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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알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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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언어도단言語道斷 · 12
비애悲哀 · 13
그그그 · 14
문턱에서 · 15
우파니샤드의 가을 - 송신한 전파 · 16
화면 속에서 자꾸 되살아나는 백남준 - 야바위꾼 · 17
감나무 연리지 - 니체 · 18
임신한 마돈나가 뭉크에게 · 19
길 · 20
봄, 건조주의보 · 21
땡볕 · 22
첫사랑 1 - 화장花葬하던 날 · 23
첫사랑 2 · 24
첫사랑 3 · 25
첫사랑 4 - 체로금풍體露金風 · 26
행복 상표를 찍는 사람들 · 28

2부

화엄바다 은갈치 1 · 32
화엄바다 은갈치 2 · 33
회고사懷古詞 · 34
청령포 춘설春雪 · 35
잠을 위한 서시序詩 · 36
길 위의 잠 1 · 37
길 위의 잠 2 · 38
길 위의 잠 3 · 39
피레네 국경에서 벤야민에게 · 40
조고각하照顧脚下 · 41
산국山菊 · 42
관풍헌觀風軒에서 · 43
동남쪽 마을에서 서북쪽 하늘을 보다
- 고봉高峰 화상의 게송에 붙여 · 44
어린 소를 파묻고 나서 · 45
상실喪失 · 46
고통 · 47
저녁 종소리 · 48

3부

풍경風磬소리 1 · 52
풍경風磬소리 2 · 53
풍경風磬소리 3 · 54
풍경風磬소리 4 · 55
풍경風磬소리 5 · 56
그날 · 57
송인送人 - 왕유王維 풍으로 K를 보내고 · 58
묵언默言 · 59
독거노인이 꿈에게 문자질하다 - 도연명 풍으로 · 60
노산대에 올라 1 · 61
노산대에 올라 2 · 62
자규루子規樓 · 63
낙화암에서 1 - 금강정 · 64
낙화암에서 2 · 65
우둥불 · 66

4부

우음偶吟 · 70
탄금대彈琴臺에서 · 71
상처 1 - 피해자들 · 72
곡자사哭子詞 · 73
이월二月 · 74
딸 1 · 76
난폭한 적막 · 77
회한悔恨 - 임재범의 ‘아버지 사진’에 붙여 · 78
울력 · 80
도피안사到彼岸寺 26 · 81
김삿갓 풍으로 - 불초不肖 · 82
꿈 · 83

후기後記 · 84

저자 소개 1

충남 한산(韓山)에서 태어났다. KBS 공채 2기로 입사해서 정년퇴직했다. 1987년 10월, 월간 [현대시학]에서 초회(初回) 추천을 받았으나 2006년 봄, 이수익 선생의 추천으로 계간 [시와시학]에서 추천을 새로 받았다. 『나는 너의 그림자조차 그립다』 『그때 그대는 어디 있었는가』 『두 눈 뒤집힌 사랑』 등의 시집을 냈고, 서평집 『내 맘대로 읽은 책』도 냈다. 이밖에 KBS MBC SBS에 있던 시인들과 함께 펴낸 시집 두어 권을 포함해 이런저런 책을 냈다. 한동안 작고 시인들의 삶과 문학을 소개하는 방송을 한 적도 있다. 방송 기술직으로는 우리나라의 첫 시인이다. 20
충남 한산(韓山)에서 태어났다. KBS 공채 2기로 입사해서 정년퇴직했다. 1987년 10월, 월간 [현대시학]에서 초회(初回) 추천을 받았으나 2006년 봄, 이수익 선생의 추천으로 계간 [시와시학]에서 추천을 새로 받았다. 『나는 너의 그림자조차 그립다』 『그때 그대는 어디 있었는가』 『두 눈 뒤집힌 사랑』 등의 시집을 냈고, 서평집 『내 맘대로 읽은 책』도 냈다. 이밖에 KBS MBC SBS에 있던 시인들과 함께 펴낸 시집 두어 권을 포함해 이런저런 책을 냈다. 한동안 작고 시인들의 삶과 문학을 소개하는 방송을 한 적도 있다. 방송 기술직으로는 우리나라의 첫 시인이다. 2003년 11월에는 KBS가 주는 ‘제5회 바른 언어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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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4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04쪽 | 162g | 128*209*7mm
ISBN13
9791168150782

책 속으로

말이 탁 끊어진 자리에 맑은 바람이 일었다
바람을 좆아 향 내음 그윽 퍼지고, 그 자리에 참말이 조봇이 솟아올랐다

단칼에 말을 자를 줄 아는 이, 누구이신가.
--- 「언어도단言語道斷」

쓰러져야만 열광하는 세상을 위해
나는 오늘 팔각의 링 위에 누었다
폭발하는 환호성
누우면 이렇게나 편한데, 왜 그리 악착을 떨었던가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며 허공에 주먹질을 해댔던가
너에게 쏟아지는 저 갈채는
내일은 너도 넘어져야 한다는 공개된 암호
무동을 타고 두 팔을 흔드는 너를 위해
나는 아직 몽롱하게 누워있다
저 환호성이 끝날 때까지.
--- 「비애悲哀」

망치뼈 속에서 옥수수 잎이 자라기 시작했다
노근란露根蘭도 아닌데
대궁은 억센 뿌리를 드러낸 채
제 발밑에 숨은 뼛조각을 단단히 움켜잡고 있다
바지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던 금붕어는
두 겹으로 접힌 제 아가미를
내 눈앞에 가끔씩 펼쳐 보이다가
어느새 사라지곤 했다
아무도 살아 있는 소음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죽어있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 행간 사이에 깨알만 한 날파리 떼가 알을 깠다
부화한 새끼들이 모루뼈까지 무시로 드나들어도
그 눈의 크기에 대해선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이라고만 말하고 싶어 한다
그그그, 라고 속으로만.
--- 「그그그」

허옇게 벼린 낫을 들고 저녁 산을 오르다가
발밑으로 달라붙는 안개의 등뼈 잘라내어 전나무 숲에 파묻어 버렸다
낫에 묻은 안개의 피 오래 바라보다가 짙은 송진 냄새 위에
쓱쓱 닦아버렸다
관솔가지 끝에 꿰어 꿈틀대는 종이꽃의 혓바닥을 보고
봄밤이 또 물컥물컥 몰려오고 있다.
--- 「문턱에서」

기관총을 쏘아대듯이 내 손으로 쏘아 보내고 날려 보낸 그 숱한 말, 말들
오래전 하늘 가 공동묘지 한 귀퉁이에 들어가 묻혀 버렸다

지상의 꼭대기에서 저 하늘 끝까지 녹슨 철삿줄처럼 이어진
가늘고 긴 침묵의 뼈, 그것들을 나는 지금 보는 중이다.
--- 「우파니샤드의 가을 - 송신한 전파」

색은 유일신唯一神, 눈부시게 빛나는 그물망
이 세상을 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난쟁이가 된 수천수만의 나를 촤라락, 한꺼번에 보여준다

내 등 뒤에 붙어있는 세상을 만나보려고 혼자 색을 쓰다가
내 눈은 저 것들에게 매일 야바위 당하고 있다.

* ‘예술은 사기다.’ 백남준이 남기고 간 말. 불후(不朽)다.
--- 「화면 속에서 자꾸 되살아나는 백남준 - 야바위꾼」

벌건 대낮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얼른얼른 자꾸자꾸 하라고 재촉하더니, 잔가지가 찢어지도록
제 새끼를 주렁주렁 만들어 놓았구나

바싹 곯은 몸으로
생生이란 이런 것이라며 헤벌쭉거리는구나
저런, 덜떨어진 놈.
--- 「감나무 연리지 - 니체」

뼛속이 시리도록 찬 바람 불어 이가 딱딱 마주쳐도, 삭이지 못한 구역질은 겨우 내내 나를 괴롭혔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쓸데없이 봄은 또 오고 강추위에 부딪히던 내 이는 무더기로 빠져나갈 것이다 한겨울에 한여름의 모습이나 보고 있는 이 더러운 눈알 감추지 못하고 나는 두 팔 벌린 채 고개 떨구고 서 있는 허수아비나 끌어안았다 겨울이 다 가도록 산비탈 수수밭에 못 박혀 나부끼는 남루를 사랑하는 저 허수아비.
--- 「임신한 마돈나가 뭉크에게」

한낮에 은산철벽銀山鐵壁이 허물어졌다
고립무원의 눈벌판에 길이 열리고 장이 섰다
한바탕 바람이 불자
마구간을 지탱하던 낡은 담벼락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어서 떠나라고 외쳤다
눈 덮인 저 산 넘어가는 길은 멀어
산마루턱에서 실낱같이 빛난다
날이 저물자 길이 닫히고 고요가 돌아왔다
삽짝 밖의 검보랏빛 허공에
등불이 하나 걸렸다
내 몸이 세운 은산철벽처럼.

--- 「길」

출판사 리뷰

심연에서의 목소리 - 안덕상의 시와 철학적 사색
_김영탁(시인·『문학청춘』 주간)

안덕상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통해 삶의 무상함과 인간 존재의 본질적 고독을 탐구한다. 가령, 「언어도단言語道斷」에서 말이 끊어진 자리에서 일어나는 맑은 바람을 통해 의사소통의 한계와 그 너머의 진실을 암시한다. 적극적인 사회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화엄바다 은갈치」 시편들은, 현대 사회의 폭력성과 인간성 상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세속적인 욕망과 영적인 가치 사이의 긴장을 효과적으로 전개한다. 이러한 긴장은 더욱더 철학적이고 성찰적인 목소리로 나타나고 있다. 연작시 「풍경風磬소리」는 사물의 본성에 대한 깊은 명상을 통해 존재와 비존재, 현실과 이상 사이의 경계를 모색하고 있다.

인간관계와 개인적 감정의 복잡성을 다루면서, 개인의 내면세계와 외부 세계와의 간극을 조명한다. 특히 「상처」와 「울력」과 같은 작품에서는 인간의 아픔과 그 아픔을 통한 치유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안덕상은 현대 사회와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 자리한 문제들을 섬세하고 강렬한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독자에게 삶과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그의 작품들은 감정의 깊이와 함께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독자에게 시적 경험을 통한 인식의 전환을 풍성하게 제공한다.

쓰러져야만 열광하는 세상을 위해
나는 오늘 팔각의 링 위에 누었다
폭발하는 환호성
누우면 이렇게나 편한데, 왜 그리 악착을 떨었던가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며 허공에 주먹질을 해댔던가
너에게 쏟아지는 저 갈채는
내일은 너도 넘어져야 한다는 공개된 암호
무동을 타고 두 팔을 흔드는 너를 위해
나는 아직 몽롱하게 누워있다
저 환호성이 끝날 때까지.

-「비애悲哀」 전문

시 「비애悲哀」는 상실과 슬픔, 변화와 인간의 내적 갈등을 탐구하며, 그 감정의 깊이와 복잡성을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다. 팔각의 링, 즉 복싱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틱한 장면을 통해 인간의 고통과 열정, 그리고 대중의 찬사 속에 숨겨진 비극적인 현실을 드러낸다. 이 시는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무언가를 깨닫는 순간, 그 순간의 쓸쓸함을 깊이 있게 그려낸 수작이다.

여기서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무언가를 깨닫는 순간은 실제로나 상징적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행위를 통해, 진리나 중대한 깨달음에 도달하는 순간을 말한다. 이러한 순간은 종종 예기치 않은 통찰이나 자기 인식의 확장과 함께하면서, 시인은 이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삶의 의미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탐구한다.
이러한 깨달음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외로움이나 고립감은 탁월하게 시로 현현하고 있다. 이는 개인이 깊은 통찰을 경험할 때 종종 느끼는 감정적 고독이나 분리감을 내포하며, 시는 이러한 감정의 복잡성을 포착하여 독자에게 감정적인 공명을 증폭시키고 있다.

안덕상의 이러한 진술은 시의 힘과 영향을 강조하는 동시에, 시인이 어떻게 감정적 깊이와 인간 경험의 미묘한 순간들을 포착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이러한 순간들을 섬세하게 탐색함으로써, 읽는 이에게 자신의 삶과 감정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수 있게 유도한다. 이는 시가 단순한 예술 작품을 넘어서, 독자의 내면적 사유와 감성에 깊이를 더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는 것을, 「비애悲哀」가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안덕상의 언어와 독특한 스타일은 시의 힘과 깊이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서 자리매김한다. 그의 작품에서는 언어의 선택과 배열이, 시적 의미를 극대화하며, 독자들에게 감각적이고 사색적인 경험을 풍요롭게 제공하고 있다.

서강西江 가슴 속 깊이 물든 멍 찢으며

당신께 날 건네주고 사공도 말이 없던 날,

멀리 돌개바람 치솟는 연하리에선 익한益漢*이 토한 피

새빨간 나뭇잎 되어 폭포처럼 쏟아진다.

-「노산대에 올라 2- 당신은 폭포처럼」 전문

*추익한(秋益漢): 추충신(秋忠臣)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성 부윤(府尹)을 끝으로 영월로 낙향했다. 유배 온 단종이 좋아했던 머루와 다래를 따다가 자주 바쳤다. 어느 날, 영월 계사동 폭포 앞에서 태백산으로 간다는 단종을 만났으나 익선관을 쓰고 백마를 탄 단종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추익한이 관풍헌에 가보니 단종은 이미 죽은 뒤였다. 주체 못 할 비통함에 추익한은 단종을 만났던 그 자리로 되돌아와 자결했다고 한다. 태백산을 주축으로 하는 일부 민속 신앙에서는 단종, 엄흥도, 추익한을 삼신(三神)으로 모시기도 한다.

이 시는 자연과 인간 감정의 교차점에서 깊은 울림을 제공한다. 특히, 역사적 인물 추익한의 비극적인 삶과 자연 이미지가 융합되어 감정의 격렬함을 강조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서강과 폭포, 멍이 든 가슴 등의 이미지는 단순한 배경이 아닌, 주인공의 내면적 고통과 외로움을 반영한다. 시인은 자연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자연이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감정의 표출 장소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부제 ‘당신은 폭포처럼’이라는 구절은 이러한 감정의 폭발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려는 도화선일 터이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내면세계의 동일성을 지향한다. 시 전체를 관통하는 이러한 이미지의 사용은 감성적인 충격을 거치면서, 깊은 성찰에 도달하게 한다. 또한, 역사적 사실과 설화, 자연을 절묘하게 엮어낸 시적 기법은 시각적으로도 풍부한 경험을 제공한다. 추익한의 이야기를 통해 시는 한 개인의 비극이 어떻게 역사의 한 부분으로 승화될 수 있는지를 전범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얻은 이미지(교훈)와 감정들이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시는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서서, 역사와 인간 감정의 교차점에서 더욱더 깊은 의미를 찾음으로써, 빛나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의 말

끼고 살던 자식이 한꺼번에 떠나갔다
집안이 온통 휑하다
총량제인 내 앞날도 그만큼 줄어들었겠지
못나서, 이 문턱을 넘지 못한 놈들은
나 혼자 데리고 나가
깊은 어둠 속으로 놓아 보내야 한다
입도 없고 눈도 없는 저 애들은
춥고 어두운 침묵 속을 얼마나 떠돌아야 가라앉을까

심학규처럼, 나도 눈을 뜰 수 있을까
생각하면 자꾸 우습고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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