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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해 설
제 1 막
제 2 막
제 3 막
제 4 막
제 5 막

저자 소개 1

프리드리히 폰 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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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drich von Schiller

의사이자 작가이며 역사가이자 철학자였던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 1759∼1805)는 1759년 11월 10일에 독일 남서부 뷔르템베르크(Wurttemberg) 공국의 작은 마을인 마르바흐(Marbach)에서 태어나 군의관인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슈바벤 지방의 로르히(1764), 루트비히스부르크(1766)로 옮겨 다니며 성장한다. 1773년 뷔르템베르크의 카를 오이겐(Karl Eugen) 공작의 명령에 의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엘리트 사관 학교인 카를스슐레(Karlsschule)에 입학해서 법학을 전공하다가 전공을 의학으로 바꾸어서 1780
의사이자 작가이며 역사가이자 철학자였던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 1759∼1805)는 1759년 11월 10일에 독일 남서부 뷔르템베르크(Wurttemberg) 공국의 작은 마을인 마르바흐(Marbach)에서 태어나 군의관인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슈바벤 지방의 로르히(1764), 루트비히스부르크(1766)로 옮겨 다니며 성장한다.

1773년 뷔르템베르크의 카를 오이겐(Karl Eugen) 공작의 명령에 의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엘리트 사관 학교인 카를스슐레(Karlsschule)에 입학해서 법학을 전공하다가 전공을 의학으로 바꾸어서 1780년에 졸업하고, 슈투트가르트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면서 1781년에 익명으로 첫 번째 드라마 『군도(群盜, Die Rauber)』를 자비로 출판하고, 그다음 해에 이 작품이 초연되면서 ‘질풍노도’ 문학의 중요한 작가로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군도』의 혁명적인 내용으로 인해 신변의 위협을 느낀 실러는 1782년 9월에 공국을 탈출해서 만하임,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튀링겐 지방의 바우어바흐(Bauerbach)로 피신해 리터(Ritter)라는 이름으로 의사 활동을 시작한다. 1787년 7월 실러는 바이마르로 가서 괴테의 친구들인 헤르더와 빌란트를 만나고 이들의 영향으로 역사학과 그리스 고전 연구에 빠진다. 1788년 9월에는 드디어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괴테와 만나고 괴테의 주선으로 예나대학에서 역사학을 강의하게 된다.

사회적 신분을 얻게 된 실러는 샤를로테 폰 렝게펠트에게 구혼해 1790년 2월에 결혼한다. 실러는 열정적으로 역사 연구에 매진해 [30년 전쟁사(Geschichte des dreißigjahrigen Krieges)](1791∼1793)를 비롯한 많은 역사 논문을 발표한다. 그러나 너무 열정적으로 일하다 보니 1791년 1월에는 심한 발열로 중병이 들어 그해 여름까지 생명이 위독할 정도의 상태에 빠진다.

병으로 교수직을 내놓은 실러는 칸트 연구에 몰두한다. 1794년 초에는 예나로 거주지를 옮긴다. 1795년 『호렌』을 발행하기 시작한다. 『호렌』에는 헤르더, 피히테,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 알렉산더 폰 훔볼트, 요한 하인리히 포스와 프리드리히 횔덜린과 같은 쟁쟁한 작가들과 철학자들이 함께 참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호응을 받지 못하자 괴테와 함께 자신들을 비방하는 문인들을 공격하는 2행시 모음집인 [크세니엔]을 실러가 1796년부터 발행하는 『문예 연감(Musen-Almanach)』에 발표하게 된다.

1797년은 실러의 “발라드의 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뛰어난 많은 발라드(담시)가 나왔다. 그 가운데 [장갑(Der Handschuh)], [잠수부(Der Taucher)], [종(鐘)의 노래(Lied von der Glocke)], [폴리크라테스의 반지(Der Ring des Polykrates)], [이비쿠스의 두루미들(Kraniche des Ibykus)]이 유명하다.

1799년 바이마르로 이사한 실러는 30년 전쟁(1618∼1648)의 비극적 영웅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인 『발렌슈타인(Wallenstein)』과 시 [종의 노래(Das Lied von der Glocke)]를, 1800년에는 『메리 스튜어트(Maria Stuart)』를, 1801년에는 『오를레앙의 처녀(Jungfrau von Oreans)』를 연이어 완성한다. 1802년에는 귀족 칭호를 수여받아 프리드리히 폰 실러로 불리게 되었다. 1803년에 실러는 『메시나의 신부(新婦)(Die Braut von Messina)』, 1804년에 『빌헬름 텔(Wilhelm Tell)』을 차례로 완성하고 『데메트리우스(Demetrius)』를 작업하기 시작하지만 결국 끝을 맺지 못한다.

실러가 죽기 몇 달 전부터 실러가 죽었다는 가짜 뉴스가 나돌았다. 실러는 1805년 2월부터 실제로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실러는 5월 1일에 극장으로 가는 길에 괴테를 마지막으로 만났고, 9일에 폐결핵으로 인한 폐렴으로 마흔여섯 살의 나이로 죽었다. 1805년 5월 12일에 바이마르의 성 야곱 교회 묘지에 안장되었고 1826년 이장을 위해 발굴한 유골이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에 보관되었다가 1827년 12월 16일 바이마르에서 새롭게 건설된 공동묘지의 ‘군주 묘역(Furstengruft)’에 매장하지 않고 안치되었으며, 나중에 괴테도 본인의 바람에 따라 실러 옆에 놓이게 되었다.

실러는 평생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박차를 가했고, 최고의 이상을 추구하려는 명예심과 열정에 가득 찬 삶을 살았다. 그에게 이런 의지를 부여한 것은 뜨겁고 격렬한 감정으로, 더 높이 비약함으로써 헌신과 희생이라는 이상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실러는 비극적 운명을 도덕적 행위나 영웅적 행위 또는 범죄적 행위라도 인간의 위대함을 행해 가는 의지와 현세적 정의의 회복으로 생각되는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의 변증법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비극적 운명은 그의 드라마에서 역사적 세계와 현실의 세계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러는 이 역사적 현실에 의해 운명적인 인간의 삶의 현실을 보여 주려고 했던 위대한 작가였다. 대표적인 희곡으로는 『간계와 사랑』(1784), 『군도』(1781), 『발렌슈타인』3부작 (1799), 『마리아 슈투아르트』(1800), 『오를레앙의 처녀』(1801), 『빌헬름 텔』(18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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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8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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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3.3만자, 약 4.3만 단어, A4 약 83쪽 ?

출판사 리뷰

그의 최초의 작품 ≪군도(Die Rauber)≫는 1777년에 착안한 것이라고 하니까 그의 나이 18세 때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당시 공작이 경영하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으므로, 원고를 극비리에 집필하면서 한편으로는 우수한 학생으로서 논문 <인간의 동물적 성질과 정신적 성질에 관해서>를 작성하여 졸업논문으로 제출하였다. 1780년 가을 드디어 학교를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겨우 17그루덴을 받으면서 슈투트가르트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이미 직장에 없었으며, 부지런히 ≪군도≫의 원고를 완성시켜 1781년 5월에 자비로 출판하였다. 아무도 무명작가의 작품을 출판해 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작품의 평판은 불과 몇 주일 동안에 실러의 이름을 전 독일의 구석구석까지 떨치게 하였다. 그 이듬해에 그것이 만하임에서 상연(上演)되었을 때는 공전의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뒤이어 그 성공에 따라 함부르크, 라이프치히, 베를린 등 주요 도시에서 차례차례 상연되었다. 특히 실러 자신이 의외로 생각한 것은 그 희곡이 바로 오이겐 공작의 근거지인 슈투트가르트 시에서 공공연하게 몇 번이고 상연되어 대단한 인기를 끈 사실이었다. 실러는 그 희곡을 쓸 때 대단한 결심을 하였었다. 친구에게 편지로 그때의 심정을 밝힌 바에 의하면, 그는 경우에 따라 그 작품 때문에 영영 고향과 가족을 이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하기도 했다. 물론 그 작품의 내용이 공작에 대한 반항을 표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군도≫의 주제는 사회악에 대한 도전, 압제 인습에 대한 반항, 자유와 이상에 불타는 정의감 등에 있다. 그 속에는 열혈청년 실러 자신의 기백이 그대로 숨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공국(公國)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탄압정치를 정면으로 공박하고, 그와 같은 탄압정치에 대하여 무력하게 아부, 굴복하는 동시대인에 대해서까지 신랄한 비평을 가하고 있다. 대체로 실러의 희곡은 후기 작품에서는 내적 자유의 추구가 많은 데 비하여, 초기 작품에서는 외적 자유를 좇는 경향이 강하였다.
특히 ≪군도≫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잘 나타나 있으며, 슈트름 운트 드랑 정신에 가장 투철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순진하고 용감한 주인공 카를은 자기의 친동생 프란츠의 모략으로 집에서 쫓겨나고 순정을 짓밟히게 되자, 마침내 속세에 반기를 들고 도둑단의 두목이 되어, 주먹과 실력으로써 썩은 사회를 개혁하려 든다. 그의 넘쳐흐르는 격정은 비열과 불의에 대해서는 참지 못하고, 상대자가 왕후이든 승려이든 또는 자기 자신의 부하이든 그 자리에서 처치하고야 만다. 한편 그와는 정반대 되는 성격의 대표인 동생 프란츠는, 모략과 중상에 능할 뿐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는 아무리 신성한 것이라도 서슴지 않고 희생시킨다. 그는 아버지를 속여서 형 카를을 모함하고 나중에는 아버지마저 쫓아 버리고, 자신이 영주가 되어 무서운 탄압정치를 시행한다.
저자가 여기서 프란츠의 모델로 오이겐 공작을 암시한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결국 악은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이어서 프란츠는 갖가지 악행 끝에 무서운 보복을 받게 된다, 카를도 그 동기는 동정할 여지가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많은 인명을 살상하였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의 희생자 아말리아를 자기 손으로 죽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자기가 저지른 죄의 값을 받는 것이다. 자기 행위에 대한 벌을 받고, 파괴된 사회의 질서를 보상하려는 카를의 태도는 실러 자신의 독특한 도덕적 입장을 보여 주는 것이다. 카를은 마지막 장면의 독백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나는 이 세상을 폭력으로써 아름답게 할 수 있고, 국법을 유린함으로써 국법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닌가! 아직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럽혀진 국법을 다시 보상하고, 어지럽혀진 질서를 다시 회복하는 일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다. 그것은 이 질서가 침범될 수 없는 존엄한 것이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 앞에 전개해 보여 주는 것이다. 그 희생이 될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그 질서를 위하여 죽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그는 자진해서 국법의 제재를 받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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