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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을 좋아하세요?
불멸의 청춘으로 기억되는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 열정적이고 자유분방하면서도 인생과 사랑의 본질을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냈던 이 천재의 두 작품이 김유진·백수린 소설가의 번역과 새로운 옷을 입고 출간되었다. 그래제본소 펀딩 778% 달성하며, 다시 한번 사강의 인기를 입증한 작품들.
2023.11.24.
소설/시 PD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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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리는 개』
엎드리는 개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저자 약력 『해독 일기』 해독 일기 옮긴이의 말 저자 약력 |
Francoise Sagan,본명 : 프랑수아즈 쿠아레(Francoise Quoir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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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리는 개』
방에 걸린 거울 앞에서, 그는 냉혹한 표정으로 잠시 동안 자신을 바라보다가 손을 윗옷 주머니에 넣었다.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거울로 향하게 하더니 욕설과 명령의 말을 읊조렸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 총을 겨냥했다. 금세 평소의 초췌하고 난감해하는 얼굴로 돌아와, 이 태연한 갱스터를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사내에게 말이다. --- p.38 이상하게도, 미친 듯이, 그는 이 침울하고 가혹한 여주인의 발아래 무릎 꿇고 싶었다. 그는 그녀에게 피든 목숨이든 보석이든, 무엇이든 바치고 싶었다. 그녀의 시선을 다시 얻을 수만 있다면, 한 번만 더, 존경과 욕망이 뒤섞인 그 기묘한 표정을……. --- p.48 마리아는 차갑고 조금은 적대적인 얼굴로 자신을 대면했다. 스푼을 내려둔 손이 턱으로, 머리카락으로 올라갔다. 간단한 동작으로 풍성하게 볼륨을 만들어보았지만, 거기엔 눈에 띄는 흥미도 열의도 없었다. 꼼짝하지 않고 아득히 머물러 있는, 권태와 무관심 그 자체인 얼굴이었다. 그러므로 오만한 눈꺼풀 아래 맑고 단단한 눈에서 너무나 둥글고 응축된 눈물이 아무런 전조 없이 연달아 솟아올랐을 때, 그녀가 느낀 감정은 괴로움이 아닌 놀라움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귓가에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흐르는 눈물을 바라보았다. --- p.131~132 그가 당황했다. 그리고 그녀는 어떤 안도감과도 같은 기분을 느끼며 당황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게레의 수상쩍고 위험스러운 면모, 그녀가 존경하고 거의 사랑하기까지 한 살인자나 싸움꾼으로서의 모습은 사라져버렸고, 선량한 시민이자 근면한 4년차 회계원의 면모가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초라한 야망은 그녀가 스스로에게 증명할 필요가 있었던 얼핏 본 이 사랑의 어리석음과 부질없음의 증거이기도 했다. --- p.142~143 『해독 일기』 1957년 여름, 교통사고를 당하고 난 후 석 달 동안 나는 ‘875’라고 불리는 모르핀 대용 약제, 팔피움을 매일 처방받아야 할 정도로 불쾌한 통증의 포로로 지냈다. 석 달 뒤에는 약물 중독 증세가 심해져 전문 의료 시설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 입원 기간은 짧았지만 그동안 일기를 썼는데, 며칠 전 나는 그 일기를 발견했다. --- p.8 나는 남은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내게 반하고, 나를 돌보고, 햇볕에 몸을 그을리고, 근육을 하나하나 다시 키우고, 옷을 차려입고, 끝없이 내 신경을 달래고, 나에게 선물을 하고, 거울 속의 나에게 불안한 미소를 지어 보여야 한다. 나를 사랑해야 한다. 틀림없이 1958년의 어느 행인이 정신분열로 이렇게 천천히 추락하는 걸 막아줄 것이다. 그리고 틀림없이 그렇게 있을 것이다. --- p.43 이 일기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게 한 가지를 더 짚어두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내가 평범한 생각에 그러듯이 죽음에 대한 생각에 조금씩 익숙해졌다는 사실이다. 이 병이 낫지 않는다면 염두에 둘 하나의 흔한 해결책처럼. 나를 두렵게도 하고 혐오스럽게도 하지만 죽음은 일상적인 생각이 되었고, 만약의 경우 직접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슬픈 일이지만 필요한 일일 것이다. 내 몸을 오래 속이는 일은 불가능하다. --- p.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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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눈에 투영된 ‘자신들의’ 눈부신 환영 그리고 상처
이것을 무엇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번역 작업을 하는 내내, ‘복종’이니 ‘순종’이니 하는 단어를 떠올렸었다. 누군가가 무엇에 대한 복종이냐고 물어본다면, 사랑이 아닐까, 하고 대답할 생각이었다. 게레는 마리아에게 개와 같은 충성심을 보여주니까 말이다. (이 작품의 원제인 ‘Le chien couchant’은 사냥개를 가리키기도 하는데, 사냥감을 잡기 위해 포복하는 개의 특성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애정을 갈구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끝끝내 그 복종심은 마리아를 향한 것도, 사랑을 향한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마리아의 시선에 투영된 게레 자신을 향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이 서로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순간에도, 마리아가 그를 경멸하거나 그가 마리아를 원망하는 순간에도 복종은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순종적 태도는, 게레에게서 젊은 시절의 눈부신 환영을 발견한 마리아가 일순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 매력적으로 웃어 보이는 순간, 게레만의 전유물은 아니게 된다. 마리아는 문지방에 서 있는 것으로, 길 한가운데 미동 없이 머물러 있는 것으로 자신의 복종을 표현한다. 그리고 그런 때의 그녀는 역설적이게도 늘 혼자다. 그녀는 삶이 결국 자신으로 수렴된다는 것을 안다. 그녀의 복종은 고독으로 완성되기에, 그런 의미에서 소설의 결말은 가장 쓸쓸한 승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_ 김유진, 〈옮긴이의 말〉에서 쓰기를 멈추지 않는 진정한 작가, 그의 편린이자 삶 그 자체인 이야기 “나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중력을 거스르듯 자유분방하고, 탐닉과 충동으로 점철된 삶을 산 듯한 사강이지만, 이 일기를 읽다가 나는 사강이 1954년 강렬한 데뷔작으로 등장한 이래, 1998년까지 거의 1, 2년에 한 번 꼴로 책을 출간한 작가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됐다. 소설가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성실함인지를 이제는 안다. 그것이 얼마나 선언적인 사랑의 실천인지를. [……] 사강은 언젠가 “작가는 자기 자신과 함께 우리에 갇혀 있는 불쌍한 짐승”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짧은 해독 일기를 통해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어떤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자기 자신과 대면하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관찰하며 글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 진정한 작가다. 『해독 일기』를 읽는 동안, 나를 멈춰 서게 한 문장들이 여럿 있었지만 나는 “나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라는 문장 앞에 오래 머물렀다. 언뜻 두려움과 고통의 절규처럼 읽히는 문장들 사이사이, 심연처럼 깊고 어두운 밤하늘에 박힌 자그마한 별처럼 섞여 있는 이런 문장들에서 사강의 생(生)을 향한 의지를 읽어내는 것은 나의 오독일까?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적어도 나는 이 짧은 일기를 번역한 후 이것을 읽기 전보다 조금 더 뜨겁게 살아보고 싶어졌다. _ 백수린, 〈옮긴이의 말〉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