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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만남 인연 상처 음모 종말, 혹은 새로운 시작 제2부 이십년 후 인연 붉은 달 불의 길 폐허 위에서 어둠 두번째 길 대결 어둠을 걷다 징후 불타는 산 또 다른 시작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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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結)!”
그러자 능원신물은 기둥에 붙잡히기라도 한 것처럼 꼼짝하지 못했다.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불똥을 떨어뜨리던 능원신물은 길환이 쏜 화살에 머리를 맞고는 그대로 소멸해버리고 말았다. 군배는 동전으로 엮은 채찍을 휘둘러서 구석에 숨은 능원신물을 끌어내고는 소멸환을 던져서 없애버렸다. 태우는 범어가 새겨진 목검으로 덤비는 능원신물을 토막 내버렸다. 화귀들이 사라지자 맹렬하게 타오르던 불길도 누그러졌다. 세 사람이 나란히 밖으로 나오자 구경하던 상인들이 박수를 쳤다. 멸화군들이 남은 불길들을 정리하는 사이 날이 밝아왔다. ---「제1부-만남」중에서 온몸이 뜨거웠지만 큰 상처를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그는 그녀를 토닥거렸다. “다행입…….” 그 순간, 고개를 든 그녀가 흉측하게 녹아버린 오른쪽 뺨을 부여잡은 채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길환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널빤지를 부수면서 불붙은 조각이 얼굴에 달라붙은 것이다. 늙은 기생을 비롯한 동료 기생들이 통곡하면서 울음바다로 변해버렸다. 당황한 길환은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제1부-인연」중에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자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몸이 바닥에 닿을 무렵 그는 금지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이마에 새긴 문신에서 빛이 났다. 순백의 빛은 연못에 고여 있던 붉은 화기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연못에 빠진 길환을 찾기 위해 근처에서 서성거리던 금위군들은 연못이 부글거리며 끓어오르자 기겁을 했다. 의식이 차츰 사라져가던 것을 느끼던 길환은 잊어버렸던 존재가 떠올랐다. ‘내 아이…….’ ---「제1부-종말, 혹은 새로운 시작」중에서 대화재 이후에 크고 작은 불들이 있긴 했지만 화귀들의 소행은 아니었지.” “사라진 게 아니라 조용히 힘을 길렀던 것이군요.” 길우의 이야기에 군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두렵단다. 화귀들은 절대로 숨어 지내지 못하거든. 그런데 그 오랜 세월 동안 조용히 힘을 길렀다는 건 분명 엄청난 힘을 지닌 존재가 있다는 이야기지.” ---「제2부-이십 년 후 인연」중에서 “그놈이 원하는 게 대체 무엇이냐? 한양? 아니면…….” 분에 못 이겨 말을 잇지 못하는 태종에게 철가면이 말했다. “화귀들이 태우는 건 집과 건물들이 아니오. 그걸 짓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지. 불은 증오와 두려움, 그리고 자포자기가 섞여 있는 인간의 마음을 밑거름 삼아서 세력을 키운다오.” “사람들의 마음을 태운다는 말이렷다.” “그렇소이다. 그것이 불과 사람의 운명이라오.” ---「제2부-어둠을 걷다」중에서 “붉은 구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핏빛 구름이 점점 사라져가면서 그 자리를 먹구름이 채워갔다. 태종을 비롯한 금위군들은 꼼짝 않고 다가오는 먹구름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기다리던 비가 쏟아졌다. 인왕산의 발아래에 있던 한양에도 비가 뿌려지는 것을 본 태종의 얼굴에 안도감이 서렸다. 그걸 지켜보던 충녕대군이 조용히 말했다. “마침내 비가 내립니다. 아바마마.”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그러니 이건 비가 아니라 피나 다름없느니라.” ---「제2부-불타는 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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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_길환은 태조 이성계와 부하들을 화귀로부터 구해준 인연으로 멸화군의 수장이 된다. 사실 그는 대대로 화귀와 싸워야 하는 운명으로, 예사롭지 않은 무협 능력을 가졌다. 멸화군으로 화귀와 싸워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월선루에서 불이 난다. 그때 기생 홍연을 구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오른쪽 얼굴에 화상을 입는다. 그 인연으로 길환과 홍연은 부부의 연을 맺는다. 이후 청동용이 사라진 틈을 타 궁궐 연못에서부터 불길이 올라와 경회루를 집어삼킨다. 이때 길환은 무사히 불길을 누그러뜨렸음에도 불구하고 태조의 반대 세력인 이방원의 음모로 멸화군들이 궁 안으로 은밀하게 무기를 가지고 들어오고 있다는 역모 누명을 쓴다. 이방원은 멸화군들을 모두 노비 신분으로 강등하고 죽을 때까지 불을 끄는 일을 하며 역모에 가담했다는 증거로 이마에 낙인을 찍는다. 주모자인 길환은 처형한다. 심마니에게 처형당하는 순간, 길환은 “내 아이……”라고 작게 되뇌며 죽음을 맞이한다.
제2부 _20년 후, 길환의 아들 길우는 멸화군이 모여 사는 곳을 찾았다. 그 역시 아버지와 같은 운명으로 술법과 부적 쓰는 법을 익혔다. 멸화군들과 함께 화귀와 싸워나가던 그는 동료 군배로부터 처형장으로 끌려가던 아버지 길환의 사연을 듣는다. 알고 보니 길환은 그때 술법을 부려서 궁궐로 들어와 연못에 몸을 날렸던 것. 원한을 품었던 길환이 형장에 끌려가기 전날 불에 감염되어 화귀와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길우는 아버지인 그를 없애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이 세상을 태워버리자는 화귀가 된 길환의 끊임없는 유혹에도 길우는 멸화군인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그와 대적한다. 아무리 아버지라 할지라도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그를 없애는 것이 정의라고 여긴다. 길우는 화귀와 싸워 이기고, 멸화군과 함께 고향으로 향한다. 또 다른 시작 _해안가에 떠내려온 이상한 배를 군졸들이 확인하러 간다. 죄다 불탄 흔적들뿐인 배의 꼬리 부분에서 불길이 치솟는다. 모두들 정신없이 도망치느라 배를 집어삼킨 불길이 사람의 얼굴 모양으로 타오르는 것을 아무도 미처 보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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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을 품고 화귀가 된 아버지
정의로운 멸화군으로 세상을 구하려는 아들 2대에 걸쳐 벌어지는 대단히 다채롭고 드라마틱한 이야기 이야기는 멸화군 길환의 사연에서 시작한다. 제1부에서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길환은 화귀와 싸워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영웅으로 태조 이성계의 신임을 얻어 멸화군을 진두지휘한다. 멸화군으로 활동하던 중 불길 속에서 연모하는 기생 홍연을 구하고 부부의 연을 맺는다. 궁궐에 불이 난 것을 핑계 삼아 궁 안으로 은밀히 무기를 가지고 들어온 역모 누명을 쓰고 처형당한다. 제2부는 길환의 아들 길우에 대한 이야기다. 길우 역시 멸화군으로 정의롭고 위엄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처형당한 아버지 길환이 원한을 품고 화귀가 된 반면, 아들 길우는 끝까지 인간을 돕는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를 처단하려는 아들의 분투가 생생히 펼쳐진다. 실존했던 조선시대 멸화군을 소환하여 영웅이라는 옷을 입히고, 아버지와 아들을 악과 선으로 대비했다. 인간에게 원한을 품은 탓에 악인이 된 아버지와 아버지인 줄 알지만 세상을 위협하는 악인이기에 처단하기로 결심한 아들의 가슴 아픈 싸움. 2대에 걸쳐 전개되는 이야기는 점점 다채로운 사건들로 풍성해진다. 태조 이성계에서 태종 이방원의 실제한 역사 속에 가미된 길환과 길우의 이야기는 매우 드라마틱하다. 증오와 두려움, 자포자기와 같은 인간의 마음을 ‘화귀’로 대변한 주제의식 영웅이었으나 화귀가 된 길환에게 주목하자. 그는 처형당하는 마지막 순간, 인간에 대한 증오를 품었다. 죽음이 두려웠다.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는 생을 포기하며 화기를 집어삼켰다. 그러고 나서 화귀가 되었다. “태초에 불과 물이 존재하고, 균형을 이룬 것은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탐욕스러워지면서 그 균형이 깨지게 되었지. 나는 인간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해줄 생각이다.” 화귀가 된 길환이 아들에게 한 이 말 속에 이 소설의 주제의식이 깃들어 있다. 인간의 악한 심리는 마음의 균형감을 깨뜨리는 ‘화귀’ 와도 같다. 선한 마음은 영웅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지만, 나약함에 빠지는 순간 불에게 영혼을 빼앗긴다. 조선시대에 펼쳐진 정치 세력 싸움의 희생양인 길환이 화귀가 된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폄하할 수만은 없다. 우리 역시 그 시대 그 상황에 처하면 그와 같이 증오, 두려움, 자포자기라는 마음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누명을 쓰고 처형당하는 순간, 의연하게 마음의 균형을 가질 수 있는 인간이 되기란 쉽지 않다. 길환이라는 존재에게서 연민이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위기의 순간 모든 것을 앗아가는 ‘화귀’가 될지도 모르는 ‘나’가 투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