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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건
동거인 곶으로 손님방 돌아오다 칠흑의 밤 행복의 집 |
Mariko Koike,こいけ まりこ,小池 眞理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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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점에서 나는 아직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쁘고 섬뜩한 이야기였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오히려 호기심이 발동해 가벼운 흥분까지 느끼고 있었다. 여름밤 방 안의 전등을 끄고 악의 없는 괴담을 주고받을 때처럼.
손에 든 쇼핑백 안에는 검은 카디건이 들어 있었다. 만약 이 카디건이 우리와 같이 있었다는 그 수수께끼의 여자가 두고 간 것이라면, 결국 이 카디건은 도깨비가 입고 있던 카디건이라는 이야기다. --- p.30 “요코 씨, 그거 얼른 처분해버리는 게 낫겠어요.” “처분? 어떻게요?” “그런 물건을 쓰레기로 버릴 수도 없을 테니까……. 그래요. 가까운 절에 갖고 가서 시주를 하던가.” “주인이 있는 물건인데요?” 그냥 농담으로 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한 순간, 나는 문득 스스로 내뱉은 말에 포박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 p.34 “작은 남자아이였어. 맨발로 내 침대 주위를 뛰어다니고, 장난을 치고 웃으면서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더라고. 그만하라고 몇 번이나 주의를 줬는데도 말도 안 듣고. 정말 미치겠더군.” 나는 불현듯 남편의 머리가 이상해져서 환상을 보기 시작했구나 싶어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 p.75 내 눈은 그때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정말로 아무것도. 연기 같은 것조차. 하지만 그때 나는 분명히 ‘느꼈다’. 작은 사내아이가 그 미닫이문 너머에 서서 나와 다마가 있는 이 방을 들여다보고 있는 기척을……. --- p.84~85 남자 하나가 긴 의자 중앙에 앉아 있었다. 저녁나절 내가 앉았던 자리였다. 판자로 된 길쭉한 테이블 위에 노트북 컴퓨터를 놓고 등을 곧게 편 채 키보드 위에 양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모니터의 파란 불빛이 남자의 얼굴을 밑에서부터 비추고 있다. 노인인지 젊은 사람인지도 알 수 없었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에는 백발이 섞여 있었고, 앞머리가 빠져 이마 부분만 대머리였다. 모니터 불빛을 받고 있어서인지 얼굴이 창백해 보였다. --- p.121 “젊은 남자였습니다. 대학생이라던가. 아무튼 그 손가락이 너무 아름다워 몇 번이나 절을 찾아가 바라보곤 했는데, 어느 날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지요. 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서 보살상의 약지 하나를 뚝 부러뜨려 주머니에 넣었다는 겁니다. 그는 범죄자가 된 셈인데,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어떻게든 영원히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요. 안 그런가요?” --- p.127 “그러니까 죽을 때 말입니다. 대개 사람은 후우, 하고 마지막 숨을 다 뱉어냈을 때 죽는다고 착각하고 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지가 않아요. 사람이 죽으려고 할 때는 숨을 들이마시는 겁니다. 들이마시지만 공기가 더 이상 들어가지 않게 되면 그게 죽음입니다. 숨을 거둔다는 건 바로 그런 의미지요.” --- p.129 “지금도 있어.” 마유미는 슬픈 얼굴을 하고 말했다. “아까부터 줄곧 보고 있어. 섬뜩한 이야기지만 정말이야. 가즈요 눈에는 보이지 않을 뿐이야. 하지만 나는 보여. 봐, 저기. 네 등 뒤로 비스듬히 옆에. 도코노마 바로 옆쪽.”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 끝으로 내 등 뒤를 가리키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온몸의 털이 곤두섰지만 애써 돌아보지 않고 참을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내가 느낀 공포를 간신히 억누르는 데 성공했다. --- p.152 그가 누구인지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알고 있기 때문에 남자가 내 쪽을 돌아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나의 간절함도 덧없이, 남자는 천천히 내 쪽을 돌아보았다. 몽롱하게 보이는 그 입가에 어두운 미소가 담겨 있다. 보는 사람을 얼어붙게 만들 정도로 그 미소는 쓸쓸해 보였다. 나는 온몸이 경직되어 움직일 수가 없다. 역시 마유미의 말이 사실이었구나 싶었다. --- p.167 그래서 무심코 앞을 봤는데 ‘그 남자’가 꽉 찬 엘리베이터 안에 있었습니다. 중앙에서 약간 문 쪽에 가까운 곳에……. 언제 탔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8층이나 7층에서 탔을 리는 없으니 6층 단체 손님에 섞여 탄 게 분명했지만 모두 문 쪽을 향해 서 있는데 왠지 그 사람만은 반대 방향……, 그러니까 안쪽 벽을 향해 서 있었어요. --- p.196 작은 창으로 비쳐 드는 달빛이 아내의 얼굴을 한층 더 창백하게 보이게 했다. 눈썹도 눈도 코도 입도 모두 두루뭉술해서 물속에서 보는 것처럼 윤곽이 흐릿했지만 그것은 분명 아내였다. 내가 평생 잊지 못하는 아내의 얼굴이었다. --- p.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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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소리 없이 스며드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기척
『괴담: 서늘한 기척』에 담긴 일곱 개의 단편들은 일상의 공간에서 마주친 괴이한 존재가 주는 공포를 생생하게 그린다. 나이 든 화가가 홀로 살고 있는 숲속 외딴집에서 남자아이의 천진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이라고는 화가와 고양이뿐이다. 한편, 지방의 대지주와 결혼한 친구를 만나기 위해 방문한 저택에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흐른다. 비쩍 마른 친구는 겁에 질려 있고, 여자가 묵게 된 손님방에서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기척이 느껴진다. 단편 「동거인」과 「손님방」에서는 집과 방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편안한 공간을 배경으로 알 수 없는 존재와 마주치는 공포스러운 순간을 그렸다. 우연히 손에 넣은 카디건에 매료되어 가는 여자의 모습을 다룬 「카디건」은 모임이 끝나고 바에 남겨진 수수께끼의 검은 카디건에서부터 시작된다. 모임에 참가한 이들 중 카디건의 주인은 없고, 바의 주인만이 아무도 본 적 없는 긴 머리의 여성을 목격했음을 알게 된다. 또 다른 단편 「곶으로」는 낭떠러지에서 몸을 던져 자살한 남자의 흔적을 따라온 여자가 그가 마지막으로 묵은 펜션에서 기묘한 밤을 보내게 되는 이야기다. 애완동물과 함께 숙박할 수 있는 숙소로 인기가 있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짐승 냄새가 감도는 을씨년스러운 풍경에 주인 부부도 이상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 두 이야기에서 인물들은 바와 펜션이라는 밝고 떠들썩할 것만 같은 공간에서 정반대의 어두운 존재와 조우한다.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 기괴한 분위기로 그려지고, 마지막에는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공포가 오감을 장악한다. 아들의 결혼식에서 처음 얼굴을 본 수수께끼의 남자와 계속해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돌아오다」와 공원에서 만난 고독한 노인에게 자신의 행복한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는 여자의 이야기 「행복의 집」, 그리고 죽은 아내와 재회하는 남편의 나날을 그린 「칠흑의 밤」에서는 떠나간 존재에 대한 그리움과 지독한 공포가 공존한다. 이미 저세상으로 떠난 누군가를 다시 만났을 때 인간은 기뻐할까, 아니면 두려움에 떨까. 이 모순된 두 가지 감정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지고, 마지막의 충격적인 반전이 가슴을 움켜쥐게 한다. 이 일곱 편의 이야기들은 냉수를 뒤집어쓴 것처럼 등골이 차가워지는 놀라운 전개와 기묘한 요소들이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한다. 그러나 거기에 이르는 배경과 인물의 심정, 사람의 마음 깊숙한 곳을 그려내고 있기에 이야기 속으로 더욱 깊이 빨려 들어간다. 있을 수 없는 일, 기묘한 사건과 같이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소리 소문 없이 전해진다.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은 놀라운 결말이나 진상뿐만 아니라, 언제 발밑이 무너질지 모르는 현실 속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불안, 기쁨, 슬픔 등의 감정이다. 누가 산 자이고 누가 죽은 자인지를 떠나, 사람도 혼령도 어떠한 감정을 안고 때론 환희하고 때론 절망하는 모습이 애틋한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세계임에도 친근하고, 등줄기를 흐르는 전율은 그윽하다. 무서운데도 여름밤이 되면 모여 앉아 괴담을 나누는 것은 이런 기분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살아온 나날을 돌아보는 상념 속에서, 평범한 일상생활의 한복판으로 불쑥 튀어나오는 애타도록 그리운 존재. 등골이 짜릿하다.” _옮긴이 후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