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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제의 내일
정보암
작가마을 202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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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마을 시인선

책소개

목차

Ⅰ. 아버지의 독백

사랑을 놓친 딸에게
하자마 농장
횃불
철창
희망
야학
팍팍한 가슴
항심회
진영 형무소
편안한 구속
대한 광복 만세
혁명이 다가온다
귀향
다짐
정치
선배의 품격
불길
동문
상경
가을 추수
전쟁
진영의 별
추모
구세주
나의 사랑 나의 님
이산가족
재회

Ⅱ. 딸의 혼잣말

늦은 귀가
유학
친구에게
바깥양반
낙인
아버지
인민반과 보도연맹
나밭고개
설창고개
변덕
계란꽃 개망초
삼남 킬링 필드
토지개혁 농지개혁
사랑 어원 가설

Ⅲ. 부녀의 대화

아버지의 우리말
기윽, 디읃, 시읏
아버지의 연인
동주길 걸으며
호모 미스티쿠스
아버지의 내자
민주에게
선택적 역사
세월의 세월은 보약
투석(透析)
아버지의 별
이주민 수로의 이상향
동경
침묵은 은, 웅변은 금
금시작비
오늘은 어제의 내일

해설 - 세기의 서사시 / 조승래

발문 - 서정적 감성으로 역사적 교훈 담아 / 김광호

추천사 - 은유적 서사로 펼친 우리들의 이야기 / 심용주

저자 소개 1

960년 경남 산청 출생으로 1997년 《창조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하였으며 창조문학 대상(2014년)을 받았다. 김해외국어고등학교장으로 퇴직했으며 시집 『오후 네 시 출발할 시간』, 소설집 『나무는 어찌 거목이 될까요』가 있다. 시향문학회, 포앰하우스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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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1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130*210*20mm
ISBN13
9791156062943

책 속으로

결국은 먹는 것이다
굶주림 못 채우면
모든 것은 흰소리

먹어야 살 수 있다
먹어야 생명체다
먹고 지탱하는 건 본능

상인은 돈 먹고
농민은 농사를 먹는다
7할 도지는 죽으란 말

참다못해 들어 올린 손
떨릴 수밖에 없었으리
생사가 달린 문제니까

무라이든 하자마든
읍장이든 나랏님이든
당장 급한 건 밥이다

조선인 지주 홍조 어른은
흉년이라 오히려 깎아준다는데
하자마는 소작조차 몰수라니

물정 모르는 어린 내 맘도
이건 아니다 싶다
예부터 환곡제 왜 있었겠나

내지 반도 따질 거면
뭐 한다고 일한병합 했을꼬.
--- 「하자마 농장」 중에서

아버지의 빛바랜 일지첩은
첫 장부터 눈동자를 적셨다

어릴 적 서울내기 생각난다
내 첫사랑 민수
난생처음 달콤한 아픔을 준 아이
사변 때 총 맞아 죽었단 말도 있고
슈샤인 보이 소문도 있었는데

아버지는 야음 틈타 들른 집에서
딸의 사랑통 엄마께 들었나 보다
이렇게 다정한 분이
가족을 팽개치고 월북이라니
한때는 참으로 원망스러웠다
연좌제가 목을 죌 때마다
억하심정 풍선처럼 부풀었지만
어쩌겠는가 숙명인 것을

전쟁 나던 해
사상 찾아 떠난 아버지는
너덜너덜한 유품 한 권으로
속초에서 이복동생 손 잡고
꿈처럼 시공 건너뛰어
늦은 귀가를 했다
엄마도 동생들도 없이 나만
상처 딱지 겨우 앉은 집에.
--- 「늦은 귀가」 중에서

배워야 산다
아는 것이 힘이다
나도 상급학교 진학하면서
이웃 볼 수 있었고 세상 알았다

금융조합 막내에게
농민들은 묻기조차 어려워한다
글자 모르는 죄인이라
납부금 이자 영문도 모른 채
억지 춘향이로 내거나
어린 내게 하소연하거나

한 줄기 빛 브나로드
민중 속으로 상록수처럼
농사도 배워야 잘 짓는다
산업도 알아야 잘 만든다
뭣이라도 알아야 발전이 있다

우리는 쉬운 한글 있으니
김해에 한글 선생님 많으니
조금만 노력하면 가능성 충분하다
매달 급료 받아 기생 치마폭 꽂지 말고
내 고장 들판에 브나로드 희망 꽂자.
--- 「희망」 중에서

철하 조합 창고 빌려
동네 아이들 모았다
낮에는 농사 도와야 하니
밤에 학당을 열었다

어른도 드문드문 보이는 자리
배움 향한 열의 창고가 후끈하다
칠판에 쓴 ‘배워야 산다’
땅바닥 앉은 입들이 함께 소리 낸다
배워야 산다!

순사들 수시로 기웃대고
유지들 표정 게슴츠레하지만
아이들은 피곤도 잊은 모양
신작로 간판을 읽게 되면서
연신 끄덕이는 고개 고맙다

한글은 세종이 주신 최고 선물
일본은 갖고 싶어도 못 갖는 보물
김해 한글학자들 높은 뜻 알기에
한글 공부 열정 더욱 쏟아부었다

글자 깨치고 책 읽어
소련 혁명 성공담 알게 되면
새벽은 더 일찍 오겠지
조선의 케케묵은 관습
엉터리 병합 보는 눈 변하겠지

하지만 진영 주재소
기어이 불령선인 들먹거린다
한글 배워야 작농법 읽을 수 있고
단감 재배법도 제대로 배우며
글 읽어야 쌀 증산 높인다 설득해도
한뫼 선생 사건에 상부 닦달 힘들다며
폐쇄령 으름장만 연신 놓아댔다.
--- 「야학」 중에서

형무소 문도 다음 날에야 열렸다
얼빠진 형무관 내빼기 바빠
조선인 급사 부랴부랴 자물통 열었다

삐걱이는 철문 사이 밀물 같은 햇살
조선 독립 만세가 일제히 터져 나왔다
뺨을 타고 내리는 눈물 멈출 수 없었다

동지로서 연정 맺힌 백미영 선생
부친이 데려갔단 말 뼈를 때렸지만
나는 제1부두 바로 달려가
항심회 동지 간절했던 꿈 다잡고
서울 공산당 재건위원회도 참석했다

진영의 지조 높은 김 선배님 조언에
대창학교 동기 택이의 후원금 더하면
내가 속한 경남 사업 탄탄해질 것 같았다

며칠 안 되는 서울 방문
정세는 시시각각 요동치고
문제는 미군정 태도가 아닐까 싶다

박헌영 동지 생각이 곧 내 생각
8월 강령 역시 민중 중심 민주주의
꿈에서나 볼 수 있던 혁명의 순간
간절한 가슴 따라 뚜벅뚜벅 오고 있다.
--- 「혁명이 다가온다」 중에서

고향의 어처구니없는 총소리
전쟁의 소란에서도 서울까지 들렸다
강 선배가 빨갱이로 연행돼
수산다리 밑에서 살해당했다
단감 부자 최 이사장도 함께였는데
갑시 어르신 용케 살아남아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단다

진영 지서장 늘 강 목사가 거슬렸지
구제품 가로챘다 공공연히 꾸짖고
양곡 도정 부정한 짓 밝혀내며
안창득 선거도 도우니 그야말로 눈엣가시
학도병 지원 공문 반응 없다며
급기야 보도연맹 검속령 엮었다

자신의 가슴에 총구 겨눠도
주여, 이들을 용서하소서 기도했다니
과연 진영의 큰 별이다

나 역시 서울로 솔가 않았다면
선배보다 먼저 황천길 갔으리
어제는 항일 독립 투사였지만
오늘은 자본주의 고향에 이방인
죽어 캄캄한 구천 어디쯤 떠돌려나
김해에 애국자 많고
진영에 별 많다지만
강 선배는 별 중의 별 일등성이다
연희 동문 뛰어난 인물 가운데
강성갑이 제일이라던 말 생각난다

일본 신학대 유학 목사님
빨갱이라니 누가 믿을까
밤새 추모의 촛불 밝혀도
누명 쓴 혼백 억장 무너져
저승길 어이 떠나시려나.
--- 「진영의 별」 중에서

낡은 서책 덮으며
잠시 아버지 떠올려 본다

얼굴조차 제대로 기억 못 하면서
남들처럼 잘 먹이지 않고
남들만큼 공부도 안 시켰다고
무엇보다
왜 하필 월북 빨갱이가 돼
가족 힘들게 했는지만 원망했는데

‘사랑을 놓친 딸에게’란 장이
첫 페이지인 것 보고 눈물 먼저 쏟아졌다
일지의 사건들 대부분 시간순이지만
날짜 뛰어 넘어 맨 앞에 둔 것은
먼 후일 딸이 볼 날 기약한 간절한 희망

답답하고 어두운 아내 무표정
한사코 거부해 도장 기어이 찍고
단발머리 양장 신여성 맞겠다며
자식들 고아원 보내지 않은 것만 해도
지금 와서 보면 감지덕지할 일이다

아버지가 받았을 배반의 감정
얼마나 컸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불쌍하신 아버지,
인민을 위해 전쟁 한 가운데 섰지만
그 때문에 가장 가까운 인민 이산하고
종전 후 속초 위쪽 뒤틀린 휴전선에
운명처럼 재회한 연인마저 격리당해
작별의 인사도 못 하고 떠나셨군요’

그러니까 아버지의 평생은
노심과 초사, 가스처럼 뒤섞여
밤하늘 별이 되는 과정이었다
이름 석 자 빨간 점 많이 찍혀
적색왜성 지혜처럼 반짝이는 별.

--- 「아버지」 중에서

출판사 리뷰

정보암의 서사 시집 『오늘은 어제의 내일』은 모두 3부로 편재하고 있는데, 1부는 월북 아버지와 일경에 총살당한 강성갑 목사 속으로 들어간 화자의 독백시 ‘아버지의 독백’으로 꾸며졌고 2부는 그러한 아버지를 둔 딸(모든 자식들)의 눈으로 추측해보는 ‘딸의 혼잣말’이 3부는 비극적 삶을 살아야만 하는 현대사의 비극을 담담히 담은 아버지와 딸의 대화를 표현한 ‘부녀의 대화’로 구성하고 있다. 1부 ‘아버지의 독백’에는 “먹어야 살 수 있다/먹어야 생명체다/먹고 지탱하는 건 본능”(「하자마 농장」)처럼 당장의 끼니부터 걱정해야 하는 가장의 고뇌와 “황국 신민 황도를 외쳤지만/내선일체는 빛 좋은 개살구/선인은 뛰어봤자 손바닥 안/조합에서 높은 자리는 일본인”(「철창」)처럼 일제의 수탈을 보여주는 혼란한 사회상을 보여준다. 2부 ‘딸의 혼잣말’에서는 “북한은 사상투쟁/비판생활총화로 세뇌사업 주력하고/남한은 전향자 검속/반공을 통한 정체성 우선 내세워/한 뿌리서 났어도 생김새는 달랐다”(「인민반과 보도연맹」)고 아버지 세대를 이해하면서 “카빈 총탄에 발기발기 찢기고/이 골 저 골 한처럼 피었구나/새하얗게 질린 꽃잎 숨어”(「계란꽃 개망초」) 살아온 가족들의 비애를 담았다. 3부 ‘부녀의 대화’에서는 “밤새 고독한 북간도 사투리가/남도 거시기로 동주길 흩뿌리며//생명 담보해 유고 품은 마루/결 고운 우정 화신처럼 뭉클하다”(「동주길 걸으며」)며 서로를 소통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서사시집은 역사적으로는 현대사의 우리의 상처를 드러내고 공감하고자 하는 후대의 시선이 담긴 사료적 가치가 높다는 점이며 문학사적으로는 한국문학사에서 자유로운 현대시의 다양성으로 인해 리얼리티를 내세운 서사시가 사라지다시피 하였는데, 정보암 시인이 허구가 아닌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스토리의 생생한 리얼리티가 시집을 창작했다는 점이다.

작가의 말

인도에서 파견 교원 마치고
건강 회복 겸
고개 너머 유명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공기 같은 역사는 가슴을 훑고
단지 먼저 났단 이유로 풍파 맞은
임들의 가쁜 호흡 골목마다 퍼덕인다

죽어 이름을 남긴 사람도
이름 없이 스러져 간 사람도
어제의 내일 같은 오늘 살아냈으니
어둠 밝히는 별 되기에 충분하다

부족한 나의 서사는
뛰어난 한 소설가에서 출발해
밤하늘 별들이 빛나는 이유 가늠해 보았다.

- 광복 80년 늦가을, 금병산 노을구름 좋은 날 정보암

추천평

이 시집은 일본 강점기부터 현재까지 근 100년의 세월 동안 전개되는 서사시이다. 역사 속 한 인간의 비애를 시인의 시선으로 인해 다시 살펴보고 공감하게 한다. 아버지의 시점, 딸의 시점 및 객관적 관찰자 시점이 세 개의 부별로 교차되면서 역사적 사실을 다양하게 해석해 보게 한다. 「사랑을 놓친 딸에게」라는 시에서 실연한 딸의 남자 친구 ‘민수는 착하구나 옥이랑 잠깐 사귀다/ 아니다 싶으면 다시 온다 했다지?/ 오늘 밤은 다 잊어버리고/ 한숨 푹 자려무나/ 내일 아침 밝은 해 뜰 거야.’라는 표현으로 이념이 정립되면 다시 돌아올 수 있음을 복선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집에서 아버지는, 사람들이 배우고 깨우치는 것이 일제 강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여 야학을 세우고 의식적 독립운동을 했고 옥살이도 하며 법정에서 일본의 부당함을 항변하기도 했다. 후에 광복이 되고 동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공산주의 이론으로 모두가 잘사는 길을 모색했으나 아버지는 빨갱이로 몰리게 되고 가족을 버리고 전쟁 발발 후 월북하게 된다. 남은 가족이 연좌제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멸공 웅변대회’에도 열성을 보이지만 편견에 고개 숙이고 살아야만 했던 고통을 시의 편에서 살필 수가 있다. - 조승래 (시인)
추억을 소환하는 것은 여러 감정을 갖게 한다.
먼 곳이든 가까운 곳이든 막론하고
굳이 기억과 추억의 모호한 경계선에 위치한
느낌이 주는 것들은 그래서 그냥 애틋하다.

(중략)

간간이 눈물을 훔치며 읽어가다 때로는 분노했던
선생의 시는 시 본연의 감성 넘어 왠지 모를 반가움으로
마음 깊숙이 나를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리라.

서정적 감성에 역사의 교훈을 담고
근현대를 조망하는 교육적 효과까지 더했으니
선생의 시는 삼박자를 두루 갖춘 이 시대 K-트로트와 같다.

한 편의 시를 읽으며 행복감을 느낀 지 이 얼마 만인가!
참으로 즐겁고 기분이 좋아 가을 하늘이 더욱 정겹다. - 김광호 (김해독립운동기념사업회장)
지금까지 고향을 지키고 진영 발전의 일익을 맡으며 일하는 내게 늘 특별한 느낌의 존재가 있다. 한국의 대소설가 김원일의 아버지와 한얼학교 설립자 강성갑 목사님이시다. 김원일의 부친은 일제 때 애국투사였지만 광복 후 이름에 빨간 점 찍혀 월북했다. 강성갑 선생은 부산 큰 교회 목사였지만, 초빙받은 진영에서 벽돌을 직접 찍어 학교를 짓는 교육 선구자로 칭송이 자자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 때 보도연맹 검속으로 총살을 당했다. 두 분의 가족은 보이지 않는 ‘연좌제’에 갖은 고생을 다 했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오늘을 살고 있다.

고향 땅은 지명이 ‘진영’이라 그런지 아직도 진영(陣營)에 관한 논란이 더러 있다. 물론 이것은 경남의 문제, 나아가 나라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숙제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시집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근현대사의 소용돌이를 직접 거친 경험자로서 시를 읽으며 느꼈던 공감, 애절한 마음, 안타까움을 독자들과 공유했으면 좋겠다. 우리의 어제를 은유적 서사로 감명하고 희망찬 내일을 함께 얘기한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하는 바람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지켰던 사람, 생각이 남달랐던 사람, 친일이든 반일이든 당대를 함께 한 모든 사람이 어떤 형태로든지 힘을 합쳐 만든 결과가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한때 뭔가를 선호하고 뭔가에 신명을 바친 여정은 결국 치열하게 쌓은 개인의 삶이다. 그것은 죽어서 하늘의 별이 되기에도 충분할 것이다. 이 아름다운 서사시를 꼭 읽어 보라고 새삼 권하는 이유다. - 심용주 (경남향토사연구회 김해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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