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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

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

: 산책길 들풀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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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7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252쪽 | 342g | 128*188*20mm
ISBN13 9788965963912
ISBN10 896596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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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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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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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산책을 나선다. 걸으면 조금씩 송두리째 흔들렸던 삶의 중심이 잡힌다. 나를 물들였던 것들이 천천히 빠져나간다. 겹겹이 쌓였던 타인의 시선과 기대와 기준들이 사라진다. 바람이 한 겹, 햇살이 한 겹, 빗물이 한 겹, 아랑곳하지 않고 어느 때고 솟아오르는 들풀이 한 겹, 나무가 한 겹, 꽃이 한 겹, 흙이 한 겹. 아름다운 것들이 내 속에 스며들어 불필요한 것들을 밀어내고 순한 내가 남는다. 흔들리는 내 삶에 작고 연약하지만 싱싱한 새로운 뿌리가 자라난다.
--- p.8~9

몇 걸음 더 걸었을 때 초록 더미 사이에 어린아이 새끼손톱만 한 유홍초 꽃이 보였다. 몹시 작은 데다 막강한 번식력으로 잎이 나기 전에 뽑히곤 하는 통에 만나기 어려운데 그날은 푸른 하늘을 향해 전진하듯 얼굴을 들고 있는 주홍빛 유홍초가 눈에 들어왔다. 무성한 초록 사이에 작고 붉은 별이 뜬 것 마냥 예뻤다. 크고 화려하지 않아도 명확히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다. 옅은 바람에 작고 붉은 별들이 살랑였다.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 p.21

클로버의 잎이 행복에서 행운으로 변하는 건 짓밟혀서라고 한다. 원래 세 장의 잎이 나야 정상인데 잎이 밟혀 생장점이 손상되어 기형적으로 잎이 하나 더 나는 것이라고. 그래서 시골 산책길에서는 찾기 힘들고 상대적으로 사람 많은 도시에서 행운의 네 잎을 발견하기 더 쉽다. 클로버의 이야기를 알게 된 후로 조금은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행복을 깨닫기 힘든 곳에 행운이 나타나고 행운을 찾기 어려운 곳에 행복이 가득하다는 것이.
--- p.31~32

고마리는 습한 곳이면 어디든 상관없다는 듯이 맑은 개울가에서도, 더러운 하수구 주변에서도 잘만 핀다. 가평 같은 시골이야 모르지만 도시에서는 맑은 개울을 찾기가 어려우니 대체로 하수구 주변에서나 만날까 싶은 풀이다. 예전에는 어린 풀은 먹고 줄기와 잎은 지혈제로도 쓰였다는데 지금이야 그저 잡풀에 불과하다. 그러나 쓰임이 있든 없든, 자리 잡은 곳이 깨끗하든 아니든, 흰빛 분홍빛으로 피어 있는 순간은 저토록 예쁘다. 그래, 물 흐르듯 흐르는 인생, 어찌 흐르든 무엇으로 흐르든 거기에서도 피는 꽃은 있지 않겠는가.
--- p.41

그러니 가을에 핀 왕고들빼기 꽃은 봄과 여름 내내 어떤 선택도 받지 못한 것들의 결과다. 봄에 왕고들빼기의 토실한 알뿌리를 캘 때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비주얼. 만약 작정하고 왕고들빼기들을 다 캐내버렸다면 바람에 나부끼는 이 우아한 크림색의 꽃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왕고들빼기 꽃을 볼 때마다 선택되지 않은 기쁨에 대해 생각한다. 그 사람이, 그 회사가, 그 시험이, 그 아이디어가 나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기회이고 기쁨이라고 이 꽃이 말해주는 것만 같다. 왕고들빼기 꽃은 선택되지 못했을 뿐 내 안의 꽃은 여전할 거라고 이야기를 건넨다.
--- p.49~51

산책을 하면서부터 무채색의 세상이 온갖 풀들에 의해 색이 입혀지는 걸 봐왔다. 슬금슬금 작은 연둣빛으로 시작해서는 어느 새 초록 범벅이 되는 흐름. 계절을 넘어서며 아주 작은 것이 눈에 띄지 않게 지속되다가 순식간에 판이 뒤집어지는 걸 목격한다. 우리 집 담을 뒤덮고 있는 담쟁이도 마찬가지였다. 씨를 뿌려놓고 언제쯤 근사한 풍경이 될까 너무 아득해 상상도 하지 않았는데 이태 만인가 모래사장을 덮친 파도처럼 외벽을 기세 좋게 자신의 초록으로 뒤덮었다. 변화란 이런 것이구나. 그때 알았다. 나도 천천히 바꿔보자. 다시 시작해보자. 당장 달라지길 바라지 말고, 처음부터 너무 열심히 말고, 차츰차츰 나아지도록 천천히.
--- p.92

집에 돌아와 천천히 생각해보았다. It’s getting better. 그래,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한 인간으로 잘 자라고 있는 게 분명했다.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그거면 되지 않은가? 당사자도 아닌 엄마가 원하는 모양이 뭐가 중요한가? 나아진다면, 점점 나아진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 가? 문제될 것이 없다. 인간이 태어나 이루어야 할 과업은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지는 것이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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