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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가족처럼 지내왔지만 이제는 아무도 그를 달가워하지 않는 코크 가문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대한 대저택이 기억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린 60대 중반의 콘라드 랑을 자석처럼 잡아당긴다.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대해 코크 집안의 사람들은 걱정스러워한다. 특히 가족의 수장이고, 스위스의 유명한 대기업, 코크를 이끌어온 당찬 여장부인 여든 살의 엘비라 젠느의 근심은 커져만 간다. 시간이 지나면서 콘라드가 점점 유년시절을 선명하게 기억해내는 것이 엘비라를 당황하게 만든 데에는 이유가 있다. 엘비라가 영원히 숨기고 싶은 비밀 때문이다.
콘라드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는 아주 특이했다. 불륜으로 태어난 하녀의 아들이었지만 억만장자 아들의 친구로 코크 집안에서 자라났다. 그는 재벌가의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였으나 항상 그들로부터 따돌림과 냉대를 받았다. 그렇게 자라 이제는 정신이 오락가락한 알츠하이머 환자가 된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그를 냉대 속에 방치하며 키운 코크 집안의 대저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엘비라 젠느는 콘라드 랑을 가까운 곳에 두고 감시하기 위해 그를 자신의 가족들 속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콘라드는 시간이 지날수록 엘비라에게 점점 큰 위협이 된다. 더구나 코크 집안의 가족 중에 뜻밖에도 그를 보호해주려는 사람이 나타나 수수께끼 같은 질병인 알츠하이머와 엘비라의 교묘한 방해공작에 맞서 싸우는 극적인 한 판 승부가 벌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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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고 사라져가는 인간의 삶에 관한 철학적 성찰
과거의 흔적인 기억, 기억만큼만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
늙어가고 사라져가는 인간의 삶에 관한 철학적 성찰 과거로부터의 연속선상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평범한 인간들에게 기억이란 ‘자신이 누구인가’를 일깨우게 하는 탯줄이다. 사람이‘무엇을’기억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현재가, 그 사람의 가치와 존재 의미가 결정되는 것이다.『스몰 월드』에서 콘라드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키워드는 알츠하이머이다. ‘알츠하이머’라는 질병은 뇌의 손상이 진행되는 정도에 따라 인간에게는 그토록 중요한 기억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거나, 혹은 아무 예고 없이 사라지게 한다. 그래서 환자 본인은 물론 그를 돌보는 보호자들마저 혼돈으로 몰아넣는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환자들은 전혀 다른 세계에 살게 되는 셈이다. “스몰 월드!(세상 참 좁군)”라는 콘라드의 한 마디 외침은, 탐욕에 의해 은폐된 진실은 만천하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경구이기도 하지만, 그의 뇌에 저장하고 있는 기억만큼 자신의 존재가치가 수시로 뒤바뀌고 주어진 상황에 눈치껏 적응해나가야만 했던 콘라드의 조각난 인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콘라드는 알츠하이머가 진행됨에 따라 예순 다섯의 콘라드로부터 여섯 살의 코니가 되기도 하고 또 다섯 살의 토미가 되기도 한다. 그의 세계는 이미 조각조각으로 나뉘어 연속성을 잃어버린 작은 세상들로 분해되고, 뜻밖에도 그 안에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던 그의 유년 시절에 벌어졌던 타인의 음모와 조작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스몰 월드』는 알츠하이머라는 질병, 스위스 재벌가, 그리고 노년기의 한 남자가 만나게 되는 감미롭고 따스한 사랑을 다루었다. 얼핏 각각의 소재로도 충분한 이야깃거리가 될 법도 하지만, 결국 이것들은 세월이 흘러가는 가운데 사람이 늙어가고 잊혀지는 과정을 철학적이고 문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도구이다. 자신의 주변에서 늙어가고, 병들어가다 사라지는 사람들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며, 자기 자신 역시도 그 운명을 피할 수 없을진대, 『스몰 월드』는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기에 더욱 독자들의 가슴을 적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