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것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그래도 되는 것과 그러면 안 되는 것도 없다. ‘내가 이런 걸 원해도 되나’,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다니, 미쳤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누구도 내가
원하는 것을 비난할 수 없다. 무언가를 원하는 데는 자격도 필요 없다.
--- p.44, 「1장 나를 위한 일이 세상을 위한 일이다」중에서
우리가 타인의 인정에 목매는 이유는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뤄낸 것, 이미 끝을 맺은 것, 여전히 해나가고 있는 것,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힘들었지만 지켜왔던 것,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것, 이런 것들을 내가 너무 몰라주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러면서 나를 무시하지는 않았나? 나의 가치를 깎아내리면서 나의 존재의 이유를 외부에서만 찾고 있진 않은가? 그렇다면 실망과 공허만 거듭되고 너덜너덜 소진되며,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치게 된다.
--- p.76, 「2장 나로 사는 데 누군가의 인정은 필요 없다」중에서
우리는 대개 감정에 휘둘리는 걸 미성숙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도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어떠한 감정이 생겨나고 그것을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일 자체는 감정에 휘둘리는 게 아니다. 오히려 감정을 외면하고 억압한 끝에 폭발적으로 드러내면서 자신과 타인에게 상처 입히는 행동이야말로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다.
우리는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무언가를 생겨나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일은 우리 능력 밖의 일이다. 존재하는 것
은 무엇이든 언젠가 자연스럽게 소멸되는 법이다.
--- p.87, 「3장 죽을 만큼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아」중에서
모든 생명체는 이기성이 있다. 그래야 밟히지 않고, 먹히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유기체에게 이기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러므로 이기적인 나를 허락하는 일은, 원래 있던 것을 그저 있도록 하는 거다. 내가 타인에게 부여한 과도한 힘을 되찾아오는 가장 빠른 길은 이기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기주의는 나쁘고 이타주의는 좋은 것이라는 흑백사고는 우리를 경직시킨다. 남을 위해 반드시 배려하거나 희생해야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경우에 따라 바람직한 선택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너무 이타적으로 살았다. 좀 이기적이어도 괜찮다. 아니, 제대로 이기적이어야 한다.
--- p.149, 「4장 이제 눈치 좀 그만 봅시다」중에서
우리는 남에게 싫은 소리를 잘 못한다. 그러니 남이 나에게 하는 ‘듣기 싫은 말’은 모두 상처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보람 씨도 싫은 소리를 ‘하는 게’ 싫다기보다, 싫은 소리를 ‘듣는 게’ 싫은 거다. 내가 어른 노릇을 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꼰대라고 무시하며 저항하고 있기 때문에 남들도 나를 그렇게 볼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이 역시 투사 방어기제다. 싫은 소리 좀 한다고 사람들이 무조건 나를 불편하게 여기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일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것처럼 두려워할 때가 있다.
--- p.155, 「4장 이제 눈치 좀 그만 봅시다」중에서
당신 잘못이 아니다. 내가 가졌던 미성숙한 생각과 태도는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는 것을 다시 기억하자. 그 당시 나의 부정적인 생각, 행동, 감정, 태도들은 모두 정서적인 위협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나름의 기능을 한 것이다. 실패와 버림받을 수 있는 가능성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노력들이었다.
--- p.202, 「6장 상처받는 게 두려운 당신에게」중에서
우리는 때로 결핍이 지나칠 때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남의 삶을 통해 얻고자 한다. 그런 일은 거의 언제나 가족이나 연인처럼 아주 가까운 관계에서 일어난다.
-229, 「6장 상처받는 게 두려운 당신에게」중에서
우리는 원하는 것을 하기보다,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마치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생사 게임처럼 말이다. 내가 기대고 있는 벽은 원래 비스듬한데, 그걸 바로 세우겠다고 온 힘을 다해 벽을 밀어붙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완벽한 수평과 수직은 십자가가 될 뿐이다.
--- p.265, 「7장 너무 애쓸 필요 없습니다」중에서
나의 가치와 신념에 반할 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동의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내가 원하지 않거나 좋아하지 않는 일에 “싫어요.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미안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거절의 형식을 취하는 자기표현이자 자기주장이다. 이는 나의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며, 때로는 스스로의 안전 그리고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을 보호한다.
--- p.279, 「8장 나를 지키는 법」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