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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글짓기 조심하소 - ‘사유악부思?樂府’에서
영락정 / 붉은 앵두 / 연희 / 제비 / 국화 / 최 포수 / 지덕해 / 황대석 / 황장목 사또 / 청어를 사 가지고 온 위 서방 / 연희가 타이르던 말 / 이웃 마을 남씨 노인 / 참외 장사 / 부령이 그리워 / 정문부 / 까마귀 쫓지 마오 / 가엾은 황생 / ‘사유악부’ 뒤에 쓴다 등 첫 유배지 부령의 풍속과 그곳 사람들을 읊은 69편의 시 2부 방주의 노래 방주의 노래〔古詩爲張遠卿妻沈氏作〕 3부 질 버치엔 정어리가 그득 -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에서 머리말 / 바다망둥이 / 감송 / 볼락 / 꽁치 / 쥐노래미 / 보가지 / 상어 / 정어리 / 오징어 / 농어 / 부레기 / 드렁허리 / 삼치 / 소경 고기 / 문어 / 기러기밥 / 청어 / 가리비 / 바다도마뱀 / 게 / 조개 / 소라 등 진해에서 본 기이한 물고기들의 생태와 어민들의 생활을 담은 시 35편. 4부 다복다복 자라난 저 시금치 - ‘만선와잉고萬蟬窩?藁’에서 홍매 / 살구 / 감 / 포도 / 석류 / 대추 / 복숭아 / 오얏 / 능금 / 앵두 / 배 / 밤 / 모과 / 아가위 / 은행 / 봄 아욱 / 무 / 시금치 / 부루 / 파 / 호박 / 고추 / 마늘 / 쑥갓 / 모란 / 붉은 장미 / 진달래 / 봉선화 / 패랭이꽃 / 맨드라미 / 벼루 / 무쇠 촛대 / 무명 단령 / 오동나무 벼룻집 / 양털 붓 / 구리 환도 / 등채찍 / 소라껍질 술잔 / 수숫대 노전 / 인찰판 / ‘만선와잉고’ 뒤에 쓴다 등 농사지은 체험을 바탕으로 쓴 시들과 사물을 읊은 시 49편 5부 모진 바람 휩쓸더니 - ‘귀현관시초歸玄觀詩草’에서 비 온 뒤에 종자 심는 것을 구경하고 / 아우와 고기잡이를 구경하며 / 이우신을 보내며 / 적문협 / 군사의 노래 / 님이 그리워 / 연밥 따는 노래 / 서재에서 / 주막집 할멈 이씨를 애도하며 / ‘귀현관시초’ 뒤에 쓴다 등 23편 6부 여릉 고향 집이 그리워 - ‘의당별고擬唐別藁’에서 정홍신과 이별하며 / 서울에서 여릉에 사는 이웃 사람을 만나 / 남편을 기다리는 안해 / 세밑에 여릉의 두 아들에게 / 가을날 청송에서 주인집 아낙네의 푸념을 적노라 / 봄날에 여릉으로 돌아와 / ‘의당별고’ 뒤에 쓴다 등 21편 7부 황성에서 부른 노래 - ‘간성춘예집艮城春?集’에서 번을 든 군교 / 청어 장사 / 흉년 / 연주에 부임하며 등 ‘황성리곡黃城俚曲’ 110수 약밥 / 부럼 깨물기 / 귀밝이술 / 널뛰기 / 처용과 액맥이 돈 등 대보름의 풍속을 읊은 ‘상원리곡上元俚曲’ 17수 8부 일곱 사람 이야기 - ‘단량패사丹良稗史’에서 천문 기계의 달인, 이민철 / 의원 안찬 / 고 수재 이야기 / 유구국 왕세자 / 자루에서 자는 삭낭자 / 장생 이야기 / 의로운 여인 한 숙원 / ‘단량패사’ 뒤에 쓴다 9부 부령으로 귀양 가며 쓴 일기〔坎?日記〕 1797년 부령으로 귀양 가며 쓴 일기인 ‘감담일기’와 세 편의 편지글, 시집 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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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여 년 전 조선의 풍토와 민중의 세계를 감동적으로 재현"
개성이 풍부한 작가들이 숲의 나무처럼 많은 18세기 후반의 문단에서 김려(1766~1821)는 독특하다 못해 파격적인 작가다. 그는 하나의 주제 아래 수십 수에서 수백 수에 이르는 연작을 써 내고, 웅대한 장편 서사시를 창작함으로써 거침없는 필력을 발휘하였다. 국토의 남북단 유배지에서 11년 간 머물며 그는 조선의 다양한 민중의 거칠지만 아름다운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포착하였다.
건강하고 자유분방한 북관민의 삶과 변방의 이색적 풍토를 묘사해 낸 ‘사유악부’, 남해 지역 어류의 생태와 인정을 묘사한 ‘우해이어보’, 백정의 딸을 며느리로 맞아들이는 장군의 이야기를 노래한 서사시 ‘방주의 노래〔古詩爲張遠卿妻沈氏作〕’ 등의 명작은 격정과 비분의 언어를 무기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북의 번역자 오희복의 빼어난 번역은 2백여 년 전 조선의 풍토와 민중의 세계를 감동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 안대회(명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지금 여기” 나의 이야기, 조선의 이야기를 쓴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 조선은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하면서 중세 질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민중들이 각성하면서 지배체재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고 있었고, 지배 세력의 부패와 타락이 나날이 극심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진보는 더뎠다. 안타깝게도 새로운 사회로 가는 길은 멀었다. 문학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다.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과 북학파들, 그리고 김려나 이옥이 이러한 새로운 물결의 주인이었다. 과거답안 같은 고색창연한 문장이 아니라, 소품에다가 “지금 여기”, 조선의 사회 문제를 담기 시작했다. 김려는 슬플 때나 기쁠 때나 글을 쓴 작가였다. 그에게 글은 출세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귀양길 하루하루가 힘들고 모욕적인 가운데서도 김려는 날마다 글을 썼다. 귀양지에서 만난 상민과 천민들의 삶도 하나하나 기록했다. 글쓰기가 그에게 필화를 입게도 했지만, 여전히 힘이었다. 치유의 힘! 귀양살이는 그에게 끔찍한 고난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활을 발견하고 사람을 찾게 만든 소중한 체험이기도 했다. 이 체험은 김려의 문학에 숨을 불어넣고 뼈와 살이 되었다. 김려의 대표작 함경도 민중들의 삶을 담은 리얼리즘 연작시 ‘사유악부’ : 김려는 그의 인생 삼십대를 유배지에서 보냈다. 귀양살이하는 동안 농사꾼, 어부, 장사꾼, 사냥꾼, 머슴, 기생, 아이 들과 신분과 성별을 넘어서서 아주 가깝게 사귀었다. 이 사람들에게 향하는 연민과 애정은 ‘사유악부’ 곳곳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춥고 험한 자연 속에서 사는 씩씩한 ‘삭방 남아’들과 강인한 여인들에게 그는 매혹되었다. 빼앗기고 억눌려 사는 백성들의 삶은 한없이 고단했으나 그이들은 분명 건강했다. 신분 질서에 도전한 서사시 ‘방주의 노래’ :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미완의 장편 서사시 ‘방주의 노래〔古詩爲張遠卿妻沈氏作〕’는 김려의 이상이 절정에 이른 작품이다. 양반과 백정의 혼인이라는 금기에 도전하면서 오래된 신분 질서를 타파하고 사람이 모두 다 존중받는 새로운 세상을 열망한다. 1860년 최제우가 ‘동학’을 주창하며 만민 평등 사상을 내세운 것을 생각하면, 이 시에서 “천하 어딜 가나 모두 다 형제”라고 한 것은 시대를 앞선 외침이다. 세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온 험난한 귀양길의 일기, ‘감담일기’ : ‘감담일기’는 1797년 11월 12일 형조에 갇히게 되면서부터 다음해 1월 11일 부령에서 이미 죽은 친구를 만나는 꿈을 꾸고 쓰기까지의 기록이다. 11월 14일 길을 떠나 스무이레 만인 12월 10일 부령에 도착하였다. 한겨울 험한 날씨 속에 강행군한 귀양길의 어려움은 북관민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삶에 대한 반성과 삶의 자세를 되돌아보게 한 계기이기도 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어보,‘우해이어보’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는 김려가 1803년 우해(지금의 진해)에서 귀양살이할 때 쓴 것이다. 정약전의《현산어보》보다 11년 앞서 나왔다. 김려는 《우해이어보》에 물고기들의 생태를 기록하면서 ‘우산잡곡왈牛山雜曲曰’이라 하고 시를 붙여, 경상도 지방 어민의 삶을 담아냈다. 역사의 이면에 숨겨진 인물들을 표면으로 끌어낸, ‘단량패사’ : 젊어서부터 김려는 정사가 이미 제 기능을 잃었다고 생각해서 야사에서 그 대안을 찾았다. 야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이한 행적을 지닌 인물들을 ‘단량패사丹良稗史’로 엮었다. 이 인물들을 통해 당쟁의 폐해를 심각하게 보여 주었으며 당시 능력이 있어도 신분제에 막혀 세상에 쓰이지 못하는 모순을 드러냈다. 우리 겨레의 말결을 살려낸 뛰어난 국역 북의 학자 오희복 선생이 우리 말로 옮겼는데, 자구에 매이지 않고 편안히 읽히도록, 입말로 잘 풀어 놓았다. 특히나 김려의 시는 어렵기로 유명한데, 쉬운 입말로 풍성히 옮겨 놓아, 이 책은 고전 문학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