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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 소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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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작가의 말/5

균형 맞추기/11
바람의 항변/37
여우는 없다/63
凹/91
Frame in a frame/119
피안의 뜰/147
도시의 흔디/193

저자 소개 1

대구대학교 출신 《월간문학》 시 등단 이조년 전국대상 - 시 글로벌 신춘문예 - 시 포항문학상 최우수상 - 소설 경북일보 은상 - 소설 동서커피 등 다수의 수상 이력 시집 『너는 시원하지만 나는 불쾌해』 『수다의 정석』 『엘피판 뒤집기』 소설집 『출소를 꿈꾸다』 『바람의 항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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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138*201*20mm
ISBN13
9791168555327

책 속으로

**균형 맞추기

창가로 성큼 다가온 달빛이 미영과 나의 소주잔을 만지작거렸다. 취기가 오른 우리는 몽글몽글한 구름 위에서 달과 별과 나무와 술잔을 주고받았다. 한때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살면서 서로에게 완벽한 오른손과 왼손이었음은 부정하지는 않는다. 한 몸에 붙은 오른손과 왼손처럼, 서로의 상처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재탕 삼탕을 해가면서도 지치지 않았던 건, 오른손이 왼손에게, 왼손이 오른손에게 2미터 남짓한 거리를 두고 톡 탁 톡 탁 치고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제아무리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존재라 할지라도 끝까지 제 입장만 고집하며 라켓을 휘두르는 데 스윙이 좋아질 리 없었다. 슬라이스가 나고 원치 않는 방향으로 샷이 나갈 게 뻔한 일이었다. 이럴 땐 차라리 서로의 거리를 5미터 밖으로 멀찍이 늘려놓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인간관계란 너무 가까워도 독이 되었다. 입장이 다른 생각들이 제아무리 손에 쥔 라켓처럼 몸의 일부가 되었다 한들, 상대가 암암리에 숨겨둔 공의 회전을 직감으로 알아채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었다. 나는 미영에게, 미영은 나에게 끝내 만나자는 말만큼은 목구멍 안으로 꿀꺽 삼켰다.

**바람의 항변

아! 이 무슨 징조인가. 뾰족하던 내 눈빛이 어느새 순하디 순해져서 P의 가슴팍을 헤집고 있었다. 빤한 헛짓거리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무슨 일인지 내 마음도 성급히 P에게 반응하고 있었다. P가 하루에 몇 번씩 계단을 오르내리는지, 시간대는 어떠한지, 또한 P가 보이지 않는 날에는 하루 다섯 잔씩 마시던 커피를 일곱 잔으로 늘렸다. 나는 점점 요상한 남자의 요상한 해바라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남자가 먼저 당신을 좋아한다는 눈빛을 보내왔으므로 나도 어쩔 수 없이 같은 눈빛을 보내게 되었다는? 뭐 그렇고 그런 변명이라도 준비해 두어야 할 것 같았다. P를 향해 빈정거리던 내가 오히려 P보다 더 요상한 여자가 되어갔다. 오십 년이나 살아온 낡고 어둑한 여자의 마음이기에 얼기설기 거미줄만 가득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잔뜩 긴장한 마음 안으로 뚜벅뚜벅 P가 걸어왔고, 나는 그 발소리에 점점 귀가 예민해졌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투박하고 더러운 손이지만, 나름 소녀 시절의 연초록 순수는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숨겨둔 초록빛깔을 꺼내는 일에 망설이지 않았다. P는 가시 돋친 품 안으로 잘도 안겨들었다. 그래서일까. 나의 정원에는 어느새 분홍의 피로 흥건하게 물들었다.

출판사 리뷰

■ 작가의 말

도로변을 걷다가 가로수를 감싸고 있는 사각의 틀을 보게 된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문득, 사람을 피해 집안에서만 웅크려 지내던 나 자신의 반경을 떠올리곤 한다. 그 좁은 반경 안에서 피어난 생각과 감정들은 소소하고 자잘한 들꽃일지도 모른다.

그 들꽃을 껴안고 살아온 시간들이 한 편 한 편의 글이 되었다. 그래서 이 글은 굳이 멀리까지 닿으려 애쓰기보다, 내 반경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지인들에게 건네는 작은 인사여도 괜찮겠다. 만약 저만치 떨어져 무심한 표정으로 서 있는 당신에게도 내가 피워 낸 꽃씨가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면, 그대의 발치에 내려앉아 발등을 덮는 어여쁜 꽃이 되어준다면…, 그것으로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스스로 만든 작은 굴레를 끝내 벗어나지 못하던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유토피아란 아주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지금 내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 보금자리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무를 껴안았다가 풀어주고, 풀어주었다가 다시 껴안는다. 그러면서 작은 들꽃을 피워 내듯, 조금씩 위로를 배우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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