의 오렐 스타인이 어리숙한 왕원록에게 소액의 기부금을 주고 약1만 점을 유출하여 영국박물관에 가져갔고, 1908년 프랑스인 폴 펠리오(Paul Pelliot, 1878~1945)가 다시 5천 점의 유물을 프랑스로 가져갔는데 그 중에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필사본도 들어 있었다. 나머지는 청나라 정부가 북경으로 옮겨갔다. 뒤이어 일본의 오타니[大谷] 탐험대가 흩어져 있던 (약 600종의) 문서와 불상을 유출해갔고, 미국의 랭덤 워너는 (돈황문서가 아니라) 불상과 벽화를 뜯어갔다.” [p. 49]

 

돈황문서는 이렇게 흩어졌지만 남아있는 돈황벽화라도 수호한 이들도 있었다. 제백석(齊白石)과 함께 현대 중국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대천(張大千, 1899~1983)은 1941년부터 막고굴 벽화를 모사하는 동시에 석굴마다 번호를 매기며 조사했다. 파리에서 활동한 전도유망한 화가였지만 귀국해 40여 년을 막고굴 보호와 연구에 헌신한 만주족 화가 상서홍(常書鴻, 1904~1994)도 있다. 조선족 화가 한락연(韓樂然, 1898~1947)은 3.1 운동에 참가했으며, 상해임시정부를 불신임하고 새로운 주체를 설립하려는 창조파에 속했다. 이후 그는 중국 공산당에 입당해서 중국 국민당 고급장교를 상대로 하는 통일전선사업에 종사했고, 이로 인해 국공합작의 와해 이후 체포되었다. 다행히 각계의 구명활동으로 “활동 지역을 서북지역[감숙성과 신강성]으로 한정할 것과 작품에 노동 인민을 그리지 않을 것을 조건” [pp. 234~235]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돈황 벽화를 모사하며 발굴조사에 몰두하면서 더 이상 막고굴이 훼손되지 않도록 수호하였다. 오늘날에는 돈황연구원이 그들의 뜻을 계승하고 있다.

 

이러한 20세기에 일어난 막고굴 약탈, 즉 돈황문서의 수난사는 어떻게 보면 답사기와는 다소 핀트가 어긋나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막고굴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부분이기에 수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일제 강점기에 많은 문화재를 약탈당한 우리의 입장에서는 남의 일 같지 않아 감정 이입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돈황에는 막고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돈황 인근에는 막고굴 외에도 가볼 만한 답사처가 많다. 과주(瓜州) 혹은 안서(安西)에 있는 유림굴(楡林窟)은 막고굴의 자매굴이라고도 불리는데, 제2굴과 제3굴에서 탕구트계의 나라 서하(西夏)가 남긴 불교예술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제2굴 서쪽 벽의 남측과 북측의 수월관음도는 고려의 불화인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를 떠올리게 한다.

 

제2굴의 수월관음도


 

출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2>, pp. 284~285

 

돈황 시내에서 각각 서남쪽, 서북쪽에 위치한 양관(陽關)과 옥문관(玉門關)은 예부터 서역으로 열린 실크로드의 관문이었다. 실크로드라고 해서 타클라마칸 사막을 가로지르는 길은 아니다. 위구르어로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뜻을 가진 사막답게 타클라마칸 사막을 우회하는 길일 뿐이다. 그래서 실크로드의 두 관문인 양관과 옥문관을 따라 서역남로와 서역북로가 형성된 것이다. “양관을 통해 나아가는 서역남로는 곤륜산맥의 오아시스 도시인 누란(樓蘭)과 호탄[Khotan, 和田]을 거쳐 카스[喀什]에 이르는 길이다. 옥문관을 통해 나아가는 서역북로는 천산산맥을 따라가는 길로 투르판[Turfan, 吐魯蕃]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천산남로는 쿠얼러[Korla, 庫爾勒]와 쿠차([Kucha, 庫車]를 지나 카슈가르[Kashgar, 喀什, 카스]에 이르고, 북쪽으로 나아가는 천산북로는 우루무치[Urumqi, 烏魯木齊]를 지나 타슈켄트, 사마르칸트로 나아가는 초원의 길이다. 강인욱 교수의 지적대로 실크로드는 선이 아니라 오아시스 도시를 잇는 점을 말한다.” [p. 304]

 

다음 권에서는 <서유기(西遊記)>의 모델이 된 현장법사(玄?法師)가 불경을 찾기 위해 떠났던 길을 따라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들을 살펴볼 수 있으리라.

17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7 댓글 2
구매 오아시스 도시의 숙명..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초* | 2019.04.30 | 추천13 | 댓글10 리뷰제목
전 권인 중국편 답사기 1권에서 관중평원, 하서주랑 그리고 돈황의 명사산을 다룬 저자는 2권에서는 돈황의 막고굴에 대한 답사를 이어간다. 돈황 답사의 하이라이트라 불리는 막고굴은 4세기경부터 굴착되기 시작하여 14세기 원나라때까지 1천년간 조성되었다. 지금까지 총 492개의 석굴이 발견되었는데 이 중 수나라시대에 97기, 당나라시대에 225기가 조영되어 전체 석굴의 4분의 3;
리뷰제목

전 권인 중국편 답사기 1권에서 관중평원, 하서주랑 그리고 돈황의 명사산을 다룬 저자는 2권에서는 돈황의 막고굴에 대한 답사를 이어간다. 돈황 답사의 하이라이트라 불리는 막고굴은 4세기경부터 굴착되기 시작하여 14세기 원나라때까지 1천년간 조성되었다. 지금까지 총 492개의 석굴이 발견되었는데 이 중 수나라시대에 97, 당나라시대에 225기가 조영되어 전체 석굴의 4분의 3이 수당시대의 석굴이라고 한다. 석굴의 관람은 관람자별로 8개의 석굴을 보여주는데, 가장 큰 불상인 북대불이 있는 제96굴과 돈황문서가 발견된 장경동이 있는 제16굴은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나머지는 관람객이 겹치지 않도록 가이드가 조절하여 보여준다고 한다. 저자는 두차례에 걸쳐 돈황의 막고굴을 관람하고 막고굴에 있는 불상과 벽화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돈황문서가 발견된 장경동은 막고굴 제16실 안에 있는 감실로 지금은 제17굴로 불린다. 문서는1890년 자칭 도사라고 자처하는 왕원록이라는 사람이 발견했다고 한다. 3만여 점에 달하는 장경동에서 나온 문서 중 기년이 쓰여 있는 것을 보면 가장 오래된 것은 오호십육국시대인 353년의 필사본, 가장 늦은 시기에 작성된 것은 북송 때인 1030년에 작성된 필사본이라고 하니 현재에서 그 역사적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문서들이 왜 장경동에 들어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피난설, 폐기설, 서고개조설 등 여러 이야기가 있으나 진정한 원인은 아직 모르고 있다 한다. 아마 영원히 알 수 없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19세기 말은 서구의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를 찾아 동양에 오던 시기로 각종 탐험대와 선교사들이 극성을 부리던 시기이기도 하다. 장경동에서 고문서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나돌자 제국주의의 탐험가들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정해진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1905년 러시아의 오브루체프가 고문서 2상자를 직물, 향 등과 맞바꾸어 가져간 것을 시작으로, 1907년 영국의 오렐 스타인이 1만점이 넘는 돈황문서를 130파운드에 사서 가져갔고, 1908년 프랑스의 폴 펠리오는 장경동에 직접 들어가 돈황문서를 일일이 펼쳐보고 그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5000여점을 따로 골라서 약 90파운드를 주고서 가져 갔다고 한다. 이때서야 돈황문서의 가치를 깨달은 청나라 정부는 문서들을 북경으로 옮기게 하였으나 왕원록은 많은 문서들을 은닉했고, 또 호송도중 빼돌리기도 했다. 1912년 일본의 오타니 고즈이는 왕원록이 빼돌려 두었던 돈황문서 600점과 3차에 걸쳐 실크로드 여러 곳을 탐사하면서 6천점에 달하는 유물을 수집해갔고, 1924년 미국의 랭덤 워너는 돈황문서가 아니라 석굴에 있는 벽화 12점을 뜯어 가기도 했다고 한다. 오타니가 수집한 유물 중 약 1700점은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소장되었고, 해방 후 그대로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이 인수했다고 한다.

 

저자는 장경동의 문서들이 영국, 러시아, 프랑스, 일본 등으로 흩어지는 서세동점의 시절,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문화재 수집과 약탈에 엄청난 피해를 입은 우리 입장에서 중국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동병상련의 염이 있지만, 우리에게도 일본인이 가져온 돈황과 실크로드의 유물 1700여점이 있어 자유롭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돈황문서와 막고굴 벽화의 수탈 부분을 읽으면서 그 시절 우리에게 일어난 제국주의자들의 약탈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혜초대사의 [왕오천축국전] 필사본이 그렇게 해서 지금 프랑스가 소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실크로드의 관문인 옥문관과 양관을 답사한다. 이 두 관문을 통해 중국과 서역의 문물이 교류되었다. 실크로드는 양관을 통하는 서역남로, 옥문관을 통하는 서역북로가 있는데 어느 길로 가더라도 관문 밖을 나서면 펼쳐지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횡단해야만 했다. 그러기에 실크로드는 선이 아니라 오아시스를 잇는 점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답사기 3권에서 이들 점들을 다룬다고 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을 때면 언제나 나도 그곳을 답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저 마음일 뿐이다. 특히 하서주랑 서쪽에 살았던 유목민족들의 삶은 무한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어쩌랴, 이렇게 저자의 답사기로나마 그 호기심을 채울 수밖에.. 저자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기다리며 읽어온 시간이 벌써 20년이 흘렀음에도, 이래저래 또 다시 기다림이 시작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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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2 내용 평점2점   편집/디자인 평점1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닥**이 | 2019.04.24 | 추천8 | 댓글0 리뷰제목
관리자에게 경고 합니다. 이 서평 지우지 마세요. 별점 높은 서평만 남기고 낮은 서평 지우려면 왜 서평란을 두나요? 그냥 광고를 하시지.....한줄 서평 진정한 저자만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그간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제목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지만, 답사기라는 형식 통해 독자들에게 문화유산에 대한 지식을 전달해 왔었다. 그런데 이번 중국편은 그러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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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에게 경고 합니다. 

이 서평 지우지 마세요. 별점 높은 서평만 남기고 낮은 서평 지우려면 왜 서평란을 두나요? 그냥 광고를 하시지.....


한줄 서평 진정한 저자만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그간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제목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지만, 답사기라는 형식 통해 독자들에게 문화유산에 대한 지식을 전달해 왔었다.

그런데 이번 중국편은 그러한 지식 전달 수단으로의 답사기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순수히 저자 개인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인 것 같다.

1부는 막고굴 답사기인데, 전체 500여 개에 달하는 막고굴의 석굴 중 11개의 석굴의 답사기가 실려 있다. 아무리 시대를 대표하는 석굴을 골라 적었다고 해도 이 정도 숫자로 막고굴에 석굴을 피상적이라도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번 방문을 해서 조금 더 많은 석굴을 답사하고 답사기를 쓰던지, 아니면 2부처럼 저자가 공부한 내용이라도 정리를 적었다면 막고굴에 있는 조각이나 회회에 대한 독자의 이해가 깊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2부에 답사기가 아닌 저자의 공부내용이 거의 150페이지나 이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막고굴 답사기의 내용이 부실한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이런 점에서 진정한 저자 개인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인 듯하다.  

 

2부는 20세기에 일어난 막고굴 약탈의 역사에 대해 적고 있는데, 이 번에 발간된2권의 중국답사기 중 가장 책과 어울리지 않는 장이라고 생각한다. 전작의 글처럼 역사이야기가 답사기에 잘 녹아있어 답사기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역사를 알게 되는 구조가 아니고 그냥 저자가 답사하기 전에 공부한 내용을 적어 놓은 것 글 같다.

막고굴 약탈의 역사가 현재의 막고굴 모습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부분임은 분명하지만 그 약탈의 역사가 막고굴 답사기나 막고굴의 역사보다 길게 서술되어 있다는 점은 책의 구성이 균형 잡히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지식으로는 중요하지만 답사기도 아닌 그냥 참고 문헌만 찾으면 금방 알 수 있는 내용들을 나열하며 책의 반을 채웠다는 것은 실크로드, 돈황, 막고굴의 답사기를 기대하며 책값을 지불한 독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것이다.  

마지막 장은 실크로드의 관문이라는 제목으로 과주라는 도시, 유림굴 그리고 옥문과 양관을 소개하고 있다.

문화유산 답사기 2권은 구성 상 여러 가지 아쉬움이 남는 데, 이 세번 째 장도 마찬가지이다.

 이 마지막 장은 내용으로 봐서 3권에 첫 머리에 들어가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서하 혹은 탕구트를 소개하면서 우리나라는 땅을 보존하고 있으니 너무 다행이다라는 말이  책의 마지막까지 지겹도록 반복되어 독자의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문화는 환경의 영향을 받고 중심부와 주변부로 나뉘고, 더 앞선 문화에서 그렇지 못한 지역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다른 곳에서는 너무 당연한 이 이치가 (그래서 일본편도 우리나라의 문화가 전달 되 곳만 쓰시지 않았나) 중국과 우리나라의 관계에서만 특별할 이유가 없다.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이지 환경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류의 문화재가 우리나라에 있느냐 없느냐를 따져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이 된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우리 문화를 좀 더 정확히 알게 되고 정확히 알게 되고 난 이후에 에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것이기 때문에 무조껀 중국과의 비교를 피하려고 드는 저자의 짦은 논리가 중국의 문화, 대한민국의 문화 모두의 이해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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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부지런한 양반이야... 부지런해...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YES마니아 : 골드 g*l | 201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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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가고싶은데 시간은 없고 책으로 대리만족합니다 유교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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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 | 202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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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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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 2022.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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