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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선
영생도 제3종 근접조우 아수라장 마을회관 대탈출 라스트 댄스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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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快?.”
선원은 불분명한 발음으로 그렇게 말했다. 절반이 뜯겨나간 입술에서 음성이 흘러나오는 모습은 그것 자체로 기괴했다. “뭐라고? 얘 뭐라는 거야?” 박 경사가 물었다. 젠장. 이게 벌써 몇 번째 질문이야. 어째 일이 점점 더 꼬여가는 느낌이었다. 머리가 달아나서 죽은 시체, 이런 참극에 일조했을 날붙이며 공구 들, 게다가 정체불명의 드럼통까지. 잊고 있던 편두통이 태풍이 불기 전의 저기압처럼 슬금슬금 몰려왔다. 게다가 금방 죽어도 시원찮을 저 중국인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표류선」중에서 대현은 말없이 앉아 있었다. 선배의 사연은 뭐냐고 물으려다가 참았다. 알고 있었다. 혜진이 철민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철민을 바라보는 혜진의 눈빛은 자신이 혜진을 바라볼 때의 그것과 아주 똑같았다. 대현에게 철민은 넘어야 할 벽이었다. 벽을 넘어 혜진의 눈길을 자신에게로 향하게 만들고 싶었다. 철민의 사연을 들었다가는 벽을 넘는 일이 더 힘들어질지도 모른다고, 대현은 생각했다. 돌풍이 불어왔다. 배가 크게 출렁였다. “조심해.” 철민이 무심하게 말했다. 배가 솟구치는 것과 동시에 대현의 위장도 다시 뒤집어졌다. 대현은 손으로 입을 막고 난간으로 달려가 네 번째 구토를 했다. ---「영생도」중에서 “야. 저 현수막 좀 봐.” 승복이 캠코더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대현은 전봇대 사이에 걸린 대형 현수막을 바라봤다. 환 〈미레대학교 방송국 학생들!〉 영 미레가 참 어둡구나. 대현은 한숨을 쉬었다. 시작부터 무언가가 어그러지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고백은 물 건너간 걸지도 몰라. 대현은 육지에서 점점 멀어지는 지민의 물건들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제3종 근접 조우」중에서 최 영감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있던 형태가 고개를 들고 곽수를 바라봤다. 그는 짐승 같은 소리를 냈다. 송장산에 숨어 살며 닭이나 오리를 잡아가는 야생 고양이들이나 낼 법한 소리였다. 언제부턴가 불어난 야생 고양이들은 영생도의 골칫거리였다. 낚시꾼들이나 마을 주민들이 버린 고양이들이 산에 들어가 무리를 이루었고, 이제는 대낮에도 병아리들을 낚아채 갈 만큼 대담해졌다. 곽수는 형태를 보며 고양이를 떠올렸다. 입가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고 아직도 무언가를 우물우물 씹는 중이었다. 형태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다음 먹이를 찾았다는 듯. ---「아수라장」중에서 “영생도에 온 걸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도 모르지. 안 그래도 지금 막 애 엄마한테 국제전화라도 때릴까 했어.” 오른쪽으로 눈이 몰린 가자미는 절대 왼쪽을 바라볼 수 없다. 성만은 만사 오케이라는 듯 실실 웃었다. 곽수는 미리 준비한 망치로 그 얼굴 가운데를 정확히 내리쳤다. 순간 성만의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찌그러졌다. 코가 팍 주저앉고 입술이 터졌다. 그는 신음을 뱉을 틈도 없이 바위 위에 쓰러졌다. “이 새끼가, 재수 없게 왜 자꾸 반말이야!” ---「마을회관」중에서 “로즈마리는 오늘 우리 섬에 오는 일정이 아니잖아요?” 곽수가 종신을 향해 물었다. “로즈마리 선장이 이상한 무전을 했어.” 종신이 대답한 순간 평수가 소리를 질렀다. “어어!” 로즈마리 호는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선착장으로 진입했다. 붕! 뱃고동을 울리며. 그건 구해주겠다는 신호가 아니었다. 구해달라는 신호였다. ---「대탈출」중에서 “불같은 그 성격 좀 죽여요. 급하게 서두르는 것도. 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속에서 막 열불이 날 땐 조용히 중얼거리는 거예요. 슬로우, 슬로우, 퀵, 퀵. 나랑 왈츠를 춘다고 생각하고.” 세현에게 말은 안 했지만, 종신은 종종 그렇게 했다. 고기가 안 잡혀 화가 날 때도, 곽수가 속을 뒤집어놓을 때도, 해경이 단속을 한답시고 트집을 잡을 때도 혼자서 중얼거렸다. 슬로우, 슬로우, 퀵, 퀵이라고. ---「라스트 댄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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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로 아비규환이 된 영생도에서 살아남아라!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대탈출 극한의 환경에서 펼쳐지는 군상극을 담다 엠티를 왔을 뿐인데 좀비가 될 수는 없어! 진퇴양난, 영원을 사는 괴물들 틈에서 살아남기 우리는 늘 새로운 공간으로 향하여 새로운 경험을 할 생각에 부풀어 있다. 일상에서 탈출해 느끼는 잠깐의 여유와 미래의 가능성을 꿈꾸는 시간. 그런데 앞에 갑자기 침을 흘리며 괴상한 소리를 내는 좀비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곁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영생도를 방문한 미래대학교 학생들도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비록 앞으로 동아리를 살려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끌려오다시피 한 엠티지만 새로운 경험을 발판 삼아 나아가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영생도의 주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활력이 사라져가는 섬을 살릴 방도로 농촌 체험 마을로 선정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그런 그들 앞에 갑자기 나타난 괴물. 속에서 끓는 소리를 내며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진 그 괴물이 아는 얼굴이라는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학생들과 영생도 주민들은 감염된 이와 앞으로 감염될 이만 남은 현실에 던져진다. “절대로 사람을 향해서 휘두르면 안 된다.” 문득, 스승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일본의 사시미 명인에게서 기술을 전수받았던 사람으로 성격은 괴팍했으나 솜씨는 좋았다. 자고로 칼은 두 발 달린 것들에게는 쓰면 안 된다고, 스승은 누누이 말했다. 그러면 닭은요? 그런 질문을 했다가 숫돌로 두들겨 맞았던 기억도 떠올랐다. 스승님. 근데 저건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_P.58~59 “나래야. 괜찮아?” 대현이 다시 한번 불렀다. 나래가 번쩍 눈을 떴다. 랜턴 불빛 아래서도 빨갛게 충혈된 눈동자가 똑똑히 보였다. 입이 열리고 침과 피로 범벅이 된 혀가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윗입술이 말려 올라갔다. 크으으.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위협적인 소리가 울려 나왔고 그때마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나, 나래야?” 공격은 갑자기 시작됐다. 마치 개구리처럼 나래가 튀어 올랐다. 미처 놀라기도 전에 나래의 이가 랜턴을 든 대현의 손으로 향했다. 딱. 랜턴과 나래의 이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_p.111~112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된 영생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방금 전까지는 친구이자 동료였던 이들을 밟고 지나가야만 한다. 차라리 코로나 같은 전염병이라면 모를까 생전 처음 겪는 사태에 학생들과 주민들은 공포에 떨지만 곧 전열을 가다듬고 앞으로 전진한다. 노인들이라고 이해하지 못하고 젊은것들이라며 손가락질하던 그들은 한 팀이 되어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위하기 시작한다. 왠지 모르게 석궁을 들고 있는 노인과 치통을 달고 사는 이장 곽수의 검붉은 역사, 학생들의 묘한 삼각관계와 더불어 극한에 몰렸을 때 드러나는 인간 군상의 면모가 소설의 재미를 더욱 북돋는다. 그리고 가슴 찡해지는 ‘슬로우 슬로우 퀵 퀵’의 사연까지. 단순한 좀비극을 넘어 일말의 유쾌함과 인간 밑바닥의 섬뜩함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그려진다. 독보적인 영웅이 존재할 수 없는 세상 모두가 주인공이자 엑스트라가 되다 『슬로우 슬로우 퀵 퀵』에는 모두를 위기에서 구하는 독보적인 영웅은 존재하지 않는다. 열심히 도망치지 않으면 좀비가 될 뿐이다. 등장인물 모두가 스스로를 구하는 영웅이자 타인을 비추는 엑스트라가 된다. 이야기는 주로 대현을 따라 전개되지만 리더십은 대현의 선배 철민이 자주 발휘하고 영웅적인 면모는 석궁과 엽총으로 엄호해주며 진두지휘하는 평수와 종신에게서 돋보인다. 구구절절하고 극적인 사연은 치통을 달고 사는 영생도 이장 곽수에게 있다. 모두에게 적당한 사연이 있으며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는 현실적인 면모가 이 소설의 매력이다. 왈츠를 연상하게 하는 제목처럼, 이 소설은 ‘호흡을 맞춰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다른 세대를 살아온 영생도 주민들과 미래대학교 학생들이 어떤 식으로 위기를 헤쳐가는지 지켜보는 것이 가장 큰 재미가 될 것이다. 작가의 말 나는 좀비가 으르렁거리며 내장을 꺼내고 목덜미를 물어뜯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끝장나게 좋아하기는 하지만 비슷한 소설이 세상에 넘쳐나는 이 시점에 숟가락을 얹을 필요는 없었다. 나는 결국 때로는 느리게, 또 때로는 빠르게 움직이며 보조를 맞춰가야 하는 두 엇갈린 세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제목은 자연스레 정해졌다. 『슬로우 슬로우 퀵 퀵』. 마치 처음부터 이 제목이었던 것처럼 내 이야기와 딱 들어맞았다.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는 두 선남선녀같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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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는 성한 사람이 없다. 즉 아프지 않거나 탈 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어디서부터 사회화에 실패한 것일까 싶은, 날것 그대로의 인간 군상과 괴물들이 뒤엉킨 장면 속에선 누가 적인지, 뭘 위해 싸울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이고 등을 돌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 어슴푸레해진다. 작품 속에서 좀비는 무력한 군상 중 하나라는 클리셰적인 의미만을 표방하지 않는다. 쉽게 카타르시스로 이끌지 않는다는 점이 이 장르의 클리셰를 마음껏 주무르면서도 틈새를 파고드는 베테랑 작가의 관록이구나 싶다. - 황모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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