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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환상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마리아나 엔리케스 공포 소설집. 다양한 계급과 세대의 유령들이 여기저기 출몰하며 일어나는 정치적, 역사적, 실존적 차원의 두려움은 우리의 평온한 일상을 뿌리째 흔든다. 방심하지 말자. 엔리케스의 매혹적인 이야기에 홀리는 사이 내 주위를 배회하고 있던 공포가 틈입한다. - 소설 MD 김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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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파낸 앙헬리타 … 10
호숫가의 성모상 … 28 쇼핑카트 … 54 우물 … 74 슬픔에 젖은 람블라 거리 … 104 전망대 … 136 심장이여,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 158 카르네 … 178 생일, 영세식 사절 … 194 돌아온 아이들 … 216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 302 죽은 자들과 이야기하던 때 … 314 한국어판 저자 후기 … 339 |
Mariana Enriqu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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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는 임대 아파트에 혼자 살았다. 그 집 발코니에는 키가 150센티미터나 되는 마리화나가 자라고 있었고, 커다란 방에는 매트리스만 깔려 있었다. 그녀는 교육청에 개인 사무실이 있었고 월급도 꼬박꼬박 받았다. 칠흑처럼 검게 염색한 머리에, 소매 폭이 손목 부분으로 갈수록 점점 넓어지고 햇빛을 받으면 반짝이는 은실로 수놓아진 인도산 셔츠만 입었다. 그녀는 올라바리아 출신인데, 멕시코를 여행하다가 감쪽같이 사라진 사촌도 있었다. 그녀는 우리의 어른스러운 친구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가 약해지고 망가져서 완전히 무너져 버리기를 바랐다. 그건 실비아가 언제나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호숫가의 성모상」 중에서 “다 이 빌어먹을 카트 때문이야. 그 망할 비렁뱅이의 카트 때문이라고.” 그는 몇 시간 동안 고래고래 악을 쓰다가, 또 몇 시간 동안 남의 집 대문과 창문을 주먹으로 치면서 돌아다녔다. “그 카트 때문이야. 모든 게 그 늙은 거지 때문에 벌어진 일이란 말이야. 자, 어서 그놈을 찾으러 가야 해. 그 똥싸개 말이야. 빌어먹을 그놈이 우리한테 마쿰바의 저주를 내린 거라고.” --- 「쇼핑카트」 중에서 “얘야, 그들은 자기들만 살려고 했던 거야. 네 언니도 마찬가지고.” 그녀는 마리엘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주 어린아이였지만, 무서울 정도로 영악했지.” 호세피나는 숨을 참고 다리에 다시 힘을 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야.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제발 저 우물로 달려가 그 안에 고인 빗물 속으로 몸을 던질 때까지만 버텨줘. 조금만 더 힘을 내. 그래서 끝도 없는 바닥으로 떨어져 사진과 배반을 품고 물에 빠져 죽으면 좋으련만. --- 「우물」 중에서 “그건 마치……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일종의 망상이라는 거야. 아무튼 가끔 그 미치광이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어쩌면 도시의 광기가 인간의 형상을 하고 나타난 것인지도 몰라. 그러니까 도시의 안전판과 같은 존재인 셈이지.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서로 물어뜯어 죽이거나 스트레스로 죽었을 거야. --- 「슬픔에 젖은 람블라 거리」 중에서 보통의 남녀가 섹스할 때 쾌감의 절정에서 나오는 신음 소리를 듣고 느끼는 것을, 나는 망가진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을 때 느끼는 것이었다. 심장 박동 소리가 얼마나 다양한지 모를 것이다! 심장의 고동 소리는 사람마다 고유함이 있고 각각의 소리마다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 「심장이여,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중에서 이럴 줄 알았다면 시트에 구멍을 좀 더 많이 만드는 건데. 천장을 보자마자 그녀는 후회했다. 자기가 바라던 건 바로 총총하게 빛나는 별이 가득한 하늘이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바라던 것은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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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라는 장르로 폭력에 맞서다
가장 안온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가장 불온한 이야기 “내가 어둡고 음울한 소설을 쓰는 이유는 괴물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엔리케스의 작품 세계는 주로 공포와 두려움, 집착과 광기, 폭력과 죽음, 그리고 주술과 저주 등 어둠의 그림자로 뒤덮여 있다. 따라서 얼핏 보기에는 과거 고딕소설의 전통을 계승한 것처럼 을씨년스럽고 기괴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텍스트의 속살을 파고들다 보면 그와는 다른, 조금 더 깊은 세계가 열린다. 「슬픔에 젖은 람블라 거리」는 유명 관광 도시를 배경으로 국가 권력에 짓눌려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이민자, 육체노동자, 성노동자, 소매치기의 영혼들이 등장하고 「죽은 자와 이야기하던 때」에서는 10대 소녀들이 위저보드를 통해 과거 활동가, 정치가들의 행적을 좇는다. 우리의 4.19, 광주의 실종자를 떠올리게 하는 이 이야기는 작가 본인이 어린 시절 직접 겪은 독재정권 시절의 불안감, 철저하게 가려져 있던 공포를 직접 끌어내 녹였다고 한다. 「쇼핑카트」는 가난한 외부인을 배척해 집단 저주가 내려진 마을의 이야기이고, 「돌아온 아이들」에는 어른들의 폭력으로 집에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서늘한 그림자가 담겨 있다. 불평등한 현대사회에 만연한 가난에 대한 두려움, 가정 폭력(특히 여자와 아이들), 정상성에 기댄 차별과 혐오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회적, 역사적 공포를 복합적으로 그려낸 이 이야기들은 나아가 공포의 정체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게 한다. 영어가 아닌 언어를 쓰는 여성 작가가 그려낸 남쪽 세계의 공포 그리고 다양한 여성들의 삶 이 책에는 10대 청소년부터 혼자 사는 노인까지 각 세대별, 계급별 다양한 여성의 삶이 등장한다. 심장 소리에 집착하게 된 여성의 사랑 이야기(「심장이여,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좋아하는 최애 뮤지션의 시체를 먹고 일체가 되고자 하는 오컬트적인 10대 청소년들의 팬덤 문화(「카르네」), 세상살이에 뒤처져 침대에 파묻힌 여성의 꿈(「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등 사회적 규범과 제도에 억눌려 발현되지 못한 여성의 권리와 욕망, 억압으로부터 탈주하는 섹슈얼리티를 있는 그대로 표출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생생히 기록한다. 이외에도 모계 대대로 내려오는 불운의 기운을 담은 이야기(「우물」), 이름도, 사연도 없이 죽어버린 고모할머니(「땅에서 파낸 앙헬리타」), 실제 전해지는 도시 전설에서 모티프를 얻어 소녀들의 질투심과 증오심을 주술의 세계로 그려낸 뻔뻔하고 통쾌하게 그려낸 이야기(「호숫가의 성모상」) 등에는 작가가 나고 자란 라틴아메리카의 기운과 냄새가 가득 배어 있다. 실제 거리와 지명, 전설, 인물들을 사용하며 그녀가 보고 느낀 남쪽 세계만의 공포를 만들어 냈다. 작가는 자신이 느낀 공포를 여실히 드러내기 위해서 자신의 ‘언어’와 ‘여성’으로서의 삶을 깊게 인지하고 고민해야 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 공포를 마주하고 이겨낼 용기를 얻는 것이야말로 다른 소설이 아닌 공포 소설을 쓰는 이유라고 밝혔다. “공포 소설은 저주받은 집과 같다. 그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연 이상, 발길을 되돌릴 수는 없다. 우리 모두 과감하게 발걸음을 내디디며 문턱을 넘어가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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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나 엔리케스라는 이야기의 심지에 다가가면 누구나 속절없이 타오를 수밖에 없다. 타는 냄새도 없고 불에 덴 자국과 잿더미도 남지 않는 아름다운 불길. 세계를 그은 자리에 출몰하는 기이한 존재들. 천연덕스러운 악의와 제정신으로 버티기 힘든 광기가 저지른 방화는, 실로 고독하고 환상적이다. - 편혜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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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작가가 마침표 뒤에 숨겨 둔 이야기들을 읽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리아나 엔리케스는 독자를 ‘읽는’ 자가 아닌 ‘몰래 듣는’ 자로 만든다. 고로 이 책을 펼쳐 버린 이상, 보통날 단 하나의 어긋난 사건으로 인생이 꼬여 버린 인물들을 수수방관하는, 절대적으로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이보다 더 생활과 판타지 사이에 불행을 밀착시켜 놓은 글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주의 사항을 미리 적는다. 이 책의 모든 페이지에는 작가가 파 놓은 구렁텅이가 있다. 나처럼 당신도 그 깊은 여운에 허우적거리다 잠겨 보길 바란다. - 이소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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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만든 세계는 중심에서 몇 도 벗어난 느낌이다.
엔리케스의 이야기는 연기가 자욱하고 음란하고 눈부시다. - 로런 그로프 (『운명과 분노』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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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 가는 작은 유령, 심장 박동, 저주, 마녀, 고기.
이 이야기들은 모두 달콤하고 매혹적인 악몽 같다. 진짜 공포가 드러날 때까지 스산한 문장들은 꾸준하게 짜릿한 공포감을 쌓아 올린다. - 커스티 로건 (『그레이스키퍼스 The Gracekeepers』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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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뒤틀린 이야기의 어둡고 탐욕스러운 속삭임이 좋았다.
이 글에는 분명 강력한 힘이 있다. - 데이지 존슨 (『자매 Sisters』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