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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dicai G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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짹짹짹, 언제는 고맙다더니 이제 와서 시끄럽다 투덜대니? 짹~!
20년 전까지만 해도 제주도에는 까치가 없었다. 그런데 올 4월 발표에 따르면 현재 제주도에 사는 까치는 3,000마리가 훌쩍 넘는다. 이 까치들은 1989년 제주도의 모 신문사 창간기념행사로 방사된 53마리가 시작이었다. 제주도에 서식하지 않는 길조(吉鳥) 까치를 들여와 축하하고 볼거리를 만들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까치는 천적이 없는 제주 생태계를 휘저으며 무섭게 번식해 농가에도 큰 피해를 입혔고 결국 5년 만에 유해조수로 지정됐다. 인간의 이기적인 발상이 자연의 질서를 거슬러 결국 제 발등을 찍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실화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이러한 이기적인 이중적 태도를 자연스럽게 꼬집는 책이 여기 있다. 미국 이민 초창기, 필라델피아는 자벌레 천국이어서 사람들은 몹시 불편함을 겪었다. 그 때 영국에서 온 청년이 참새 천 마리를 이민시켜 골칫거리 자벌레를 효과적으로 퇴치했다. 사람들은 ‘참새 짹 만세’니 ‘대단한 참새’니 떠들어 댔지만 곧 참새들이 시끄럽다고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참새구이는 좋아하면서도 살아 있는 참새는 귀찮아하는 것이 사람이라나 뭐라나……. “언제는 고맙다더니 이제 와서 시끄럽다 투덜대니?” 참새들은 이런 인간들에게 잔소리를 하느라고 더 짹짹거리는 건지도 모른다. ‘에이, 아침부터 시끄럽게 또 짹짹거리네.’ 하고 투덜대지 말고, 한 번쯤 귀 기울여 들을 일이다. 영국 참새 1,000마리의 미국 이민 대작전! 1868년 영국 청년 존 바슬리는 일자리와 물자가 부족한 영국을 떠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존은 미국에서 곧 일자리도 얻고 집도 장만하게 되었지만 어렸을 때 함께 놀며 돈독한 우정을 나누었던 참새가 없어 외로웠다. 마침 필라델피아는 자벌레가 너무 많아 숲이 모조리 없어질 지경이었다. 그 옛날 애굽의 열 가지 재앙처럼 자벌레는 온갖 수풀과 나무를 갉아먹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달라붙었다. 이상하게도 미국에 살고 있는 새들은 자벌레를 먹지 않았고 사람들은 자벌레 퇴치단까지 만들었지만 도저히 자벌레를 없앨 수 없었다. 그 때 존은 엄청나게 먹성이 좋은 고향 땅의 참새들을 생각했다. 사람들은 참새를 배에 태워 대서양을 건너겠다는 존의 계획을 무모하다며 비웃었다. 그러나 존은 참새 천 마리를 잡아 미국으로 이민시켰고, 얼어 죽을까 봐 겨우내 참새 천 마리를 집 안에서 보살폈다. 다음 해 봄 부화한 새끼들을 먹이기 위해 참새들이 엄청난 양의 자벌레를 잡아들이면서, 마침내 필라델피아는 지긋지긋한 자벌레로부터 해방되었다. '참새 짹'과 참새들의 우정-그들이 큰일을 해내고 말았다! 존 바슬리라는 인물을 살펴보자. 어렸을 때 새끼 참새를 주워다 기른 후로는 유독 참새와 친해져서 참새 떼를 몰고 다녔다는 점만 빼면 특이할 게 없다. 참새는 어떤가. 조그맣고 아무거나 잘 먹는 참새는 너무 흔해서 딱히 설명할 것도 없는 새이다. 그러나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 둘이 만나 벌인 엄청난 사건이 있기에, 우리는 존과 참새에게 주목해야 한다. 평범하지만 소신 있는 한 인물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말해준다. ‘칼데콧 상’ 수상작가 모디캐이 저스타인의 그림책 속 인물들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유쾌한 뚝심’을 존 바슬리도 보여 준다. 참새 천 마리를 데려온 무모한 일도, 필라델피아를 자벌레로부터 구한 일도 큰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존과 참새들이 이루어낸 진짜 큰일은 따로 있다.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뭐든지 쓸모가 있어야 하고 성공적인 결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벌레를 성공적으로 없앤 참새들을 곧 쓸모없게 여기며 오히려 시끄럽다고 투덜댔다. 그리고 영웅처럼 대접받던 ‘참새 짹 존 바슬리’에 관한 이야기도 금세 잊어 갔다. 쓸모는 상황에 따라 변하고 성공적인 결과도 때로는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불평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참새와 존 바슬리는 행복했다.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치렀다는 만족감 때문이 아닌 함께함으로 얻는 인생의 행복을 누리고 있었으니까. 사람 살아가는 일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사람과 사람 사이가, 사람과 자연 사이가 결과물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공존함으로 인한 즐거움과 여유를 누리도록 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