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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변에 깃들이고 살았던 우리네 삶의 한편, 그곳에 머물렀던 ‘그녀’의 이야기
이 시대 젊은 작가군에 속하는 작가로는 드물게 걸쭉한 입말과 풍요로운 순우리말 어휘를 자유자재로 구사해 평단의 주목을 받아온 소설가 전성태가 생애 첫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이번에 출간된 『여자 이발사』는 청계천 복원을 기념해 출간하는 ‘맑은내 소설선’의 책이라는 것과 더불어, 지금까지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바 없는 ‘재한在韓 일본인 처’의 존재를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의를 갖는다. 『여자 이발사』는 청계천 열한 개 다리 가운데 수표교를 소재로, 그곳 천변에 흘러들어 이발관을 내게 된 한 ‘일본인 처’의 기구한 삶의 곡절을 더듬어간다. 작가 특유의 질박하고 토속적인 문체와 함께 개인성과 시대성이 어우러져 빛을 발하며 한 인간의 삶을 오롯이 복원해내고 있다. 전성태는 고흥 태생의 소설가다. 작가의 열댓 살 언저리 유년의 한 시절에는 축구와 일본 여자가 자리해 있다. 간척지 갯벌에서 벌인 축구 시합과 갯가 아이들이 동냥아치 대하듯 놀려대던 한 일본 여자가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다. 그 일본 여자와 이 소설에 대해 작가는, “나는 그녀가 우리나라에 어떻게 오게 되었고, 어떤 삶을 살다가 그런 외진 시골에서 외롭게 늙어갔는지 모른다. 그 부분을 채워본 게 이 소설”이라고 전한다. 소설은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과 한국전쟁, 그리고 근대화 과정 등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한 일본인 여자 이발사의 비운의 인생역정을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청계천변에 깃들이고 살았던 우리네 삶의 한편에 이국땅에서 불행한 한 시절을 살다 간 ‘일본인 처’라는 존재가 있었고, 아울러 그들의 소외된 삶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역사의 격랑에 휩쓸린 한 일본인 처의 비운의 삶 소설의 주인공 야마다 에이코는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다 제 발로 유곽을 찾아가 게이샤가 되기를 원한다. 그렇게 게이샤 수련을 거치던 중 조선의 사내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채 그를 따라 현해탄을 건너면서 예기치 못한 운명이 시작된다. 이국땅에서 그녀가 맞게 되는 시련은 사랑하는 남자의 배신만이 아니다. 일본인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해방 직후 조선 땅에서 혼자 몸으로 아이를 기르며 살아가기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일제 강점기에 나라 잃은 설움을 겪은 조선인들은 그 동안의 울분을 에이코에게 쏟아내며 그녀가 뿌리 내리고 살 틈을 좀처럼 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숙명에 무릎 꿇지 않고 이악스럽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간다. 경성의 고급 요정에서 사미센을 연주하는 게이샤로 일하다 이후 전라도 어느 염전으로 거처를 옮겨 이발관을 내보지만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은 여전하다. 유일한 희망이라 할 수 있는 아들마저 사고로 다리를 다치자 그녀는 삶의 터전을 다시 청계천변으로 옮겨간 다. 이즈음 조선의 욕을 거침없이 할 수 있기에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어진 여자는 그곳 천변에 이발관을 내고 삼십여 년 가까운 세월을 건너온다. 훗날 고향이나 다름없는 간척지 염전에서 모진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그녀는 가장 ‘조선 여자’다운 삶을 살아냈다. 에이코의 생애는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따라 일본에서 조선으로, 또 간척지 염전과 서울 청계천변을 오가며 실팍하게 이어진다. 작가는 한국과 일본의 왜곡된 역학관계 속에서 한일 두 나라에게 버려진 존재가 되어버린 일본인 처의 생애를 주인공 에이코의 삶을 통해 복원한다. 한국인으로서든 일본인으로서든 법적 지위를 얻지 못한 채 불행한 경계의 삶을 살아야 했던 그녀들은 결국 “가해국 출신의 피해자들”이 되고 말았다. 작가는 이들의 삶의 처지와 조건을 지켜보며 명쾌하게 풀기 힘든 민족주의 문제를 고민했고, 그러한 고민의 결과물로 이 소설이 태어났다. 작가 특유의 질박하고 토속적인 문체는 이 소설에서도 빛을 발한다.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되기를 원했던 주인공 에이코가 이국에서 홀로 세상과 맞서며 서서히 이 땅의 여자로 동화되어가는 과정에서 그런 문체의 진가가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