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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책을 펴내며 개신교의 정동 정치에 대항하는 신학의 임무 _ 김혜령 I. ‘정동’과 신학의 현대화 II. 왜 혐오하는가 III. 한국 개신교의 정체성 정치 IV. 신학, 무엇을 해야 하는가? 차별과 혐오에 맞서서 — 존 웨슬리의 다문화 사역을 중심으로 _ 박창훈 I. 들어가는 말 II. 런던에서 생긴 일 1. 페터레인 소사이어티(Fetter Lane Society) 2. 파운더리(Foundery) 그리고 시티로드 채플(City Road Chapel) III. 브리스톨에서 일어난 부흥의 불길 1. 옥외 설교(Field Preaching) 2. 연합신도회와 뉴룸(New Room) 3. 환자, 죄수, 포로들을 위한 사역 4. 흑인 노예 무역 반대 5. 북아메리카 선교 — “세계는 나의 교구다” IV. 나가는 말 성서 해석의 기준으로서 ‘상황의 변화’와 ‘낯선 존재’ — 행 15:15-18을 중심으로 _ 김근주 I. 할례 II. 베드로의 발언 III. 야고보의 구약 해석과 판단 IV. 마소라 암 9:11-12 V. 칠십인역 암 9:11-12 VI. 사도행전의 암 9:11-12 해석 VII. 야고보의 판단 VIII. 하나님이 그들을 받으셨다 — 오늘을 위한 함의 IX. 결론 ‘교회 오빠’와 결혼한 여성 동성애자의 공포와 불안 그리고 강박증 _ 권요셉 I. 알아보고 싶은 것 II. 인간은 왜 틀린 세상에서도 맞는 척 살아갈까? III. 동성애자는 어떻게 소외되는가? IV.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V. 나가는 말 미주 지은이 알림 |
Joseph 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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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을 ‘마음(감정)과 몸의 통전성’으로 이해하며 인간과 인간, 인간과 세계 사이의 정동적 영향의 상호 관계성과 네트워크를 강조하는 정동 이론은—고대 그리스 철학의 틀을 빌린 서양 전통 신학의 관점에서는 대화 불가능한 불경한 상대로 여겨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대 물리학과 진화생물학과의 적극적 대화를 통해 창조주와 피조물, 피조물과 피조물 사이의 상호 영향을 ‘공동 창조’ 개념으로 발전시키며 영육 이원론을 극복한 현대 과정신학의 틀에서는 매우 적절한 대화의 상대자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마수미는 자신의 정동 이론이 현대 과정철학의 접근과 같은 것임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현대 신학이 새로운 패러다임 안에서 현 세계의 문제를 동시대의 지성과 적극적으로 함께 대화하며 고민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김혜령 _ 개신교의 정동 정치에 대항하는 신학의 임무〉」 중에서 웨슬리는 첫 옥외 설교를 위해 누가복음 4장 18-19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본문을 택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사역의 시작을 알리는 본문이며, 희년을 선포하는 내용을 옥외 설교의 본문으로 채택한 것으로 보아, 이것은 웨슬리 자신의 사역이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일을 하려는 것인지를 밝히는 선언(manifesto)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는 설교 방법이자 전도 방법으로 옥외 설교를 시작하였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실제로 옥외 설교는 정규 예배 시간에 영국 국교회 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던 사람들, 즉 노동자, 탄광부, 일용직 고용인들이 자신들이 일상적으로 통행하는 곳에서 복음을 들을 기회를 제공했다. --- 「〈박창훈 _ 차별과 혐오에 맞서서〉」 중에서 “하나님께서 이방인 가운데 그의 백성을 돌보셨다”는 말로 베드로의 의견을 요약한 야고보는 베드로의 의견이 아모스 9장 11-12절이 말하는 취지와 일치한다는 점을 덧붙였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 역시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 받는 이들로 받으셨고, 그 이방인들 이 주님을 찾는 일이 이미 구약에서부터 예언자들을 통해 이르신 뜻임을 알았다. 이방인들은 할례와 무관한 이들인데 하나님께서 아무런 추가적인 조건 없이 그들로 주님을 찾게 하실 것이라면, 오늘날 첫 교회 공동체가 그들에게 추가로 무엇을 요구할 권한이 전혀 없다는 것이 야고보의 논리였을 것이다. 야고보가 판단하기에 이방인에게 할례를 요구하는 일은 약자를 괴롭히는 짓일 따름이다. 아울러 야고보는 안식일마다 각 성에서 모세의 글을 읽는 회당의 관습을 언급하는데(15:21), 이를 언급한 까닭은 안식일마다 모세의 글을 근거로 할례의 중요성과 같은 율법 사항을 강조하는 관습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방인들에게 위협이 되고 고통이 되었을 것임을 환기하기 위한 목적이라 볼 수 있다. 오늘날 동성 간 성행위 관련 성경 본문을 읽고서 하나님 말씀이라고 강조하는데, 사실상 성소수자들을 위협하고 괴롭게 하는 행태에 대해 야고보의 언급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김근주 _ 성서 해석의 기준으로서 ‘상황의 변화’와 ‘낯선 존재’〉」 중에서 희연은 왜 교회 오빠와 결혼할 수밖에 없었는가? “나는 잘못되었다”라는 자기붕괴의 경험, 사랑하는 교회의 모든 사람이 “동성애는 죄”라는 말을 반복함으로 발생한 자기 부정, “걸리면 소외 혹은 추방”이라는 극심한 불안. 이것이 동성애자가 현재 보편적 한국교회에서 겪는 심정적 상태이다. 여기에는 사랑도 은혜도 자비도 찾아보기 어렵다. 당시 내담자의 평생을 소속했던 이곳에서의 배제는 ‘삶 전체의 파괴’를 의미했다. 희연의 내러티브는 ‘정상=이성과의 결혼’이라는 규범 기계에 자발적으로 동성애자인 자신의 몸을 예속시킨 과정이다. --- 「〈권요셉 _ ‘교회 오빠’와 결혼한 여성 동성애자의 공포와 불안 그리고 강박증〉」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