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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005
1부 망극 012 부곡(部曲)의 봄날 용법 014 봄밤에 짓다 015 뻐꾸기 풍년 018 이 회삼물 반죽으로 020 한밤중에 우는 아기에게 022 유방을 기리는 노래 025 일곱 살 026 애오라지나무 027 롤러코스터 홀로코스트 028 불꽃놀이 029 누항사(陋巷詞) 030 알불 031 어느 가을날 032 산국 033 간추린 풍경 034 저녁연기 035 청어가 있는 저녁 036 행운동에 와서 038 눈송이들 040 무야(戊夜) 042 그믐치 044 모정 046 손 048 2부 천국에서 보낸 한철 052 무위의 시 053 한로(寒露) 054 연두가 새로 와도 055 UFO를 위한 시 056 비 057 개미지옥 058 동침 059 가족력 060 다시 부곡에 산다 062 부곡에서는 전대가 날아다닌다 065 부곡의 예술가 068 글로벌리즘을 찬양하라 072 두 근 반 세 근 반 하는 이 마음을 074 사립초등학교 아이들을 보며 076 소년 문사 079 네 노래는 거기 있어라 080 나, 나나니벌은 082 보리수나무 아래서 084 중얼거리는 천사들 086 귀뚜라미의 귀가 089 어느 늦가을날 090 매봉 092 조랑말 프로젝트 093 3부 띄어쓰기에 맞게 쓴 시 098 선의 099 나쁜 서정시 2 100 포스트파라다이스 102 2008, 무자년, 망통 105 훤화가 108 이순(耳順)의 귀를 눈으로 옮겨 적다 110 시월의 나비 112 어떤 행진 앞에서 114 무릎걸음으로 116 지혈(地血) 속으로 118 만리장성 120 꽃아, 너는 좋겠다 122 동묘의 모란을 보고 나와 124 비 내리는 테헤란로 126 돼지가 ㅎㅎㅎ 웃는 날 129 위대한 꾸[句] 132 종로유사(鐘路遺事) 134 눈 부릅뜬 눈 138 마지막 모닥불 140 파경을 향하여 142 빙탄의 시 145 자, 이제 우리 그만 작별하세 1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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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가 있는 저녁
저도 이제 나이를 먹었는가보다 젊었을 땐 손에 무얼 들고 다니는 걸 그렇게도 싫어하더니만 웬일로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왔네 쏟아놓고 보니 토막 낸 청어가 들어 있네 저 애가 이것이 무슨 물고긴 줄 알고 사왔을까 너나없이 살림이 어려운 이웃들 밥상에도 자주 오른 걸 보면 그때는 이 비린 것이 그래도 흔한 생선이었던가봐 그러나 바닷물도 세월을 타 눈 씻고 찾아봐도 잘 보이지 않던 이것들이 이제 다시 살아 돌아왔단 말인가 잔가시가 많아 새끼들에게 그걸 발라주느라 내 차지가 있었던가 생각도 안 나는데 무슨 맛이었던지 새삼 기억이 되살아나줄까 처자식은 어따 훌쩍 떼놓고 와 나하고 겸상하는 걸 마뜩찮아 하는 녀석 저는 저 아래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먹고 나는 식탁에서 지진 청어를 먹는데 눈이 어두워 가시가 어디에 박혀 있는지 그때만큼이나 성가시도록 많은지 적은지 헤아리기 앞서 우선 살점 한 점 입에 넣어 오물거리는데 그 맛을 알 수가 없네 어느새 이 다 빠져 씹을 수가 없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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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시인선 아흔네번째 시집을 펴낸다. 1995년 국민일보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박해석 시인의 『중얼거리는 천사들』은 12년 만에 선보이는 시인의 세번째 시집으로 침묵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시의 외연과 내연 모두 깊어지고 넓어지는 시의 무게감으로 시라는 이름의 그림자를 더욱 완연히 드리우고 있다.
이 묵직함, 그러나 이 수줍음. 박해석 시인의 이번 시집을 정의하는 데 있어 이 두 단어는 끝끝내 필요충분조건이 될 것이다. 시를 자유자재로 휘게 할 줄 아는데 또 그렇게 놓인 시 앞에서 부끄러움으로 스스로를 가다듬을 줄 아나니, 시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새삼 되묻게 한다. 시인의 말마따나 “마지막 잠들 때까지 오늘도 죽기 살기로 가위 바위 보를” 하는 일이 시가 아닐까. 『중얼거리는 천사들』은 해설이나 산문의 보탬 없이 총 3부에 걸쳐 각 24편의 시가 꼭꼭 쟁여져 시로만 72편이 수북하게 담긴 시의 성찬이다. 시를 읽어내는 일은 어렵지 않고 시를 이해하는 일도 난감하지 않는데 시를 삼키는 일에 간혹 체기를 일으키게 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시가 너무 ‘시’인 까닭이다. 시 그 자체의 큰 덩어리가 우리들 접시 위에 툭 던져져 있는데 어느 날은 살코기로 또 어느 날은 비계로 또 어느 날은 뼈로 시가 그때그때 부위를 달리하는 까닭이다. 그런데 절창이다. 그렇게 곡(哭)이다. 화려한 미사여구나 과장된 비유 하나 없이 말로 툭툭 뱉는 듯한데 타고난 리듬이 절로다. 많다면 많은 이 시편들이 아프다면 아픈 이 이 시편들이 일단은 눈에 밟히고 입에 붙고 손에 쥐이는 이유는 시에 드리운 이야기들이 우리들 일상의 편린들이기도 한 연유일 거다. “어디로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를 눈송이를 따라 걸어가는데 걸어가고만 있는데……” 그리하여 고향은 갈수록 멀어져만 가는데 “살고 살아지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이렇듯 삶을 묻는 시집. 살아옴을 반추하는 시집.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온 날들의 허망함을 낱낱이 고하는 시집. “듣도 보도 못한 것을 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만큼 인생을 많이 먹어버린 시집. 삼킬 때는 왕성한 식욕을 자랑했으나 뱉을 때는 눈치를 보는 시집. 그걸 작정하지 않은 긴장이라고 하면 얼추 맞아들어갈 시집. 예컨대 이런 인생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시집. 서로가 이만큼씩 떨어져 살아 이 세상이라고 띄어 쓰는가 그런 것들이 비로소 한데 모여 저세상이라고 붙여 쓰는가 더는 춥지 말자고 더는 외롭지 말자고 더는 헤어지지 말자고 -「띄어쓰기에 맞게 쓴 시」전문 이 시집을 읽어내는 재미랄까 요령 속에 하나의 팁을 말하자면 시들의 마지막 구절에 유념해보라는 거다. 괄호 열고…… 괄호 닫고…… 마지막 구절 속에 특히나 어깨 툭툭 쳐주는 위로가 있고 격려가 있고 사랑이 있고 아버지의 손이 있으니, 끝내 이 시집을 아비가 물려준 유언으로 새기면 어떨까 한다. 아비는 가도 아비의 유언은 평생을 아비니! 시인의 말 노인을 위한 나라가 없듯이 늙어가는 시인을 위한 세상은 없다. 그러므로 마음으로나마 젊어지려고 나는 오늘도 이 몹쓸 놈의 시를 생각한다. 2017년 5월 박해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