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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소고지 이야기-기억의 연못 …………… 007
정동구락부-손탁 호텔의 사람들 ………… 090 ANAK-나의 아이 ……………………………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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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는 뭐 여그를 차려 부렀지. 나는 못 배우고, 못 죽어서 이러구 살지마는, 나도 우리 은숙이한티 줄 수 있는 게 있다믄 그거이 밥이어. 따순 밥이 목심인게. 근디 참 웃기드라이. 소문이 조미료가 된게로 사람들이 허벌나게 찾아와. 그 배소고지에서 살아 나온 여편네가 그 물에서 난 물고기로. 시-뻘건 매운탕을, 노래를 부름서 팔아댄다고. 피 먹고 자란 물괴기 판다고 처음에는 수군수군혔지. 나더러 미친년이라고.
--- p.62, 「배소고지 이야기」 중에서 그리고 나서는 국군한테 쫓겨서, 산속으로 들어가구 그렇게 살아남았다이. 그때는 살아남는다는 거이, 다 이런 것이었응게, 허구 속이면서. (숨을 몰아쉬며) 뻔뻔허게, 그러구두, 내가, 경찰청장 사모님 소리까지, 듣고 잘만 살었지. 아니여, 겁나더라. 늘 불안불안 조마조마. 칼 끝에 선 드끼. 분명히 시작은 면서기, 그 사람 살리려고 시작한 것인디, 그런 것은 다 없어지고. 어떻게든 살려구, 남을 죽이구두 살려구. 그려서 마을로 다시는 안 왔어. 누가 알아볼까비. 누가 손가락질할까비. 그렁게로… 웃기쟈. 진짜 아무일도 없었던 것만 같은 거여. 그런 시간이 없었던 것 같은 거여. --- p.72, 「배소고지 이야기」 중에서 바다를 너무 오래 들여다보면 스스로 거기서 빠져나올 길이 없고, 죽음에 대해 쓰다 보면 죽음에서 빠져나올 길이 없다 합니다. 온통 종이 위에 죽음의 그림자입니다. --- p.143, 「정동구락부」 중에서 이 세상에 사람 마음보다 더 ‘시’인 것은 없습니다. 그 마음에서 시가 나오는 까닭입니다. 쓰기 전에는 이 마음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쓰십시오. 쓰고자 하는 마음이 작가를, 시인을 만듭니다. 그 말을 꺼낼 때 이미 작가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흘러넘치는 그것을 다만 가만히 들어 옮겨 적으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세상에 흘러가게 하십시오. 그것이 세상을 맑게 만들지도 모르니까요. 규칙보다는 흐르는 대로 두십시오. --- p.146, 「정동구락부」 중에서 아마 선배보다 제가 더 그랬을 걸요. 여기서 선배랑 얘기하게 될지 몰랐는데. 그때는 선배가 진짜 영웅처럼 보였거든요. 내가 왕따 당할 때, 증언해주고. 살려줬잖아요. --- p.285, 「ANAK」 중에서 내가 어렸을 때, 애들이 내 컵에 침 뱉고 물건 없애고 화장실에서 때리고…. 점점 심해지더라.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어. 너처럼 아무 말도 못 했어. 누가 증언도 해준댔는데. 나는 생각하기도 싫고 무섭고…. 그래서 입을 다물었어. 근데 증언해준다던 사람이 나한테 그랬어. ‘니가 말하지 않잖아? 다들 믿고 싶은 대로 생각하게 될 거야. 다들 아무 일도 아니라고,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단 말이야. 어른들도, 널 괴롭힌 애들도. 그럼 안 되잖아. 너는 알잖아. 정말로 아무 일도 아니었어? 너는 너를 부정하면 안 돼. 그럼 모두가 너를 부정할 거야.’ --- pp.286-287, 「ANAK」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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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연극 〈배소고지 이야기〉가 여성의 서사라는 점은 주지할만한 사실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모두 여성이다. 종래의 많은 전쟁 서사가 포탄이 터지는 전선을 배경으로 한 남성 중심의 서사였다면, 〈배소고지 이야기〉는 후방의 작은 촌락의 평범한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전쟁은 전선에서만 벌어진 전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전쟁은 아주 작은 지역 공간 안까지 불어 닥쳐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자리를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게다가 전쟁 중에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만 같은 ‘여성’의 목소리로 이 전쟁을 복기하는 것은 단순한 승패의 논리를 떠나 전쟁이 지닌 복합적인 차원을 세밀하게 되짚어 보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여성을 중심인물로 내세우며 작가는 남성들의 이름을 지워버렸다. 이에 대해 여성에게 이름이 부여하지 않았던 이전 남성 중심의 서사에 대한 반동으로 읽을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작가의 바람은 아니었을 듯싶다. 작가는 ‘가해자로 지목될 수 있는 인물들이 특별한 개인으로 비치지 않기를’ 바랐다고 썼다. 그리고 그 이유로 “개인들의 탓으로 돌려짐으로써 전쟁의 의미가 희석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확대하면 익명성을 통해 특정 개인이 아니라 보편 인류의 모습으로 그리려 했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이 같은 점, 보편적 인간의 본성을 다룬다는 점은 네 명의 여성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찾을 수 있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에게서 어떤 고귀한 신념이나 어떤 고결한 가치를 위한 일관된 행동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은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다시 피해자로, 방관자에서 당사자로 다시 방관자로 상황에 따라 입장을 바꾼다. 오로지 순희만이 끝까지 피해자로 남을 뿐이다. 다른 인물들은 모두 한 번씩 입장을 바꾼다. 그들은 모두 피해자로서 자기연민의 대상인 동시에, 가해자로서 자기혐오의 대상인 셈이다. 특히 입분이 그렇다. 이러한 기억은 오랫동안 상처로 남는데, 입분의 경우 이는 실어증, 혹은 함구증의 방식으로 드러난다. _〈배소고지 이야기〉 리뷰, 한국연극, 2019년 4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