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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HEENT 13 사물 시는 작게 말한다 19 조형 시는 골지 위에 쓴다 22 공상과 포위 25 공백의 광선 33 아날로그 39 벌 신(Bee God) 46 콕토의 검색 58 자율의 오도 1 61 자율의 오도 2 62 자율의 오도 3 63 자율의 오도 4 64 자율의 오도 5 65 자율의 오도 6 66 자율의 오도 7 67 자율의 오도 8 68 자율의 오도 9 69 자율의 오도 10 70 2부 좋아하는 것들을 죽여 가면서 73 태화강 오후 86 갈증 92 스몰 토크 99 밀실 102 모래주머니의 S와 돕는 연인들 104 루지, 언더 트리 108 interlude 113 가장 다정한 116 asap 118 선경 121 공주 130 3부 html ghost 135 루블 140 기숙사 144 검은 옷의 혼선에 서서 146 크로나 150 스키를 타는 것 154 수조를 보는 것 158 크로나 164 Loveless 169 크로나 176 푸른빛이 페달을 181 물방울치과 185 1227 188 발문│송승언(시인) 숨은 길 1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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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할 수 있게 했던 공원의
공용 화장실 뒤편 풀이 자란 곳. 풀을 자른다. 구름. 풀을 자르고 난 후의 구름. 강당으로 가 보자. 무슨 체육을 하듯이? 무슨 총격전에 휘말린 듯이. --- 「HEENT」 중에서 강아지야 강아지야 함께 춤을 추니 즐겁지 이제 그만 내려와 들어가 선을 따라서 통로 속으로 개의 집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곳으로 손님이 왔으니 이제 너를 완성해라 예전처럼 흰 상자야 뚜껑을 닫으면 그만이다 --- 「공상과 포위」 중에서 엄마는 기분 좋은 졸음을 느끼고 있었지. 그런데 문득 몇 가지 사실이 떠올랐지. 할머니는 없지. 엄마가 그녀의 딸이었을 때 그녀는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났지. 엄마는 딸이 걱정되었고 친구들에게 말했지. 나는 갈게. 급한 일. 엄마는 급한 일을 향해서 뛰었지. 등에 대고 친구들이 소리쳤지. 계속 그렇게 살아. 그런 걸 잊을 수는 없지. --- 「갈증」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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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새로운 곳에서 태어나는 사람들
지루함 속으로 더 흘러가기로 할 때 나는 머리채를 잡힌다. 나는 달아난다. ―「좋아하는 것들을 죽여 가면서」에서 일상의 사전적 의미는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다. 일상을 살아갈수록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구성한 것들에 조금씩 익숙해진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평온함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낯설 때 느꼈을 긴장감은 점점 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임정민 시의 인물들은 낯섦에서 익숙함으로, 긴장됨에서 평온함으로 흘러가기 마련인 일상의 흐름을 정반대 방향으로 거스른다. 그들은 삶이 지루해지려는 찰나, “머리채를 잡힌” 채 “달아난다.” 누군가 그 뒤를 쫓는 것이 아닌데도 끝없이, 적극적으로 도망친다. 인물들의 도망은 쫓기고 내몰리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닌, 망치를 들고 지루한 것들을 부수며 무뎌져 가는 시간의 감각을 날카롭게 벼리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내게 익숙한 것들, 익숙해서 좋은 것들을 죽여 가면서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임정민 시 속 인물들은 그리하여 매일 새로운 곳에서 태어난다. 그들은 언뜻 보기에 낯선 것들에 둘러싸여 떨고 있는 약한 존재처럼도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이곳에 도착했다. 다시 내일이 되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날 것이다. ■ 이야기들과 대화하기 썩은 치즈와 전원생활의 관계가 움직이는 것을 목격했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벽에 걸려 있었다 ―「밀실」에서 임정민 시의 인물들은 혼자 있는 법이 없다. 늘 이야기와 함께 있다. 이때 이야기는 책상 위에 놓여 누군가에게 읽히기를 기다리는 고요한 대상이 아닌, 스스로 말하고 움직일 수 있는 생명체에 가깝다.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제각각인 것처럼, 이야기도 저마다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썩은 치즈와 전원생활의 관계”처럼 서로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 인물들의 시선에 의해 한 편의 이야기로 새롭게 완성되기도 하고, 안데르센 전집과 같이 오래된 이야기가 인물들에게 새삼스레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이야기는 때로 내 손바닥 위 작은 공간에서만 움직이는 초식 동물 같고, 때로는 강변을 함께 거닐며 지친 아이를 업어 주는 든든한 어른 같다. 이야기의 크고 작은 기척을 모두 눈치채는 섬세한 감각을 지닌 임정민 시의 인물들은 이렇게 묻는다. “너는 알아챌까?” “과연 그럴까?” 그들은 우리가 혼자 있을 때에도 실은 무수한 이야기에 둘러싸여 있음을 알려 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 역시 이야기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말하고 움직이는 이야기와 함께 걷고 웃고 떠들기도 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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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 그는 말을 찾아간다. 이미 모든 말들이 소진된 땅 위에서. 자율적으로. 이미 모든 말들을 써 버린 세계에도 영원히 쓰이지 않는 말들이 있다는 듯이. 좋아하는 것들. 내게 익숙한 것들을 죽여 가면서. 모르는 사람처럼 행세하면 모르는 사람 같다. 앎은 힘이다. 우리는 그 힘을 나침 삼아 우리가 잘 모르는 미지의 지점까지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모름은 무한한 힘이다. 그 힘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악마들이다. - 송승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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