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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마을 시인선

책소개

목차

제1부

삼월의 흉터
당신의 봄날은 어떠한가요
우산
나무와 마주 앉다
배춧잎
절벽에 꽃이 피다
원형 탈모증
어느 날, 아침
나무 같다
마스크


무궁화 속에서 잠깐

저것은 절벽이다
등대의 시
소용돌이

제2부

모른 척하기
푸른 그리움
녹차 수제비
아버지 생각
경계선
힘겨운 순간
연분홍 손수건
이끼 꽃
두려움
세상 끝에서 커피 한 잔
이해인 수녀님의 해인글방
내 삶 속에 둘 거야
아름다운 인사
느린 우체통
숨소리
상추

제3부

수도원 기행 1
수도원 기행 2
수도원 기행 3
수도원 기행 4
수도원 기행 5
꽃이 되지 못한 몸짓들은
봄밤에는
행복
일기 쓰는 밤, 당신께
커피 마시는 시간
그 산길
절벽
뒹굴기
구원은 진행 중
뒷걸음
아름다운 고통
거기 있었다

제4부

너의 비상을 꿈꾸다
배론 가는 길
레지나, 첫 복사 서던 날
한치 앞의 생
미안합니다
나의 소원은
당신 이름을 부르기 전에
그 돌을 묵상하다
큰 기다림
엠마오의 길
교황 성하, 하늘로 가시다
우리 신부님 손바닥에 사는
다시, 성탄을 기다리다
어머니, 당신은
전부
완전한 사랑을 꿈꾸오니
꽃잎 떨구기
어느 날 당신이 부르시면

*해설: 존재의 행복에 이르는 진실한 삶을 위한 기도-정훈(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예술의 고장 통영에서 자랐다. 1992년 월간 《시와비평》으로 등단하였으며 한국시인협회, 부산문인협회, 부산가톨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륙도문학 대상과 가톨릭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시집으로 『엄마의 잠』, 『한 사람을 위한 기도』, 『내가 빛나는 이유』, 『당신은 내 인생에 참 좋은 몫입니다』, 『눈물 속의 뼈』,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내 길을 가리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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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16쪽 | 130*210*20mm
ISBN13
9791156062783

책 속으로

누군가는 봄날을 즐기려고
꽃놀이를 가고
누군가는 벚꽃 아래서
꽃비를 맞으며 웃던 그 봄날
당신과 내가 팽팽하게 붙잡고 있던 선이
툭, 하고 끊어졌다

그때부터였을까
누구와도 눈을 맞출 수가 없었다
시선은 허공을 맴돌았고
몸을 스쳐 가는 공기는 쓰리고 아팠다
수많은 기억도, 하고 싶었던 말도
단 한 줄이 되었고
나는 늘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내 눈 속을 돌아다니던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던
그 눈물 한 방울이
전하지 못했던 말을 거듭 어루만졌다

당신이 옆에서 하던 말도
수시로 되묻곤 하던 나
오늘은 내가 먼저 말을 걸어 본다
지금 당신의 봄날은 어떠한가요
혹시, 나의 봄날이 궁금하지는 않으신가요
---「당신의 봄날은 어떠한가요」 중에서

또다시 저녁이 오네요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그 야릇한 시간 속에 나를 숨기며
묵주 하나 들고 돌산공원으로 갑니다
또 하루를 살았다는 안도감을 내려놓고
나무와 마주 앉습니다 늘 그러하듯 저 나무는
오늘도 먼 산에 있는 나무만 보고 있을 뿐
한 번도 나를 보지 않습니다 나무의 딱딱한 껍질에
쏟아지던 내 숨결은 이내 차가운 바람 속에 섞이고 마네요
그 나무 앞에서 보니엠의 바빌론을 듣습니다
바빌론 강가에 앉아서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다던
유다인들, 그 유배의 서러움을 듣고 또 들었습니다

당신이 없는 곳은 어디든 유배의 땅
나무와 천년만년 마주 앉는다 해도
당신을 볼 수 없다는 고통은 결코
저 나무껍질처럼 단단해지지 않겠지요
---「나무와 마주 앉다」 중에서

절벽에 핀 꽃을 보다가
멀미가 났다 아찔한 현기증이 났다
바위 틈에 뿌리 박은 꽃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저 바람에 흔들릴 뿐
꽃은 자기 자리가 절벽이라는 걸 알까
한 걸음만 움직이면
천 길 아래로 떨어진다는 걸 알고 있을까
살 수도 없을 것 같은 자리에서
어찌 저다지도 아름답게 피었을까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니
절벽인 줄 모르고 살았던 순간들이
모두 꽃으로 피어 있었다
----「절벽에 꽃이 피다」 중에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당신과 나의 경계선은 무엇일까
보임과 보이지 않음
들림과 들리지 않음
마주 보며 주고받던 말이
이제는 혼잣말이 됨, 따위가
경계선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알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회복하기 힘든 낯설음이 되었지만
지금 당신의 부재는 꿈이고
이 꿈에서 깨면 당신을
다시 볼 수 있다, 그리 믿지만
이승과 저승의 경계라는 건
어쩌면 없을지도 몰라
당신과 나의 거리는
그리움이 가장 깊은 곳까지 닿을 수 있는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이
가장 완전하게 전달될 수 있는
바로 옆자리일지도 몰라
---「경계선」 중에서

영혼이 없는 듯 펄럭이던 육신을
수도원 안에 들여놓던 날
아무것도 위로될 것이 없다고 되뇌면서도
그분의 위로를 기대하고 있었다

빨간 벽돌의 옛 성당
그 위에 높이 서 있는 십자가를 보며
고통 중에 보는 아름다움은
고통을 배로 키울 뿐임을 확인했다

수사님들이 가꾸는 채소들은
푸르고 싱싱했지만
내게 남은 날들은 모조리 시들어 버렸고
가지마다 풋복숭아가 주렁주렁 열렸지만
내 삶은 언제까지나
텅 빈 가지로 흔들릴 것 같았다

시간경 기도 시간이 되면
빈틈없이 까만 수도복을 입고
성무일도를 바치던 수사님들의
정갈한 목소리를 들으며
까맣게 타버린 가슴을 껴안았다

수도원 구석구석 피어 있는
야생 꽃들과 눈이 마주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얼굴
내가 부르면 그는
바위틈에 핀 꽃이 되었고
나무가 되었고 구름이 되었고
바람이 되어서 나를 흔들었다

---「수도원 기행 1 -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을 찾아가다」 중에서

추천평

삶의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때로는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주어진 현실에 자족하면서 더욱 나은 삶을 계획하기도 한다. 누구나 자기 삶의 바탕이 되어주는 존재를 떠올리면 그 존재로 하여금 뿜어져 나오는 기운과 에너지에 정신을 의탁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는 물질적이거나 눈에 보이는 사물에 기대는 수가 흔하다. 돈이나 권력이 그것이다. 사람들이 쉽사리 현혹하곤 하는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풍족은 그런대로 삶의 윤택함을 가져다주지만, 그것이 결국 허무함으로 귀속된다는 사실은 세월이 지나면서 차차 깨닫게 되는 진실이다. 세계 속 먼지와도 같은 인간이기에 늘 불안과 긴장을 껴안고 살 수밖에 없다. 물질은 영속적이지 않으면서 결국 인간에게 근본적인 성찰을 제공할 수 없다. 시인은 인간이 갖춰야 할 정신적인 영역 못지않게 이 세계에서 인간으로서 바라보고 견지해야 할 눈에 보이지 않는 조건을 늘 궁구하는 사람이다. 최옥 시인의 시도 그런 고심의 결과이다. 그의 시는 일상에서 벌어진 틈의 자리가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그 공간에서 생겨나는 감정의 결을 훑으면서 끝내 삶의 존재 이유를 믿음에서 찾으려는 사유의 풍경을 보여준다. 빈자리가 불러일으키는 허무와 고독의 공간을 믿음 하나로 채워나가려는 종교적인 신념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그런 종교심의 발로나 표현 이전에 시인의 마음 자락을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작품을 간과할 수는 없다. - 정훈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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