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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ㆍ9
제12장/ 칸트의 인간학적 단잠과 정복적 과학주의ㆍ27 제1절/ 칸트 인식론의 기본구조ㆍ37 1.1. 인식론의 전반적 개관ㆍ37 1.2. 경험의 지성화 조작ㆍ41 1.3. 칸트의 관점주의와 ‘동굴·종족의 우상’ㆍ71 1.4 물자체의 인과적 도출의 자가당착성ㆍ82 제2절/ 과학주의 이데올로기의 정초ㆍ87 2.1. 인식의 지성화, 지성의 이성화ㆍ87 2.2. ‘코페르니쿠스적 전회’?ㆍ102 2.3. 칸트의 실체·인과성·필연성 범주와 그 오류성ㆍ108 제3절/ 도덕감정 없는 실천이성의 도덕철학ㆍ121 3.1. 실천이성적 이념(이데아)과 권력이성ㆍ121 3.2. 순수도덕론과 야경국가적 도덕세계ㆍ132 3.3. 도덕감정을 배격하는 공리주의적 정언명령들ㆍ156 제4절/ 동정심 매도, 원죄적 성악설, 반反중도론ㆍ197 4.1. 칸트의 사이코패스적 동정심 매도와 그 파장ㆍ197 4.2. 의무론적 동정심 매도의 자가당착성ㆍ220 4.3. 칸트의 사이코패스적 성악설: 원죄설을 향하여ㆍ238 4.4. 사이코패스적 반反중도론ㆍ310 4.5. 거짓말 절대 금지론과 사이코패스적 노이로제ㆍ322 제5절/ 도덕형이상학의 종교적 주술화와 반反계몽ㆍ333 5.1. 칸트의 기독교적 성악론과 도덕의 재再주술화ㆍ335 5.2. 칸트의 주술신앙ㆍ340 제6절/ 미美와 미감을 등진 반反중도 미학ㆍ349 6.1. 객관적 미감을 부정하는 주관주의 미학ㆍ350 6.2. 칸트의 미 개념의 모호성ㆍ368 6.3. ‘일종의 공통감각’으로서의 미감?ㆍ391 제7절/ 칸트의 중국혐오와 반反중국주의ㆍ403 7.1. 칸트의 자연지리학과 사이코패스적 중국 비방ㆍ403 7.2. 칸트와 상반된 헤르더와 모스의 중국관ㆍ414 제8절/ 칸트의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ㆍ427 8.1. ‘체계적’ 인종주의와 지독한 흑인 경멸ㆍ427 8.2. 흄을 원용한 칸트의 인종주의적 흑인 비하ㆍ448 8.3. 유대인은 뱀파이어다, 유대교에 안락사를!ㆍ462 제9절/ 영구평화론과 전쟁의 정당화ㆍ487 9.1. 전쟁과 국제연합적 영구평화론ㆍ487 9.2. 영구평화의 제1·2·3조건ㆍ500 9.3. 홉스주의적 국제정치관과 영구평화론의 모순ㆍ512 제10절/ 계몽 이념의 주관화와 파괴ㆍ529 10.1. 자기귀책적 미성년성을 탈피할 용기로서의 계몽?ㆍ530 10.2. 자유공론을 통한 계몽? 혁명의 부정과 체제부역ㆍ533 제11절/ 공허하고 위험한 철학자 칸트ㆍ547 11.1. 데이비드 흄에 대한 칸트의 빗나간 비판ㆍ547 11.2. 칸트철학의 ‘공허하고 위험한’ 본질ㆍ556 제13장/ 헤겔의 이성숭배와 관념철학 · 561 제1절/ 의식과 자기의식의 인정투쟁ㆍ565 1.1. 의식: 감성적 확신·지각·지성ㆍ565 1.2. 추상적 자기의식ㆍ571 1.3. 자기의식과 인정투쟁ㆍ597 제2절/ 헤겔의 국가론과 정치철학ㆍ633 2.1. 세계정신 속에서 헤겔ㆍ633 2.2. 이중적 국가개념: 지성국가와 이성국가ㆍ636 2.3. ‘민족정신’과 ‘근대국가’의 모순적 절충ㆍ664 2.4. 헤겔의 군국주의 세계관과 역사관ㆍ673 제3절/ 헤겔의 민족국가론과 국제정치관ㆍ701 3.1. 무의식, 정치적 낭만주의, 신적 민족국가ㆍ702 3.2. 타나토스적 인간관과 투쟁유일주의적 국가론ㆍ710 3.3. 군국주의적 국제정치관과 게르만 지배 민족론ㆍ715 3.3. 헤겔에 대한 세계심판으로서 세계사ㆍ721 |
黃台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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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칸트가 “과학으로 등장할 수 있게” 만들려는 이성 비판적 형이상학, 즉 그가 순수이성·실천이성·판단력 비판의3대 비판서로 정초했다고 자부하는 그의 근대적 ‘과학’이 ‘인간학’이라는 이 ‘비과학적’ 메타 설화 위에 올라서 있는 꼴이 된다. ‘비과학’에 근거를 둔 ‘과학’이라는 이 근본모순은 인간 본성을 신의 본성과 동격으로 만드는 ‘인간의 신격화’를 통해서만 그 신격화 정도에 비례해서 완화된다. 근대과학의 ‘과학성’에 대한 철학적 보증이 인간의 신격화에만 목을 매는 것이다. 이런 논리적 궁경 때문에 칸트의 인식론과 도덕론 안에서 ‘인간’은 한껏 신격화되어 신을 죽이고 ‘신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 수 없다. (푸코에 의하면, 이 ‘신의 죽음’은 동일한 논리적 이유에서 ‘인간의 죽음’으로 직통한다. 이 ‘살신殺神’과 ‘살인殺人’은 ‘동근원적同根源的’인 것이다. 신을 죽이고 무소불위로 신격화된 인간은 ‘과학적’ 인간 개조·자연 개조론으로 인간 대중을 유린·학살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한편, 인민대중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 신적 학살자를 다시 제거한다. 칸트의 세계 속에서는 전대미문의 시신弑神·인간 학살·시군弑君·자연 파괴가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다.) 말하자면 칸트의 ‘인간학’은 인간을 본유관념이 다름없는 지각 형식과 연역된 개념들(공간·시간의 감성 형식과 12개의 지성 범주)을 선험적으로 보유하거나 연역해 낼 ‘신적’ 영웅으로 만드는 무비판적 주장, 즉 인간의 자위적自慰的·자화자찬적 독단론이고, 이 비과학적·신화적·독단적 인간학에 근거를 둔 그의 인식론과 도덕철학의 ‘과학성’ 요구는 철두철미 비과학적 ‘과학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요구, 또는 질풍처럼 진보하는 경험과학을 부러운 나머지 거짓으로 과학 행세를 하는 칸트철학의 자기 기만적 ‘리플리 증후군’이다.
--- p.39 칸트는 정치 철학적으로 철두철미 플라톤주의적인 철인치자, 그것도 ‘왜곡된’ 버전의 철인치자론을 대변하고 있다. 상론했듯이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철인치자를 1인으로만 한정한 것이 아니라 ‘여러 명’으로 열어 놓았고 그의 최후 저작 『법률』에서는 군주정·귀족정·직접민주정을 결합한 ‘혼합정체’도 기안했기 때문이다. 칸트가 『영구평화론』에서 영구평화의 제1조건으로 삼는 ‘공화정’도 결코 ‘민주공화정’이 아니라, 한낱 인민들이 입법에 영향을 미치고 법에 의해 다스리는 법치주의적 군주정을 뜻할 뿐이다. 칸트의 ‘지성’이 자연에 법칙을 흠정하는 기획 입법자로서 자연을 지배하는 ‘권력 지성’임과 동시에, 칸트의 ‘이성’도 물자체(자연 자체)와 인간을 지배하는 ‘권력 이성’임이 이미 이쯤에서 분명해진다. 신적 철인치자(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아우구스티누스·토머스 모어)·철인입법자(데카르트·루소)·철인군주(라이프니츠)·철인혁명가(로베스피에르·마르크스·레닌·스탈린)·철인총통(니체·히틀러·무솔리니)·철인주석(모택동)·철인수령(김일성)으로 이어지는 비민주적 ‘권력 이성’의 지성주의 지배 이론 계열에서 칸트도 데카르트·라이프니츠·루소와 함께 고대와 중세의 민중 적대적·합리주의적 지배사상을 근현대의 자코뱅 혁명독재·군사독재·공산독재·파시즘으로 이어주는 결정적인 고리인 것이다. --- p.129 니체는 엉뚱하게도 칸트를 “쾨니히스베르크의 중국인”이라고 조롱했다. 하지만 정작 칸트는 공자 숭배적·중국 열광적이고 보편주의적·세계주의적이었던 18세기와 19세기 초의 유럽에 어울리지 않게 사이코패스다운 반反공자·반反중국주의자·중국 혐오주의자였다. 중국 문화와 공자의 도덕철학은 철두철미 본성적 도덕감정의 경험·관찰과 발양·확충과 진성盡性·수신에 근본을 둔 경험론적 도덕과학에 근거했다. 따라서 공자의 이 도덕과학은 칸트의 엽기적 도덕형이상학 및 실천이성적 도덕법칙과 대극對極을 이루는 도덕론이었다. 따라서 칸트의 중국 문화 비방과 공자철학 비판은 예정된 것이었다. 따라서 1781년 『순수이성 비판』과1788년 『실천이성 비판』을 통해 사이패스적 도덕형이상학이 완성되기 전에는 칸트의 중국관은 비교적 객관적이었으나, 이 두 비판서가 완성되고 나서부터는 그의 중국관은 부정 일변도의 중국 혐오로 치달았다. 칸트는 그가 ‘자연지리학(Physicalische Geography)’이라 이름 붙인 학과목을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매년 여름학기마다 1756년부터 (그의 퇴직1년 전인) 1796년까지 40년간 대학생들에게 가르쳤다. 그간 공간된 그 강의록과 강의 노트의 중국 관련 부분을 보면 이상하고 괴이한 엽기적 내용이 가득 채워져 있다. 중국 관련 강의들은 그 내용이 학기마다 다르거나 심지어 상반되고 그릇된 것들이었지만 칸트는 오류를 정정한다는 말도 없이 그냥 그다음 학기에는 반대되는 내용을 가르쳤다. 그는 교육자적 양심도, 학자적 양심도 없이 그야말로 아무렇게나 가르친 것이다. 그런데 ‘양심 없는 것’과 ‘이상하고 괴이하고 엽기적인’ 것은 사이코패스의 특징이 아니던가! --- p.403 그러나 자기의식과 자기의식의 첫 만남을 이렇게 ‘투쟁’으로 유일 시 하는 것은 일상적·역사적 경험에도 반하는 것이다. 중미 인디언과 콜럼버스 일행의 첫 만남, 북미 인디언과 17세기 초 청교도의 첫 만남, 호주 원주민과 쿡선장 일행의 첫 만남은 환영·환대·우호선린이었다. 이 우호선린 관계가 깨진 것은 서양인들이 서양의 전통적 투쟁유일주의에 따라 자기들을 환대하고 원조해 준 원주민들에 대해 호전주의적 침략을 자행하면서부터였다. 헤겔은 서양의 이 고질적 풍토병인 투쟁유일주의에 따라 자기의식과 자기의식의 첫 만남에서 인정을 위해 ‘투쟁’을 유일 시 했고, 이 ‘인정을 위한 투쟁’이라는 투쟁유일주의 공식에 따라 국제관계도 대등한 인정을 위한 ‘전쟁’을 불가피하고 필수적인 계기로 기술하고, 나아가 전쟁을 찬양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상호인정은 단지 투쟁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개인 간, 그리고 국가 간의 대등한 인정은 우호선린·환영·환대·교우·교제를 뒷받침해 주는 ‘사랑과 우의의 힘’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헤겔은 서양의 전통적 투쟁유일주의에 젖어 서로를 타자로서 대하는 생면부지의 자기의식들이 처음 만나면서부터 단순히 ‘인정을 위한 투쟁’을 벌일 것으로 속단한다. --- p.5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