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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바다의 조각들 만선의 총량 이만 해리 밖 난파 어느 선장의 신탁 사우스조지아섬의 묘박 표류하는 사람들 폭풍주의보 마지막 노을 소금꽃 환하다 리브해의 닻 난파 다시, 실러캔스 사랑을 잃다 마다가스카르 뱃사람의 이웃 로스해 심해 마르 파시피고 난파선 졸리 로저 호 황천 2부 충무동 지짐집 바다 안개 흰점무늬파란바다물뱀 삼등 항해사의 기도 스탠리 항 민들레 파도 가자미에게 경배 신자본주의 연어의 귀천 면역의 문신 처리장 손일 알바코르, 읽다 정박등 앞 와와 과 수평선에서 놀다 미크로네시아, 이유 없이 슬픈 만선 남풍에게 한심한 술고래 갑판에는 만선 대신 붉은 해 싱싱한 포승 3부 전복희, 어머니 이름은 적도 세이셀에서 남극해 쿠릴, 피항하며 환생을 지키다 마지막 기항지 폭풍에 닿다 깃털에 대한 유감 퇴선 악마와 검푸른 바다 사이 타이푼, 2022 블루 홀 같은 수평선, 이름 없는 사내의 봉분 몬테비데오 조리장 박 씨 희망봉 롱 워프에서 열대성저기압 어느 해 1월 1일 항해일지에서 잭타르의 편지 해설_ 홍기돈(문학평론가) 붉은 수평선 위에 분기공을 쏘아올리는 고래의 깊은 허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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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막 커튼 장미 화병 곁에는 DGPS와 몇 장의 해도 그리고 바다를 조명하는 LED 등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쓰가루 해협을 통과하고 사흘이 지나도 나침반 방향은 여전히 북쪽을 부둥켜안았다. 선회창 앞으로 알류산 열도가 스칠 듯 다가와서 천천히 멀어졌다. 묘박지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파랑주의보가 발령되자 종생에 근접한 통신장의 주름이 깊어졌다. 수다스럽던 수평선이 퍼렇게 멍이 들기 시작했고 선장은 애정하던 돈나무 화분에 아침의 절반을 토했다. 그것 또한 바다를 선택한 자의 운명이다. 눈물마저 말라버린 밤, 갑판장은 구명정에 시동을 걸면서 생각했다. 브리지로 예리한 각도의 빗방울이 연거푸 날아들 때 파랗게 질린 실습항해사는 울음소리도 내지 못한 채 뱃머리에 버려졌다
--- 「바다의 조각들」 중에서 두려움의 연속무늬를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목숨을 걸고 해치는 파도가 황천의 뜻을 몰라서 마른 바닥 어창을 더듬는 건 아니다. 희망이란 이름 아래 물고기를 쫓아가다 보면 좌초할 것을 알면서 해령 위에 서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삶은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때로는 난파할 것을 알면서 투망 지시를 내리고 싶을 때도 있다. 불안에 몰린 만선은 낭만의 적이나 유영할 곳을 잃은 참다랑어 꼬릿살은 밤참이다. 누구 하나 탐욕에 만족하는 사람이 없다 --- 「만선의 총량」 중에서 13일 금요일 도미니카와 헤어진 달 없는 밤 포트 모르즈비항을 끝으로 난파했다. 아마존강을 기어오르는 분홍돌고래의 마지막 흰 분기공처럼 조타륜 곁 아스파라거스 그늘에서 마셨던 테킬라 한 잔. 수평선은 블랙홀처럼 어두웠고 전율과 공포가 강제된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는 마치 쇠 스파이크처럼 늑골을 쑤셔대었다. 발이 묶인 채 저승으로 끌려가는 앨버트로스처럼 파도 소리마저 서걱거렸다. 눈물조차 무거워 울지 못했던 그때의 황천. 꿈도 꾸지 못했다. 살아 술잔을 기울일 거라고는 --- 「이만 해리 밖 난파」 중에서 나는 선택되었고 권력은 해신에게서 왔다. 뱃사람은 나에게 머리를 끄덕이거나 조아린다. 해류를 따라 떠다니며 아침이면 신천옹도 긴 깃을 펼쳐 경배의 문안을 올린다. 나는 고향을 떠나 태풍의 눈 밖을 기웃거리는 운명이다. 나는 날뛰는 어둠이나 고통으로부터, 흘수선으로 몰려드는 둔탁한 파도의 공포로부터, 축축한 선실에 등을 기댄 외로움으로부터 뱃사람을 지킨다. 나는 제비갈매기가 하염없이 허공에서 재잘거리듯 흔들리며 바다를 떠돈다. 나는 선장이다. --- 「어느 선장의 신탁」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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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하는 선박은 밸러스트가 필요하다. 선원들을 안전하게 지키려면 선장에게 중심이 있어야 한다. 지독한 강박이다. 죽음은 용서를 인정하지 않았다. 바다에서 중심을 잃는 건 용서가 안 되었다. 물고기를 쫓으며 이곳저곳 바다를 떠다녔다. 홀로 죽어가는 뱃사람들 모습을 보았다. 그 뱃사람들이 중심을 잃고 쓴 편지를 모았다. 바다를 벗어나도 파도는 부서졌다. 나는 뱃사람이다. 해양문학은 바다와 인간, 그 사이에서 형성되는 해양정신이 아닌가? 마치 선박의 평형수처럼 문학은 나의 평형수였고 나는 중심을 옹호한다. 뒤따라오는 파도가 더 큰 건 아닐까. 흰점무늬파란바다물뱀에게 물어본다.
- 「시인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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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점무늬파란바다물뱀』에는 「마지막 노을」, 「난파」, 「황천」, 「바다 안개」, 「한심한 술고래」, 「갑판에는 만선 대신 붉은 해」, 「적도」, 「세이셀에서」, 「마지막 기항지」 등 붉은 이미지가 강렬한 시들이 여럿 실려 있다. “뱃머리”가 “적도의 붉은 연속무늬를 시퍼렇게” 가르는 「세이셀에서」 한 편만 예외일 뿐, 이들 시편에서 붉은색은 죽음 혹은 생의 신비를 품고 있는 색채이다. 예컨대 「난파」, 「황천」, 「적도」에서의 붉은색은 죽음을 의미한다. 난파 직전의 배는 “붉은 섬광 아래에서 흔들”리다가 결국 “죽음의 곁을 배회하는 물의 손자이자 악마가 흔드는 회초리”인 태풍에 휘말리고(「난파」), “돌풍이 일어” 나침반의 “방향을 잃”은 탓에 “침로를 유지”할 수 없게 된 선박은 “붉었다”고 표현되는 “수평선 노을”에 물들어 있으며(「황천」), “묘비명이 가득”한 「적도」를 지나는 선박은 “죽음 대신 남겨진 붉은 발자국을 겹쳐 밟”고 있다. 붉은 섬광, 노을, 적도赤道 모두 죽음의 입구 위에 번져 있는 형국이다. (…) 『흰점무늬파란바다물뱀』에서 붉은색은 인간의 운명을 상징하는 색깔이다. 인간이 안고 있는 삶의 유한성이 불거지거나 유한한 존재의 의미를 추구할 때, 수평선으로 나뉘는 천상계와 해수면의 경계를 지우면서 붉은색은 번져 나간다. 해수면의 경계를 넘어섬으로서 비상 가능성을 예비한다는 측면에서 이는 욕망에 이끌린 수평선(수평축) 위의, 혹은 안의 이동과는 분명히 다르다. 『흰점무늬파란바다물뱀』의 한 축이 인간의 탐욕을 응시하는 시선이라면, 다른 한 축은 붉은색으로 표상되는 유한한 삶의 의미 추구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 홍기돈 (문학평론가, 가톨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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