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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말
1장 칸트와 하이데거 1. 하이데거의 칸트 해석 배경 2. 하이데거 해석의 폭력성? 3. 『비판』의 현상학적 해석 4. 『비판』과 ‘칸트책’의 구성 5. 이 책의 구성 및 진행 2장 칸트책 읽기 제1편 형이상학 정초의 단초 제2편 형이상학 정초의 실행 A. 형이상학 정초 실행을 위한 소급 차원의 규명 B. 존재론의 내적 가능성 구상을 실행하는 다섯 단계 정초 1단계 순수인식의 본질요소들 정초 2단계 순수인식의 본질 통일성 정초 3단계 존재론적 종합의 본질 통일성의 내적 가능성 정초 4단계 존재론적 인식의 내적 가능성의 근거 정초 5단계 존재론적 인식의 완전한 본질 규정 제3편 형이상학 정초의 근원 A. 정초된 근거 특징짓기 B. 두 줄기의 뿌리로서 초월론적 상상력 C. 초월론적 상상력과 인간적 순수이성의 문제 제4편 형이상학 정초의 반복 A. 인간학에서 형이상학 정초 B. 인간 유한성의 문제와 현존재의 형이상학 C. 기초존재론으로서 현존재의 형이상학 3장 하이데거와 칸트 1. 해석의 폭력성 재고 2. 칸트와 하이데거, ‘칸트책’과 『존재와 시간』의 거리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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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는 이러한 작업이 ‘존재이해’와 더불어 실존하는 존재자인 현존재의 존재 구성틀을 분석하는 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무렵 그는 자신의 철학적 기획, 곧 기초존재론을 현존재의 존재 구성틀을 분석함으로써 형이상학을 정초하는 작업으로 이해했다. 『존재와 시간』도 그런 작업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비판』에도 동일한 작업의 선구적 형태가 엿보였다. 그런 맥락에서 하이데거는 ‘칸트책’의 서두에 “순수이성비판을 형이상학의 정초로 해석함으로써 기초존재론의 이념을 해설함”(KPM, 5)이라는 제목을 달아 두었다.
--- p.14 하이데거는 칸트의 형이상학 정초란 전인미답의 영역으로 침투하는 시도와 같다고 평한다. 이처럼 무언가를 최초로 감행하는 “창조적 개시”(KPM, 19)는 부득이하게도 미리부터 어떤 절차를 따라 탐구를 진행할지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운 다음 실행을 착수하는 식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오히려 차근차근 파고들어 가면서 스스로 길을 개척하는 수밖에 없다. 하이데거는 칸트의 작업이 실로 그러한 작업이었다고 본다. --- p.43 하이데거는 일반형이상학을 정초하는 맥락에서 칸트가 초월론적 논리학에 우위를 부여하는 데는 나름 정당한 면이 있음을 인정한다. 칸트는 사고의 본질이 직관에 봉사하는 데 있음을 파악하고서 사고가 어떻게 직관에 연관될 수 있는가를 초월론적 논리학에서 해명하고자 했다. 칸트가 제기했던 물음은 ‘어떻게 순수사고가 순수직관과 내적으로 연관되는가’이다. 『비판』에서 초월론적 논리학이 거의 모든 지면을 차지하고 거의 모든 문제를 다루는 이유는, 칸트가 일차적으로 문제의 초점을 사고와 이성의 유한성에 놓고 그로부터 직관과의 연관성을 해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 p.92 앞 절까지의 내용으로 칸트의 도식론에 대한 주해는 끝난다. 그렇지만 하이데거는 칸트가 왜 처음에 도식화 문제를 포섭(Subsumtion)이라는 용어로 도입하는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앞서 연역 절에 대한 주해를 마치고서 하이데거가 칸트가 왜 초월의 해명이라는 과제를 ‘연역’이라는 법률적 용어로 도입하는가에 대해 설명했던 것과 유사하다. 앞에서 하이데거는 연역 절이 표면적으로 취했던 소송 형식이 초월이라는 그 절의 실질적 과제를 제시하기는커녕 오히려 범주의 논리적 타당성 문제를 핵심으로 받아들이도록 오도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 p.138 하이데거는 칸트의 순수촉발 개념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촉발은 유한한 직관이 직관되어야 할 것을 수용하는 방식이다. 우리 자신이 아닌 존재자는 우리 신체의 감관에 접촉함으로써 직관적으로 수용된다. 경험적 직관에서는 이처럼 우리 자신이 아닌 존재자로부터 우리 자신이 촉발당한다. 그것이 우리를 덮친다. 하지만 순수한 수용으로서 순수직관, 곧 시간은 순수하게 촉발한다. 즉 자신이 아닌 것으로부터 촉발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촉발한다. 촉발하는 것도, 촉발되는 것도 우리 자신이다. --- p.201 형이상학 정초의 반복이라는 과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이처럼 인간 실존에 필수적인 존재이해가,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 실존의 유한성의 토대라는 점이다. 그는 제1편에서 칸트에게서 인식의 본질을 해명하면서 존재자를 수용해야만 한다는 직관의 유한성이 형이상학 정초의 출발점임을 보여 주었다. 이제 그는 칸트에게서의 인식과 직관의 유한성을 실존의 유한성으로 한층 심화하고자 한다. --- p.232~233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현존재의 존재의미를 시간성으로 해석하고 존재 일반의 의미를 시간의 지평에서 해석하고자 한다. 기초존재론의 기획은 이런 맥락에서 ‘존재와 시간’의 연관을 밝히는 작업이다. 기초존재론의 이념에 따라 칸트를 해석하는 ‘칸트책’에서도 ‘존재와 시간’의 연관이 확인된다. 존재자가 대상으로 맞설 수 있는 지평은 시간의 지평이기도 하다. 항구성이나 변천과 같은 ‘초월론적 시간규정’으로서 순수한 시간상이 실체나 우유와 같은 관념을 존재론적 술어로 감성화하여 존재자가 대상으로서 맞설 수 있는 지평을 형성한다. 이처럼 ‘존재와 시간’의 연관이 ‘칸트책’과 『존재와 시간』을 연결한다. --- p.2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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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가 바라본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그리고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
하이데거는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를 통해, 신칸트학파를 비롯해 주로 인식이론적 관점으로만 읽혀 오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새롭게 해석하고자 했다. 저자에 따르면, 하이데거가 이 책에서 시도한 것은 자신의 근본 문제의식(“존재물음”)과 관련하여, 칸트 철학의 의도를 형이상학 정초라는 맥락에서 재조명하려는 작업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하이데거는 그 목적에 따라 먼저 3가지 물음을 던졌다고 정리한다. 그것은 ① ‘칸트가 당대에 마주했던 형이상학 개념이란 어떤 것인가?’ ② ‘칸트가 형이상학을 정초하면서 무엇을 단초로 삼았는가?’ ③ ‘왜 그러한 정초가 순수이성비판인가?’이다. 결국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면서,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을 하이데거식 존재론 관점에서 재해석하고자 한 결실이 바로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하이데거가 볼 때, “칸트가 당대에 마주했던 형이상학 개념”이란 바로 18세기 독일 학교철학에서 통용되던 도식적이고 이론 중심적인 형이상학이었다. 칸트는 이러한 형이상학이 “어떠한 구속력 있는 통찰도 내주지 못하는 실정”을 인식했고, 이를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일신하고자 했다. 따라서 하이데거의 해석에 따르면, “칸트의 전 철학적 기획은 이러한 형이상학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일신하는 작업”이었다. 그렇다면 칸트가 이러한 작업의 단초로 삼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존재론적 인식의 기초 위에서 초감성적 존재자를 비롯한 모든 존재자의 인식 가능성 문제가 다루어진다”는 점이었다. 마지막으로, 칸트가 이 작업을 “순수이성비판”이라 부른 이유는, 인간의 인식 능력(순수이성)의 가능 조건과 한계를 먼저 비판적으로 살핌으로써 형이상학을 정초할 수 있으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이데거의 독해는 칸트를 지나치게 ‘존재론적’으로 재구성했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하이데거 또한 자신이 전통적 칸트 해석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음을 어느 정도 의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그 표면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텍스트에 숨어 있는 말해지지 않은 것들까지 읽어 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위대한 철학자를 해석한다는 것은 곧 그와 대결을 펼친다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는 곧 칸트와 하이데거가 벌인 치열한 대결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종종 스포츠 시합에서 많이 보듯이, 위대한 선수들의 시합에는 그것을 중계해 주는 캐스터와 해설자가 필요한 법이다. 그들이 없다면 읽어 낼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하이데거의 칸트 해석을 단순히 따라가거나 옹호하기만 하는 대신, 하이데거와 칸트 철학 사이의 간극이나 긴장 또한 세심하게 짚어 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하이데거와 칸트가 벌이는 철학함의 대결에 있어 적절한 캐스터, 해설자가 되어 줄 것이다. 이제 하이데거와 칸트의 위대한 시합을 방청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