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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
제1부 절벽 적벽 목련부처 앵두가 잘 익었다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물오리 일가 마태수난곡 입동 새 달의 뒤편 난 건달이 되겠어 제2부 수목장 서른 전 모란 작약 타인의 취향 우산의 발명 축구 사이 따개와 뚜껑 차거 표면들 꿈 수련 제3부 호박젓국 가을법어 백석 달 귀명창 복사꽃 거돈사지에서 활짝 핀 벚꽃 아래서 간빙기를 지나가다 분교 근처 제4부 엽낭게의 내밀한 살림 명자나무 일몰의 습한 바람에서 비린내가 난다 흡혈계보학 그 가계 굴원을 읽는 밤 해남길은 멀다 구제역 화순 운주사에서 제5부 개사육장이 잇는 풍경 박용래 살아보자고, 살아보자고! 노동자 화무십일홍 하루살이 소년과 나무 사과나무 장작 길례언니 점집 앞 새똥 몇 점 마을 어머니, 아직은 거둘 때가 아녜요 아가에게 가을 저녁에 시인의 산문 단상들 |
張錫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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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뒤편
그믐밤이다, 소쩍새가 운다. 사람이건 축생이건 산 것들은 사는 동안 울 일을 만나 저렇게 자주 운다. 낮엔 喪家를 다녀왔는데 산 자들이 내는 울음소리가 풍년이었다. 무뚝뚝한 것들은 절대 울지 않는다. 앞이 막혀 나갈 데가 없는 자리에서 ‘죽음!’이라고 나직이 발음해 본다. 혀뿌리가 목젖에 붙어 발음되는 이 어휘의 슬하에 붙은 기역 받침과 막다른 골목의 운명은 닮아 있다. 저녁 산책길에서 똬리 튼 뱀을 만나고 저수지에서는 두어 번 돌팔매질을 했다. 작약 꽃대가 두 뼘 넘게 올라왔다. 그믐밤이다, 直立人의 앞길이 캄캄하다. 소쩍새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며 마시는 커피는 쓰고 깊고 다정하다. 다시 혼잣말로 ‘죽음!’해 본다. 바닥이라고 생각한 그것은 바닥이 아니었다. --- p.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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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
세계사시인선 141, 장석주 시집 『절벽』이 발간되었다. 시인은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과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한 후 시와 소설, 산문과 평론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발한 창작활동을 해왔다. 이번 시집은 총 5개의 부로 나뉜 56편의 시편들을 담고 있다. 표제작인 「절벽」을 비롯해 여러 시편을 읽어가다 보면, 어느덧 쉰 중반에 이른 시인의 여전히 치열한 자기반성과 날카로운 시선, 그리고 이 가운데에서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팽팽한 긴장과 탐미의 미학을 맛볼 수 있다. 아마도 그는 “빗방울에서 움직이는 우주를 보며, 모래알에서 궤도에서 이탈한 별의 현존을 보며, 꽃봉오리를 흔들고 지나는 한 줄기 바람에서 탐미에의 몸짓을” 보고, 그 순간의 시적 강렬함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려 한 것이리라. 이번 시집에서 눈여겨볼 것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죽음을 인식한 삶’과 관련한 시어가 많다는 점이다. 이는 시인은 과연 어떤 ‘절벽’을 만났을까를 내내 생각하게 한다. 시집을 잠깐 살펴봐도, 여든이 넘은 노모의 모습을 보며 “돌아갈 길 아득해 힘을 비축”한다거나, “죽은 뒤 화장해서 골분은 / 숲 속 소나무 아래 뿌려주면 좋겠어”라고 한 것, 날아간 새와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를 “生과 沒 / 사이”라고 표현한 것 등이 보인다. 이를 두고 구태여 ‘죽음’이라고 말하지 않고 ‘죽음을 인식한 삶’이라 한 까닭은, 시인의 시와 삶에서 느껴지는 극복과 긍정의 자세 때문이다. 시인은 ‘브라보 브라보, 마이라이프!’를 외친다. 또한, 엽낭게의 살림살이를 엿본 뒤 삶은 감자를 천일염에 찍어 먹으며, “참으로 쓸쓸한 일인분의 고독”을 느끼지만 그 “정찬”을 “황홀”하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시인은 “살아남기 위해 / 비겁하게 사는 법을 배울 것이다. / 비겁하게 사는 법을 배워야 / 진짜로 비겁해지지 않을 수 있으니까. / 이마에 땀을 번들거리며 / 개고기를 먹고 / 밤엔 오입하는 게 / 삶의 외연을 넓히는 방법이라고 떠든 건 / 너의 진심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라고 말한다. 고은 시인의 말대로 “장석주는 못내 긴 세월 시인이었고 더 긴 세월 시인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