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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서문: 환원주의와 사회생물학-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동거
논쟁 1: 사회생물학은 환원주의인가? 김환석: 생물학적 환원주의와 사회학적 환원주의를 넘어서 1. 머리말: 사회생물학과 표준사회과학모형 2. 생물학적 환원주의와 문제점 3. 사회학적 환원주의와 문제점 4. 대안으로서의 비환원주의 5. 맺음말: '통섭'에서 '합생'으로 장대익: 사회생물학과 진화론적 환원주의 1. 어떤 환원주의를 말하는가? 2. 비다윈주의적 환원주의 3. 다윈주의적 환원주의 4. 다윈주의적 반환원주의 5. 나오며: 행위자-연결망 이론과 환원주의 논쟁 2: 생물학으로 문화를 설명할 수 있는가? 이정덕: 지식대통합이라는 허망한 주장에 대하여 - 문화를 중심으로 1. 문제틀 2. 문화연구의 문제틀 3. 문화를 보는 사회생물학의 문제틀 4. 통섭과 문화, 그리고 문제점 5. 사회생물학 문제틀로 문화에 접근할 때의 문제점 6. 대안: 허용의 관점 전중환: 문화의 진화적 종합을 위하여 1. 머리말: 진화는 문화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2. 초유기체로서의 문화 3. 문화에 대한 진화적 접근들 4. 메타문화 5. 유발된 문화 6. 전달된 문화 7. 맺음말: 문화의 진화적 종합을 위하여 논쟁 3: 한국에서 사회생물학은 올바로 수용됐는가? 이병훈: 한국에서는 사회생물학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 도입과 과제 1. 윌슨의 『사회생물학』 번역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2. 『이기적 유전자』와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가 사회생물학 열기에 기름을 붓다-1993년 3. 한국에도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의 열풍이 불다-1994년 4. 『자연주의자』와 개미 관련 책들의 출간-1995~1997년 5. 다윈의 진화론 바람이 철학계에-1998~1999년 6. 『인간 본성에 대하여』와 『이타적 유전자』의 출간-2000~2001년 7. 『사회생물학의 승리』의 출간, 그러나 계속되는 반론들-2001~2004년 193 8. 『통섭: 지식의 대통합』의 출간과 찬반논쟁-2005년 9. 『이기적 유전자』 발간 30주년과 국내에서의 논쟁들-2006~2008년 10. 다윈 탄생 200주년과 사회생물학-2009년 11. 사회생물학의 후폭풍, 그 심판은 어떻게 12. 사회생물학 논쟁의 승리자는 누구인가? 13. 사회생물학에 일어난 그 후의 변화들 14. 일본과 중국에서는 사회생물학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15. 한국의 사회생물학 도입 상황과 과제 16. 결론 김동광: 한국의 '통섭 현상'과 사회생물학 1. 들어가는 말 2. 간학문성의 측면에서 『컨실리언스』가 설득에 실패한 이유 3. 한국의 통섭 현상 4. 나가는 글: 통섭 현상의 함의 김세균 후기: 다윈주의와 우발성의 유물론, 그리고 중층결정 찾아보기 저자소개 |
崔在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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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도 어느 정도 유전자의 결정 범위 내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행동들의 집합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 문화 역시 궁극적으로는 긴 유전자의 팔 안에 있는 셈이다. 결국 생물의 모든 생명 현상들은 유전자가 깔아 놓은 멍석 위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다. --- p.23
생물학과 사회과학의 생산적 소통과 협력은 꼭 필요하고 바람직하지만, 문제는 생물학적 환원주의에 있다. 인간 행동과 사회현상의 복잡성을 보다 세밀하게 이해하고 분석하지 않고 오로지 생물학적 요인의 결과로만 보려 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아니라 오히려 왜곡이기 때문이다. --- p.32~33 진화심리학이 인간의 몇 가지 보편적인 형질(예컨대 다양한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친족주의, 짝짓기 전략 등)에 대해서는 더 나은 설명을 제공할지 몰라도, 인간 간에 또는 문화 간에 차이를 보이는 형질에 대해서는 설명력이 별로 없다는 지적이 있다. […] 하지만 진화심리학자에게도 이런 비판에 대해 적절히 대응할 만한 답변들이 있다. 예컨대 공통 모듈일지라도 상이한 환경과 상호작용을 통해 문화적 차이가 생길 수 있다거나, 진화심리학과 행동유전학을 결합시키면 개인의 차이를 잘 설명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환경이 안정된 적응 문제를 산출할 만큼은 안정되어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진화심리학에서 환원주의는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지는 않다. --- p.84~85 유전자 논리는 왜 이 집단은 기독교를 믿고, 저 집단은 이슬람을 믿는지, 또 다른 집단은 불교를 믿거나 조상 또는 샤머니즘을 믿고, 또 다른 사람은 왜 신을 없다고 하는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 즉,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문화적 다양성이나 유전자 변화보다 급격한 문화 변화는 인간 유전자나 후성규칙이 문화(의미체계)를 방향 짓는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든다. […] 사회생물학이 인간 두뇌의 창발성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현재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 p.130 이제까지 국내의 논란을 볼 때, 사회생물학이 유전자 결정론이라든가 지나친 환원주의라는 판단 그리고 특히 윌슨의 사회생물학이 지나치게 '제국주의적'이라는 비판이 있을 뿐, 어째서 부당한가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나 논증은 별로 없는 것으로 보인다. --- p.233 윌슨은 독자에게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이라는 두 '영역'을 나누는 '경계'를 넘어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러나 그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메타포는 상호 교통의 비유가 아니라 탐험과 정복의 개척시대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들이다. 즉, 선구자와 탐험자들의 영웅적 이미지를 끌어들여서 자연과학자를 영웅적 탐험자로 추켜세우고, 그들이 과학의 영토를 과거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영역까지 확장하도록 고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 p.249 우리는 '생물학적 환원주의'를 단호하게 배격해야 하지만, 사회생물학, 더 나아가 사회생물학이 발전시킨 진화심리학 등의 중요한 연구 성과들은 인간 행위를 '중층결정'하는 전자아적인 규정 요소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창발 현상'은 '환원주의적 통섭'을 비판하기 위한 과학적 근거가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연과학·생물학과 인문·사회과학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는 '반환원주의'의 입장 역시 옳은 접근법으로 보기 어렵다. 유전자적·사회생물학적 규정들은 단지 '멍석'을 까는 역할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 역시 인간 행위를 만들어내는 '중층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요소임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 p.2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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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 vs. 사회과학, 한국 최고의 석학들이 벌인 사회생물학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
생물학은 인간과 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가? 2005년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지식의 대통합』이 번역되면서, 국내 학계는 격렬한 찬반논쟁에 휩싸였다. 생물학이 인문·사회과학을 통합해야 한다는 사회생물학과 통섭의 비전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학문 영역 간의 소통이 아니라 생물학을 중심으로 다른 학문들을 통치하려는 생물학 제국주의라는 비판을 제기했고, 반대편에 선 사회생물학/진화생물학자들은 그들이 제대로 된 이해도 없이 이데올로기적인 비판을 하고 있다고 맞섰다. 그리고 진화심리학이 인간 사회를 설명하는 과학 이론으로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지금도, 그에 대한 논쟁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다. 『사회생물학 대논쟁』은 다양한 분야에 걸친 국내 최고의 석학들이 사회생물학을 둘러싸고 벌인 치열한 논쟁을 담고 있다. 사회생물학 도입의 선구자 이병훈과 한국에 통섭 논쟁을 불러온 최재천 그리고 진화생물학과 진화심리학 대중화의 선봉인 젊은 학자 장대익과 전중환이 한 축을, 사회학자로서 학문 간 경계를 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김세균과 과학/사회 사이의 관계를 탐구해온 김동광 그리고 문화인류학자 이정덕과 과학기술사회학자 김환석이 다른 한 축을 이루어, 깊이 있고 치열한 '끝장토론'을 벌인 결과를 담고 있는 것이다. 사회생물학이 환원주의인가의 문제부터, 사회생물학과 인문·사회과학이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 '통섭'이란 번역어와 통섭의 대중적 유행을 둘러싼 설왕설래에 이르는 다양한 논쟁들을 따라가다 보면, 생물학과 인간 사회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통찰에 다다르게 된다. 또한 이 책은 사회생물학에 '균형 잡힌' 시선으로 접근하도록 돕는 사회생물학 입문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줄 것이다. 논쟁 1; 사회생물학은 나쁜 환원주의인가?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에 대한 가장 많은 비판은 생물학 환원주의 혹은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주장이다. 즉 사회생물학은 복잡한 사회 제도와 구조를 무시하고, 생물학으로 설명 가능한 생물학적 특성들만으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설명을 완료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김환석은 이러한 입장에 서서, 한 가지 원인으로 인간과 사회를 설명하고자 하는 환원주의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특히 그는 '자연적인 것'으로 모두를 설명하려는 사회생물학적 환원주의와 '사회적인 것'으로의 환원을 추구하는 사회과학적 환원주의를 동시에 비판한다. 그리고 사회과학적 대상의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인정하고, 인간과 비인간이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는가에 주목하는 브루노 라투르의 '행위자-연결망 이론'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에 대해 진화철학자 장대익은 행위자-연결망 이론 역시 행위자와 그 행위자들이 이루는 네트워크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행위자 환원주의'라고 반박한다. 그리고 다윈주의와 환원주의의 생산적이고 흥미로운 만남인 진화심리학이나 밈학이 훨씬 더 급진적인 견해라고 말한다. 즉 '탐욕스런 환원주의'와 '좋은 환원주의'가 있으며,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은 효과적으로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게 해주는 '좋은 환원주의'라는 것이다. 논쟁 2; 생물학으로 인간 문화를 설명할 수 있는가? 실질적으로 사회생물학은 인간과 사회와 문화를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있는가? 아니면 실질적인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생물학의 가능성을 과대평가하고 있는가? 문화인류학자 이정덕은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이 생물은 유전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전제하고, 인간의 행동을 유전자에 억지로 연결시키다 보니 억측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고 말한다. 사회생물학은 인간의 본능처럼 자기들에게 의미 있는 증거들만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나머지는 사소하게 여기거나 배제하고, 인간 문화의 다양성과 변화를 설명하지 못하는 사회생물학에 터무니없는 특권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 진화심리학자 전중환은 전통적인 사회과학이 생물학과 문화, 본성과 양육, 유전자와 환경, 본능과 학습의 이분법을 설정하고, 전자를 인간 문화를 설명하는 데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여긴다고 비판한다. 이것이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결정적 단절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밈학 등의 발전을 통해 진화생물학이 '유전적 진화'만이 아니라 '사회적 진화'를 설명해주는 효과적인 통로를 열어주고 있다 주장한다. 논쟁 3; 한국에서 사회생물학은 올바로 수용됐는가? 한국에서는 사회생물학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한국에 처음으로 사회생물학이 소개된 것은 1992년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이 번역되면서지만, 본격적인 논쟁은 윌슨의 『통섭: 지식의 대통합』이 번역된 2005년부터 불붙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 논쟁의 두 글은 사회생물학의 국내 수용사를 돌아보고, 그 과정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에 사회생물학을 처음으로 소개한 선구자인 진화생물학자 이병훈은 한국 사회생물학 수용사 전체를 상세하게 정리하고, 이를 일본과 중국의 수용 과정과 비교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한다. 그는 인문·사회과학자들의 사회생물학에 대한 감정적이고 부정적인 인식과 오해를 넘어서야 할 필요를 말한다. 그리고 한국의 진화생물학 수용은 아직까지 충분하게 진행되지 못했으며, 또한 분야 간 교류와 소통을 위한 노력 역시 부족하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과학기술사회학자인 김동광은 과학수사학을 통해 사회생물학과 통섭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이병훈과 달리 학술적 관점이 아닌 사회 현상의 관점에서 사회생물학과 통섭의 수용 과정을 살펴본다. 그에 따르면 사회생물학이 인문·사회과학자들에게 대대적인 비판을 받은 건 기득권 유지의 욕망과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윌슨이 그들을 설득하려 하기보다 호통을 치고 모욕을 주려 했기 때문이다. 즉 그가 자연과학자를 영웅적 탐험자로 추켜세우고, 과학의 영토를 과거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영역까지 확장하도록 고무하는 '정복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통섭'의 대중적 유행은 과학 기술에 대해 성찰 없이 쉽사리 열광하는 한국적 상황의 반영이라고 말한다. 사회생물학 논쟁의 결론, 혹은 새로운 논쟁의 시작을 위하여 그렇다면 진화생물학을 올바로 수용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 논쟁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고 있는 최재천의 서문과 김세균의 후기는 넓은 시선에서 논쟁 전반을 바라보면서 이를 위한 서로 다른, 그러나 서로 공명하는 길을 제시한다. 생물학자 최재천은 기본적으로 사회생물학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통섭과 환원주의 논쟁을 일괄한다. 그리고 사회행동을 단순한 유전자 결정론으로 설명하려는 '순진한' 사회생물학자는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하위구조에서 상위구조로 나아갈 때 나타나는, 그러나 그 구조를 구성하는 하위구조들로 환원될 수 없는 '창발적 속성' 역시 인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창발성 역시 언젠가는 과학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면에서, 그는 사회생물학자로서의 관점을 놓치지 않는다. 사회학자 김세균은 반대로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사회생물학과 진화생물학의 성과를 평가한다. 그는 이 연구 성과들을 인간 행동을 좌우하는 기초적인 요소로 인정해야 하며, 창발 현상이 환원주의적 통섭을 비판하기 위한 과학적 근거가 될 수는 있지만 학문 간의 벽을 쌓는 근거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즉, 유전자적·사회생물학적 요소들은 인간 행위를 만들어내는 데 직접 참여하는 요소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생물학적 환원주의는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는 사회학적 관점 역시 놓치지 않는다. 이들이 서로 다른 지점에 서서, 생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소통을 위한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두 길은 관점 면에서는 서로 다르지만, 무조건적 배격이 아닌 학문적 존중에 바탕한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갖는다. 저자들이 치열한 논쟁을 통해 궁극적으로 제시하고자 했던 건 이러한 소통의 길이며, 또한 그 길을 구체화하기 위한 비전을 제시하려는 하나의 노력일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또 다른 대화와 논쟁을 요구한다. 따라서 이 책은 과거의 논쟁의 정리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논쟁을 시작하기 위한 씨앗 역할을 해줄 것이다. ※ 이 책은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이화여대 통섭원, 한국과학기술학회가 2009년 공동으로 개최한 심포지엄 "부분과 전체: 다윈, 사회생물학, 그리고 한국"에서 발표된 글들을 수정·보완하여 엮은 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