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은 히토나리(平成)다. 이 나라가 헤이세이(平成)라는 연호를 쓰기 시작한 날에 태어나는 바람에 편의적으로 붙여진 이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그의 인생에 크게 공헌하게 되었다. 그는 ‘히토나리(平成)’라는 그 이름으로 인하여 매스컴으로부터 마치 ‘헤이세이(平成)’라는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인 양 취급받기 시작했다. --- p.9
그의 손을 잡고 싶다고 생각했다. 섹스는 싫어하는 그이지만 손을 잡으려다 거절당한 적은 없다. 그의 왼손에서 크리스찬 디올 장갑을 벗기고 가만히 내 오른손을 겹쳤다. 평소에도 체온이 36도에 미치지 않는 그는 손가락 끝도 놀랄 만큼 차갑다. 내 얼굴 정도 되는 긴 손가락을 문지르듯이 하여 꽉 쥐었다. 그러자 드물게 그가 내 손가락을 되잡아줬다. --- p.17
“있지 히토나리, 왜 죽고 싶다고 생각한 거야?” 자칫하면 뭐가 부족해서 죽겠다는 거냐, 하고 힐난하는 말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애써 평정을 가장하고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그가 말의 미묘한 뉘앙스에 신경 쓰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 자신이 냉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보다 속은 괜찮아?” 그러고 보니 그가 속은 괜찮냐고 물었었지. “괜찮아. 그러니까, 내 질문에 대답해줘.” 이번에는 어조가 조금 강해진 것을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바로 1시간 전만 해도 그가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도 알지 못한 채 어느 섹스토이가 좋을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어디서부터 말해야 좋을까. --- p.22
“나는 이제, 끝난 인간이라고 생각해.” 아니나 다를까, 그는 밑도 끝도 없이 불쑥, 알 수 없는 말을 던지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사실을 지적해도 결코 화내지는 않겠지만, 입을 다물고 잠자코 듣기로 했다. 나는 조금은 희망 섞인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추론을 거듭해서 안락사를 하겠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하고. ‘끝난 인간’이라니 그게 뭔데? 시마 고사쿠(島耕作)의 부하 같은 대사나 읊고 말이야. “어쨌거나 나는 행운아였다고 생각해. 내 이름 덕에 일찍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어. 실력 이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것도 분명하고. 하지만 그런 만큼 노력도 해왔다고 생각해. 조금이라도 시간이 비면 장르 불문하고 책을 읽거나, 계층이나 세대를 불문하고 어떻게 해서든 많은 사람과 만나려고 해왔어. 여하튼 최신의 사람이고 싶었던 거야. 그런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생각해. 몇몇 책은 잘 나갔고, 최근에는 각본 일도 잘 돼가고 있어. 하지만, 문득 생각하게 됐어. 나에게 미래가 있을까 하고.” --- p.23~24
“히토나리가 죽고 싶다는 것은 알겠어. 하지만 히토나리는 실제로 안락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어? 병원이나 안락사 업자에 대한 비교는 해봤어? 실제로 안락사를 선택하는 사람이나 유족에 대한 조사는 해봤어? 히토나리는 까칠한 인상과 달리 사람들이랑 어울려 이 얘기 저 얘기 잘하잖아. 그렇다면 안락사에 대해서도 사람들을 만나서 철저히 조사를 해봤냐고?”
그는 멍하니 야경을 바라본 채, 10초 정도, 말없이 생각에 잠긴 모습을 했다. 히토나리는 나름대로 죽을 이유다운 것을 갖고는 있지만, 안락사 현장에 대해서는 아는 게 너무 없는 게 아닐까. 그의 이야기가 마치 리얼리티 없는 몽상처럼 들리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p.58
‘고별모임’은 내 상상과는 달랐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단출했다. 보통의 장례식이라면 관이 놓였을 장소에 관 대신 평범해 보이는 대(台)가 놓여 있다. 그 대에서 오늘의 주역인 오기노메 씨가 죽게 되는 것일까. 어린 시절 [세계가 다 보여! 텔레비전 특수부]에서 본 미국의 독극물 사형 장면이 생각났다. 고별모임에는 30명 정도가 참가한 것 같았다. 상복과 평복이 반반쯤이다. 오늘의 주역인 오기노메 씨는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참석자들은 파이프 의자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옆 사람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등, 별다른 긴장감이 없어보였다. 몇 분 후, 쇼팽의 [이별의 곡]이 흐르고 사회인 듯한 여성이 식의 시작을 알렸다. “여러분, 오늘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오기노메 와코 씨의 고별모임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의 주역인 와코 씨가 입장하십니다. 여러분, 부디 박수로 맞이해주십시오.” --- p.82
“세토 씨의 이야기를 듣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떠올렸습니다. 아쿠타가와는 이 수기에서 자살자 자신의 심리를 있는 그대로 쓰겠다고 선언하고는, 죽는 방법이나 죽을 장소에 대해서만 기술하고, 자살하는 이유의 핵심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는 것의 무의미함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히토나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는 초면인 내 앞에서 히토나리를 ‘히토나리’라고 그냥 이름으로만 불렀다. 그의 목소리는 아주 작고, 그리고 온화했다. 겉보기에는 젊은 밴드 맨 그 자체인데, 말투는 죽을 때가 다 된 나이 든 철학자 같다.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해서, 사람이 죽나요?” “대수롭지 않은 계기로도 사람은 얼마든지 죽을 수 있습니다.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인문학은 자살이라는 것에 대해서 지나치게 깊은 의미를 찾으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예를 들어 단지 허리가 아파서 자살한다는 사람도 많거든요.” --- p.98~99
동물병원에서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응답 버튼을 눌렀다. 최악의 예상만큼은 비켜 갔다. 수의사는 미라이의 용태가 급변했다고 전했다. 당장 생명이 위험하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만약을 위해 연락했다고 했다. 나의 심상치 않은 표정을 알아차렸는지, 히토나리가 손을 꼭 잡아준다. 그리고 우버 앱에 신주쿠의 사노동물클리닉 주소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기사님, 목적지를 변경하겠습니다. 일단 세워주겠습니까?” “괜찮아, 히토나리. 병원은 나 혼자 갔다 올게. 넌 가서 판타지 캐슬을 취재하고 와. 억지로 요구해서 밀어 넣은 거니까.” 잠시지만, 같이 병원에 가서 미라이의 죽음을 대면한다면 그가 안락사에 대한 생각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지독하게 냉정한 상상이 마음을 스쳤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미라이를 다른 목적을 위해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결국 이겨서, 병원에는 나 혼자 가기로 했다. 그도 10초쯤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으나 비교적 담담히 그런다고 했다. --- p.107~108
“히토나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안락사 방식을 발견해서 내 일이라도 바로 죽고 싶다고 하는 이야기만 아니라면 괜찮아.”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자, 그는 마지못해서 하는 표정으로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말했다. 그가 가서 보고 온 것은 몹시 사랑하던 반려동물을 잃고 안락사를 결정한 고령 여성의 세리머니였다. 최근에 배우자나 연인이 죽어서 안락사를 선택하는 케이스는 늘었지만, 반려동물이 죽어서 안락사를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오늘의 여성은 키우던 개가 죽은 후로는 식사도 목을 넘어가지 않게 되고 우울증에 걸린 것처럼 되어버렸다. 반려견용 뼈 항아리를 안고서 맞이한 마지막 순간, 무척 행복해 보이는 얼굴을 했다고 한다. “있지 아이(愛), 우리 인간은 아직 전혀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거야. 요즘 들어, 나는 많은 죽음에 입회해 왔지만, 사람은 이렇게나 누군가의 죽음에 의해 큰 타격을 입는 존재로구나, 하는 사실을 알고 정말로 놀랐어. 불의의 사고라면 이해하겠는데, 수명이 다해 죽거나 본인이 결정한 게 분명한 안락사에 대해서조차, 그 죽음에 대해 사람은 슬퍼하고 괴로워해.”
--- p.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