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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서커스가 왜 이렇게 안 끝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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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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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맡에 구멍을 두고 잠이 들었다. 귀 옆에 검은 달이 뜬 밤. 이제는 불어도 소리 나지 않는 악기를 돌아보았다. 둥근 악기 그림자가 뛰어오르는 동시에 악기 위에서 소녀가 뛰어내렸다. 두 다리가 꺾인 어릿광대, 그녀, 젤소미나를 밖으로 내보냈다. 돌아올 때 젤소미나는 문을 열 것이다.
---「집·구멍」중에서 젤소미나가 죽은 해변이다. 시집이 젤소미나를 이야기한다. 멜로디와 망토는 바닷물에 젖어서 해초 같았대. 멜로디와 중절모는 밤바다를 끌고 멀리 갔다가 돌아왔대. 멜로디와 구두는 끝없이 끝없이 걸었대. ---「9·10·유랑·11·12」중에서 아침이 왜 이렇게 안 오지? 아침이 오면 나는 나의 젤소미나를 외면할 것 젤소미나가 사는 집이다. 밤이라는, 암흑이라는, 쇠퇴라는, 여기. 왜 이렇게 아침이 안 오지? 매일 이사하기 전날이다. 왜 이렇게 아침이 안 오지? 정말 아침이 오면 함께 사는 젤소미나를 나는 모를 것이다. 그래서 시를 포기하는 아침을 쓸 것이다. 아침이 왜 이렇게 안 오지? 서커스가 왜 이렇게 안 끝나지? ---「밤·13」중에서 시집이 소녀상 옆에 앉는다. 치마가 되어 앉는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치마. 제목이 붙고 차례가 달린 치마. 숫자들이 행진하는 치마. 멜로디 치마. 몇몇 숫자들이 날뛰는 치마. 상처를 드러내고 비명을 지르는 치마. 시집은 구두를 신는다. 해변으로 갈 구두. 상처 난 몸 곳곳에 신는다. 골반에, 허벅지에, 발목에, 종아리에…… 구두들이 뼈처럼 가시처럼 돋은 치마. 시집이 앉아 있다. ---「서커스·33·34·35」중에서 시집이 산책을 한다. 아스팔트와 숲이 나란히 이어진 길. 끝은 해변이다. 시집은 젤소미나의 산책을 생각한다. 젤소미나도 해변을 향해 산책을 하고 있다. 다만 벽에 걸려 있다. 벽에 걸린 채 젤소미나는 시집의 산책을 생각한다. 이 서커스도 마음에 들어. 트럼펫 소리가 커지고 시집이 멜로디를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문이 열리고 파도 소리가 커지고 젤소미나가 사라진다. 젤소미나가 사라진 곳으로 시집이 들어간다. 이 서커스도 마음에 들어. 시집은 다만 벽에 걸려 있다. ---「72·73·벽·74·75」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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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미나의 집 없는 집을 향한, 끝나지 않는 서커스, 그리고 시집의 외출
알려진 대로 ‘젤소미나’는 1954년 이탈리아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의 작품 〈길(La Strada)〉의 여주인공이다. 시인은 액자로 된 이 영화의 포스터와 20년 넘게 동거해왔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시적 다중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유랑하는 차력사에 팔린 영화 속의 젤소미나에겐 집이 없지만, 시인의 집은 액자 속 젤소미나가 사는 집인 동시에, 이미 죽은 혹은 유랑하는 젤소미나로 인해 시인도 또한 집을 잃고 유랑하는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있지만 동시에 사라지는 ‘집’의 밖으로 나가는(외출) 것은 또 하나의 집, 바로 ‘시집’이다. 젤소미나는 빙의된 시인이며, 시인은 빙의된 젤소미나이다. ‘시의 집’은 유일하게 이 둘을 동시에 담을 수 있다. 영화 포스터 패널 하나를 들고 이사를 다녔다. 20년이 넘도록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 영화 포스터 속에는 젤소미나가 산다. 나의 어릿광대 젤소미나. 얼굴에 눈물방울을 그리고 웃는 젤소미나. 눈물방울을 위한 서커스, 우는 젤소미나. 그러나 버려지고 끝내는 미쳐서 해변으로 간 젤소미나. 해변으로 가서 죽은 젤소미나. 그러나 지금 나와 살고 있는 젤소미나. 나의 집 이야기는 이것이 전부다. _「집·13·5」 중에서 이미 죽은 주인공이, 지금 여기 살며 동시에 유랑하는 이 현실이,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가 가려버린 우리의 실제 현실이다. 그 이름 ‘젤소미나’는 이 땅의 모든 여성이고 여성성이며, “어제 출산해” “오늘 임신해야 하는” 젖소이며, 폭력의 대상, 사건의 피해자,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포함하는 ‘삶’의 다른 이름이다. 이는 신영배 시인의 이번 시집이 “최승자·김혜순 시인으로부터 시작된 새로운 한국 여성 시의 계보에 발 디디고 있었으나, 곧 자기만의 시적 경지를 개척해냄으로서 하나의 또 다른 이정표가 되는” 동시에 “여성성과 그 시적 언술이 미학적으로 완벽하게 결합하는 문학사적 한 장면”임을 재확인하게 해주는 국면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