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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4 5 6 7 8 9 옮긴이의 말 |
Ian Russell McE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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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계속해서 존재한다는 환상이 없다면 그는 길을 잃고, 시간은 멈출 것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아이의 아버지였다.
--- p.8 그러다 어느 날 오후, 어지럽던 물건들이 사라졌다. 스티븐은 딸의 방에서 시트를 벗겨낸 침대와 방문 옆에 놓인 불룩한 비닐 자루 세 개를 보았다. 그는 줄리에게 화가 났고, 여성 특유의 자해 성향, 의도적인 패배주의라고 나름대로 이해했지만 그 행동에 넌더리가 났다. 하지만 그녀에게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분노의 여지나 감정의 배출구는 없었다. 그들은 대립할 기력도 없이, 수렁에 빠진 사람들처럼 움직였다. 갑자기 그들의 슬픔은 개별적이고 배타적이고 소통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목록을 들고 매일 고단한 발품을 팔았고, 그녀는 안락의자에 앉아 혼자만의 깊은 슬픔에 빠졌다. 이제 서로 주고받는 위안은, 어루만짐은, 사랑은 없었다. 이전의 친밀감, 둘이 같은 편이라는 습관적인 전제는 사라졌다. 그들은 각자의 상실감을 붙들고 웅크렸고, 말하지 않은 원망이 쌓이기 시작했다. 상실감은 그들을 자기 성격의 극단으로 몰아갔다. 그들은 서로에게서 얼마간의 참기 힘든 점을 발견했으며, 슬픔과 충격으로 인해 그것들은 극복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두 사람은 이제 더는 함께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그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선 채로 끼니를 해결했다. 시간을 버리기 아까워서, 자리에 앉아 머릿속 생각을 듣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가 아는 한, 아내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 pp.39-40 몰리가 가고 난 후, 그는 딸의 빈방으로 들어가 불을 켰다. 아이의 물건이 가득 든 쓰레기봉투가 아직도 목제 싱글 침대 매트리스 위에 놓여 있었다. 방에서 눅눅한 냄새가 났다. 그는 무릎을 꿇고 라디에이터 밸브를 돌렸다. 잠시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기분을 시험해보았다. 이때 그가 대적한 상대는 상실이 아니라, 높은 벽과 같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상대는 살아 움직이지 않았고 중립적이었다. 사실. 스티븐은 그 단어를 마치 욕설처럼 소리 내어 말했다. --- pp.304-305 그는 그녀를 올려다보며 무슨 말인가를 막 하려는 참이었다. 줄리가 속삭였다. “그 애는 사랑스러운 딸이었어, 사랑스러운 아이.” 그는 얼이 빠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 3년이나 뒤늦게, 그들은 마침내 함께 울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아이, 대체할 수 없는 아이, 그들의 기억 속에서는 더 나이 먹지 않을 아이, 시간이 흘러도 특징적인 생김새와 움직임이 변하지 않을 아이를 위해서. 그들은 서로에게 매달렸다. 마음이 더 편해지고 슬픔이 좀 가라앉은 후에는, 울면서도 할 수 있는 데까지 그간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의 사랑을 약속했다. 아기에게, 서로에게, 서로의 부모들에게, 셀마에게. 마구잡이로 퍼져나가는 슬픔의 힘으로, 그들은 모든 이와 모든 것을 치유하기로, 정부와 이 나라와 이 행성을, 하지만 가장 먼저 그들 자신을 치유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딸을 잃어버린 일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새로운 아이를 통해 딸을 사랑할 것이며 그 아이가 돌아올 가능성에 마음을 닫지 않기로 했다. --- pp.404-405 다른 도시나 다른 나라에서가 아니라 생명 그 자체에서 찾아온 사람으로서 그것이 갑작스럽고 명백하게 거기 있다는 사실, 그 단순함이 그에게 명백하고 정확한 목적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 줄리에게 무언가 안심시키는 말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은 어떤 기억에서 위로를 얻었다. 햇살 쏟아지는 도로와 자동차의 충돌 잔해와 한 사람의 머리에 대한 폭죽처럼 짧고 또렷한 기억. 생각이 단순하고 기본적인 형태로 변하고 있었다. 바로 이것, 이 증식, 스스로를 사랑하는 이 생명의 물질이 우리가 가진 전부로구나,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여기에서 비롯되는구나. --- p.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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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작가이자 행복한 가정을 꾸린 스티븐은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한눈을 판 사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딸 케이트를 잃어버린다. 그 후 스티븐과 줄리는 아이를 잃은 상실감 속에서 하루하루 겨우 견디며 살아간다. 잔인한 운명 속에서 두 사람은 삶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지만 고통스러운 시간을 움켜쥔 채 삶의 소중한 흔적들을 조금씩 발견해나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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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액트』, 『속죄』, 『체실 비치에서』를 잇는
베스트셀러 작가 이언 매큐언의 최고 걸작 오은 시인, 이슬아 작가, 허남웅 영화평론가 추천 1987년 휫브레드상 수상작 아이를 잃어버린 한 부부의 이야기 아동문학 작가인 ‘스티븐’은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상실감과 어쩌면 아이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느다란 희망 사이를 불안하게 오가며 망가진 일상을 살아간다. 소설은 고통스러운 현재의 시간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는 과거의 시간을 더하여, 치밀하고 섬세하게 스티븐의 심리를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소설이 단순히 아이를 잃은 스티븐의 상실감, 즉 무력한 부성애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목록을 들고 매일 고단한 발품을 팔았고, 그녀는 안락의자에 앉아 혼자만의 깊은 슬픔에 빠졌다. 이제 서로 주고받는 위안은, 어루만짐은, 사랑은 없었다. 이전의 친밀감, 둘이 같은 편이라는 습관적인 전제는 사라졌다. 그들은 각자의 상실감을 붙들고 웅크렸고, 말하지 않은 원망이 쌓이기 시작했다. 상실감은 그들을 자기 성격의 극단으로 몰아갔다. 그들은 서로에게서 얼마간의 참기 힘든 점을 발견했으며, 슬픔과 충격으로 인해 그것들은 극복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두 사람은 이제 더는 함께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그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선 채로 끼니를 해결했다. 시간을 버리기 아까워서, 자리에 앉아 머릿속 생각을 듣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가 아는 한, 아내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_본문 중에서 ‘케이트’의 실종 이후 보이는 스티븐과 ‘줄리’의 상반된 행동은 소중한 존재를 잃고 난 뒤에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슬픔, 상실, 무력감 등의 여러 감정을 부모가 보일 수밖에 없는 여러 형태의 행동으로 드러낸다. 어떤 면에선 ‘부성’과 ‘모성’의 차이를 설명하고, 더 나아가서는 결코 같을 수 없는 어른의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스티븐의 글과 줄리의 음악을 통해서는 슬픔에 잠식당한 예술이 결국에는 그 슬픔을 받아내고 표현해내는 과정을 성실히 그린다. 높은 사회적 직위를 내려놓고 외딴 시골 숲으로 들어가는 스티븐의 친구 ‘찰스’의 이야기는 ‘차일드 인 타임’ 즉, ‘시간 속의 아이’라는 상징성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한다. ‘어른의 가치’와 ‘어른과 아이를 구분 짓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사라진 케이트의 자리에서 태어나 소설 내내 쫓아온다. 『차일드 인 타임』은 대체 불가능한 상실에서 ‘잃었다’가 아닌 ‘있었다’를 더듬게 만든다. 이는 ‘(어딘가에) 있다’는 감각으로 우리를 시종 법석이게 한다. 대체 불가능한 경험이다. _오은(시인) 오은 시인이 말했듯이, 우리는 『차일드 인 타임』을 읽으며 ‘잃어버렸다’와 ‘있었다’ 사이에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 존재했었다는 걸 기억해낸다. 또한, 그것이 ‘잃었다’와 ‘있었다’ 사이에 여전히 ‘있다’는 것도 믿게 된다. 우리는 작가의 치밀한 문장을 따라 아이를 잃어버린 시간에서, 아이를 얻는 시간으로 강제로 이동한다. 이야기의 이동이 너무 갑작스러워 다소 불편하게 느낄 수 있지만, 기쁨 없이 고통만을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이해한다면 그 이동 또한 삶의 순리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이처럼 소설은, 아빠와 딸, 엄마와 딸, 그리고 남편과 아내 사이의 다층적 사랑, 그리고 겹겹이 쌓인 여러 관계의 심리적 현실을 조금도 주저함 없이 생생하게 그려낸다. 아이가 계속해서 존재한다는 환상이 없다면 그는 길을 잃고, 시간은 멈출 것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아이의 아버지였다. _본문 중에서 마트에서 아이를 잃어버리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하는 『차일드 인 타임』은 아이를 찾는 이야기에 집중하는 대신, 상실의 고통과 삶의 비극 아래에서 흘러가는 ‘시간’ 자체에 몰입한다. 가장 소중한 존재를 잃어버린 사람이 느끼는 시간은 이럴 수밖에 없다는 듯, 소설 안에서의 시간은 한곳에 고정되지 않고 슬로모션처럼 수백 개로 늘어나고, 오늘내일의 구분 없이 빠르게 흘러간다. 하지만, 종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끝에서 우리가 끝내 알게 되는 건, 그리고 믿게 되는 건, 케이트가 어딘가에 분명히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현실 속의 아이’와 ‘어른 속의 아이’가 사라져버린 세상에서, 스티븐이 시간을 넘어 엄마와 만났듯이, 스티븐과 줄리가 언젠가 시간을 넘어 케이트와 만날 것을 마구잡이로 퍼져나가는 슬픔의 힘을 붙든 채로 우리는 모두 믿게 된다. 읽는 즐거움이 크다. 매큐언은 디킨스와 로렌스, 울프를 합친 것처럼 글을 쓴다. 감상적이지 않으면서도 강렬하고 재미있다. _[월스트리트저널] 기막히게 잘 쓰이고 감동적인, 진지하면서도 술술 읽히는 소설이다. 공포와 짜릿함을 느끼고 싶다면, 활기를 얻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라. _[선데이타임스] 아빠와 딸, 남편과 아내 사이의 다층적 사랑과 겹겹이 쌓인 여러 관계의 심리적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사무치게 사실적이고 정교하다. _[뉴욕타임스] 북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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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인 타임』은 대체 불가능한 상실에서 ‘잃었다’가 아닌 ‘있었다’를 더듬게 만든다. 이는 ‘(어딘가에) 있다’는 감각으로 우리를 시종 법석이게 한다. 대체 불가능한 경험이다. -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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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시간과 얻은 시간을 날카롭게 직선으로 이어 부드럽게 원으로 완성하는 이언 매큐언의 스위스 시계장인 같은 정교한 필체의 기술에 넋을 잃게 된다. - 허남웅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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