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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__만남 그 나무 문상 시간은 둥글다 뿌리는 숨은 가지이니 쓸쓸한 물음 제2부__그해 축제 옹이 1 걷는 나무 삶은 푸르다 동일성과 차이 포플라 잎사귀는 포플라를 닮았다 매미 1 코스모스 아담의 고독한 말 세상의 모든 낙엽 11월 단풍나무 유심 거대한 뿌리 삭발 지는 것은 힘이다 제3부_이듬해 개화 전야 부채 숨을 쉬며 황사바람 몇 매미 2 화두 참새와 나무 모순율 사랑인가 사는 일 후회 그때였다 제4부_그 이듬해 그 까치집 시간의 추상화 만일기도도량 비자림(榧子林) 혹성탈출 옹이 2 선악을 넘어서 1 선악을 넘어서 2 나는 누구인가 선택 청동거울 시간은 어디 있나 맨발 부활 1 부활 2 소멸의 창작 노동리 고분에서 노서리 고분에서 따뜻한 집 제5부_그 후 옹이 3 기도 숯 적멸보궁 머나 먼 소식 부활 3 차라투스트라를 보다 칼리 사원 바라나시 마지막 이별 다시 만나다 마왕퇴의 백서(帛書) 에필로그 해설 시에 이르는 시간의 황홀한 오디세이 이성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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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
― 1-1 조등도 상주도 없고 문상객도 없다 그곳엔 아무 일 없었다 매화나무 소나무 은행나무… 이웃들은 그대로 조용하고 책을 끼고 오가는 사람들 시선도 예전처럼 무심하다 아무 일 없는 것이다 수신인 없는 부고만 한 장 임종 전 발송됐고 멀지 않은 전생의 인연으로 나는 매일 그 나무 곁에 와 아직 서 있는 망자에게 문상하고 문안하며 오래 되뇌던 말들을 홀로 문답한다 --- 「문상」중에서 시간은 둥글다 ― 1-2 거대한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흘러내렸다 어느 손의 힘인가 어느 손의 뜻인가 천천히 되돌아 다시 시작되었다 가장 오랜 과거가 가장 먼 미래로 오리라 길 위에서 아직 멈추지 않은 그 나무 긴 앞길의 끝이 휘어져 보인다 지나온 뒤의 길도 휘어져 있다 모래는 돌고 시간은 둥글다 --- 「시간은 둥글다」중에서 비자림(榧子林) ― 2-26 입구에 발을 디디자 가까운 나무 밑동 곁에 앉았던 뱀이 천천히 숲 속으로 들어갔다 숲은 뱀을 빨아들였고 우리는 뱀의 유혹을 따랐다 팔백년 고인 시간의 늪 무서운 힘이 짙은 안개처럼 온몸을 휘감았다 그 속에서 어떤 나무는 속이 비어 기브스하고 서 있고 어떤 나무는 산발한 노파처럼 앉아 있었다 이곳에도 새로운 시간이 흘러든다는 건 갓 떨어진 향기로운 열매가 알려준다 들어와도 나가지 못하는 진한 시간의 늪에서 간신히 돌아 나와 숲을 벗어났을 때 머리가 희어지지 않았나 자꾸 살펴보았다 숲 밖에 가로수로 서 있는 어린 비자나무들이 들어갈 때완 아주 다르게 보였다 --- 「비자림(榧子林)」중에서 사는 일 ― 2-21-2 제 몸 속살 뽑아 스스로 갇힐 집 짓는 일 안에서 밖을 두르며 내 안에 나를 가두는 일 하얀 실을 엮어도 검은 동굴 되는구나 아늑하여라, 그러나 두려워라 여기가 끝이 아니니 암실에서 인화되는 미래 비로소 보이는 과거 나를 덜어내는 일은 날개를 만드는 일이었고 날개를 만드는 자는 문(門)을 알고 있다 황홀하여라, 그러나 두려워라 이 또한 끝이 아니니 --- 「사는 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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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이야기’ 속의 한 편 한 편의 서정시들은 제각각 노래하며 졸졸졸 흐르다가 어느 순간 서로 이어지며 계열화, 재계열화되면서 서사를 생성하고 심오한 철학적 사유를 속삭이기 시작하고 시간을 닫기도 하고 열기도 한다. 그것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우리가 잊어버렸던 의문과 질문들이 메아리친다. 훤히 내부가 보이지만 알 수 없는 질문으로 메아리치는 투명한 언어들은 얼마나 위험한가? 그것들은 아무 저항감 없이 다가와 우리의 깊은 상처를 불러낼지도 모른다. 황애숙의 언어는 그러하다.
‘시간 이야기’는 ‘그 나무’의 죽음 그리고 죽음의 발견으로부터 ‘그 나무’의 소멸과 부활로 이어지는 일련의 서사 구조 위에 떠도는 서정시의 섬들이다. 이 섬들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른 시간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연결이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가 시간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이야기이고 이야기가 시간이다. - 이성희 시인 해설 「시에 이르는 시간의 황홀한 오딧세이」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