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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오렌지 철로변 집 전광석화 시각의 문제 때로는 엔젤피시 똥파리 해변의 카프카 고양이와 장미 난생처음 봄 읽어줘요, 제발 아무르장지도마뱀 너무 많은 하얀 늑대 그는 이곳에 오지 않는다 기하학적 실수 폭풍 속으로 자라지 않는 나무 살아 있는 집 보헤미안 광장에서 제비꽃 세설원에서 어느 아이의 일기 벌거벗은 도시 천적 죽지 않는 책 내 안의 오필리아 중독된 사람들 노랑나비 한 마리 명랑 백서 왕오색나비 효과 비열한 거리 파리의 자살 가게 글루미 선데이 아이스크림 검은 숲 석양의 얼음공주 물속의 돌 황홀한 침범 에곤 실레 아비뇽의 처녀들 공생 내가 사랑한 시 포르쉐 550스파이더 지나친 배려 블루베리와 크랜베리 사이에서 아직도 너는 위대한 양파 시인 앨범 4 어젯밤 도착한 보고서 어디에나 있는 고양이 시인 앨범 5 푸른 파라솔 소와 나 벌새 밥의 힘 돌멩이 바다로 간 내 애인들 순식간에, 아주 천천히 방과 복도 봄날의 한 아이 독립국가 꽃밭에서 쓴 편지 해설 | 위태로운 사랑의 체위 | 우대식(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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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작을 남기고 싶어 무라카미 하루키는 『해변의 카프카』를 썼다. 카프카는 체코어로 까마귀이다. 해변의 까마귀. 그러나 까마귀는 해변보다 사막에 더 잘 어울린다. 둘 다 모래로 만들어진 곳이다. 젖은 모래와 마른 모래. 한쪽은 태양을 삼키고 한쪽은 태양을 뱉어낸다. 카프카는 타오르는 태양을 뱉어내는 새. 하루키는 그 새의 그림자를 흠모하여 『해변의 카프카』를 썼다. 모래폭풍이 불 때마다 책 속에서 검은 까마귀들이 아프게 울어댔다. 『해변의 카프카』는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부터 어딘지 모를 곳으로 떠나는 긴 여행이다. 그리고 그것은 피바람으로 이루어진 성채(城砦)이다. 그 피를 다 쏟아내지 않으면 새날은 결코 밝아오지 않는다. 불후의 명작은 그 너머에 산다. 인간의 비극으로 철저히 변장한 신(神)들만이 그곳으로 갈 수 있다.
---「해변의 카프카」중에서 그는 이제 이곳에 오지 않는다. 그는 승진했다. 이곳보다 더 재미있는 곳이 생겼다. 재미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하고 절실한 에너지원이다. 재미는 사람을 재빨리, 단시간에 변화시킨다. 그는 이제 이곳에 오지 않는다. 그는 승진했으며, 더 재미있는 곳을 발견했다. 승진과 비(非)승진 사이로 부는 바람은 태풍 전야의 바람만큼이나 세차다. 이제 그 사이에 있던 모든 것들은 뽑혀나가거나 흔적없이 사라질 것이다, 재미를 잃은 것들은 모두 시들시들 먼지로 변할 것이다. 먼지는 내가 입 밖에 내지 못한 나의 비명들이다. 그는 이제 이곳에 오지 않는다. 재미를 잃은 먼지는 비명들은 곧 누군가의 침묵으로 변하고 누군가의 절망이 되어 사라질 것이다. 떠나는 것들은 모두 그렇게 사라진다. 끝도 없이 반복되며 이어지는 저 아리따운 장례 행렬들처럼! ---「그는 이제 이곳에 오지 않는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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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시인선 아흔두번째로 김상미 시인의 시집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를 펴낸다. 1990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했으니 올해로 시력 27년차, 그새 시인이 품은 시집은 이번 신작까지 포함하여 단 네 권. 게을렀다고 하기에 그간 김상미 시인이 우리 문단에 선보인 시들의 존재감은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하고 깊어 아무래도 시와의 팽팽한 샅바 싸움에 시간을 충분히 소요한 까닭이겠거니 하게 된다. 그건 뭐 시를 보면 알 일인데 무엇보다 시 한 편 한 편에 내재된 살아 있음의 형용이 탁월하게 빛난다. 이토록 입말 글말을 예쁘게 또 천진하게 참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가 있을까. 더군다나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에 미치는 기적을 매일같이 기록하는 사람. 그런 시인 김상미. 세번째 시집에서 네번째 시집으로 건너오기까지 14년의 시간 동안 시인은 아주 사소한 데서 기쁘고 행복하며 슬프고 아픈 일들을 찾고 모아왔는데, 그 결실들에 안도하는지 이리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오, 아름다운 나날들’이었다고. 누구보다 발랄하고 누구보다 솔직하고 누구보다 긍정적인 사유 속 내지른 시편들이라지만 종국에는 냉정이 비치고 냉기가 서린다. 내내 뜨거웠다가 막바지에 차가워지면서 지르는 한마디의 무시무시함을 시인은 칼처럼 지니고 있다. 은장도가 아니고 과도도 아니고 도루코 면도날 같은, 종이에 싸면 도저히 모를, 작디작지만 예리한 칼날. 한껏 신나게 뛰놀게 하다 시무룩하게 뒤돌아 집에 가게 만드는 시들의 힘은 결국 자기 속내를 들여다보는 계기를 만들어주어서일 텐데, 마치 거울을 보듯 우물을 보듯 휴대폰 카메라 속 나를 보듯 군데군데 여러 대목에서 우리의 얼굴을 비춰 우리들의 살갗에 닭살을 일게 한다.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라고 먼저 묻는 것이 아니라 나 이렇게 살고 있는데요,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라고 묻는 시집. 나도 깔 테니 너도 까라는 시집. 발문 형식으로 쓰인 우대식 시인의 해설이 이 시집 읽기에 더한 흥미를 돋구어준다. 마지막 한 장까지 내내 붙들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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