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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유키 준노스케: 『모래 위의 식물군』/ 〈취우〉/ 『해 질 녘까지』
참을 수 없는 현실감 부재 성의 구도자, 1960년대에는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삭제하며 읽는 불필요한 장치들 여성혐오자의 엄청난 거짓말 쾌락에 젖은 신음, 심화되는 여성혐오 통속적인 소시민의 사소한 모험 작가의 자의식 과잉이 드러나는 〈취우〉 격차 게임: 인형사와 인형 환호하는 남자들과 이론으로 무장하는 여자들 체제 옹호로 이어지는 왜소한 자아 시마오 도시오: 『죽음의 가시』 고대의 무녀인가, 근대의 여성인가 죽지 못하는 남자의 애매함과 성실함 병의 왕복기로 읽는 『죽음의 가시』 표현과 체험 사이 문체의 힘과 이형의 타자 근대 성애의 이중구속 애인과 아내: 진보된 근대성과 뒤처진 근대성 사랑의 순교인가, 이해타산인가 『죽음의 가시』는 포스트 『무희』다 다니자키 준이치로: 『미친 사랑』/ 『만』 문체의 불쾌함에 대하여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정말로 성을 그리는가 카테고리로서의 여자, 애완동물로서의 사랑 타인이 욕망하는 것에 끌리는 법 여자는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되는가 풍자로서의 『미친 사랑』 다니자키의 애욕은 무섭지 않다 마조히즘적 인격, 반증으로서의 승리 윤리의식이 결여된 세계의 성애 고지마 노부오: 『포옹가족』 ‘미국’이라는 기호 없이 에토 준과 『성숙과 상실』 흘러넘치는 찝찝한 풍요로움 넘쳐나는 성적 메타포와 부당하게 그려지는 여성 용서와 화해의 어중간한 그로테스크함 고독해질 수 없는 남녀 일본의 카미유 클로델 비평가의 역량은 20년 뒤 드러난다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와타나베 군은 블랙홀 여성의 리얼리티 작가론보다 독자론을 유발하는 무라카미 하루키 ‘이런이런’ 와타나베 군의 리얼리티 섹스 장면이 많다, 죽는 사람도 많다 거리를 좁히지 않는다는 원죄 커뮤니케이션과 연애의 불가능성 반복되는 리듬, 짧은 문장 관계 맺지 못하는 시대, 관계 맺지 못하는 연애소설 미시마 유키오: 『교코의 집』/ 『가면의 고백』/ 『금색』 주제로서의 권태, 지루한 독자 미시마 유키오가 동시대에 보낸 것 『가면의 고백』이 동성애 소설이 아닌 까닭 축제가 끝난 뒤를 살아가는 세대 결혼이 미시마 유키오를 죽였나 시대의 호모포비아가 선택한 논리적인 죽음 여성혐오의 본질, 도움이 되는 자신이 싫다 미시마 유키오의 할복자살 몸과 정신의 상극, 안티 리얼리티 슬프고도 짧은 만남 미시마 유키오의 르상티망 스모 선수와 미소년으로 양분된 취향 성에서 인격이나 구도를 찾으려 했던 기묘한 시대 후기 우에노 지즈코 - 문학이라는 연못에 페미니즘 비평이라는 돌을 던지다 오구라 지카코 - 하나에의 길 도미오카 다에코 - ‘여성’이 부재했던 시대를 지나 비평의 안드로지너스로 문고판 후기 우에노 지즈코 - 축제가 끝나고 오구라 지카코 - 출구는 있다 도미오카 다에코 - 시대라는 일꾼 |
Chizuko Ueno,うえの ちづこ,上野 千鶴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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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오쿠모토 다이사부로가 아주 명쾌하게 이야기했죠. ‘요시유키 준노스케의 여성 독자가 많아졌다고 한다. 내 주변에도 그의 작품을 애독하는 여성이 적지 않고, 작가 본인도 여고생에게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고 어느 대담에서 겸연쩍은 듯 말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는 아니지만, 이는 사냥꾼의 총포 끝에 작은 새가 앉은 경우라고나 할까. 내가 이렇게 느끼는 건, 요시유키 준노스케가 틀림없이 여성혐오 사상의 계보에 위치한 작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여요. ‘여성혐오 사상을 가진 자들의 약점이란 도무지 여자에게 무관심해질 수 없다는 점이다.’
--- p.41 우에노: 애욕 속에서 스러지는 게 스이의 극치잖아요. 여자가 아니라 자신의 관념에 의해 스스로 스러지는 거니까요. 그러니 마스터베이션을 과도하게 하다가 죽는 수컷 원숭이가 느끼는 희열과도 통하죠. 도미오카: 그럼 이 작가에게 여성이란 뭘까요? 우에노: 마스터베이션의 도구죠. 쾌락 장치. 거대한 구멍이 뚫린 어둠으로 존재하는 거예요. --- p.229 우에노: 성적인 메타포가 많죠. 예를 들면 치료를 위해 남성 호르몬을 투약하거나. 도미오카: 입가에 수염이 진해지고. 우에노: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적인 쾌감을 느낀다거나. 도미오카: 맞아요. 우에노: 정말이지 단순한 심볼리즘이에요. 에토도 말했지만, 도키코 안에 숨겨진 여성성에 대한 자기혐오와 남성이 되고 싶다는 욕망의 심볼. 여자는 남성화한 뒤에야 성적 쾌락을 느낄 수 있다는 거죠. 도미오카: 고지마 노부오가 거기까지 생각했을까요. 우에노: 생각 안 하고 무의식적으로 썼다는 게 작가의 무서운 점일지도 모르죠. --- p.287 오구라: 와타나베한테는 그조차 없어요. 허초점마저 존재하지 않죠. 예를 들면 이 사람은 매사에 ‘관심 없다’고 해요. 하지만 다음 장을 넘기면? 사실은 엄청나게 관심이 있다는 게 드러나요. 나가사와 선배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하죠. ‘나는 그의 인간성의 무척 기묘한 부분, 복잡한 부분에 관심이 갔지만, 성적이나 아우라나 남자다움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도미오카: 그렇게 말하면서… 오구라: 세 만 넘기면 나가사와를 따라 술을 마시러 갔더니, 여자들이 모두 나가사와의 이야기에 감동하거나 웃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전부 나가사와의 마력이다. 나는 정말이지 엄청난 재능이라며 매번 감탄한다.’ 아무 관심 없다고 하면서 인기 있는 남자의 인기에 무척 관심을 갖죠. 콤플렉스를 품고 인기 있는 남자를 모방하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우에노: 빨판상어처럼. --- p.328 도미오카: 아까 했던 이야기와 연결되는데, 읽으면서 느낀 게 하나 더 있어요. 사람이 너무 잘 죽어요. 소설 창작의 측면이랄까, 작가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도 안이한 방법이에요. 나오코를 죽이는 건 너무 간단하잖아요. 나오코를 계속 살려뒀다면 와타나베는 어쩌지도 못하는 상태에 빠졌을 테죠. 나오코를 버리면 인간 말종이 되고 다른 여자와 가까이 지내면 불성실하다는 말을 들을 것 같은 그 괴로움. 그런 게 현실 아닌가요? 오구라: 『죽음의 가시』와 반대죠. 도미오카: 보통은 그렇죠. 죽으면 너무 간단히 끝나요. --- p.346 우에노: 〈마이니치신문〉의 익명 칼럼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섹스 묘사는 새롭다. 이 섹스 묘사는 풍속을 바꿀 것이다’라는 평가가 있었어요. ‘무언가가 조용히 일선을 넘은 종점에 도달했다’나 ‘물을 마치고 컵을 내려놓는 듯한 성 묘사’라는 평가도 있고요. 그런데 뭐가 새롭다는 거죠? 도미오카: 지금까지의 성 묘사는 어설픈 메타포가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이 작가는 메타포가 아니에요. 우에노: 여자의 직접화법이 생동감 있게 그려졌죠. 도미오카: 맞아요. 여자의 말투나 어휘의 차원에서 표출되어 있어요. 지금까지의 섹스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로 손으로 해줄까 어쩔까 하는 식의 내용은 많았어요. 하지만 그건 남자의 은어적 세계였죠. --- p.352 우에노: 지금 도미오카 씨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역시 작가는 다르게 읽는구나, 하고 감탄하게 되네요. 사실 그건, 없는 걸 내놓으라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하루키에게는 불가능하다고요. 도미오카: 미안하네요(웃음). 우에노: 아쉽다는 말도 좀 아닌 것 같아요. 이도 저도 아닌 이 애매함이 그의 한계이며 장점이죠. 이 세련된 해석이라고 할까, 단문과 세련된 대화의 조합이 초기 단편부터 그의 작품에 일관되게 존재했으며, 이걸 만일… 도미오카: 어느 쪽이든 좀 질척거리게 해달라는 건 무리한 부탁이군요. --- p.380 우에노: 만일 미시마가 20년만 늦게 태어나 1980년대 일본에서 자신의 이 같은 생활상을 모두 담은 ‘라이브 퍼포먼스’를 상품화했다면 『가면의 고백』에 나온 것 같은 호모섹슈얼도 상품화됐을 텐데요. 도미오카: 맞아요. 『가면의 고백』 제일 처음에 나온 것처럼, 달라붙는 작업복을 입은 분뇨 수거인 청년을 동경했던, 그 감정을 철저하게 따라가면 뛰어난 동성애 소설을 썼을 거예요. --- p.408 우에노: 그야말로 철벽의 순환논법이죠. 이를테면 현명한 여자란 없다, 하고 말해놓고 마지막에 ‘모든 면에서 여자는 여자를 모른다. …여자가 자신의 본질을 똑똑히 자각했을 때, 아마 그녀는 여자가 아닌 무언가 다른 존재일 것이다’라고 말하죠.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철벽의 순환논리 구조예요. 이런 시대에 만일 여자로 태어나 미시마의 로직에 걸려들면 여자도 좋은 꼴은 못 볼 거예요. 도망칠 길이 없달까, 출구가 없는 느낌이겠죠. 도미오카: 정말 그래요. 우에노: 그러니까 이건 이중구속이에요. 자기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자를 바보 취급하고, 이해하는 순간 여자가 아니게 되죠. 도미오카: 지금도 이 규칙은 건재해요. 미시마 유키오가 너무 노골적으로 써놔서 지금 읽으면 우스꽝스럽지만. 우에노: 정말 100퍼센트 여성혐오자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어서 오히려 우스워 보이는 것 같아요. --- p.445 도미오카: 그때 제 반응은 문학자로서의 불쾌감이 아니라 서민의 불쾌감이었을 거예요. 미시마는 전후 민주주의를 무척 적대시했잖아요. 하지만 서민인 우리는 민주주의로 바뀌었기 때문에 먹고살게 된 거고요. --- p.4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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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없이 펼쳐라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이 책을 기다려왔다! ‘남류문학(男流文?)’이란 ‘여류문학’이라는 낡은 명명에 맞서는 이름이다. 여성들의 글쓰기는 사적이고 감상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남성의 글쓰기는 보편적이고 고전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 여성이 목소리를 내는 것을 끊임없이 억압하는 장벽과도 같던 시대에 출간된 『남류문학론』은 단순한 도발 이상의 전복적 선언이었다. 『남류문학론』을 읽은 독자들은 더러는 환호했고 대개는 분노했다. 평론가 쓰게 데루히코는 〈주간독서인〉에 이렇게 썼다. “대학원 수준은 되는 도미오카 씨, 임시변통으로 어찌어찌 예습해온 대학생 같은 우에노 씨, 예습 부족으로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오구라 씨”. 문예지 〈군조〉에는 “남성적 도그마에 눈이 멀었다고만 하는 논의에 설득력이 있겠는가”라는 서평이 실렸다. 일간지 〈아카하타〉 1992년 3월 30일자 지면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성에 대한 저속한 논의, 제대로 읽을 가치 없어.” 그러나 문학평론가 사이토 미나코는 『남류문학론』이 출간된 후 문단보다 독자가 먼저 달라졌다고 말한다. ‘여성을 성적 도구로밖에 보지 않는다’는 독자들의 비판이 신문과 칼럼에 게재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에노 지즈코는 페미니즘 비평이 직면한 두 가지 과제를 언급한다. 첫째는 ‘부당하게 잊힌 여성 작가의 작업을 발굴하여 재평가하는 일’, 둘째는 ‘부당하게 고평가를 받는 남성 작가의 작업을 다시 읽고 재검토하는 일’이다. 세 여자는 위험부담이 높은, 다시 말해 남성들의 분노와 반발을 살 것이 거의 확실한 두 번째 과제를 택했다. 기왕에 평론을 할 거라면 이미 높은 평가를 받아 남자들이 그 가치를 의심할 엄두도 못 내는 작가만 논하자는 비장한 각오도 세웠다. 무라카미 하루키부터 미시마 유키오까지 시대를 풍미한 작가들이 명단에 올랐고, 해당 작가의 작품은 물론 작품이 거론된 비평과 기사, 회고록, 편지 등 어마어마한 분량을 읽고 토론하는 좌담이 1년 동안 이어졌다. 그 치열한 과정의 결과물인 『남류문학론』은 남성 문학이라는 이름의 연못에 던져진 돌처럼, 오늘도 끝없는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그것은 진정한 퇴폐도, 성적 해방도, 낭만도 아니다! 『남류문학론』은 여섯 작가들의 작품 속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집중하지만, 작가마다 무게중심은 조금씩 달라진다. ‘여성의 성’을 테마로 삼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성적 퇴폐 전문가’로 알려진 요시유키 준노스케의 작품에서는 섹스가 비평의 중심에 자리한다. 특히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미친 사랑』과 『만』에서 그려지는 여성은 하나의 ‘카테고리’로서의 여성일 뿐이며, 이를 향한 애정 또한 대등한 대상을 향한 것이 아님을 비판한다. 시마오 도시오와 고지마 노부오의 작품에서는 가족을 주제로 삼는다. 시마오 도시오의 ‘병처(病妻) 연작’에 대해 도식적으로만 평론해온 남성 비평가들의 시각도 날카롭게 비판된다. 한편, 고지마 노부오의 작품에 넘쳐나는 성적 메타포가 어떻게 여성을 부당하게 그리는지도 세심하게 분석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에서는 연애를 중심으로 다룬다. 소극적인 태도로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주인공 ‘와타나베 도루’부터 도구처럼 사용되는 등장인물들의 죽음, 과도한 섹스 장면에 이르기까지 통쾌하게 파헤친다. 출간 당시 『노르웨이의 숲』은 ‘100퍼센트의 연애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었지만, 우에노 지즈코는 이렇게 일갈한다. “이 작품은 연애소설이라기보다 연애 ‘불가능’ 소설이에요. 때문에 (와타나베의 말버릇이기도 한) ‘이런이런’의 세계죠.”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 세계에서는 동성애가 중심에 놓인다. 사후에 동성 연인에게 보낸 편지가 공개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그는 ‘시대의 호모포비아’였다. 도미오카 다에코는 저널리즘을 들썩이게 한 그의 죽음에 대해 “결혼이 미시마 유키오를 죽였다”라고 선언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는 갈등 같은 건 존재하지 않으며, 부인이 자기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 생활을 원했어요. 그런 생활이 몇 년이고 계속될 수 있었을까요?” 이처럼 작품을 통해 까발려지는 지극히 남성 중심적인 이기적인 환상과 욕망은 통쾌함을 넘어 해방감을 선사하고, 시대를 초월한 듯 보이는 남녀 관계나 성행위조차 시대의 영향 아래 놓여 있음을 깨닫게 한다. 도미오카 다에코는 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떤 시대든 반드시 일꾼이 존재하는 법. 그러나 가장 큰 일꾼은 바로 시대 그 자체이다.” 작가의 말 ‘남류문학’이 얼마나 기분 나쁜 것인지 번갈아 떠드는 세 여자의 대화를 듣고 공감하지 못하거나, 불쾌한 기분을 느끼는 남성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여류문학’을 멋대로 재단해온 남자에 대한 여자의 불쾌함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성’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알아두는 것도 나쁠 건 없다. 그리고 그것을 ‘무지, 몰이해’라 부르기 전에, 어째서 그렇게 보이는지를 자문해보아도 좋을 것이다. - 우에노 지즈코 이제 페미니즘 비평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연구자들에게는 ‘낯선 것’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것’이 되었고, 곧 ‘기성의 것’이 되었으며, 어느덧 ‘그 한계가 여기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되었다. 하지만 페미니즘 비평이 이미 짜인 판 위에서 과 의 차이를 메우는 작업으로 돌아간다면 결코 목표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출구는 있다. 그 출구의 힌트는 이 책의 ‘권위의 규칙’에 물들지 않은 부분에 숨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 오구라 지카코 인간 세상에 유구히 이어지는 ‘팔루스 왕국’과 ‘여성혐오’를 가장 잘 비추는 거울이 바로 문학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더욱더 ‘문학’이야말로 외부의 파도에 흔들리지 않는 게 이상하다. (중략) ‘문학’에 대한 불신이나 경멸이 생겨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얽히고설켜 있겠지만, 그것을 생각하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명작’이나 ‘문학작품’을 읽고 그것들이 ‘여성’이 부재한 비평의 축적에 의해 만들어진 가치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 도미오카 다에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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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품이 소설로서 우수한지의 여부와 그것이 성차별적인 표현을 벗어났는지의 여부는 별개의 척도로 생각해야 할 문제다. 성희롱적인 ‘남류문학’ 중에도 좋은 작품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칭송하려면, 작품의 장점뿐 아니라 그 안에 포함된 문제에 대해서도 당연히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남류문학론』이 촉구하는 것은 그 같은 단순하고 정당한 의식의 태도이다. - 사이토 미나코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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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작가들의 문학을 ‘여류문학’이라며 주변화해온 역사에 페미니즘 비평이 할 수 있는 가장 유쾌하고도 도전적인 반론. 이 책을 읽으면 특수하고 주변적인 존재는 여성이 아니라 오히려 남성이며, 여성혐오와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그들의 문제가 이제껏 인류의 문제인 양 문학의 거대 담론으로 격상되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 여자가 쏟아내는 재치 넘치는 독설이 연신 폭소를 터뜨리게 한다. - 김지현 (아밀) (소설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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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사랑한다는 남자 선배들은 하나같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과 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를 추천했고, 그 독서는 어김없이 환멸로 이어졌다. 여성 문학 애호가라면 한 번씩 겪었을 이런 상황에, 취향 있고 강단진 세 여자는 적절하게도 ‘남류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물론 한국의 문학 애호가들도 참지 않고 누이의 젖가슴 같은 산과 어머니의 젖줄 같은 강에 ‘한남문학’이라는 강속구를 던져왔지만. 그래, 국제연대가 별건가. - 이서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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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라는 시대에 뒤떨어진 속담이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깨지는 건 ‘남류작가’들의 위선과 체면이다. 일본의 이름난 대문호들이 실상 여성혐오적이고, 철저히 여성을 객체화하며, 자신들이 반쯤 몸담고 있는(?) 성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이 대단한 세 여자의 입을 통해 까발려진다. 남혐문학론이라 일축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솔직히 인정하자, 당신도 재밌지 않은가? - 백설희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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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것은 ‘소외’의 이야기이다. 소외라는 이름의 성채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 저변에 숨어든 사람들과 그들의 와해된 말글에 대한 이야기이고, 소외와 싸우는 이야기이자 성채의 주인들이 소외된 자리를 폭로하는 이야기이다. 우에노는 예리한 메스를 다루고, 도미오카는 섬세히 매듭을 수습하며, 오구라는 정확히 바늘을 내리꽂는다. 그들 덕분에 우리는 잔해를 쥐어볼 수 있고, 다시금 심호흡할 수 있다. - 밀사 (작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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