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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瑾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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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을 잃은 아버지, 다리를 잃은 아들
아버지의 잘린 팔과 아들의 잘린 다리는 단순한 장애가 아니라 우리 민족이 겪어온 역사적 상흔의 응축된 상징이다. 만도의 팔은 일제 강점기라는 절대적 폭력 속에서 삶을 유린당한 민족의 고통을, 진수의 다리는 동족상잔 이후 전후 사회의 분열과 상실을 드러낸다. 작품은 이를 통해 ‘역사의 수난이 세대를 넘어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특히 정거장에서 아들의 한족 바짓가랑이가 펄럭이는 모습을 본 순간 터져 나온 만도의 비통한 외침은 반복되는 수난에 대한 절망이자 삭일 수 없는 분노로, 개인의 상처가 시대의 상처로 이어져 역사가 한 가족의 삶에 스며드는 방식을 극명히 드러낸다. 부성애의 물적 상관물, 고등어 비극적 현실 속에서도 작품에 잔잔한 온기를 불어넣는 것은 박만도의 투박한 부성애다. 만도가 하나뿐인 손으로 들고 온 고등어는 단순한 반찬을 넘어, 돌아오는 아들에게 무엇이든 먹이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소박하면서도 절실한 사랑이다. 또한 만도가 길가에서 볼일을 볼 때 진수가 그것을 대신 들어 주고, 외나무다리를 건널 때 아버지가 고등어 묶음을 진수에게 잠시 맡기는 장면은, 부자가 불편한 몸으로 서로를 의식하며 길을 이어 가는 현실적 모습을 보여 준다. 이처럼 고등어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아들을 챙기려는 아버지의 마음과 그 여정을 따라가는 생활의 구체성을 드러내는 소재라고 할 수 있다. --- pp.25-26 바다를 본 것도 처음이었고, 그처럼 큰 배에 몸을 실어 본 것은 더구나 처음이었다. 배 밑창에 엎드려서 꽥꽥 게워 내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만도는 그저 골이 좀 띵했을 뿐 아무렇지도 않았다. 더러는 하루에 두 개씩 주는 뭉치밥을 남기기도 했으나, 그는 한꺼번에 하룻 것을 뚝딱해도 시원찮았다. 모두 내릴 준비를 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은 사흘째 되는 날 황혼 때었다. 제가끔 봇짐을 챙기기에 바빴다. 만도도 호박덩이만한 보따리를 옆구리에 덜렁 찼다. 갑판 위에 올라가 보니 하늘은 활활 타오르고 있고, 바닷물은 불에 녹은 쇠처럼 벌겋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지금 막 태양이 물 위로 뚝딱 떨어져 가는 것이었다. 햇덩어리가 어쩌면 그렇게 크고 붉은지 정말 처음이었다. 그리고 바다 위에 주황빛으로 번쩍거리는 커다란 산이 둥둥 떠 있는 것이었다. 무시무시하도록 황홀한 광경에 모두들 딱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만도는 어깨마루를 버쩍 들러 올리면서, 히야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나, 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숨 막히는 더위와 강제 노동과 그리고, 잠자리만씩이나 한 모기떼…. 그런 것뿐이었다. 섬에다가 비행장을 닦는 것이었다. 모기에게 물려 혹이 된 자리를 벅벅 긁으며,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무릅쓰고, 아침부터 해가 떨어질 때까지 산을 허물어 내고, 흙을 나르고 하기란, 고향에서 농사일에 뼈가 굳어진 몸에도 이만저만한 고역이 아니었다. 물도 입에 맞지 않았고, 음식도 이내 변하곤 해서 도저히 견디어 낼 것 같지가 않았다. 게다가 병까지 돌았다. 일을 하다가도 벌떡 자빠지기가 예사였다. 그러나 만도는 아침저녁으로 약간씩 설사를 했을 뿐, 넘어지지는 않았다. 물도 차츰 입에 맞아 갔고, 고된 일도 날이 감에 따라 몸에 배어드는 것이었다. 밤에 날개를 차며 몰려드는 모기떼만 아니면 그냥저냥 배겨내겠는데, 정말 그놈의 모기들만은 질색이었다. --- pp.36-37 고등어와 용머리재, 비극을 감싸 안는 따뜻한 시선 태우 소설 속에 나오는 소품들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만도가 장터에서 산 고등어를 한 손으로 들고 오느라 고생하잖아요. 나중에 진수가 업힐 때 그 고등어를 들어주기도 하고요. 선생님 ‘고등어’는 투박하지만 깊은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 주는 ‘물적 상관물’이란다. 먹어야 산다는 생존의 문제이자, 자식을 먹이려는 숭고한 본능이지. 아들이 아버지 등에 업혀서 고등어를 든 장면을 상상해 보렴. 그건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끈질긴 약속과도 같아. 지현 그리고 ‘용머리재’라는 고개가 계속 나오잖아요. 마지막에도 용머리재가 부자를 내려다본다고 끝나고요. 왜 자꾸 산이 등장하는 걸까요? 선생님 좋은 질문이야. 인간들의 세상은 전쟁으로 피투성이가 되고 신체가 훼손되지만, 자연인 ‘용머리재’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지. 마지막에 용머리재가 부자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다’는 서술은, 인간의 비극을 거대한 자연의 질서 속에서 품어주는 듯한 느낌을 줘. 이는 비극성을 서정성으로 승화시키면서, 역사의 광풍 속에서도 묵묵히 살아가는 민초들을 긍정하고 위로하는 ‘관조적 시선’이라고 할 수 있어. 웃음으로 눈물 닦기, 토속어와 해학의 미학 수지 그런데 선생님, 내용은 분명 슬픈데 읽다 보면 피식 웃음이 나는 장면들이 있어요. 만도가 술집 여주인이랑 농담 따먹기 하는 거나, 오줌 누는 장면 묘사 같은 거요. 작가는 왜 슬픈 이야기에 웃음을 섞었을까요? 선생님 그게 바로 우리 문학의 고유한 특징인 ‘해학’의 힘이란다. 만약 작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비장하고 심각하게만 썼다면, 독자들은 그 고통의 무게에 짓눌려 숨이 막혔을 거야. 하지만 하근찬은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와 ‘토속적인 묘사’를 통해 비극을 중화시켰어. --- pp.53-55 꼭대기에는 당집이 있고 주위로 솔과 참나무가 울창하여 그늘이 짙었다. 잔디도 좋았다. 그런 그늘 아래 앉아서 장강을 굽어보고 먼 산을 바라보면서 혹은 잔디에 누워 창공을 올려다보면서 끝없는 시간을 지우기란 울적하고 삭막한 나의 생활 가운데 만만치 아니한 위안의 하나였었다. 그때 나는 마침 이조사를 읽다가 병자호란의 대문에 이르렀던 참이라 병자란 당시에 조선군이 국왕과 함께 최후의 농성을 하던 남한산성이며 그러다 국왕이 마침내 청병의 군문에 무릎을 꿇어 항복을 한 삼전도며 그리고 양방의 수없는 장졸이 화살과 창끝에 고혼으로 쓰러진 풍남리의 토성이며를 멀리 바라보기가 이날따라 감개 적이 깊은 것이 없지 못하였었다. 그러한 흥폐의 모양을 보았으면서 못 본 체 이날이 한결같이 유유히 흐르기만 하였으며 앞으로도 얼마든지 되풀이할 세상과 인사의 변천을 보면서, 그러나 못 본 체 몇천 년 몇만 년이고 유유히 흐르고만 있을 저 강 무심타고 할까, 부럽다고 할까….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 참인데 그 몸서리가 치이는 공습 사이렌이 별안간 울리던 것이었었다. 나는 꿈에서 깨난 것처럼 퍼뜩 정신이 들었다. --- pp.69-71 ‘오발탄’에 담긴 방향 잃은 현대인의 비극 1959년에 발표된 「오발탄」은 한국 전후 문학의 정점으로 꼽히는 리얼리즘의 걸작이다. 작품에서 이범선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양심을 지키려다 무기력해진 형 철호와, 생존을 위해 도덕을 버린 동생 영호를 대비시켜 당시 한국 사회가 직면한 윤리적 딜레마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방향을 잃은 채 “가자, 가자”를 되뇌는 노모의 모습과 썩은 사랑니의 통증을 안고 거리를 배회하는 철호의 형상은, 목적지를 상실한 채 ‘잘못 발사된 탄환(오발탄(誤發彈))’처럼 떠도는 인간 존재의 실존적 비극을 상징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출구 없는 가난과 절망의 현실을 냉정하면서도 처절하게 고발한다. 소시민의 양심을 대변한 리얼리즘의 시선 이범선의 문학은 거창한 영웅 서사가 아닌, 시대의 무게에 짓눌려 비틀거리는 평범한 소시민들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는 주로 선량하게 살고자 하지만 가난 때문에 고통받고, 법을 지키려 하나 생존의 위협 앞에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물들을 그렸다. 특히, 부조리한 사회 구조가 개인의 양심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증언하며, 도덕적 타락이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적 모순에서 비롯됨을 역설했다. 비록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삶의 비애와 페이소스(Pathos)를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 그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연민 어린 시선은 당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과 위로를 주었다. --- pp.108-109 그동안 이장 영감도 몇 번이나 밖으로 나가 살 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번번이 그는 이 학마을을 버리지 못했다. 무쇠 같은 그의 가슴에 첫사랑이 뻘겋게 달아오르던 곳이라서만은 아니었다. 그저 어쩐지 이 학마을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것이었다. 빈 둥우리나마 아직 남아 있는 학나무 밑을 떠나서 왜놈들이 들끓는 마당에 어딜 가면 살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남아 있는 딴 사람들도 그랬다. 학은 오지 않고 이름만 남은 학마을은 말할 수 없이 고달팠다. 그래도 해마다 봄은 찾아왔다. 아지랑이가 가물가물 타기 시작하면 그들은 양지쪽에 앉아 수숫대로 바자 바자: 대나무, 갈대, 수숫대 따위로 엮어서 만든 울타리. 를 엮으며 어린것들에게 가지가지 학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어린애들에게는 그건 해마다 들어도 재미있는 옛날이야기였다. 그러나 이야기하는 어른들에게는 그건 슬픈 추억이었고, 또 봄마다 속아 벌써 삼십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끝내 아주 버릴 수는 없는 희망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학이 어딜 갔을까?” “알 수 없지.” “살아 있기는 살아 있을까?” “학은 장생불사(長生不死) 장생불사: 영원히 살고 죽지 아니함(학을 십장생의 하나로 여김). 라지 않아?” “장생불사.” 이장 영감은 또 한 번 천천히 수염을 내리쓸다 그 끝을 쥐고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쾡 쾡, 쾡 쾡, 쾡 쾡, 쾡 쾡.” 바로 그때였다. 저 밑에 마을에서 꽹과리 소리가 요란스레 들려왔다. 무슨 일이 일어난 신호였다. --- pp.123-125 바우는 더욱 자주 면에 다녀 나왔다. 그러고는 하루에 두 번씩 마을 사람들을 학나무 밑에 모았다. 소위 회의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잘 모이지를 않았다. 바우는 반동이 무언지 ‘반동, 반동’하고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잘 안 모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학이 전에 없이 새끼를 물어 떨어뜨리자 밀려들어 온 그들은, 어쨌든 이 학마을을 잘 되게 해 줄 사람들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는 말이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유를 안 바우는 그 길로 면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저녁때가 거의 되어, 그는 어깨에 총을 메고 돌아왔다. 그는 곧 또,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몇 사람이 총을 멘 바우를 구경한다고 모였다. 그 자리에서 바우는 또 떠들어 댔다. 이마의 흉터가 더욱 험상스레 움직였다. 사업을 방해하는 자는 누구든지 다 반동이라며 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반동은 사정없이 숙청해야 한다고 했다. 이 마을에서는, 그런 의미에서 우선 저 학부터 처치해야 한다고 하며 학나무 꼭대기를 가리켰다. 그는 천천히 돌아섰다. 학나무 그루에 세워 놓았던 총을 집어 들었다. 철커덕 총을 재었다. 총부리를 들어올렸다. “바우!” 옆에 섰던 덕이가 바우의 팔을 붙들었다. 바우는 흠이 있는 오른쪽 눈썹을 쓱 추켜세우며 덕이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놔!” 바우는 덕이의 손을 뿌리쳤다. 덕이는 빈주먹을 꽉 쥐었다. --- pp.139-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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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청소년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내 귀가 번쩍 뜨였다.
한창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좋은 소설을 읽어주겠다니 참 아름다운 인간교육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은 그 시대가 창출한 가장 강렬한 정신적 유산이자, 미래를 지향하는 상상적 공간일 텐데, 커가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그걸 성장의 발판으로 삼게 하겠다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대학에서 소설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또 직접 창작을 해온 사람으로서, 문학이 인성개발에 미치는 영향을 높게 평가함은 당연하며, 한바탕 성장과 발육을 향해서만 치닫는 청소년기야말로 좋은 소설을 많이 읽을 때라는 생각을 늘 해온 사람이다. 강소천 선생의 「꿈을 찍는 사진관」을 읽으면서 자랐다. 중학생이 되어 처음 도시로 나간 시골소년 앞에 갑자기 나타난 이 동화집은 나로서는 세상에는 없던 신대륙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이토록 아름답고도 신비한 글 세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책들을 찾아 읽기를 계속하였다. 그리고 훨씬 훗날 미국에 가서 한국문학을 소개할 기회가 있었는데, 무엇을 가르칠까 고심하다가 나는 결국 나의 성장기에 읽은 「꿈을 찍는 사진관」을 갖고 가서 읽어주기로 하였다. 그때 그들은 대학생이었지만 그들이 한국을 이해하는 정도는 아직 중학생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학기 수업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나는 내가 미국에 다녀왔다는 생각보다 그들의 세상이 태평양을 건너 우리 대한민국까지 뻗친 것을 보는 것 같아 마음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서연비람〉이 엮어낸 『해설과 함께 읽는 한국 대표 단편문학 선집』이 오늘의 청소년들에게도 같은 즐거움과 보람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한다. 읽어라! 모르겠거든 알 때까지 읽어라! 이것이 내가 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하고 또 소설을 쓰면서 얻은 올바른 소설독법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 친절한 해설까지 곁들였으니 서연비람의 독자들이야말로 천군에 만마를 얻은 셈이다. 이 『한국 대표 단편문학 선집』은 아름다운 단편소설 모음집이 될 것이다. 새로운 작품을 발굴한다는 등의 이유를 걸어 괜히 낯설거나 정체가 불명한 책을 만들기보다는, 좀 해묵어 보이더라도 우리 조부모 때부터, 부모 때부터 대를 이어 읽히고 검증을 받아온 모범적인 작품들을 선별하고자 노력한 책이다. 편편이 ‘작가 소개 - 작품 해설 - 작품 - 선생님이 들려주는 작품 이야기’의 순서를 밟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완벽을 기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선생님이 들려주는 작품 이야기’는 이 책이 고안한 아주 특별한 코너로서, 그동안 그 어떤 책에서도 보지 못한 선생과 학생의 실체를 여기서 만나게 될 것이다. 학습은 꼭 배워서만 안다기보다 그것을 가르치던 선생님의 회초리와 함께 기억된다는 말이 있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서 그만큼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여기 실린 단편들도 그렇게 선생님이 들려주신 그 시절 이야기와 함께 오래 기억될 것을 바라는 마음이다. - 송하춘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