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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고전문학선집을 펴내며
치욕의 세월 -내가 겪은 정유재란 적국에서 올린 상소 삼가 주상 전하께 왜국의 지리와 군제 방비를 위해 드리는 충언 왜국의 정세 변화와 동향 풍신수길의 죽음 내가 듣고 본 적국 일본 왜국의 관직 제도 왜국 8도 66주 임진년과 정유년에 쳐들어온 왜장들 풍신수길은 어떤 자인가 풍신수길이 죽은 뒤의 왜국 정세 조선으로 돌아가다 고국에 돌아와 임금께 올린 글 <간양록>을 펴내는 뜻 -윤순거 강항 연보 간양록에 대하여 -문예출판사 편집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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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욕의 세월 -내가 겪은 정유재란〔涉亂事迹〕
만 리 절역에서 고국 사람 만나니 마음 먼저 서글퍼 연유 차마 못 묻네. 북해에서 삼 년 고절 이내 몸 부끄럽고 팔척장신 포로의 몸 그대가 가엾어라. 적국에서 올린 상소〔賊中封疏〕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장수 하나를 내실 때에도 신중히 생각하시고 변장 한 사람을 바꿀 때에도 신중히 생각하셔서 문관이든 무관이든 어느 쪽에 국한하지 마시고, 품계와 격식으로 예를 삼지도 마시고, 고루한 신의와 사소한 덕행도 묻지 마시고, 이름난 가문을 택하지도 마소서. 오직 유능한 인재로서 기개와 지략이 있어서 일찍이 왜적과 용감하게 싸워 뚜렷한 공을 세운 자를 택하시어 호남과 영남의 장수로 삼으소서. 내가 듣고 본 적국 일본〔賊中聞見錄〕 왜국의 정세를 보니, 우리 나라에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하여 꼭 조정에서 명철하게 통찰해야 하고 또 왜놈의 실정에 비추어 우리의 정책을 알맞추 마련해야 하기에, 현재 왜놈의 정체와 그에 기초한 세 가지 방책을 갖추 기록하였다. 고국에 돌아와 임금께 올린 글〔詣承政院啓辭〕 왜장이라는 자 가운데 한문을 아는 자는 하나도 없고 그들이 사용하는 글자는 우리 나라 이두와 비슷한데 그 글자의 본뜻을 물으니 막연히 알지 못했습니다. 무경 칠서武經七書는 사람마다 가지고 있지만 반 줄도 내려 읽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이 흩어져 멋대로 싸워 한때 통쾌하게 승리할 줄은 알지만 병가의 임기응변에 대하여는 들어 볼 만한 게 도무지 없습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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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정유년 왜적이 다시 쳐들어왔을 때 강항은 고향 영광에서 군량미를 운반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중 이미 사방 천지가 적의 수중에 떨어졌음을 알고 피난길에 오른다. 아버지가 타신 배와 서로 헤어지고, 적에게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물에 뛰어들었다가 어머니 신주를 잃어버린다. 눈앞에서 어린 자식이 죽고 일가붙이들이 죽는다. 그리고 강항은 살아남은 이들과 일본으로 끌려간다.
참으로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강항은 정신을 놓지 않고 자기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풍신수길을 추모하는 글 위에 그를 꾸짖는 글을 휘갈겨 한을 풀고 기개를 보여 주는 한편, 적국에 대해 탐문해 우리 임금께 비밀스럽게 상소문을 올린다. 탈출할 길을 찾으며, 글품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고 맘 맞는 동지를 모은다. 그런가 하면 어디서나 고매한 풍모를 보여 주어, 왜인들도 그가 유학에 깊은 선비임을 알고 찾아온다. 특히나 후지와라 세이카(강항은 순수좌라고 쓰고 있다)는 중국과 조선을 흠모해 왔음을 밝히며 강항에게 춘추석전을 비롯 유학에 관해 두루 묻고 배운다. 후지와라 세이카는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도 물론 잘 알고 있으므로 자기 나라에 비판적이다. 순수좌를 비롯하여 강항이 만난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들은 강항과 조선에 호의적이다. 일본 지도를 주고 일본의 행정 편제 등을 설명하는 등 협조한다. 그리고 이들의 도움으로 마침내 강항은 귀국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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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확장이 가족이고, 또 나의 확장이 나라이다. 자기 한몸을 돌보지 않고 더 큰 나를 위해 헌신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바로 우리 옛 선비의 참모습이다. 강항은 일본 지도를 베끼고, 왜장들에 대해 탐문한 사실에 기반해 일본에 관한 두루 의미 있는 정보를 모아, 선조 임금께 상소를 올린다. 도달하지 못할까 걱정하여 세 번이나 부친다.
그러나 강항은 언제나 자신은 죄인이라 고백한다. 일본에서도 조선에 돌아와서도 마찬가지다. 이 글도 그래서 강항 자신은 처음에 ‘건차록巾車錄’이라 했다. 고국에 돌아와 임금께 벼슬을 제수받으나, 죄인이라 하여 부임하지 않는다. 그는 아무 벼슬도 하지 않았다. 향리에서 공부하며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 이러한 절대 겸양이 우리를 더욱 숙연하게 만든다. 강항의 『간양록看羊錄』에서,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 포로들의 애끓는 심정과 굳은 절의를 볼 수 있다. 치욕의 세월을 겪어 내면서 자신의 삶과 시대를 증언한 우리 선조들의 기록 정신을 읽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