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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제1부 제2부 제3부 에필로그 시인노트 시인 에세이 해설 시인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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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동안 수없이 흥분과 좌절과 회의와 지연이 반복됐다. 그 속에서도 나는 끝까지 쓰기의 우연과 즉흥을 유지하려 했다. 어쩌면 이 시에는 더 많은 우연과 즉흥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다. 한계가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깨어나면서부터 이미 예비되었다 하더라도 나는 일단 이 한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나의 언어의 한계이자 내가 처한 세계의 한계일 수 있다. 지독하게 한번 사랑하고 나는 또 너머로 갈 것이다. 거기서 다시 요설과 사변과 횡설수설 아니면 또 다른 것들이 마음껏 발아해 두근거리는 세계를 다시 언어로 구축하리라는, 혹은 결국 실패하고 말리라는 믿음과 함께.
--- 시인노트 중에서 어느 날 짐승 한 마리가 왔다 짐승은 골목을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긴 팔로 담을 타 넘고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 내 방문을 열었다 그것은 물속을 걷듯이 긴 털들을 하늘거리며 느릿느릿 내게 왔는데 그것이 거쳐온 자리마다 긴 털들이 느릿느릿 하늘거리는 모양으로 남아서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똑같은 모습의 여러 마리 짐승이 줄지어 서서 앞선 짐승의 동작을 계속 따라하며 오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 본문 중에서 |
어둠에서 어둠으로, 어둠과 함께
김근 시인의 신작 시집 『끝을 시작하기』 한국어와 영어로 동시에 만나는 K-포엣 스물한 번째 시집으로 김근 시인의 『끝을 시작하기』가 출간되었다. 1998년 데뷔하여 『뱀소년의 외출』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당신이 어두운 세수를 할 때』 등의 시집을 펴낸 김근 시인의 신작 시집으로 프롤로그, 1부, 2부, 3부, 에필로그로 나누어진 장시로 구성되어 있다. “어느 날 짐승 한 마리가 왔다” - 실패에서 출발하는 언어들 시집의 서두는 어느 날 출현한 “짐승 한 마리”로부터 출발한다. “짐승”은 시인을 완전히 사로잡고, 시는 질주해나가기 시작한다. 그 질주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모든 것이 끝난 자리인지 시작하는 자리인지도 확실치 않다. 이 시집은 어쩌면 끝끝내 알 수 없을 그 ‘앎’을 향해 무한히 다가가려는 움직임으로 가득하다. “짐승”은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꾼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완전히 길들인 것 같다가도 여전히 한 마리 짐승이다. 시인은 그것을 다듬고 정제하여 차려내는 대신 날뛰는 그대로를 쏟아놓기로 한다. “요설과 사변과 횡설수설”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말들은 에너지를 내뿜으며 독자들을 유혹한다. 나는 목소리 수집가 (...) 내 목소리들의 주인이 되어라 장시의 마지막에서 시인은 자신을 “목소리 수집가”라고 지칭하며 ‘당신’에게 “내 목소리들의 주인”이 될 것을 명령한다. 짐승이 출현한 이후 적확한 단어를 찾기 위해 끝없이 내달리던 움직임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는 것처럼 느껴지는가 하면, 앞으로 새롭게 시작될 김근 시인의 시 세계를 예고하는 예고편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독자들도 이번 시집을 통해 김근 시인의 앞으로의 작품 활동을 더욱 기대하게 될 것이다.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과 〈K-픽션〉 시리즈를 잇는 해외진출 세계문학 시리즈, 〈K-포엣〉 아시아 출판사는 2012년에 기획부터 출간까지 7년이 넘는 시간을 들인 근현대 대표 작가 총망라한 최초의 한영대역선집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과 2014년에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K-픽션〉 시리즈를 출간하며 한국 문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2019년에도 새로운 도전을 이어간다. 유일무이 한영대역 시선집 시리즈인 〈K-포엣〉이 그것이다. 안도현, 백석, 허수경을 시작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의 시편을 모아 영문으로도 번역하여 출간하고 있다. 영문 시집은 해외 온라인 서점 등에서도 판매되며 한국시에 관심을 갖는 해외 독자들의 마음도 사로잡을 예정이다. |
마치 글쓰기의 영감처럼 다가온 짐승이 남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서 자신이 오래전에 썼던 말을 발견한 이후, 그이는 글쓰기에 사로잡혀 있다. 제 안의 글자들이 모두 사라져가는 걸 초조하게 바라보며 남은 글자들을 붙잡아 작품의 완성에 이르고자 한다. 김근의 시집 『끝을 시작하기』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이야기는 글쓰기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떤 말하기가 이루어내는 기묘한 발생과 소멸 그리고 이행의 움직임들이다. 하지만 이 움직임들은 또한 명료한 언어로 옮길 수 없는 어떤 어둠에 휩싸여 있다. 시인의 작업은 어둠에서 어둠으로, 어둠과 함께한다. - 김태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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