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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 5

황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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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1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554쪽 | 618g | 140*205*35mm
ISBN13 9788950992279
ISBN10 8950992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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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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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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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우는 봉지미와 헤어지고 반년 동안 정사를 돌보며 자주 그 이름과 마주쳤다. 하나같이 그 인재의 탁월한 지혜를 칭송했다. 그 사람이 두각을 나타내고, 그 사람이 조정을 좌지우지하고, 그 사람이 독보적이며 찬란한 공적을 세웠다는 소식뿐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서리 낀 유리창 너머로 전혀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창 뒤에 보이는 사람은 섬세하고 연약한 모습에 미간에는 은은한 붉은 자국이 있고, 두 눈동자에는 물결이 쳤다. 웃을 때는 조금 새침하지만, 그의 마음을 울렁대게 만들던 그녀였다. 그렇게 완전히 다른 얼굴만 떠오르곤 했다. 자주 그를 황홀하게 만들었던 그 얼굴 말이다.
--- p.138

비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던 그날 밤 함께한 독서가 떠올랐다. 따뜻한 화로 앞에서 서로 손을 붙잡고 불을 쬐던 기억, 섣달 그믐날 밤 우아하고 꼿꼿한 모습의 그녀가 그의 곁을 지키던 기억, 중상을 입어 축 늘어진 그녀를 업고 천천히 걸을 때 그의 목덜미에 닿던 따뜻한 숨결의 기억. 서재에서 협상을 벌일 때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무쌍국사를 얻으셨음을 감축 드린다는 말, 이제 천하를 손에 쥐셨다는 그 말…….
--- p.138

“내 진심이 헌신짝처럼 버려져 신경 쓰인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속였다는 사실이 신경 쓰인다.” “내가 손을 놓은 걸 알면서도 그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음이 신경 쓰인다.” “내가 다 이긴 싸움에서 했던 그 협상이 신경 쓰인다.” “지략으로 지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패배해서 신경 쓰인다.” “저토록 무정한 사람을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는 어리석은 내가 신경 쓰인다.”
--- p.139

진사우가 누르는 힘에서 결연함이 느껴졌다. 봉지미가 기억하는 자상하고 다정한 안왕이 아니었다. 그는 거칠고 난폭하게 그녀의 입을 맞추더니, 이빨로 세게 그녀의 치아를 벌리려 했다. 그는 한시도 꾸물거리지 않고 몸을 불태우고 싶었다.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저 미지의 강산을 점령하고 싶어 몸이 달았다. 그는 자신의 온몸을 무기로 삼았다. 무릎을 꺾어 그녀를 짓누르고, 허리를 세게 끌어안아 그녀의 몸을 제압해 버렸다. 죽기 살기로 그녀를 난간 사이 작고 네모난 곳으로 밀어붙였다. 그동안은 그녀의 의지를 존중하고 신사다운 품격을 유지했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의 기억 속에 그는 한 줄기 바람으로만 남았다. 일이 이 지경까지 왔는데 신사니 뭐니 품격을 찾는다면 머저리인 것이다. 그녀가 무정한 만큼 그는 침범해 줄 것이다!
--- p.140

고남의는 또다시 딸을 바라보며 시선으로 그 망연자실한 표정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난생처음 인생의 고난으로 인해 주름이 드리워진 그 자그마한 얼굴을 눈빛으로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는 자신의 눈빛에서도 고통이 보인다는 걸 몰랐다. 둘의 아픔이 겹쳐도 결국은 그 둘만의 아픔에 지나지 않았다. 눈앞의 아이는 핏줄은 아니지만 피보다 진한 정을 느낀 아이였다. 지효가 아기 때부터 그가 품에 안고 세 살 꼬마로 키워냈다. 아이를 직접 먹이고 재우고 똥 기저귀를 갈아 준 그는 세상의 모든 아버지와 달랐다. 까다롭고 번거로운 모든 육아 일을 직접 해 낸 그는 세상의 어떤 아버지보다 아버지다운 자격이 있었다. 어떤 아버지도 이처럼 아이의 모든 성장 과정에 세심하게 관여하지 않았을 터였다.
--- p.197

진사우는 봉지미를 안고 갑판에 올랐다. 뱃사공이 돛을 올려 대월로 방향을 잡았다. 뒤로 끝없이 흰 파도가 부서지며 마침내 거룻배 한 척도 보이지 않게 돼서야 그는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내 그녀를 손에 넣은 것이었다. 그는 한동안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전쟁포로가 아닌, 천성의 중신이자 일등 후작이며 사신인 위지를 납치한 것이었다. 자신의 계획을 반추해보니 확실히 주도면밀하고 완벽했다. 그는 빙긋 웃음이 나왔고, 비로소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고개를 숙여 품 안의 여인을 바라봤다. 살짝 말려 올라간 긴 속눈썹을 가진 그녀의 잠든 얼굴은 한없이 평온했다.
--- p.230

“점점 당신에게 속수무책이 되어가는 나를 위해 건배.” 단숨에 털어 넣고 또 한 잔을 비웠다. 흔들리는 주황색 촛불이 진사우의 온화한 얼굴을 따스하게 감쌌다. 눈동자에 천천히 물기가 맺혔지만, 그는 취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가볍게 마신 술 몇 잔에 봉지미를 꼭 끌어안고 잠들었다.
--- p.233

“네가 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은 것을 안다. 네가 나를 따라오기 싫어하는 것도 안다. 이 지경이 되면 내가 너를 억지로 내 곁에 두는 것도 실은 재미가 없다. 나는 비록 투박한 사람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강제로 얻으려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네게 딱 한 번 염치없이 구는 것을 용서해다오. 반드시 기억해라. 나는 너를 곁에 두겠다.”
--- p.247

“지미…….” 봉지미는 움직이지 않고 시선만 올려 혁련쟁을 보았다. “힘들지 않소?” 혁련쟁은 무슨 말을 하기로 마음먹고 망설이는 법이 없었다. “어쩐지 나는 그대가 몹시 힘들어 보이오……. 나와 함께 초원으로 돌아갑시다. 내가 그대를 평생 지킬 수 있게 해 주시오.”
--- p.368

“지미, 마지막으로 한 번만 묻겠다.” 봉지미는 천천히 어깨를 껴안았다. 그리고 이 밤의 차가운 냉기를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애써 웃으며 말했다. “밤이 깊었습니다. 내일 다시 얘기하시는 게…….” “…… 나의 정비가 되겠느냐?”
--- p.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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