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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ㆍ9
제16장/ 니체의 반도덕적 권력의지와 과학적 인종주의ㆍ25 제1절/ 반도덕적·반평등주의적 초인과 인종전쟁ㆍ33 1.1. 육체 이성의 초인과 초인적 선민ㆍ33 1.2. ‘종말인들’로서의 소시민적 중산층에 대한 경멸ㆍ40 1.3. 권력국가에 대한 경멸과 철인총통ㆍ44 1.4 인종존재론과 ‘과학적 인종주의’ㆍ49 1.5. 신의 죽음과 반도덕적 권력의지ㆍ63 1.6. 독일인·유대인의 인종혼합과 새 지배인종의 창출ㆍ72 1.7. 인도 마누법전과 카스트제도의 도입ㆍ76 제2절/ 동정심 매도와 초인의 정체: 사이코패스ㆍ91 2.1. 니체의 칸트주의적 동정심 매도와 불구자제거론ㆍ91 2.2. 동정심 없는 ‘초인’과 사이코패스 도덕ㆍ110 제3절/ 사이코패스의 인종주의적 정의국가ㆍ119 3.1. 니체의 관점주의와 트라시마코스적 정의론ㆍ119 3.2. 인종카스트 정의국가와 인종전쟁ㆍ134 제4절/ 니체의 사이비 미학: 예술과 놀이의 혼동ㆍ159 4.1. 플라톤의 순수예술론에 대한 니체의 오해ㆍ160 4.2. 놀이를 예술로 착각하는 사이비 미학ㆍ174 4.3. 악마적 정치미학: 정치로서의 사이비 예술ㆍ197 제17장/ 하버마스와 소통 이론적 합리주의ㆍ205 제1절/ 이데올기로서의 기술과 생산 패러다임의 비판ㆍ211 1.1. 기술의 이데올로기 역할에 대한 비판ㆍ211 1.2. 노동(생산) 패러다임에 대한 소통 이론적 비판ㆍ239 제2절/ 소통적 권력이론ㆍ247 2.1. 한나 아렌트의 권력 개념과 아포리아ㆍ248 2.2. 하버마스의 아렌트 비판과 소통적 권력 개념ㆍ258 2.3. 소통적 권력론의 허점과 오류ㆍ279 제3절/ 논의적 민주주의, 법치국가, 쌍선적 토의 정치ㆍ287 3.1. 공론장 이론과 법치국가론ㆍ288 3.2. 논의적 민주주의와 쌍선적 토의 정치ㆍ383 3.3. 소통적 주권의 이론ㆍ413 제4절/ 논의윤리학과 이론적 딜레마ㆍ427 4.1. 하버마스의 관점인계론ㆍ431 4.2. 콜버그의 입장선회에 대한 하버마스의 비판ㆍ440 4.3. 논의윤리학의 공감론적 입장전환ㆍ447 제5절/ 언어소통적 관점인계의 합리적 해석학ㆍ471 5.1. 하버마스의 속류적 ‘해석’ 개념ㆍ471 5.2. 가상적 관점인계의 합리적 해석학ㆍ479 5.3. 관점인계의 난관과 불가능한 합리적 해석학ㆍ511 에필로그ㆍ528 |
黃台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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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니체는 합리주의를 극복한 철학자가 아니다. 그는 합리주의자들의 ‘작은 이성’을 경멸함과 동시에 경험론자들이 중시하는 영혼의 다른 부분인 ‘감성·감정’도 경멸하는 또 다른 합리주의자, ‘큰 이성(육체 이성)의 합리주의자’다. 혈통과 유전자를 숭배하고 이에 따라 인종주의를 ‘과학적’ 이론으로 중시할 수밖에 없는 초인의 ‘육체 이성’인 ‘큰 이성’의 궁극적·최종적 정체는 바로 ‘인종적 이성’, 즉 인종주의다. 이 육체적·인종적 지자도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철인과 마찬가지로 무제한적·무제약적 지혜 애호자다. “나는 슬기롭고 싶다(mochte ich klug sein). 나는 나의 뱀과 똑같이 근본적으로(von Grund aus) 슬기롭고 싶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을 나는 청원한다, 나는 나의 자부심을, 나의 자부심이 늘 나의 슬기와 함께 하기를 청원한다.” 이 뱀은 그 슬기로운 사탄이다. 성서의 창세기에서 사탄은 뱀으로 변신해서 몰래 에덴동산에 스며들어 이브와 아담을 꾀어 타락시킬 정도로 슬기로웠다.
--- p.39 니체의 국가는 플라톤의 카스트적 정의국가와 홉스의 트라시마코스적 정의국가를 인종주의적으로 혼합한 인종카스트적·트라시마코스적·사이코패스적 정의국가다. 상론했듯이 니체의 선善은 강자의 권력의지이고, 그의 정의는 열등인종과의 교접과 혼인이 배제된 신성한 ‘지배적 카스트’로 등극한 우월한 인종의 이익이다. 니체의 국가론에서는 헤겔의 이성국가론과 지배민족론의 냄새도 난다. 다만 헤겔의 이성은 니체가 ‘작은 이성’이라 부르는 작은 두뇌의 ‘이지적 이성’인 반면, 니체의 이성은 그가 ‘큰 이성’이라 부르는 ‘육체 이성’일 따름이다. 그리고 니체의 “지배인종”은 헤겔의 “지배민족”의 인종카스트적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 --- p.119 니체의 안목에는 자연미가 없다. 그는 예술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예술미를 유희적 재미와 혼동하고 예술과 놀이를 구분하지 못했다. 그는 인간의 현존재를 예술에 의해 가능케 하기 위해 백성을 ‘작품 재료’나 ‘장간감 소품’으로 삼아 유희적 예술 작품으로 빚어내려는 소위 ‘사이비 실존미학’과 ‘정치미학’을 말한다. 니체의 미학은 두 측면을 갖는다. 한 측면은 예술을 놀이로, 미를 재미로 착각하는 ‘유희적 사이비 미학’이고, 다른 한 측면은 백성을 재료로 삼아 ‘사이비 예술 작품’을 빚어내려는 ‘예술로서의 정치’, 또는 ‘정치미학’이다. 전자는 철저히 아리스토텔레스·칸트답고, 후자는 상당히 네로답다. 니체의 이 ‘사이비 미학 정치론’은 아름다운 밤을 위해 로마에 불을 지르는 살벌하고 악랄한 정치 명령을 내린 네로처럼 정치를 “불가능의 예술”로 여긴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황당무계한 과대망상 정치론과 “절망하지 않기 위해 절망하는” 미학적 허무주의 정치론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 p.159 그러나 필자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간의 방법론적 이원론은 이런 그릇된 해석 개념에 근거하여 폐기처분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설명은 속성을 대상으로 삼는 데다 연결적(connective)이고 인과적(causal)인 반면, 해석은 인간 본성적 감정들의 의미를 대상으로 삼는 데다 연관적(conjunctive)이기 때문이다. ‘설명’이 ‘인과적’인 반면, ‘해석’은 인과적이 아니라 ‘연관적이다’라는 말은 ‘설명’이 어떤 자연현상의 필연적 ‘원인’을 밝히는 것으로 완결되는 반면, 가령 어떤 사회적 행동의 의미에 대한 ‘해석’은 인간의 수많은 자발적인 본능적 성정과 욕구 중에서 이 행동이 기초한 어떤 감각적, 감정적 본성으로서의 - 필연성 없는 - 선택적 의미 연관성(‘근거’, 즉 ‘이유’)을 밝히는 것으로 완결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해석’은 이미 인간들이 저 다양한 본능적 성정(감각과 감정)과 욕구를 선先 해석학적?자연 해석학적으로 이미 ‘이해’하며 살고 있는 데 더하여 타인의 감정과 욕구를 공감적으로 미리 알아야 함을 전제한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지금까지 저 공감?감정 이론의 ‘아! 머나먼’ 도정을 맨눈을 부릅뜨고 맨발로 답파해야 했던 것이다. --- p.4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