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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듯 읽다 보면 마음에 고이는 진한 감동
오랫동안 우리 가락이 담긴 동시조 창작에 심혈을 기울여 온 신현배 시인의 동시조집이 나왔다. 여기에는 어린이들이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소재에 시적 상상력을 한껏 불어넣어 특별한 감동을 주는 43편의 동시조가 4부로 나뉘어 실려 있다. 특히 3장 6구의 짧은 동시조 안에 반짝이는 동심이 들어 있어 노래하듯이 재미있게 읽는 동안 진한 감동이 마음속에 둥지를 튼다. 신현배 시인은 1981년 《시조문학》, 1991년에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조가, 1982년 《소년》, 1986년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조와 동시가 문예지와 신춘문예에 번갈아 당선된 시인의 이력에서 보듯이 그는 우리 고유의 가락에 동심을 담아낸 주옥같은 동시조를 빚어왔다. 특히 1992년 동시조 <쪽배>의 창립동인으로 참여해 그동안 수준 높은 동시조 창작에 앞장서 왔으며, 2008년에는 두 번째 동시집 『매미가 벗어 놓은 여름』으로 ‘우리나라좋은동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새를 기르는 아이가 원님에게 하소연했어요./ “내가 잠든 사이에 새가 달아났어요./ 꿈 밖에 서성거리던 더벅머리 산으로.”// “새를 숨겨 놓고도 시치미를 떼는구나./ 여봐라, 어서 가서 산을 잡아오너라.”/ 원님이 외치는 소리에 산이 놀라 부들부들. (「산을 잡아 오너라!」 전문) 제목으로 삼은 「산을 잡아 오너라」는 옛이야기를 동시조로 풀어낸 작품이다. 독자들에게 한바탕 웃음을 안겨주면서도 시를 읽는 즐거움을 한껏 선사한다. 첫 수에서 원님에게, 산속으로 달아난 새에 대해 하소연하는 동심과 둘째 수에서 산을 잡아 오라는 원님의 호통이 재미있는 대조를 이룬다. 거기다가 “꿈 밖에 서성거리던 더벅머리 산”이라는 시적 비유와 “산이 놀라 부들부들”이라는 과장이 가져다 준 웃음 뒤에 무릎을 치게 하는 신현배 시인 특유의 해학과 재치를 유감없이 읽을 수 있다. 이밖에도 “명궁 할아버지가/ 활터로 들어서자/ 설치던 바람이/ 소스라쳐” 달아나고 “뻐꾸기 울음소리는/ 골짜기 깊이 숨어들고.”(「활터에서」) 등 여러 작품에서 능수능란한 시심을 만날 수 있다. 이른 봄/ 여린 볕살은/ 팔려 온 치와와예요.// 낯가림을 하는지/ 겉돌기만 하더니// 며칠 새/ 길들여져서/ 푸근히 안겨 와요. (「봄볕」 전문) 이 작품은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독자들로 하여금 따뜻한 시인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공감토록 한다. 초장에서 」봄볕」은 “여린 볕살은/ 팔려 온 치와와”라는 비유로 생명을 갖는 볕살이 된다. 중장에서 “낯가림을 하는지/ 겉돌기만 하더니”라고 봄볕과 치와와의 공통점을 제시해 독자의 공감대를 이끌어 낸 다음, 종장에서 “며칠 새/ 길들여져서/ 푸근히 안겨” 오는 살아 있는 볕살의 따뜻함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뒷산 뻐꾸기 소리”가 “산 울음소리”, “산이 딸꾹질”(「뻐꾸기 소리」)하는 소리가 되기도 하고, “갇혔던 맨땅”이 “반달곰처럼/눈을 비비고”(「맨 땅」) 나오기도 한다. “수마가 할퀴고 간/ 들판”에서 “못된 마귀할멈/ 손톱자국”을(「물난리」) 보고, 중국에서 몰려오는 황사를 막기 위해 빗발은 “한밤 내/ 한반도 땅에” 장벽을(「황사」) 쌓고 있다. 내 짝꿍 볼우물에서/ 웃음 퐁퐁 솟는 날은// 나는 바가지예요/ 고이는 대로 떠내요.// 속모를/ 그 애 마음은/ 언제 길어 올릴까요. (「볼우물」 전문) 신현배 시인은 아주 평범한 소재에 이야기와 감동을 담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짝꿍이 기분 좋아 웃는 볼우물에서 시적 화자는 바가지가 되어 그 웃음이 “고이는 대로” 떠내고, 심지어 그 애 마음까지 길어 올리고 싶어 한다. 이 시집에 실려 있는 소재는 우리 생활에서 아주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들이다. 「볼우물」을 비롯해 「코」, 「전기밥솥」, 「수돗물」, 「조약돌」, 「늙은 호박」, 「바지」, 「자판기」, 「헌 책」…… 이런 사물들이 시인의 예리한 눈에 띄는 순간 마법에 걸리듯 거기에 이야기가 담기고 시로 거듭난다. 그것을 읽는 독자들은 전기밥솥에서 “한 끼 사랑”을 느끼고, “구겨진 마음을 펴고/ 다리 쭉 뻗는 바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등 시인의 마법에 걸려든다. 내가 어렸을 땐 복조리가 있었단다./ 초하루 새벽에 찾아오는 복조리 장수를/ 할머닌 새해 첫 해돋이보다 더 크게 반기셨단다. (「복조리」 첫 수) 밥하랴 빨래하랴, 물 길으랴 참 나르랴/ 엄마 따라 아기도 덩달아 바빴단다./ 처네가 흘러내려도 칭얼대지 않았단다. (「처네」 둘째 수) 이 작품들은 ‘할머니 이야기’를 빌어 요즘 어린이들에게는 조금 생소한 「복조리」와 「처네」에 동시조 가락을 담아 옛이야기처럼 들려준다. 두 작품 모두 세 수짜리 동시조로, 자칫 잊기 쉬운 우리 옛 풍습과 정서를 담았다. “봄바람 불어오면 제비처럼 날아들까,/ 할머닌 복조리를 둥지인 듯 바라보고/ 귀한 복 깃들일 날만 손꼽아 기다리셨단다.”(「복조리」 셋째 수), “처네 속에 있으면 둥지 속 아기새/ 얼굴을 등에 묻고 꿈나라로 가면서도/ 뜨거운 엄마 심장은 가슴에다 담았단다.”(「처네」 셋째 수) 등 옛적 할머니와 어머니의 사랑을 뭉클하게 전해 준다. 전기 요금 청구서에/ 전깃불처럼 환한 얼굴./ ‘말을 전혀 못함,/ 오른 쪽 이마에 흉터.’/ 아이를 바라보다가/ 넌지시 말을 건다.// “일곱 살 적 나처럼/ 엄마 손을 놓쳤니?/ 갑자기 불이 나간 듯/ 눈앞이 캄캄했지?”/ 아이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인다.// 어디 있냐고 물어도/ 웃기만 하는 아이,/ 꿈에라도 나타나면/ 집에 데려다 주고 싶다./ 지금쯤 저애 식구들은/ 울음바다 헤맬 텐데. (「전기요금 청구서」 전문) 「‘실종 장애인 찾기’ 아이 사진을 보고」라는 부제를 단 이 동시조는 전기 요금 청구서에 실린 실종 장애우를 보고 느낀 감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전기요금 청구서를 바라보는 시인의 안타까운 마음이 “전깃불처럼 환한 얼굴”, “갑자기 불이 나간 듯/ 눈앞이 캄캄했지?”라는 구절에 절절히 배어 있다. 이처럼 이 동시조집에는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듬뿍 담겨 있다. 그러나 이 동시조집의 고달픈 주인공들은 결코 값싼 동정심의 대상이 아니다. 시인의 가슴을 통과한 그 이웃들은 희망과 정겨움의 대상으로 거듭난다. 그래서 “낯익은 행상 할머니”를 버스가 “가슴 열고” 반기고(「마을버스」), 낮잠에 빠진 “복권 파는 할아버지”는 “지구 밖 꿈나라로” 향하고(「낮잠」), “빌딩 청소하러/ 아파트 경비 서러/ 집 나선 어르신들 얼굴이/ 새벽 공기처럼” 맑고(「시내버스」), “대왕고래 뱃속 같은/ 썰렁한 지하도”의 노숙자들을 “눈물 글썽한 소주병들”이 위로하고 있다. 신현배 시인은 동시를 쓰기 시작한 지 31년이나 되는 중견 작가이다.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동심이 가득 담긴 수준 높은 동시조로 쓰고 있다. 이 동시조집은 이야기를 나누듯 노래를 하듯 술술 읽힌다. 시인의 마음을 좇다보면 어느새 독자들은 시 읽는 즐거움에 깊이 빠져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