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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열병합발전소 57분 교통정보 관 데미안 남자는 허리다 무정차역을 위하여 쌍칼이라 불러다오 역류성 식도염 국부론 화석표본 자리끼 청첩 낙지선생 분투기 추두부 지구력 습관성 산책 무릎이라는 이름의 여자 눈사람 연대기 20세기 응접실 장군의 후예 영구치 영구차 2부 늑대에게 경의를 서산어보 종성부용초성 신의 선분 영역 그게 비빔밥이라고 본다 저녁이라는 짐승 모닥불 생의 한가운데에서 상춘곡 자매 복집 주초위왕 종마공원에서 오는 길 강물의 가계도 전봇대 다카르랠리 맥랑시대 도로원표 방정식 그대로 멈춰라 소멸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깃든다는 것은 3부 사이 순간의 기하학 반사 월령가 손님 반인반수. 두물머리 서신 평범경작생 정석입니다 2 할아버지의 부채 서해, 강화의 밤에 창밖에 잠수교가 목요 문화산책 마트료시카 내력벽 봄도다리쑥국 봄밤인데 상현달 몰운대로부터 멀리 밴댕이 강습 자살공격 비행단 해설 | 도시의 토템 │ 황현산(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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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이름의 수많은 가능성 또는 불가능성들.
그리하여 시의 적절함에 대해 시옷에 대해 묻지 않고 오래 생각했다. 아무에게도 묻지 않고 혼자 오래 생각해 기어이 틀린 답을 구하는 어리석은 산수였다. 식물원에서 나무화석을 만져본다. 모든 시는 나무로부터 오는 것, 화석이 되어서라도 이 지구에 남을 수 있을까. 두번째 첫 시집이라고 말해본다. 내가 아직 쓰지 않은 것들이 그립다. ---시인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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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합발전소
우렁차게 울려퍼지는 함구령이다 늦은 밤 성산다리를 넘어 맞닥뜨린 발전소는 거룩했다 뜻이 높은가 굴뚝이 높았다 예의 바르게 발언권을 청하는 오른팔이다 중생대부터 너를 그리워했다고 안에서 타는 말들을 정연하게 풀어놓아본 사람은 안다 나와 당신도 언젠가 화석연료가 되어 오백만 년 후의 밤하늘에 울려퍼질 것이라고 말은 말이 되지만 말이 되지 못한 것이 열병이 된다 열병과 열병이 모이고 열병이 뭉쳐 저리 타오른다 굴뚝은 열병을 장전하여 쏘아올리는 포신이다 말을 만들려고 더듬거리는, 내 입술을 가로막는 너의 검지손가락이다 쌍칼이라 불러다오 쌍칼, 그의 결투는 잔혹하다 어지간히 무거운 상대라도 높이 들어올리면 전혀 맥을 추지 못한다 지게차의 작업은 그렇게 냉정하다 일말의 동요도 없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상대의 중심 깊숙이 두 개의 칼날을 밀어넣는다 아무 표정 없이 들어올린다 그의 무게중심을 흩뜨리지 않는다 그를 자신보다 높이 추켜올린다 쌍칼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을 보지 못했다 완벽한 전술이다 그를 오래 보고 있으면 결투의 원리를 알 것 같다 내력벽 실평수 17.15평의 생에 기둥이 하나 서 있다 기둥은 안으로 들어와서 벽이 되어 서 있다 내 안으로 들어와 벽이 된 것 조금만 더 작았더라면 삶의 전용면적이 더 넓어질 수 있었을 것을 공연히 평수만 차지하고 있다 이 벽 이마로 쿵쿵 두드려본다 내 것이 아니면서 버리지 못했던 그리움들 잡아두려 했으나 나를 떠난 눈물들 일상의 문장 안에 자꾸 늘어만 가는 괄호들 이 자들을 밖으로 다 들어낼 수 있다면 그런데 당신은 어쩌자고 이것이 여태 내가 걸어온 내력이라 말하는가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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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등지고 저의 그림자를 경작하는 자의 뒷모습은 환하면서 외롭고
자신을 사랑하는 자의 앞섶은 그리하여 어두운데” 윤성학 두번째 시집 『쌍칼이라 불러다오』 윤성학은 도시의 경작생이다. 그의 경작은 평범하지만 그림자의 경작은 그의 창안이며 우리 시대의 업적이다. ―황현산 해설 「도시의 토템」에서 도시인의 비애로 만들어낸 생활 윤리 200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버둥대는 현대인의 애환을 시로 표현해온 윤성학 시인. 그의 두번째 시집 『쌍칼이라 불러다오』가 출간되었다. 2006년 첫 시집 『당랑권 전성시대』를 펴낸 지 7년 만이다. 시인이라는 이름보다 직장인의 이름이 더 오래된 그. 두 이름을 가지고 산다는 건 어떤 거냐 물으니 ‘짜파구리’와 같단다. 전혀 다른 두 이름이 만나 새롭고 특별한 맛이 난다는 뜻.(윤성학 시인은 농심 홍보실에 근무한다.) 생의 부조리와 생활의 균열, 매일을 꼬박꼬박 살아내는 직장인의 비애를 소재 삼아 때로는 관조로, 때로는 익살로 끌어가는 그의 시와 똑 맞아떨어지는 답변이 아닐 수 없다. 허리가 아프다 아침에 잠을 깨면 제일 먼저 국부를 만져본다 나는 이 집의 국부다 굳세게 일어나야 하는 국부다 (아담 스미스는 왜 하필 아담인지) 어느 날부턴가 아침에 국부가 기상해 있지 않으면 바닥에서 몸을 뜯어내기 전 일어난 것도 누워 있는 것도 아닌 그를 일으켜세운다 이것이 국부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하면서 등뼈에 하루치 하중을 입력한다 오늘 아침 국부가 나보다 먼저 일어나 경제학 원서를 들춰보고 있었다 아직 나의 직립은 무사하다 나는 여전히 국부를 위한 자유경쟁에 종사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능률과 생산성과 자유방임 사이를 오가며 아주 오래 기억해내지 못한 것이 있었다 가장 깊은 곳 가장 깊숙한 바닥에 누워 있던 한 문장이 번쩍 등뼈를 관통하는 순간에 나는 가장 뜨겁고 단단하게 일어서곤 했다 ―「국부론」 전문 한 집안의 가장, 즉 ‘국부’인 화자는 “등뼈에 하루치 하중을 입력”해 ‘국부’를 일으켜세운다. ‘국부'를 위한 “자유경쟁에 종사”하며 “능률과 생산성과 자유방임 사이를 오가”느라 “아주 오래 기억해내지 못한 것”이 있단 것을 깨닫는 날도 있다. “가장 깊은 곳/ 가장 깊숙한 바닥에 누워 있던/ 한 문장이/ 번쩍/ 등뼈를 관통하는 순간에/ 나는 가장 뜨겁고 단단하게 일어”선다 말하는 그는 천생 시인일 터. 첫 시집에서 “권법 없이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이곳”을 살아내기 위해 “강하게 파고들었다가/ 빠르게 빠져나오는” 당랑권을 택했다면, 이번엔 “일말의 동요도 없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상대의 중심 깊숙이/ 두 개의 칼날을 밀어넣”고 “아무 표정 없이 들어올”려 “자신보다 높이 추켜올”리는 지게차의 “쌍칼”과 그 작동에서 “결투의 원리”를 배운다. 그러나 ‘쌍칼’이 ‘두목’이 되는 법은 없는지라, 결국 “오늘도 끝내 누구와도 마주서지 못”한 채 “자신의 몸을 세워둘/ 네모 칸 하나 찾아가는 일”(「57분 교통정보」)이 전부인 게 우리네 일상이다. 이렇듯 희화된 삶의 풍경은 시인의 눈으로 본 생활인의 모습, 생활인으로 살며 발견한 시적인 순간들에서 빚어졌다. “실평수 17.15평의 생”에 “공연히 평수만 차지하고 있”는 “벽” 하나. “버리지 못했던 그리움들”, “나를 떠난 눈물들”, “일상의 문장 안에 자꾸 늘어만 가는 괄호들”을 탓하며 벽에 이마를 부딪혀본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내 안으로 들어와 벽이 된 것”. “그런데 당신은 어쩌자고/ 이것이 여태 내가 걸어온/ 내력이라 말하는가”라는 마지막 행(「내력벽에서 내력이 내력으로 읽히는 순간, 많은 것을 보내고 참고 떠나온 우리는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강에 갔다가 돌아옵니다 돌아오기 위해서도 사람들은 앞으로 걷습니다 흘러간 날들의 내가 나를 불러 돌아서는데 뒷걸음이지만 나는 가까스로 앞으로 걷고 있었습니다 ―「강습」 부분 온천물에 뛰어드는 눈송이를 보라 지난 세기 자살공격 비행단은 극명한 목표가 있었다 돌아오지 않기 위해 먼 길을 가본 자는 안다 이 눈송이들의 투신으로 무엇이 바뀌는가 한세상 뛰어들어도 온천의 수위는 높아지지 않고 물은 식지 않는다 눈을 떴다 이 섬은 희고 청한하다 무리 중 누군가 무의미를 무의미라 말한다 나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의미는 어디까지 의미 있는지 잠시라도 아름답다면 그것은 의미인지 무의미인지 아름다움은 누가 규정하는지 묻지 않았다 ―「자살공격 비행단」 부분 “흘러간 날들”의 부름에 돌아서서도 우리는 “앞으로” 걸어야 한다. “뒷걸음”으로라도. 그런 우리의 한 걸음 한 걸음은 강처럼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을지. “한세상 뛰어들어도” 바뀌는 것 없는 “투신”에 우리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의미는 어디까지 의미 있”을까. 이렇듯 “해를 등지고 저의 그림자를 경작하는 자의/ 뒷모습은 환하면서 외롭고/ 자신을 사랑하는 자의 앞섶은 그리하여 어”둡지만(「평범경작생」), 황현산 평론가가 해설에서 언급했듯 그것은 적어도 “희망 없이 경작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시는 희망 없는 것들이 유일한 희망이 되는 어떤 비밀한 시간에 대한 알레고리가 아니던가” 반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