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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이 미래를 돌아본다
양장
이제니
문학실험실 202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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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희곡 top2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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틂 창작 문고

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영원은 엷어지는 분홍
깨어 있는 물가에서
돌이 준 마음
너는 나의 진눈깨비 앵무의
영원이 미래를 돌아본다
나의 언덕 위로 해변의 부드러움이
멀리서 들려오듯 가까이에서
색채 속을 걷는 사람
눈먼 마음의 무한함으로
영원처럼 두 사람이
이파리와 지푸라기
물을 바라봄
음각의 빛으로 어른거리는
열매도 아닌 슬픔도 아닌
어린 구름에 얼굴을 묻고
너는 멈춘다
조그만 미소 속에서 조그만 길을 가는
너와 같은 그런 장소
우리가 잃어가게 될 그 모든 순간들_사과라고 쓰면 사과가 나타난다
우리가 잃어가게 될 그 모든 순간들_이제 너는 검은색으로 보인다
우리가 잃어가게 될 그 모든 순간들_4′ 33″
우리가 잃어가게 될 그 모든 순간들_숨기에도 숨기기에도 좋았다
우리가 잃어가게 될 그 모든 순간들_하나의 손이 하나의 손을 잡을 때
빛나는 얼굴로 사라지기
나무 새의 마음으로
잔디 공원의 공허 속을 걸어가는
한낮의 그늘 찾기
어둠이 불러다 먹인 입을 바라본다
하나의 잎이 너를 찾아낼 때까지
모래와 유리
거의 그것인 것으로 말하기
빈칸과 가득함
마미의 사각 거울 마음
붉은 공을 사이에 둔 소년과 개
걷는 발걸음과 함께 걷는 발걸음
밤의 방향과 구슬 놀이
Mmm과 바람과 나
사잇길에서 만나기
걷기 아름다움 걷기
발견되는 춤으로부터
맑은 물은 맑은 물을 만진다
물과 산책
옛날의 숲에게
겨울 언덕으로부터
다시 다가오는 향기를
되기-일몰을 바라보는 눈
되기-눈과 손과 문과 사랑의 언어
되기-물방울 속의 물방울
되기-들판의 삼각형
되기-잿빛 위의 작은 파랑
되기-거울을 바라보는 거울
되기-말라가는 물감의 표면
되기-종이의 접힌 가장자리
되기-은빛 실선의 그림자
되기-마지막에서부터 시작되는 첫 장면
되기-나 없는 나
되기-노래하는 그릇 소리
되기-그 밖의 모든 것
나무 무덤 찾기

感 · 슬픔의 내부에 새겨진 문장들_강보원

저자 소개1

LEE JENNY

197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200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페루」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아마도 아프리카』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를 출간했다. 제21회 편운문학상 시 부문 우수상, 제2회 김현문학패,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표면의 언어로써 세계의 세부를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작업을 통해 이미 알고 있던 세계와 조금은 다른 세계, 조금은 넓고 깊은 세계에 가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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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1월 01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44쪽 | 125*190*20mm
ISBN13
9791198481757

책 속으로

이것은 과거였던 미래를 품은 기록이다. 영원은 어두운 곡선을 그렸다. 어두운 수첩에 영원의 숫자와 영원의 도형과 영원의 낱말을 봉인해두려고. 닮은 영혼에게 언제고 전해지리라는 믿음으로. 영원은 분홍으로 엶어진다. 소멸이 아니라 무한을 향해. 위로 위로 올라가려고. 위로 위로 올라가서 본래의 자신이 되려고.
---「영원은 엷어지는 분홍」 중에서

들판이 바람을 불러내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아직은 죽지 마. 죽기 전까진 미리 죽지 마. 이미 죽은 적이 있는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뒤집어쓴 채 속삭이고 있다. 각자의 거울 앞에서만 울고 서로의 이름 앞에서는 들판을 이어갔다.
---「영원이 미래를 돌아본다」 중에서

엄마, 흰빛을 따라 가세요.

바람은 모르는 꽃의 이름을 귓속말로 일러주었다. 태어난다는 것은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전과 다른 몸이 되어 이전과 다른 이름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영원이 미래를 돌아본다」 중에서

비어가는 들을 무엇이라 부를 수 있습니까. 이미 빈 들인데 더욱더 빈 들이라는 말의 이 부드럽고도 다정한 폭력을 당신은 이해할 수 있습니까. 물러나듯 밟고 나아가는 문장의 이 희미한 슬픔을 이 희미한 망각을 당신은 온전히 느낄 수 있습니까. 착하고 고운 빛을 곁에 두고서 멀리에 있는 물을 바라보았던 어리석음 덕분으로. 한여름에도 작고 어린 짐승은 추위를 느끼며 울고 있다. 밤이면 회백색의 먼지가 되어 엄마 엄마 울면서 방 한구석을 굴러다니고 있다.
---「물을 바라봄」 중에서

열매는 다시 온전히 저 혼자 하늘로 올라간다

열매의 구체성과는 무관하게
오래 맺어왔던 이름과도 무관하게

그러니 나도 가고 있다
뒤늦게 누리면서 사랑을 울면서

여름 열매가 향하는 곳을 따라
하얗게 울리는 흘리는 또 하나의 열매로서
---「열매도 아닌 슬픔도 아닌」 중에서

사람의 영혼은 얼마나 넓게 어리는 것이기에
남겨진 사물들의 표정도 당신과 함께 죽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잃어가게 될 그 모든 순간들_사과라고 쓰면 사과가 나타난다」 중에서

마중인지 배웅인지 모르는 얼굴로
빛나는 얼굴로 사라지면서

엄마를 잃은 밤의 밤비는
오늘도 모험을 떠나는 드넓은 왕자입니다

슬픔 없이도 꽃을 바라보던 날들을 지나
지워지지 않는 얼굴을 간직한 마음의 국경으로
---「우리가 잃어가게 될 그 모든 순간들_사과라고 쓰면 사과가 나타난다」 중에서

그것은 생명이었을까.
다만 아프게 두고 가는 마음이었을까.

그러니까 지금
내 오랜 사람이 마른 나뭇가지로 태어나
내 작은 책상 위에 누워 있다.

장면은 늘 마지막에서부터 다시 시작된다.

왜 하필이면 사람으로 태어났을까요.
그저 들플로 피었다 저물어도 좋았을 텐데요.
---「하나의 잎이 너를 찾아낼 때까지」 중에서

계절은 꽃과 나무들 위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지만 어떤 심장은 두 번 다시 뛰지 않았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순간의 순간을 깊이 자각하게 되었을 때. 알고 있던 사실들 위로 모르던 사실들이 천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한겨울 허공에서 흩날리는 흰 눈의 하염없는 움직임처럼. 벽을 짚으며 걸어가는 눈먼 사람의 간절한 더듬거림처럼. 때로는 경험하지 않은 일이 경험한 일보다 더욱더 진실되게 여겨지는 순간이 있었고. 너와 내가 식물원이 사이사이를 걸어 다닐 때 과거의 미래의 과거의 미래의 과거를 다시 불러들이고 있다고 느꼈고.
---「거의 그것인 것으로 말하기」 중에서

이제는 내가 아픈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나는 마미 마미 대신에 엄마 엄마라고 불러보았다

이후로
아무도 모르게

이제는 없는 나의 엄마가
마미의 얼굴로 태어나서 말하기를

언제든 언제고 마미라고 불러도 좋단다
날개를 펼쳐 훨훨 날아다니는 나의 작은 딸아
---「마미의 사각 거울 마음」 중에서

굴러감 그것은 던져짐이었고
던져짐 그것은 버려짐이었고
버려짐 그것은 사랑함이었다

그 시절 우리가 기꺼이 던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것들 뿐이어서
먼지 구슬은 끝없이 끝없이 굴러가고 있다
---「밤의 방향과 구슬 놀이」 중에서

오직 너 혼자 만이. 너 자신과 함께. 둘인 동시에 하나인 채로. 하나인 동시에 둘인 채로. 먼 길을 오래오래 홀로 함께 걸어가고 있었으므로. 걷고 걸어도 가닿지 못하는 설원의 빛 너머로부터. 누군가 멀리서 내내 당신을 돕고 있습니다. 춥고 어두운 골짜기에서 들려오듯 문득 서럽고 드넓게 울려오는 네 마음속 한 목소리가 있어. 너는 먼 곳의 얼굴 없는 사제를 네 영혼의 친척으로 여기는 것이다.
---「발견되는 춤으로부터」 중에서

너의 눈동자가 붉어지자 붉어진 눈시울의 사람이 너의 마음속에서 걸어 나온다. 붉은 눈시울의 사람은 너의 눈동자를 통해 자신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되비친다는 것은 이런 것이군요. 아프도록 반복해서 되받는 것이군요. 머나먼 지평이 태양의 고도를 따라 시시각각 환해지듯이. 오래 어두웠던 낯빛이 순간의 순간 속에서 문득 맑아지듯이.
---「맑은 물은 맑은 물을 만진다」 중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헤어지느라 세 개의 직선은 무수한 시간 속에서 부드럽게 휘어지는 것인데. 그리하여 점점이 둥근 진흙의 나라는 보이지 않는 바람과 구름과 수풀과 깃털과 눈물과 찬란으로 부풀어 오른다. 놓쳐버린 사람이 놓아버린 사람에게 술과 꽃과 향을 올리듯이. 들판의 삼각형은 들판의 삼각형을 불러내고 있다. 더는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래오래 손 흔들면서 다시 만나게 될 너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되기-들판의 삼각형」 중에서

너는 언제나 네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그러나 이미 감각했던 하나의 세계가. 단 한 번도 발음해보지 않은 하나의 단어 위에서. 불현듯 너에게 도착하는 순간의. 그 기이하고 기묘한 끌림에 대해서. 머나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는 기원에 대해서. 다시금 발원하는 네 글쓰기의 모든 것에 대해서. 너는 아직 밝아오지 않은 어두운 푸른 새벽의 창 아래에서.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이 쓰인 텅 빈 노트 위에서. 잿빛 위의 작은 파랑이. 어리고 흐린 채로 겹쳐 흐르고 있는 것을 바라본다.
---「되기-잿빛 위의 작은 파랑」 중에서

너는 무한에게 무한히 비춰지면서
순간순간 다시 태어나고 있다

너의 얼굴도 너의 뒤통수도 아닌 것
오직 너로만 이루어진 것도 아닌 것

너는 이제 무한하지 않은 채로 무한해지고 있다
너는 지금 무한의 사각 모자를 쓰고 한없이 나타나려고 하고 있다
---「되기-거울을 바라보는 거울」 중에서

되어가는 것은 되지 않을 가능성을 품고 있다. 되어가는 것은 되지 않을 무한함을 환기한다. 자꾸만 밀려나는 자리를 자꾸만 밀어내는 자리라고 쓰기. 자꾸만 멀어지는 마음을 자꾸만 멀리하는 마음이라고 쓰기. 자꾸만 작아지는 마음을 자꾸만 작아지는 모음이라고. 모국어라고. 그리고 나의 어머니라고.

---「되기-그 밖의 모든 것」 중에서

출판사 리뷰

점점이 쌓여가는 마음들…

모든 언어는 그저 언어일 뿐입니다. 언어란 어떤 맥락 안에서만 의미가 발생할 뿐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단어, 혹은, 단어 없음, 단어와 단어 사이의 공백으로 인한 휘발이 반복되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 속에서 점점이 쌓여가는 보이지 않는 감정과 감각의 흔적들이 있을 테고. 그렇게 중첩되며 나아가는 모종의 움직임 혹은 흔들림 그 자체를 언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낱말과 낱말 사이에 어떠한 위계도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마음 깊이 좋아하는 단어들을 몇몇 품고 있긴 합니다. 시공에 대한 입구와도 같은 단어들, ‘빛’이나 ‘영원’, ‘무한’과도 같은 단어들 앞에서는 마음이 오래 머무는 편입니다.
_이제니, 문학 웹진 인터뷰 중에서

슬픔의 내부에 새겨진 함께 있음의 흔적…

‘함께 있음’은 꼭 실제로 가까운 곳에서 마주 보고 앉아 있는 형태만을 가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친숙하거나 낯선 사물들로부터, 문득 눈을 뜬 아침이나 잠들기 전의 늦은 밤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로부터, 새삼스럽게 다시 바라보게 된 단어로부터, 들어본 적 없는 나무의 이름 같은 것들로부터 그 누군가와의 기억을-그것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 할지라도-떠올리게 되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다시는 만나게 될 수 없게 된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말하자면 애도란 우리를 떠난 이와 이전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함께 있는 일이자 또 그렇게 함께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이다. 이제니의 이번 시집은 그 함께 있음의 흔적이기도 하다. 이 흔적들이 슬픔의 내부에 새겨져 있기에, 슬픔은 온전히 슬픔으로 남아 있을 수만은 없다. 아마 그것이 우리가 미래를 기억하는 한 가지 방식일 것이다.
_강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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