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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홍길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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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청목사 201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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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1. 홍길동전
2. 토끼전
3. 옹고집전
4. 이춘풍전
5. 배비장전

저자 소개 1

許筠, 단보(端甫), 교산(蛟山), 학산(鶴山)

1569년 허엽의 삼남 삼녀 가운데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서울 건천동에서 자랐다. 1579년 아버지가 경상감사가 되어 내려갔는데 다음 해에 아버지가 상주 객관에서 죽었다. 1582년 작은형을 찾아온 시인 이달을 처음 만났고 이달은 나중에 그의 스승이 되었다. 1588년 작은형이 죽고, 1589년에 누이 난설헌이 죽은 후에 난설헌의 시 210편을 정리하여 책으로 엮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홀어머니 김씨와 만삭된 아내를 데리고 피난길을 떠나 여기저기를 전전하다가 강릉에 도착했고, 사천 애일당 외가에 머물렀다. 이때부터 애일당이 있는 뒷산의 이름을 따서 교산(蛟山)
1569년 허엽의 삼남 삼녀 가운데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서울 건천동에서 자랐다. 1579년 아버지가 경상감사가 되어 내려갔는데 다음 해에 아버지가 상주 객관에서 죽었다. 1582년 작은형을 찾아온 시인 이달을 처음 만났고 이달은 나중에 그의 스승이 되었다. 1588년 작은형이 죽고, 1589년에 누이 난설헌이 죽은 후에 난설헌의 시 210편을 정리하여 책으로 엮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홀어머니 김씨와 만삭된 아내를 데리고 피난길을 떠나 여기저기를 전전하다가 강릉에 도착했고, 사천 애일당 외가에 머물렀다. 이때부터 애일당이 있는 뒷산의 이름을 따서 교산(蛟山)이란 호를 썼다. 1593년에《학산초담》을 지었고, 1596년 강릉부사였던 정구와 함께 《강릉지》를 엮었다.

1598년 중국의 장군과 사신들을 접대하느라고 돌아다녔다. 중국의 종군문인 오명제에게 《조선시선》을 엮어주었으며, 《난설헌집》 초고를 중국에 전파케 했다. 10월 13일, 다시 병조좌랑이 되어 가을에 평안도를 다녀왔다. 1599년 황해도사가 되었는데, 기생을 너무 많이 데리고 다닌다는 이유 때문에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611년 유배지인 전라도 함열에 도착해서 문집 《성소부부고》 64권을 엮었다. 11월에 귀양이 풀려 서울로 돌아왔다. 1612년 8월 9일, 큰형 허성이 죽었고 가장 가까운 벗 권필이 광해군을 풍자하는 시를 지었다가 매맞아 죽었다.

1615년 정2품 가정대부에 올랐다. 동지겸진주부사(冬至兼陳奏副使)가 되어 중국에 갔다. 이때 다녀온 기록을 《을병조천록》으로 남겼다. 1618년 봄, 스승 이달의 시집 《손곡집》을 간행하였다. 윤4월 7일, 남대문에다 백성들을 선동하는 흉서를 붙인 심복 하인준이 잡혀들어갔다. 17일에 허균도 기준격과 함께 옥에 갇혔다. 그의 심복들이 허균을 탈옥시키려고 감옥에 돌을 던지며 시위하였다. 22일에 광해군이 친히 허균의 심복들을 국문하였다. 이이첨은 망설이는 광해군을 협박하여 허균의 처형을 서둘렀다. 허균은 결안도 없이 8월 24일에 그의 심복들과 함께 서시에서 처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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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허균 (1569-1618)
조선시대 사회제도의 모순을 비판하는 걸작 소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은 조선 중기 양반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광해군의 폭정에 항거하였다는 이유로 가산이 몰수되고 식솔들과 함께 참형에 처해진 인물이다. 그는 『배비장전』『토끼전』『이춘풍전』등 주로 양반사회의 치부를 고발하는 작품들을 발표하여 권력의 미움을 샀으며, 그것을 알면서도 평생 그 저항의지를 꺾지 않았던 당시로선 진보적 지식인이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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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0.53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9.7만자, 약 3만 단어, A4 약 61쪽 ?
ISBN13
9788930705516

책 속으로

이후로 길동이 자호를 활빈당이라 하여 조선 팔도로 다니며 각읍 수령의 불의로 약탈한 재물이 있으면 탈취하고 가난한 백성이 있으면 구제하며 백성을 침범치 아니하고 나라에 속한 재물은 추호도 범치 아니하고, 이러므로 모든 도적이 그 의치를 항복하더라. 하루는 길동이 제인을 모으고 의논 왈,

"이제 함경 감사가 탐관 오리로 백성의 피를 빨아먹어 백성이 다 견디지 못하는지라. 우리들이 그저 두지 못하리니, 그대들은 나의 지휘대로 하라."

하고 하나씩 흘러 들어가 아무 날 밤에 기약을 정하고 남문 밖에 불을 지르니, 감사 대경하여 그 불을 구하라 하니 관속이며 백성들이 일시에 내달아 그 불을 구할사, 길동의 수백 정당이 일시에 성중에 달려들어 창고를 열고 전곡과 군기를 수탈하여 북문으로 달아나니 성중이 요란하여 물끓듯 하는지라. 감사 불의지변을 당하여 어찌할 줄 모르더니, 날이 밝은 후 살펴보니 창고의 군기와 전곡이 비었거늘, 감사 대경실색하여 그 도적 잡기를 힘쓰더니 홀연 북문에 방을 붙였으되, 아무 날 전곡 도적한 자는 활빈당 행수 홍길동이라 하였거늘 감사 발군하여 그 도적을 잡으려 하더라.

차설, 길동이 도적들과 함께 전곡을 많이 도적하였으나 행여 노중에서 잡힐까 염려하여 둔갑법과 축지법을 행하여 처소에 돌아오니 날이 훤히 밝아오더라.

---pp.21~22

공이 길동을 낳기 전에 한 꿈을 꾸었다. 갑자기 우레와 벽력이 진동하며 청룡이 수염을 거꾸로 하고 공을 향하여 달려들기에, 놀라 깨니 한바탕 꿈이었다. 마음 속으로 크게 기뻐하여 생각하기를, '내 이제 용꿈을 꾸었으니 반드시 귀한 자식을 낳으리라.' 하고, 즉시 내당으로 들어가니, 부인 유씨가 일어나 맞이하였다. 공은 기꺼이 그 고운 손을 잡고 바로 관계하고자 하였으나, 부인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상공께서는 위신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어리고 경박한 사람의 비루한 행위를 하고자 하시니, 첩은 따르지 않겠습니다.'

하며 말을 마치고는 손을 떨치고 나가 버렸다. 공은 몹시 무안하여 화를 참지 못하고 외당으로 나와 부인의 지혜롭지 못함을 한탄하였다. 그때 마침 시비 춘섬이 차를 올리기에, 그 고요한 분위기를 틈타 춘섬을 이끌고 곁방에 들어가 바로 관계하였다. 그 무렵 춘섬의 나이는 열여덟이었는데, 한번 몸을 허락한 후에는 문밖에 나가지 아니하고 타인과 접촉할 마음도 먹지 않기에, 공이 기특하게 여겨 애첩으로 삼았다.

과연 그 달부터 태기가 있더니 10달만에 일개 옥동자를 낳았는데, 생김새가 비범하여 실로 영웅호걸의 기상이었다. 공은 한편으로 기뻐하면서도 부인의 몸에서 태어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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