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0년 03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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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556쪽 | 600g | 135*196*38mm |
ISBN13 | 9791165075064 |
ISBN10 | 1165075067 |
발행일 | 2020년 03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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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556쪽 | 600g | 135*196*38mm |
ISBN13 | 9791165075064 |
ISBN10 | 1165075067 |
MD 한마디
[마침내 찾아오는 감동, 히가시노 게이고 신작] 기묘한 제안을 받고 ‘녹나무’를 지키는 일을 하게 된 레이토와, 녹나무를 향한 수상한 ‘기도’의 실체를 파헤치려는 유미. 두 사람이 밝히는 진실은 무엇일까? 저마다의 사연으로 나무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간절한 마음이 마침내 독자에게 닿아 감동을 전한다. -소설MD 박형욱
녹나무의 파수꾼 옮긴이의 말 |
책을 펴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녹나무가 뭔지부터 찾아봤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하필이면 녹나무를 등장시켰는지를 알아야 했다. 그리고 금세 이해할 수 있었다. 내게도 익숙한 나무였다(이름은 몰랐지만). 그 나무에 무슨 영(靈)이 서렸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그가 녹나무에 그런 역할을 부여한 것은 납득이 되었다.
소설 속의 이야기는 몇 개의 고리를 지니고 있다. 녹나무의 파수꾼이 된 나오이 레이토의 가정사와 그를 녹나무의 파수꾼으로 끌어낸 야나기사와 치우네의 사연과 관계, 사지 유미와 그의 아빠, 그리고 큰아버지, 할머니에 얽힌 사연, 큰 기업의 후계자 오바 소키라는 청년의 이야기 등등. 모두 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일이지만, 결국엔 녹나무를 매개로 풀리는 일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 녹나무에만 의지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야기의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 녹나무와 연결되었을 때 풀리는 일들이다. 언뜻 봐서는 녹나무의 기념(祈念)과 수념(收念)에 기대는 것 같지만, 소설 속의 인물들은 결국엔 자신의 의지를 펼치고 있다. 녹나무는 배경이다.
그런 녹나무 같은 배경이 있었으면 싶지만, 그게 배경이라면 그런 배경은 누구에게라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고, 혹은 만들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치우네의 마음을 읽고 그를 대변한 레이토의 경우나, 큰아버지의 머릿속 음악을 현실화해낸 사지 유미나, 혈연으로 연결되지 않았어도 당당히 가업을 밑바닥부터 이어가겠다고 결심한 오바 소키나 모두 녹나무를 통해서 그런 결심을 한 것 같지만, 사실은 녹나무를 그렇게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들의 마음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마음 속에 녹나무를 키우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런 현실을 초월한 상상을 펼치는 소설을 가끔 낸다. 그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그런 것이었고, 『라플라스의 마녀』나 『마력의 태동』도 그런 것이었다. 이과 출신 소설가로서 자신의 경험과 지식, 내지는 성향을 바탕으로 엄밀한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 이런 소설들을 보면 그의 출신에 비해 조금 의외란 생각도 든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이런 소설들은 따뜻하다. 그의 추리 소설들도 추리 자체보다는, 또 차갑다기 보다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 중점을 두는 따뜻한 느낌의 것이 훨씬 많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초현실적인 현상을 다루는 소설은 더욱 따뜻하다. 어쩌면 그가 소설 속에서 이런 장치를 하는 이유는 그런 따뜻한 세상에 대한 염원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우선 책의 제목에 있는 녹나무에 관심이 간다. 가고시마에는 수령 1,500년으로 추정되는 녹나무가 있는데 나무기둥 안에 약 13제곱미터의 빈 공간이 있다고 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신비한 녹나무와 외형적으로 비슷해 보인다. 독특한 향의 정유성분이 있어 방부, 방충역할을 하는 상록 활엽수이기도 하다. 장수나무라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사용하기에도 적절해 보인다.
이 소설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저자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떠오른다.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추리 소설물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죽은 자와 산 자를 연결시켜 주는 매개체를 등장시켜 따뜻한 인간애를 느끼게 하는 감동소설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소재로 쓰였던 나미야 잡화점이 이번에는 녹나무로 옮겨져 있고, 두 작품에서 비슷한 감동이 느껴진다.
소설의 주인공은 결점 투성이의 청년 레이토이다.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자란 아이, 할머니와 엄마가 어렵게 꾸려나간 가정형편,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이젠 천애고야가 된 청년, 결함있는 기계처럼 끊임없이 사고치고 유치장에 수감되기까지 한 주인공, 그런 그에게 인생일대의 기묘한 제안이 들어온다. 변호사를 통해 감옥에 가지 않도록 도와줄테니 대신에 시키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월향산사'란 곳에서 '녹나무 파수꾼'일을 하게 되고, 녹나무와 관련된 이야기가 진행된다.
500쪽이 넘는 긴 이야기지만 등장인물과 이야기 구성은 비교적 간단하다. 주인공 레이토와 이모 치후네, 유미와 그녀의 아버지인 사지 도시아키, 본인의 의사에 반해 억지로 기념에 끌려온 오바 소키의 가족사를 다루고 있다. 화려한 가족사 속에 숨겨왔던 부끄러운 비밀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상황들, 거기에 담긴 사람들의 감정과 사연이 담겨 있다. 밑바닥 인생을 살아온 주인공 레이토를 등장시켜 우리의 삶이란 것이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니냐는 의미를 주는 것 같기도 하다.
녹나무를 통해 기념(祈念)이라는 행사를 하는 것이 이야기의 또 한 축을 이룬다.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자녀를 통해 이루려는 부모의 마음을 전달하고, 가까운 사람간 생전에 하지 못한 마음 속 이야기를 주고 받는 방편으로 녹나무가 사용된다. 세대간 소통, 친척들간 진심을 주고받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삶의 본질적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해피엔딩의 결말을 보면서 가슴 뭉클함을 느끼게 된다.
오랜만의 히가시노 게이고였다. 저자의 책 중, 아니 내가 읽은 책들 중 단연 상위에 랭크되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맥락이 닿아있다는 책 소개에 망설임 없이 집어든 책이기도 했다.
주거 침입, 기물 파손, 절도 미수로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던 레이토는(왠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나온 인물들과 겹쳐지는 대목이다) 존재 자체도 알지 못했던 이모님 치후네의 도움으로 석방된다. 물론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치후네는 그에게 앞으로 할 일을 제안, 아니 지시를 내린다.
"그쪽이 해야 할 일...... 그건 녹나무 파수꾼입니다." p.39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녹나무 파수꾼이 된 레이토가 그 곳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고, 치후네와의 어색한 거리를 좁혀나가면서 녹나무의 기념에 얽힌 비밀을 풀어가는 시간을 풀어낸다.
“맞아요. 그믐날과 보름날 밤이 기념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날입니다. 다들 그것을 아시기 때문에 그 날짜를 중심으로 예약을 하시는 것이지요.”
“적합하다니, 그건 무슨 얘기죠?”
“말 그대로의 의미예요. 기념의 효험이 있다는 뜻입니다.”
“효험.....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p.96
550 페이지에 달하는 이야기를 만난 이후 처음 든 소감은 솔직히 조금 아쉽다는 것이었다. 이야기의 소재가 주는 녹나무의 신비로움이나 인물들간에 느껴지는 감정선은 다 읽은 후 따뜻한 느낌을 주지만, 인물들간의 관계나 그 설정이 촘촘하게 엮여 있어서 읽으면서 앗, 어떻게 이런 생각을! 감탄을 하며 읽었던, 그간의 소설들에 비하면, 다소 평면적인 인물들과 전체적으로 예상되는 전개였다고나 할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거기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느낌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너무 컸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수 있지만, 그의 작품에 대한 기대치가 그만큼 높았던 탓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