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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등장하는 연수의 가정은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중상류층이다.
등장인물은 주인공 연수, 그의 남편 지섭, 그리고 연수를 남몰래 사랑하는 정원이다. 소설은 연수가 살고 있는 동네의 주택이 모두 헐리고 그곳에 높은 새 건물이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다. 연수는 그곳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고 아이를 낳았으며 많은 추억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런 정다운 집이 헐리게 되면서 연수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낀다. 그러던 중, 연수에게 두 가지의 일이 벌어진다. 하나는 이름 모를 어느 남자로부터의 흰 장미가 가득 담긴 꽃다발이 날아오고, 지섭(남편)의 애인으로부터 지섭 곁을 떠나라는 경고를 받는다. 무엇 하나 모자람 없고, 무엇 하나 기대할 게 없는 연수에게 찾아온 두 가지 사건은 무미건조하고 메마른 연수의 가슴 한구석에 자리한 불씨를 지핀다. 무표정한 연수의 얼굴에는 다시금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줄 알았던 심장은 다시 요동치게 된다. 가슴속의 꽃잎이 마를 즈음 새로운 꽃다발을 익명으로 전달했던 사람은, 연수의 첫사랑 정원이다. 정원 역시 사업가로서 성공한 편에 속했지만 첫사랑을 가슴에 묻어두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해 한없이 서늘한 일상을 보내던 중, 우연히 자신의 가게로 찾아온 꼬마 손님의 어머니가 연수임을 알게 된다. 정원은 아이의 고객 카드를 통해 연수의 집주소를 알아내고 자신을 숨긴 채 자신의 마음을 연수에게 전한다. 그러나 연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그녀 앞에 나타나고 연수는 고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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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진 첫 번째 장편소설
90년대 이후, 여성주의의 계보를 이어 시대를 풍미했던 서하진의 첫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 서하진이 『현대문학』으로 등단 후 글을 쓰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십 년이 넘었다. 벼락같은 글쓰기 대신 마른 땅을 적시는 촉촉한 이슬비 같은 글을 쓰겠다던 바람처럼 그는 지난 십 년 동안 소설집『책 읽어 주는 남자』, 『사랑하는 방식은 다 다르다』, 『라벤더 향기』, 『비밀』을 소리 없이 세상에 내놓았다. 그간 무심하고 냉소 띤 표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여성을 다룬 그는 주로 단편소설에만 열중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장편소설을 들고 우리 곁에 다가왔다. 서울의 문화와 역사를 되살리기 위해 복원된 청계천 다리를 소재로 쓰여진 장편소설들을 소개하는 창해 ‘맑은내소설선’의 두 번째 소설인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는 작가 서하진의 첫 장편소설이기도 하다. 청계천 오간수교의 이름에 이끌렸다는 작가는 다섯 개의 수문이 있다는 뜻인 오간수교의 이름, 물이 나가는 길을 따라 한밤에 사람들이 몰래 성 안으로 숨어들었다는 옛 이야기에 사로잡혀 단편보다는 긴 호흡의 장편으로 독자에게 다가왔다. 사랑,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욕망 -손끝에 닿으면 변색되고 시들어버리는 꽃잎 같은 사랑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는 사랑이 메마른 한 여자의 가슴에 밀물처럼 밀려온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는 일상을 보내던 연수는, 어느 날 멈춰 있는 듯 미동조차 하지 않던 자신의 가슴에 변화가 오는 것을 느낀다. 낯선 남자로부터 전해진 꽃바구니와 남편의 숨겨진 애인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인해 가슴은 다시금 요동치기 시작한다.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에는 오늘날의 결혼과 사랑으로 인해 빚어진 삶의 모습들을 볼 수 있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익명의 남자로부터 아내에게 꽃바구니가 배달되어 오지만 조금도 의심을 품지 않는 남편 지섭, 남편이 숱한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지만 내색조차 하지 않는 아내 연수, 아들의 바람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라고 종용하는 시어머니, 운전기사와 사랑에 빠져 이혼한 시누이, 그리고 결혼해 버린 첫사랑을 십오 년이 넘도록 잊지 못하는 정원이 등장한다. 스케줄 표에 적힌 일상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사랑하지만 늘 상대를 바꾸는 지섭의 적극적인 사랑과 단 한 번 미치도록 사랑했던 여자로 인해 삶의 뿌리가 흔들리지만 선뜻 다가서지도 못하는 정원의 소극적 사랑,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 가정을 버리고 조건 없는 사랑을 택한 연수의 시누이와 사랑이 부재한 가정이나마 연민과 책임의식으로 지켜내고자 발버둥치는 연수. 이들의 각기 다른 사랑의 형태와 태도는, 사랑에 대한 가치를 생각해보게 하는 진지한 물음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사랑의 형태는 결국 하나의 진정성으로 화합한다. 그들이 획득한 사랑은 세상과 단절되지 않는 소통의 수단이 되어준다.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인물들의 삶은 언뜻 풍요롭고 조바심 칠 필요 없는 여유로움으로 보이지만 풍선처럼 과장되고 한껏 부풀려 있다. 그들이 염려하는 것은 세상과 소통할 수 없게 만드는 사랑의 소멸이다.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는 평범한 어느 날을 특별하게 만든, 일상의 뒤편에 숨겨진 여성의 욕망과 그것을 표출하고자 행동하는 일탈을 그리고 있지 않다. 버석거리는 연수의 마른 일상을 촉촉한 물기로 가득 채운 것, 끊임없이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는 지섭의 지치지 않는 행동의 이유, 바로 사랑을 담고 있다. 그러나 욕심껏 움켜쥔 사랑은 금세 변색되고 시들어버린다.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감정, 사랑을 이야기하는『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통해 굳어진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