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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인물 7
1 연설가의 꿈 12 2 흑인의 설음 30 3 목회자의 길 52 4 버스 보이콧 운동 74 5 비폭력 저항 운동 100 6 꿈의 연설 120 7 셀마 행진 136 8 반전 운동을 하다 154 역지사지 / 라이벌 & 서포터 / 인물 스케치 / 용어 해설 / 교과 연계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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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어둠을 몰아낸 흑인 인권 운동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네 명의 내 자식들이, 피부색이 아닌 그들의 인격에 의해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흑인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평생을 힘쓴 마틴 루터 킹의 연설 중 일부분이다. 1929년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교회에 나가 설교를 들으며 연설가의 꿈을 키웠다. 학교에 입학한 뒤 인종 차별을 종종 경험하기 시작하면서 웅변대회에 나가 차별을 반대하는 내용의 연설을 하곤 했다. 1944년 모어하우스 대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종교를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인권 운동을 하기 위해 목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1954년 졸업 직전에 몽고메리의 덱스터 에버뉴 침례 교회에서 한 시범 설교는 그가 목회자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 후 활발한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한편 몽고메리의 버스에서 한 흑인 여성이 차별 대우를 받는 일이 있었는데, 이는 마틴 루터 킹 등을 필두로 한 버스 보이콧 운동으로 이어졌다. 버스에서의 인종 분리를 폐지할 때까지 버스를 타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처음에는 경찰이 마틴 루터 킹에게 억지로 죄를 뒤집어씌워 감옥에 가두거나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폭탄 테러를 하는 등 난관이 있었으나, 1년이 넘는 끈질긴 노력 끝에 마침내 몽고메리 지역 버스에서의 인종 분리가 폐지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백화점 식당가에서의 앉기 농성, 버밍햄과 워싱턴에서의 평화 행진 등을 진행하며 흑인들의 인권을 찾아 주기 위해 다방면으로 힘썼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64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투표권을 보장받기 위해 셀마 행진을 벌이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1965년 투표권 법이 정식으로 통과되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미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반대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미국은 그의 공로를 기리는 뜻에서 매년 1월 셋째 주 월요일을 ‘마틴 루터 킹 데이’로 이름 붙이고 공휴일로 지정했다. 훌륭한 인권 운동가이자 위대한 연설가, 믿음을 증명한 신실한 목사로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는 그의 삶을 지금부터 함께 들여다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