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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라오스: 비어라오 잔 속으로 흐르는 시간
Scene #1. 전라도: 시골 소년의 막걸리 Scene #2. 광화문: 와인과 에스카르고, 욕망의 시작 Scene #3. 북태평양: 백야, 지고이네르바이젠 그리고 팩 소주 Scene #4. 호주: 로얄 시드니 요트 클럽 Scene #5. 싱가포르: 탄종파가의 씩스티스와 롱 바의 땅콩 Scene #6. 일본: 야스쿠니의 그림자와 기모노의 품격 Scene #7. 남대문: 남대문 시장의 닭꼬치 Scene #8. 영국: 팍스 브리태니카의 스타우트 헤드 Scene #9. 그리스: 우조, 포세이돈 신전 그리고 아버지 Scene #10. 중국: 호수에 비치는 삶과 사랑 Epilogue. 막걸리와 함께하는 우주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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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치 않았던 33년 동안 나는 종종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그 논둑 길 위의 소년을 가만히 불러내어 마주하곤 했다. 그 소년은 언제든 주전자 뚜껑을 열어 붉은 저녁하늘을 통째로 들이키며 쉬어 가라는 조언을 준다. 어깨에 얹힌 짐의 무게를 피하지 말고 온전히 받아들이되, 때로는 그 무거운 짐을 길가에 잠시 내려놓고,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는 논두렁, 논, 밭, 나무와 바람을 마주하며 쓸쓸하지만 정직한 위로를 스스로에게 건네기를, 스스로의 심연으로 들어가기를 권해준다.
---p.19 아름다움이란 결코 박물관의 유리창 너머에 정갈하게 전시된 박제된 가치가 아니다. 그것은 이토록 황량하고 차가운 북태평양의 절대적 고립 속에서도 자신의 비장함을 온몸으로 토해내는 바이올린의 가느다란 현의 떨림 같은 것이며, 빗물과 소주가 뒤섞인 잔을 들고서도 세상을 향해 뜨겁게 포효할 수 있는 영혼의 기개에 있는 것이었다. ---p.34 그 도시에는 빈틈이 있었다. 1990년대 중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싱가포르는 지금처럼 마천루들이 숨 막히게 하늘을 가리고 가쁜 호흡을 몰아쉬는 밀집의 공간이 아니었다. 오차드 로드를 걷든, 센토사의 백사장을 거닐든,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넉넉한 여백이 존재했고 그 빈틈 사이로 늘 화려한 열대 난의 향기와 싱그러운 남중국해의 바다 내음이 유연하게 흘러 다녔다. ---p.47 사랑은 타인을 내 삶에 담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삶은 결국 이 모든 무거운 짐을 하나씩 내려놓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자연이 도도하게 흐르고 인간이 살짝 매만져 완성한 그 거대한 호수가 천년의 세월을 견디며 자연보다 더 자연스러운 품격을 간직하게 되었듯, 나의 치열했던 삶도 이제는 그 뾰족했던 모서리들이 부드럽게 깎여 나가기를 소망해 본다. 비어라오의 마지막 잔을 비우고 내려놓는다. 메콩강의 물줄기가 하류를 지나 바다로 향하듯, 내 삶의 흐름도 이 너른 평온함 속에 온전히 정박하기를 바라면서… 바다가 없는 라오스에는 메콩강이 바다였다. ---p.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